그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젊은이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앞만바라보았다.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안에서 솟구쳤고,
전쟁 초기부터 쌓인 온갖 고통, 온갖 분노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죽어가는 친구를 보며 느끼는 울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다는 패배감, 영웅주의적인 애국심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공허함으로 그는 운명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심을 품게 되었다.  - P541

보수적인 부르주아들의 가슴속에서도 불타고 있었다. 프랑스는 피와돈이 말라가고 있었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항전을 고집하는 파리에대한 은근한 반감이 지방 점령지 전역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강베타의 열렬한 선언을 암시하며 결론을 내렸다.
"아니, 아니! 우리가 극렬분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어요. 결국 잔혹한죽음에 이르게 되니까 …… 저는 선거를 원하는 티에르 씨를 지지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화정, 맙소사! 하지만 공화정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더 나은 게 나올 때까지."
- P625

달리샹 박사가 장을 이륜마차로 부이용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박사의 용기와 선의는 끝이 없었다. 바이에른에서 퍼지기 시작한 티푸스가 로쿠르를 휩쓸자 그는 집집을 다니며 환자를 치료했고, 그 외에도로쿠르 야전병원과 레미 야전병원 두 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부상병을 치료했다. 열렬한 애국심, 부당한 폭력에 대한 저항심으로 인해 그는 프로이센 당국에 두 번이나 체포되었다 풀려났다. - P630

수개월의 고통과 기아를 거치며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 이제 무위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시민들, 바야흐로 자신이 만든 유령 앞에서 의혹에 빠진 시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반란의 싹이 텄다. 시민들의 영혼을 헛되이 불태운 뒤 복수와 파괴의 맹목적 열망으로 변해버리는 환멸의 애국주의는 독일의 대대적인 포위 공격이 끝날 때마다 보이는 정신적 발작 가운데 하나였다.  - P648

 아! 장군들! 그의 뇌리에스당의 장군들이, 그 향락적이고 무능력했던 장군들이 떠올랐다. 장군이 한 사람 늘었든 줄었든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그날 하루의 나머지시간도 똑같은 열광과 흥분, 그의 전망을 완전히 바꿔놓은 열광과 흥분속에서 마무리되었다. 거리의 포석조차 바라는 듯했던 무장봉기가 점점 확산하더니 예기치 않은 승리의 운명 속에서 대번에 사태를 지배했고, 마침내 밤 열시경 시청을 중앙위원회 손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자신들이 시청을 장악한 게 믿기지 않는 듯 놀라워했다.
- P651

그러자 말도 안 된다는 듯 격한 몸짓으로 모리스는 장의 손을 놓았다. 두 사내는 잠시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파리 전체를휩쓴 광기의 충동, 즉 저멀리서 온 질병, 황제가 뿌린 병균에서 비롯된질병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노동과 검약의 땅에서 자랐기에 상식과 무지로 무장한 채 상대적으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형제나 다름없었고, 연대감이 더없이 강고했다.
갑자기 군중이 떠밀어 서로 떨어지게 되자, 그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 P653

죽음을 모면한 모리스는 패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프로이센군과 맞붙어 번번이 패한 자칭 합법 정부군이 파리와 싸울 때는 엄청난용기를 발휘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 P655

화염에 휩싸인 주변건물들이 내뿜는 참을 수 없는 열기와 질식할 듯한 공기가 그의 몸을휘감았다. 포석 더미가 쌓인 십자로는 비처럼 쏟아지는 불똥과 함께 화재로 방어되는 진지, 불의 참호로 둘러싸인 진지가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명령이 아니었던가? 바리케이드를 포기할 때는 동네에 불을 지를것, 불덩이 방어선으로 정부군을 저지할 것, 파리를 넘겨줄 상황이 닥치면 파리를 불태울 것. 벌써 화염에 휩싸인 지역은 바크가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뒤로 도시 전체가 불타는 듯 검붉은 하늘이 보였고, 멀리서뭔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 P666

시라도 편히 쉬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끌려와 임의로 뒤섞인 포로 출신병사들은 파리를 향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리고 코뮌의 만행도 소유와 질서에 대한 존중심에 상처를 내며 장을 격분하게 했다. 온건한농부로서 그는 다시 땅을 일구고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노동할 힘을얻을 수 있도록 그저 평화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화재는 가장 선한천성마저 잠재우며 미치도록 그의 화를 돋우었다. 승리할 수 없다고 해서 집을 불태우고 궁전을 불태우다니, 아. 그건 안 돼, 말도 안 돼! 그것은 날강도들이나 할 짓이었다. 그 전날 즉결 처형을 보고 통탄을 금하지 못했던 그도 이제 자제력을 잃었고, 고함을 지르며 눈이 뒤집힐 정도로 난폭해졌다.
- P667

 마침내 파리가 불타고 있어, 독일군의 포탄이 처마끝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파리가 불타고 있어! 군터는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다. 포위공격으로 인한 격심한 피로, 혹독한 추위, 끊임없이 발생하는 난관 등이 여전히 독일군을 괴롭혔는데, 이제야 그 고통을 보싱빈는 기분이었다. 지방의 정복도 50억 프랑의 배상금도, 그 무엇도 이 파괴된 파리,
사나운 광기에 물든 파리, 청명한 봄밤에 스스로 불타올라 연기 속으로사라지는 파리만큼 승리의 자부심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 P673

그러나 모리스는 불타는 도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힘겹게더듬거렸다.
"아냐, 아냐, 전쟁을 저주하지 마……… 전쟁은 나쁜 게 아냐, 전쟁은자기 할일을 할 뿐이야….."
장이 증오와 후회에 찬 고함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제기랄! 네가 여기에 누워 있잖아, 그게 다 내 잘못인데……… 전쟁이뭐가 좋다고 그래, 전쟁은 더러운 거야!"
환자가 모호한 몸짓을 했다.
"오! 전쟁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이점도 많아!..… 유혈사태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전쟁이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이야."
-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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