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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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늘 작가와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작가가 자신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쓰든, 아니면 페르소나를 창조하든 어디에도 그의 삶과 생각과 마음이 담길 수 밖에 없다. 그건 그냥 글을 쓴다는 행위가 가지는 태생적 특징일게다.

 

허지웅이라는 작가는 그저 방송에서 본 모습이 다였다.

방송에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꽤 매력적이네. 저렇게 시니컬하게 세상을 보고 사는 사람이 있구나. 저 나이에 저렇게 거침없이 말하기는 쉽지 않은데 참 쉽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내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원래도 방송을 잘 안보니 자주 보던 인물도 아니었고.....

그의 책이 여러권 나와 있었지만 굳이 찾아보고싶다는 생각을 들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는 사실 좀 망설여졌었다.

관심은 가지만 죽음의 고통을 지나온 사람의 이야기는 왠지 함부로 쉽게 읽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통, 가장 깊은 고통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어떤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듯도 하고,

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내가 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고,

또 그의 고통을 지나치게 공감해버리면 내가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고,

그래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생각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그래서 피하고 싶은 그런 기분.

책 하나를 앞에 두고 이런 잡스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찌나 치졸한지.

그래서 그냥 읽자. 읽고 생각해보자.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그냥 입원을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13페이지)

 

글은 시작부터 고통스러웠다. 이토록 담담하게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는데서 오히려 얼마나 아팠는지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늘어놓는 얘기가 아니다.

그랬다면 나는 책을 그냥 덮었을 것이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한 그 죽음의 고통에서 어쩌다 보니 벗어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 행운을 맞았다.

아마도 우리들 모두 언젠가는 겪게될 순간일게다.

빠르든 늦든 죽음은 찾아올 것이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영광되게 찬란하게 명예롭게 죽지 못할 것이다.

그냥 아프게 더디게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게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내 죽음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오래 받지만 않아도 다행이 아닐까?

죽음의 순간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옆에 있다면 죽음의 순간이 약간은 좀 근사하게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아는 주변의 죽음들은 참 많이 다들 외로워보였다.

어느날 문든 들려오는 부고 소식들 중 아름다운 죽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음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할말 다하고 마지막 사랑을 표현하고 하는 죽음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아 그건 그냥 소설이나 영화에만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매 죽음은 그저 고통스러운 외로움이다.

 

투병의 과정에서 작가는 가족을 비롯한 어떤 사람도 면회를 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방송에서 느꼈던 그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거침없는 말 속에서 느꼈던 세상과 사람을 향한 그의 방어막이 이렇게 그를 외롭게 만들었구나.

 

책속에서 간간히 보이는 그의 삶의 편린들은 참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가 그렇게 날을 세우고 방어막을 두르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짦게 스치는 말들속에서 오히려 깊게 와닿았다.

이렇게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하게 되기까지 그가 살아내야 했던 삶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내 옆의 사람들에게 충분한 공감과 위로를 보내 줄 줄 아는 사람일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고 배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은 실망을 준 적은 없었을까?

 

최근에 읽은 <올리브 키터리지>에 실린 단편 중 '여행가방'에는 참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남편의 죽음 직후 장례식에서 남편이 그녀의 사촌과 외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인이 그 사촌을 과도로 찔러 죽이고 싶다고 말하자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한다. 베개가 더 좋겠다고... 칼은 피가 너무 많이 튀잖아라고 하면서 말이다.

내가 올리브에게 반한 대목이다.

위로가 무엇인지 공감이 무엇인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허지웅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내 떠올렸던건 <올리브 키터리지>의 저 대목이었다.

내게 올리브 키터리지 같은 사람이 필요했듯, 그에게도 그런 사람이 필요했을 거라고....

어쩌면 그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그 자신이 두른 방어막이 너무 두터워서 놓쳤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의 고통을 딛고 다시 삶을 얘기하는 작가는 책속에서 누누히 얘기한다.

이제 나는 다른 젊은이들에게 나처럼은 살지 말라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고....

이제껏도 열심히, 지나치게 열심히 살아왔을 작가는 또 아주 열심히 뭔가를 하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그가 전하는 얘기들이 누군가의 올리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지나온 고통만큼 그의 이야기는 공감의 울림을 가지게 되었다는걸 알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티기 위해서 여전히 안간힘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느낌.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고 자신을 계속 몰아치는 느낌이다.

그가 옆에 있다면 그냥 그냥 살아도 된다고 얘기해주고싶다.

좀 무너지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게으르고 나태해보기도 하고....

삶이란 끝없는 분투만으로는 살아지는게 아니라고, 뒷걸음질 쳐도 그렇게 뒤로 가진 않는다고, 기댄다고 해서 내가 무너지는건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

 

그의 영화와 책이야기들은 따로 얘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아 스타워즈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네, 전체 시리즈를 한 번 찾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재능있는 이가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나는 그 글을 읽고 즐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가 조금 덜 버텼으면, 조금 덜 부지런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앞으로의 삶에 올리브 키터리지 같은 이가 많아 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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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12-1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요즘 같아서는 참 ‘버틴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갑자기 날씨 추워졌는데, 모래요정님 온갖 감염병으로부터 무사하소서!

바람돌이 2020-12-14 18:43   좋아요 0 | URL
지금 상황은 정말 버틴다는 말 와에는 적당한 말이 없네요. 이번 사태 후 가장 리얼하게 위험을 느낍니다. syo님도 저도 우리 모두 잘 버텨서 내년에는 일상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cott 2020-12-1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돌이님, 오늘 올리브 키터리지 가방속에 넣고 지하철 타고 딱 그부분 ‘여행 바구니‘ 펼쳐 읽었는데 ㅋㅋㅋㅋㅋ
[잠시, 둘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다가 말린이 쾌활하게 말을 꺼낸다.
‘케리를 죽여버릴까 생각하던 중이에요,‘ 말린이 무릎에서 한손을 들어 꽃무늬 원피스 위에 놓은 작은 과도를 드러내 보인다.
‘오‘ 올리브가 말한다.
말린이 몸을 숙이더니 자고 있는 캐리의 드러난 목을 만진다.
‘이거 중요한 핏줄 아니에요?‘
말린이 묻더니 케리의 목에 대고 칼을 눕히며 심지어 그곳의 희미한 맥박을 슬며시 찌르기 까지 한다.
‘음, 알겠는데 좀 조심 해야겠어.
올리브가 앉아서 몸을 앞으로 내민다.
잠시후 말린이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나 앉는다
‘알겠어요 여기요.‘ 그리고 과도를 올리브에게 건넨다.
‘베개가 더 나을텐데‘ 올리브가 말한다
‘목을 따면 피가 많이 나오잖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0-12-14 18:46   좋아요 0 | URL
아 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반납해서 글 쓸때는 저 부분늘 인용할 수가 없었는데 scott님덕분에 딱!!!! 오늘의 독서에서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뭔가 설레네요. ㅎㅎ 좋은 책을 같이 읽는 친구들이 많은 알라딘. 이래서 자꾸 여기에 주저앉게되나봐요.

scott 2021-01-0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

주말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바람돌이 2021-01-09 21:09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scott님도 남른 주말 편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