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주렸다.
씹어서 연하게 만든 것이 목구멍을 지나가는 느낌이 어땠는지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침만큼은 아직 나지만 넘어가지 않고 입술 양옆에 고이기만 한다. 목구멍이 거칠어져 일부러 마른침을 삼켜보려 할 때마다 부대끼고 거슬린다. 주룡은 나무를 떠올린다.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면, 우선 식도를 지나갈 때 죽은 나무의 좁은 옹이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내장들은 손이 스치는 대로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이다. 그대로 뒷구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뽑고 어깨를 구겨 넣고, 머리도, 나머지 한 팔도넣으면..
배가 부르겠지. 나는 뒤집히겠지. 그런 상상을 하는 주룡의 얼굴에 희박한 웃음이 돈다. 나를 삼켜서 뒤집어진 나는 또 배가 비겠지.  - P7

발소리가 온다.
발소리를 들으면 주룡은 곧장 몸을 일으키곤 했다. 등을 곧추세운 채로 발소리를 맞는 것이야말로 굶주린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이라고 여겼다.  - P8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랍네다. 내 손으로, 어서 그래하고 싶었습네다. 동무들하고 약조한 바도 약조한 바이지만은,
- P36

내 모르갔습네다, 악인이란 거이 수차례 들었지마는 눈앞에 있는사람을 내 손으루 쏘자니 가슴이 떨려 내가 더 죽을 것만 같았시요..
광운은 잠자코 주룡의 말을 들어준다.
영감이 총 맞구는 오짐을 지리더이요. 맞기 직전에 지린 거인가맞는 순간에 지린 거인가는 모르갔습네다. 다만 아, 요거이 사람이고나, 요괴 귀신 도까비가 아인 사람이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네다. 요전 날 나와 같이 말입네다.
- P72

소위 구여성 차림 그대로 카페에 앉아 있자면 종종 여급들이 저를 본체만체하거나 대놓고 괄시를 하는 것을 느낀다. 저보다 늦게들어온 사람들의 주문을 먼저 받거나 주문한 음료를 한참 만에야생각났다는 듯이 갖다주거나 하는 식이다. 그 애들은 돈을 얼마나벌까. 나도 여급이나 해볼 것을 그랬나. 양장 맞출 날은 요원하니 나도 머리부터 산뜻하니 단발로 잘라볼까. 머리가 단발이면 옷이야어떻든 모단 껄 시늉은 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 P133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것은 아니다.
자기가 모단 껄이 아니라는 것, 모단 껄 되고 싶은 심정이 언감생심으로 보이리란 사실은 주룡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언제나 그것에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으니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반장 때문은 아니다.
반장 같은 것은 모단 껄 되기에 요만큼도 방해가 될 수 없다.
구남성의 박해를 받았으니 이는 도리어 모단 껄 되기의 제일보에진입한 것이다.
주룡은 그런 생각으로 남은 업무를 버티고, 기어이 집에 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 P140

간도에 갈 여비만 모으면 그만두려던 공장 일을 여태 하고 있는것도 평양에 계속 머무르게 된 것도 이런 생각과 멀지 않으리라.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주룡은 평생 처음으로 제가 고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풀고 옷을 벗을지 옷을 벗고 머리를 풀지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부모를 따라서 이주하고, 시집을 가래서 가고, 서방이 독립군을 한대서 따라가고, 그런 식으로 살아온 주룡에게는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고무 공장 직공이 되는 것 말고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일말 서러운 일일지언정.
- P153

조합원 교육에서 배울 적에는 많아야 예순 명이 잘 모르고 웅얼웅얼 입속말로 부르던 노래를 이제 수백 명이 다 외워서 부르니 절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입을 모아 같은노랫말을 부른다는 것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은 한뜻이 된다는것이 벅차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국제가는 조선만이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만은 작은 나라의 작은 공장의 보잘것없는 여자 직공 하나가 아니라, 세계 모든 노동자와 어깨동무를 한, 그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평등한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실감이 든다.
다음 노래는 고무 공장 큰아기다. 간혹 국제가>를 다 외지 못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고무 공장 큰아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평양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다 부르는 노래다.
이른 새벽 통근차 고동 소리에
고무 공장 큰아기 벤또밥 싼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신발 붙일 제
얼굴 예쁜 색시라야 예쁘게 붙인다나 - P183

내처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은 그네들의 사상이 어떤지궁금해본 적두 없을 거입네다. 내심 아녀자의 무학무식이 당연하구,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루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이 말이 옳지 않다면시비 가려주시라요. 틀렸다 하신들 여러분이 부인에겐 이런 배움의기회를 주지 않고 혼차서 예 와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네다. 부인들께선 아일 적부터 배운 법도대루 남편에게 순종하여 집을 지키고있는 거이 아닙네까.
- P202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네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 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이천삼백 우리 동지의 살이 깎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 죽는 - P240

거이 아깝겠습네까?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 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
기러니 여러분, 구태여 날 예서 강제로 끌어 내릴 생각은 마시라요. 뉘기든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내래 즉시 몸 던져 죽을 게입네다.
- P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