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현재에서 나는 전설이다. 살아 있으나 산 것 이상이고죽었으나 죽은 것 이상이다. 나는 교실을 가질 만큼 신분이 높은 여자애들의 교실 뒤편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는 머리로서, 음침한미소를 띠고 말없이 설교한다. 나는 하녀들이 어린애를 겁줄 때 쓰는 귀신이다. 착하게 굴지 않으면, 리디아 아주머니가 와서 잡아갈거야! 나는 또한 본받아야 할 완벽한 도덕성의 모범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네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실까? 그리고 상상 속의 모호한 종교재판을 주재하는 판관이자 입법자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런 경우에 뭐라고 하실까?
물론 나는 권력으로 한껏 부풀었으나 또한 그로 인해 성운처럼 모호하다. 형태도 없거니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나는 어디에나있고 아무 데도 없다. 심지어 나는 사령관들의 마음속에도 심란한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떻게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정상적인 내 크기로, 평범한 여자의 크기로 다시 줄어들 수 있을까?
- P49

사라진 나의 국가에서, 상황은 수년째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홍수, 화재, 토네이도, 허리케인, 가뭄, 물 부족, 지진, 이건 모자라고저건 넘치고, 퇴락하는 하부구조.…. 어째서 너무 늦기 전에 누군가 그 원자력 발전소들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던가? 침몰하는 경제, 실업, 추락하는 출생률.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다가 분노했다.
실행 가능한 요법의 부재. 원망할 사람을 찾는 탐색.
나는 그런데도 왜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너무 오래 들어 왔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늘 한 덩어리가 제 머리에 떨어질 때까지는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못믿는 법이다.
- P99

나는 울지 않았어요. 울 만큼 울었으니까요. 진실은, 그들이 크리스털을 개복 수술해 아기를 꺼냈고, 그 과정에서 크리스털을 죽였다.
는 것이었어요. 그건 크리스털의 선택이 아니었어요. 고결한 여성의명예를 지키다가 죽거나 빛나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자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도 그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 P153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심하게 자책했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삶, 자유, 민주주의 운운하는 온갖 입에 발린 소리를 모두 믿었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믿음도 법대에서 흠뻑 들이켜 심취했다. 이런 가치는 영원한 진실이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것들을 수호하리라 믿었다. 무슨 마법의 주문에 홀린 듯, 그 믿음에 철저히 의지했다.
- P170

요. 우리는 장례식에 갈 때 말고는 그곳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망자의 이름이 묘석에 새겨져 있어서, 잘못하면 읽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읽기는 여자에게 맞지 않는일이었어요. 읽기의 힘을 감당할 정도로 강한 건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주머니도요. 그들은 우리와 달랐으니까.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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