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장난 -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2년 1월
평점 :
1.
“남자들이란 항상 골칫거리지.”(13쪽)
책 제목이 재밌다는 가족들에게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어주었다.
기다릴 것도 없이 ‘맞다!’라는 구호에 격한 웃음과 함께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문장으로 이 사춘기 생채기 같은 제목의 책이
순식간에 지위 격상되었다는 것이다.
논의도 필요없고 남자에게는 최후 증언도 무의미했다.
남자로서 나도 동의했으니 더 이상 토론은 의미없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짐작하는대로 소설 속 ‘여자였다’.
사실 나는 혹시라도 남자가 이 말을 했길 바랬다.
하지만 소설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알고 있었다.
남자는 이 말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여전히 남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존재일지 모른다.
2.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그런 기만과 착각,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의 진짜 용도가 될 것이다.”(75쪽)
내가 이 소설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여도 좋겠다고 수용한 대목치고는 조금 진부하다.
본래 진리란 진부할 정도로 오랫동안 묵혀야 할 것이니 나는 다시 생각한다.
고로 이 소설은 한 여자아이가 어느 한 때 겪었을 내면 변화라지만,
돌이켜보면,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서
언제나 겪어내야 할 이야기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간은 누구라도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 속사람이.
3.
상식이라지만, 소설은 시점의 미학이자 관점의 수사학이다.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내가 스스로 개척하는 탐험과 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점과 관점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현실이 아니겠지만,
현실은 모두 소설같을 수 있다. 이 둘은 결국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 말 속에서 소설의 책임을 생각한다.
소설이 일어난 현실 사이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을
적절하게 섞어둔다. 이런 정교한 수작업으로 인간이 겪어낼 수 있는
몸 안과 밖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직조함으로써
인간 너머를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기여하는 것이다.
사실, 현실이 소설 같을 때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누구도 소설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나는 이 소설의 서사를 힘입어 소설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같다: ‘밖으로만 뻗어나가려고 하는 인간 본능’에 대항하여 자기 경험 너머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며 자기 공간에 스스로 ‘머물러’ 내면의 뿌리를 견실하게 창작해내는 문학의 한 장르다’.
나는 소설을 가상세계에 갇힌 이야기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함께 생각한다.
소설 읽기는 ‘그’가 상상한 현실을 나의 현실로 알아채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불장난’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 쯤 해봤던 실제일진대,
그 날 그 불꽃을 바라보며 희열했던 어린/어른 내가
지금 여기에 도착해 있다는 현실을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소설들에서 나는 소설답다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소설다움은 누구도 쉽게 알아챌 수 없는 나의 ‘내면’(이 용어는 거의 소설화된 듯하다.)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꺼내주는 과정을 순조롭게 수행해 줄 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싶다.
내면이란, 어떤 사람들도 전혀 같을 수 없다. ‘사람의 내면’은
결국 수많은 ‘나의 내면’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한 데 묶어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소설은, 그 나만의 내면을 모을 수 있는 데까지 모아들여
일반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나와 다른 이를 함께 사랑할 수 있도록
가장 극적인 수사법을 활용하여 창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해야 할 문학 도구일 것이다.
5.
소설「불장난」이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글을 대상으로 선정한 과정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총평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이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짧은 평을 조금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긴 하다.
심사위원들 중 어떤 이는 소설과 현실이 모호해지다가 결국 완전히 뒤섞여버려
현실같은 소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이 소설을 덮으며 이렇게 질문한다.
‘소설은 어디까지가 소설일까?’ 그리고 스스로 나에게 답한다.
‘소설은 소설이구나!’라는 평가가 선명할 때 비로서 독자로서 슬프긴 해도
소설은 제 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6.
책을 덮고 나니 소설 창작에는 문외한같은 내가, 이 출충하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을 앞에 두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외람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소설이 현실이 되거나, 현실이 소설처럼 들리는 일은 소설 문학이 의도하지 않은 곁길을 본연의 길이라고 나 스스로 호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손보미의 다른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관해 일천하지만, 어쩌면 나에게 이 소설은 ‘소설다와서 소설’인 한 편 글이 될 것 같다. 소설 같은 현실을 꿈꾸는 나 같은 사람에게 소설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면서도 이 소설이 ‘소설다운 이야기’로 현실에서 나의 이야기를 반추하고 조망할만한 보편타당한 시점과 관점을 문학적으로 권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손보미, 「불장난」 (2021, 창작과비평, 가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