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카피하는 스반문화적 혹은 저항 문화적 태도 자체는 이제 더 이상 문화적 훌리건이나 이데올로기적 컬트가 못된다. 구별을 파는 산업‘에 포섭된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이념적 지향성의 바코드로 인식되지 못한다. 저항과 대항의 아이콘들을 ‘쿨‘한 브랜드로 둔갑시켜 ‘혁명 판매 Rebel sel‘의대열에 뛰어든 문화자본은 ‘전복이라고 여겨지던 체 게바라를 보기좋게 전복시켜버렸다.
- P151

이후 페트라는, 말 그대로 까맣게 잊혔다. 생몰연도도 남기지 못하고너무 함부로 너무 일찍 망각 속에 묻혔다. 숱한 아델리타들처럼 지배담론으로부터 온당한 자리를 분양받지 못한 채 마초적인 역사관에 의해암매장 당했다. 페드로 Pedres의 욕망과 시각에 의해 페트라 의 삶은 이렇게 토막 난 채로 짤막하게 기억될 뿐이다.

페트라 에레라, 그는 여자였다.
- P158

멕시코 혁명이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자 혁명 동지들은 속속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넥타이를 풀 수 없었고 모자를 벗을 수 없었다. 아멜리오가 되기 위한 그의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자신의 성을 부정하거나 모욕하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꺼내들 정도로 단호했고, 평소에도늘 남성용 속옷을 착용할 정도로 철저했다. 뼛속까지 남자이고 싶었지만 벽은 두꺼웠고 턱은 곳곳에 산재했다. 멕시코 마초를 상징하는 콧수염이 없던 아멜리오의 삶은 모욕과 혐오와 차별로 점철되었다. 무훈을 공인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등록되지 못하는 소수자의 수모를 식솔처럼 거느려야 했다.
- P167

비록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아델리타스를 둘러싼 기억과 해석 투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멕시코 혁명이 발발한 지 10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델리타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난, 차별, 배제, 억압,
폭력이 끊이지 않기에 아델리타스의 인정투쟁은 대를 이어 현재진행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들이 서 있는 곳이 곧 전쟁터다.
- P177

차스키는 마라톤 거리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 러너가 아니었다. 방대한 잉카의 길을 잘게 썰어 차스키 한 명이 3km 내외의 거리만 책임지면족했다. 자신에게 할당된 그 구간을 전속력으로 달려서 다음 탐보나 차스키 와시 chasqui wasi, 차스키의 집‘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차스키에게 임무를인계하는 방식이었다. 집단체력‘을 극대화하는 지혜의 산물이랄까.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이어달리기 방식의 정보통신망이었다. 말 과바퀴가 없는 상황 하에서 안데스의 지형 및 지리환경에 딱 맞는 관군용 정보전달 시스템이었다.
- P194

반복하건대, 잉카제국이 정복한 방대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 이 차스키들의 공헌은 지대했다. 거대한 네트워크 제국에 속도를 부여하고 결속을 높이는 데 크게 기어했다. 속도선, 최저 유지비용, 네트워크화의주역이었다. 지역과 지역, 분배와 교류, 군사외 행성, 통치와 통합을 주도하거나 매개하는 정보통신의 중추신경망ackbone Network 구실을 했다.
한마디로 ‘차스키가 없었다면 잉카제국의 번영도 없었다‘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팍스 잉카이카는 바로 이런 차스키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톱니바퀴가 되어, 수레바퀴가 되어 잉카라는 거대한 제국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달렸던 파발꾼 차스키.
- P204

잉카의 이러한 포용적 현지화 전략은 각 지역의 특수성과 독자성을인정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제스처였다. 잉카 군주의 권위를 부정하지않는 한, 각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랄까. 잉카사회의 통합의 원리가 강압적인 동화나 배타주의에 함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요컨대 다채로운 시대적 층위와 종족의 삶이 서려 있는 탐보 건물들을 통해 레인보우 제국을 지향했던 잉카 문화의 남다른 양적 넓이와 질적 깊이를엿볼 수 있다.
- P213

카스트로의 말마따나 쿠바는 미국을 위한 원료공급 전진기지이자 상품시장으로 머물러 있었고, 캐러멜을 수입하기 위해 설탕을 수출하는 형국이었다. 설탕을 수출해서 마체테 사탕수수 수확물낫를 수입하는 처지였다. 세계 설탕을 지배하기는커녕 설탕에 철저하게 예속된 신세였다.
- P226

노예, 황금, 상아를 대신해서 핏빛 카카오 Blood Cacao가 이제 이 지역 주변 해안을 대변하는 형국이다. 카카오 콩을 눈알처럼 귀하게 여기던 마야시대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사치품‘이다. 생산과 소비가 격렬하게 분리되어 있다. 여간해선 맛볼 수 없는 마시는 금
이다. 적어도 이 카카오 해안의 초콜릿(색) 노동자들에게는, 집단 희생과 피의 상징물이다. 마야시대처럼, 여전히 초콜릿은 쓰다.
- P272

나프타 체결 이후 대략 20년 만에 농촌의 일자리 490 만개가 사라졌고 농민 600만여 명이 농민으로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농촌을 떠났다. "살기 위해 옥수수를 심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를 심기 위해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농촌 거주 인구의 절대 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농민이 식량 구입에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는 상황. 미국산 식품의 홍수 속에서 고과당 옥수수 시럽에 중독된 멕시코 국민개개인들은 피둥피둥 살찌는데, 멕시코의 옥수수 농업은 고사 직전의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걸어 다니는 옥수수‘들, 아니 걸어 다니는 가공된 옥수수‘들이 국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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