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가 돌아왔다.
전편보다 더 막강한 포스를 내뿜으며...
사실 공중그네까지는 뭐 꽤 재밌네 정도였다.
그러던게 남쪽으로 튀어와 라라피포를 거치면서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에 열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면장선거>가 이라부 얘기라는 걸 듣고는 조금 실망이었다.
이라부 시리즈가 재밌기는 했지만 뭐 그리 열광할만한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그런데 예상을 뒤엎는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속설은 적어도 오쿠다 히데오에게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라부의 캐릭터가 바뀐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바보같고 포도당 주사나 팍팍놓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심드렁하고 애같고 뭐 그렇다.
그런데 손님은 바뀌었다.
막강 권력이나 유명세를 자랑하는 인간들이다.
앞의 3편의 이야기에서 이라부를 찾는 사람들은 프로야구의 구단주이자 일본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회사의 회장, IT업계의 총아로 돌풍을 일으킨 안퐁맨, 나이 사십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여배우 같은 사람들이다.
실제로 이들은 현재 일본에서 실존하는 사람들의 패러디란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더 재밌게 읽었을 것 같아 살짝 질투도 난다.^^

이들에 대한 이라부의 처방은 어떤걸까?

오늘날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을 이룩한 선대들에게 그는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당신들의 시대는 이제 갔다고....
"도쿄도 참 많이 변한것 같구."
"에이, 여기 살고 있으면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이곳에 살긴 하지만 쫓아갈 수야 없지. 마치 성장기 어린애를 보는 것 같군. 잠깐만 눈을 떼도 몰라보게 변해."
"그야 21세기니까 당연하지. 세상이 완전히 바뀐 셈이잖아..... 시대는 변하는거라고요~~"
이미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뭉친 권력에 대해 날리는 일격이다.

그에 반해 일본의 새로운 세대에 대해 이라부는 어떤 얘기를 할까?
IT업계의 총아인 안퐁맨,.
매사에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그런데 그는 웃기게도 히라가나를 자주 까먹는 또는 기본적인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말이 생각나지 않는 신경증에 시달린다.
그에게 내린 이라부의 처방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안팡맨(우리나라에서는 호빵맨) 글자찾기 카드게임이다. 뭐 해당글자를 찾는 애들용 게임같은데....
처음에 꼬마아이들에게 지는 바람에 온통 놀림을 받은 안퐁맨은 기를 쓰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다음 게임에서는 게임을 싹쓸이함으로써 꼬마녀석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 찰나 이번엔 엽기 간호사 마유미에게 한방 어퍼컷을 당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혼자만 이기면 놀아주는 사람이 있겠어?"

40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여배우.
그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미모와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이유로 인기절정을 달리는 이다.
하지만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에 대한 처방은 마유미가 펑코록으로 내린다.
젊어지려 발버둥 아등바등 / 마흔이 넘어서도 사랑 타령
가슴은 쳐져도 꿈속을 헤맨다 / 어이 거기 아줌마 거치적거린다고-
....................

