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속 괴물들의 주요한 매력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들의 다중적이고 다변적인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마다 고유의 내력을 가진 허구의 인물들은 자기들이 등장하는 책이아무리 길든 짧든 간에 그 안에만 갇혀 있지 않는다. 햄릿은 헬싱외르 성의 기둥과 아치 들 아래에서 이미 청년인 상태로 태어나, 성 안연회장에 나뒹구는 시체들 사이에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지만,
수 세대에 걸친 독자들은 책에 쓰여 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햄릿의유년 시절을 프로이트 이론으로 조명한다든지 그의 사후 정치적 이력을 밝혀내기도 한다 예컨대 제3제국 시대 독일에서 햄릿은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인물이 되었다. 엄지손가락 톰은 몸집이 커졌고, 헬레네는 쪼글쪼글한 노파가 되었으며, 발자크의 라스티냐크는국제통화기금에서 일하고, 오디세우스는 람페두사 해안에서 난파당하고, 킴은 영국 외무성에 채용되며, 피노키오는 텍사스의 아동 강제수용소에서 쇠약해져가고 클레브 공작부인은 빈민가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처지가 되었다. - P16

빨간 모자의 신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마찬가지로 시민불복종이다. 독재자 같은 어머니의 명령은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따르기는 하되,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달콤한 시간을 추구하는 것이다. A부터 Z까지 한 번에 가는 지름길이라든지 정도正道를 걷는것은 그녀의 방식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라면빨간 모자를 지지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탈선하는 게 좋아.
그편이 더 재미있고 하여튼 여러모로 낫잖아"라면서, 빨간 모자가 탈선하는 덕분에 숲이 살아 움직이고, 늑대와 나무꾼이 나타나고, 할머니의 낭만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 P40

그리고 논쟁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앨리스는 최소한 그 상황이 부당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부득부득 지적하고야 만다. 하트 여왕이법정에서는 "저형이 먼저고 평결은 나중"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자앨리스는 즉시 "말도 안 돼, 헛소리야!" 라고 대꾸한다.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부조리에 걸맞은 유일한 대답이라 하겠다.
- P59

그리고 여자 옷을 주워 입고 왕궁 식당에서좀 아방가르드한 연극을 하는 배우 무리와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아마 게이인 모양이다. 그러면 그놈의 짜증스러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고민도 설명이 된다. 이쯤에서 걔가 마음을 확실히 정했으면 좋겠다. 도대체가, 헬싱외르 궁정에서 게이가 자기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 P69

 햄릿의 꿈속 삶은 거트루드가 죽을 때까지 억지로 살아야 하는 현실의 삶과뒤섞인다. 그것은 그녀가 헬싱외르의 지긋지긋한 낮과 밤을 견디기 위해 발휘했던 인내심도, 그녀의 성별과 계급 때문에 주어진 부당한 처사들을 극복하기 위해 동원했던 작전들도, 살아오면서 여러 고통스러운 일을 극복하고 거두었던 작은 승리들도, 시시각각재정의되는 희망이 그녀에게 안겨주어야 할 위안도 모두 부정해버린다. - P72

아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릴리트는 뱀과 계속 어울렸다. "신이 왜 네가 아담에게 복종하길 바라는지 알아?" 뱀이 물었다. "그리고 어째서 아담에게 생명수의 열매를 못 먹게 하는지 알아? 같은길드의 공예가들은 서로를 미워하는 법이지(이 구절은 훗날 탈무드에 적혔다). 신은 창조와 파괴의 힘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 P97

그러나 스티븐슨식 여행관에는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 예수가 유대인에게 벌을 주기로 마음먹었을 때 염두에 둔 것도 바로 그점이었을지 모른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유대인이 받은 저주는 여행이 아니라 도주가 된다. 그는 집단 학살이나, 굶주림이나, 실직난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한다. 강제 수용소, 굴라크, 용병, 다국적 석유 회사, 삼림 남벌 업자, 가뭄과 홍수, 군사적 또는 종교적 독재 정권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광막한 사막과 거대한 산맥을 건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진 채 바다에 뛰어들고,
경찰의 채찍질과 군중의 조롱을 당해야 한다. 저 바깥 어딘가에 있을 자비로운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해주고, 인간다운 삶을 허락해주고,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떠맡았던 죄를 마침내 면제해줄 것이라고 애써 상상하면서.... - P104

그러나 공주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다. 저주도, 축복도 거부하고, 잠든 궁정 대신들도, 부모님이 저지른 결례도 거부하고, 끝없이 찾아오는 왕자마저도 거부하는 것. 그리고 입센의 노라나 카르멘 라포레의 안드레아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현대판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처럼, 마법의 성문을 열어젖히고 크게 뜬 두 눈으로세상을 맞닥뜨리는 것 말이다.
- P110

오늘날 우리는 괴물을 믿지만 괴물에 대한 책임감은 외면하고싶어 한다. 이제 키마이라 같은 괴물의 존재는 우리에게 진실이나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회피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지극히 위대한 행동도 할 수 있고 극도로 혐오스러운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는 진실 말이다.
- P146

늘 모자란 존재로 남는 것이 그의 운명인 셈이다. 그의 역할은 밭이나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주인을 위해 봉사하도록, 겸손하고 비굴해지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루소가에밀이 밤마다 읽을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바로 이러한 불공정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 P156

세르반테스가 누구였든, 스페인과 정치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있었는 궁극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 돈키호테』의 독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배제된 문화는 결코 쉽사리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역사 속에서 부재는 현존만큼이나 견고하다는 것,
그리고 때로 문학이란 세상 그 어떤 지혜로운 문학가보다도 더 지혜롭다는 사실을 시데 아메테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 P186

이 소설의 제목에 이름을 내준 건물이 그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으로 규정되듯, 그는 괴물처럼 흉측한 외모로규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험한 관점으로서,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등이 구부정하고 이가 들쑥날쑥하고 눈이 비뚤어진 카지모도가 실상 훌륭한 사람이라면, 정교하게세공된 석재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이루어진 노트르담 이면의 실상은 과연 무엇일까?
- P202

(독서가들이라면 알다시피) 책이란 한 권이든 1만 2천 권이든 간에 읽는 사람이 선택한 길만을 비춰줄 수 있다. 책은 독서가에게 어떤 의무적인 목표를 정해줄 수도, 심지어 특정한 방향을 강요할 수도 없다.  - P237

프랑켄슈타인이 수많은 사람을 짜깁기해만든 괴물은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 자신의 거울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엄두도 못 내는 무언가를 비춰 보이는 거울 말이다. 우리가 그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246

그렇다 하더라도, 손녀 하이디를 마지못해 떠맡았던 산 사나이에게서 그가 사는 산간 국가를 연상하는 것이 과연 단순한 착오라고할 수 있을까? 교묘하게 자기 일을 계속하지만, 남모르는 깊은 곳에 폭발적인 정념과 침입자는 쏘겠음" 이라는 경고를 품고 있다는면에서 말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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