와우 - 와우 - 젊어지려 발버둥 / 헤이 헤이 한가롭기 그지없네-
달리 할 일이 그리도 없나 -

어찌보면 이라부나 마유미의 처방은 중구난방인것 같다.
권력에 대한 예린한 비판을 보이는가 하면 논리고 뭐고 조금은 적당히 어울려 살라고도 하고...
또는 쓸데없는 겉치레에서 제발 좀 벗어나서 자신을 찾아보라는 보편적인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중구난방같은 처방은 면장선거에서 절정을 이룬다.
인구 2,500의 조그만 섬에 강제로 보건 활동을 하러 온 이라부.
이라부라면 봉사정신을 좀 가져주지 않을까?
택도 없다.
오는 순간부터 투덜투덜.... 순전히 촌구석이네 어쩌고 저쩌고...
최고 좋고 비싼 호텔에서 뒹굴뒹굴...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마을사람들에게 돈 아끼지 않고 예의 주사를 팍팍 놔대고...
비산 CT촬영기를 제약회사를 우려내서 들여놓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장난감처럼 쓰게 하고....
자신의 포르쉐를 도쿄에서 가져와서는 아이들을 태우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그런 능청맞은 이라부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으니...
바로 이 섬마을의 면장선거. 
섬전체가 반으로 갈려 목숨을 걸고 선거에 임한다.
여기서 갑자기 캐스팅보드로 부상한 우리의 의사 이라부!
그런데 이번엔 이라부조차도 고개를 절래절래 방문을 걸어잠그고 이불까지 뒤집어쓸지경.
하지만 이라부가 누구인가?
천하의 능청꾼은 전혀 아닌듯 해결책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그 해결책이야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놓고..
예의 그 이라부의 일침
"이봐, 미야자키 씨. 데모크라시라는 건 말이야, 실은 최선의 방법은 아니야. 제대로 기능하려면 일정 이상의 규모가 필요하다고. 1만명 이하의 커뮤니티에서는 옛날 영주 비슷한 존재가 다스리는 족이 오히려 더 번창하지 않을까? 크흐흐."

 이쯤 되면 <남쪽으로 튀어>의 그 우에하라씨가 이라부의 얼굴과 겹쳐진다.
중구난방 어떤 사상적 경향도 일관성도 논리성도 없어보이지만 무엇보다 강한 '다양한 삶의 방식에의 긍정', '나만의 방식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방식도 또한 옳고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를 이끌어주는 신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보다가 그 책을 쓴 사람을 꼭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실제의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일본어가 된다면 팬레터라도 한 번 띄워 보겠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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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저 얍삽하고 날렵해보이는 인간은 누굴까? 
설마 이라부라고 그린 건 아니겠지?
이라부라면 좀 더 살집이 있어야하고 좀 더 능글맞아보여야 하는데.... ^^
남쪽으로 튀어의 표지 인물이 딱 주인공같았던 것 처럼 이번 표지도 딱 이라부같았다면 좋았을걸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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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2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봐도 이라부는 계속해서 업그래이드가 되는 변종 생물체 같습니다...ㅋㅋ

홍수맘 2007-05-2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라부에게 중독이 안 될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어요. ^ ^.

BRINY 2007-05-27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괜히 손댔다가 다른 작품들까지 사들일까봐 손 안댔는데...맘 흔들리네요.

바람돌이 2007-05-2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을 보며님/저는 이라부가 갈수록 진화하는 것 같던데..... 근데 이건 제가 오쿠다 히데오에 뽕간 이후에 봐서 그런지도 몰라요. ㅎㅎ
메피스토님/이라부는 아무래도 <남쪽으로 튀어>의 우에하라씨쪽으로 당분간 변종진행이 될것 같습니다. ㅎㅎ
홍수맘님/그럴때는 쓸데없는 노력하지 말고 기냥 중독되어버리세요. ㅎㅎ 뭐 바람피는 것도 아닌데요 뭐.... ㅎㅎㅎ
브리니님/제가 그랬다가 오쿠다 히데오꺼는 인더풀 하나 빼고는 다봐버렸다는 거 아닙니까? 뭐 앞으로도 나오기만 한다면 무조건 사들입니다. ㅎㅎ

글샘 2007-05-2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중독되셨군요. ㅋㅋ 저도 남,튀와 공중그네, 더걸을 다 봤습니다. 인더풀을 안봤네요. ㅎㅎㅎ 요놈도 담에 도서관에 놀러오면 읽을 예정입니다. 이라부같은 인간, 참 멋지지 않아요?ㅋㅋ

바람돌이 2007-05-2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저도 인더풀만 안봤는데 뭐 아무래도 시리즈를 거슬러서 첫번째를 마지막에 보기는 좀 싱겁지 않을까 싶어 그냥 두고 있습니다. 근데 자꾸 이 작가가 좋아지니 인더풀도 봐야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ㅎㅎ 저는 이제 이라부보다 이라부같은 인간을 창조한 오쿠다 히데오라는 인물데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