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Morgen und Abend)』, 문학동네, 2019/07


1

모처럼, 오늘 어떤 일을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기분 좋습니다. 해야 할 일에 매여

시간에 따라 정해진 아침을 시작하던 때와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나는 아주 느릿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어제 저녁 남겨 둔 김밥을 풀어 볶습니다. 그 사이에 시원한 우유 하나를 꺼냈습니다, 손움직임이 여유롭습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칩니다. 그리고 나는 단촐한 차림으로 흐릿한 하늘을 시크하게 올려다보며 집을 나섰습니다, 문을 나서기 바로 직전, 가야할 곳을 정했습니다. 오랜만에 어둑한 조명 아래 책들이 빛나는 서점입니다. 서점에는 책, 소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한 켠 까페에서 책 대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책들은 서가에 세워지거나 눕혀진 채 마치 뒤엉켜 진 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 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었다, 펼치고, 다시 던지듯 내려두는 일을 반복합니다. 새로 나온 책들은 어디에 두나요? 내가 물었습니다, 이 코너는 그런 책을 따로 두지는 않습니다, 갓 들어온 책을 컴퓨터에 목록저장 작업하던 직원이 쳐다보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서둘러 서점 저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서점 저 끝에 유난히 한가하고 정갈한 서가가 있었습니다, 나는 책을 하나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선 채로 한참 읽었습니다,『아침 그리고 저녁(Morgen und Abend)』 책값을 치루고 언젠가 다시 올 서점을 나섰습니다,


2.

차에 올라 시동을 켜기 전 책을 열었습니다. 앞날개, 저자 소개를 펼쳤습니다. 노르웨이 출신, 욘 포세(60). 소설가로서 그의 경력이 화려합니다. 하지만, 이런 목록을 나는 읽는 둥 마는 둥 합니다. 곧 책 첫 장으로 넘어갔습니다. 낯선 대화가 첫 문장입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제1부가 끝날 때까지도 마침표가 없습니다. 호기심에 책 끝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도 그렇습니다. 문장과 문장은 모두 쉼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라는 접속사는 오히려 빈번합니다. 누가 읽어도 피해야 할 글쓰기방식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대화와 대화 사이에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뒤섞입니다. 말과 말 속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인물과 인물 관계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대화는 리듬을 따라가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래처럼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웅얼거리듯 주고받는 비언어도 빼곡합니다. 그리고 그 언어마저도 모두 살아있습니다. 숨소리, 혼잣말, 밑도끝도 없이 툭 던지는 대화, 말과 사이에 난데없이 끼어드는 몸짓들도 의미있습니다. 사건은 긴장없이 평화롭습니다. 오히려 흐릿합니다. 사건보다도 사건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말과 말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호흡인 것 같습니다.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모든 움직임이 글로 남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멈춰서는 모든 것이 언어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흐름입니다. 그것을 따라가다보면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또 말하고, 생각하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정작 끝내 마침표는 없습니다. 끝까지 쉼표였습니다. 소설은, 고단하지만, 그렇게 살아있는 삶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생은 아무리 힘겨워도,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소설은 아이가 태어나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곧 그의 죽음시간도 같이 흐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1부만 읽은 채 책을 일단 덮었습니다. 나는 소설 끝을 상상합니다. 아침과 저녁이 삶과 죽음으로 치환되어 한 어부의 생애가 아무 사건도 없이 고즈넉하게 강처럼 흘러갈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 내가 겪는 삶이라는 것을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읽기에 쉽지 않은 서사입니다.


3.

무엇보다 나는 마침표 찍지 않은 산문이 여러모로 인상적입니다. 사실, 마침표 없는 문장은 현대에 들어서 시쓰기의 전유물이었습니다. 1960년대 시인 김수영은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시연구자들에 의하면, 이로써 그는 정형화된 편집문법에 저항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시들은 이 저항기법을 문법처럼 따랐던 것 같습니다. 문장을 마감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는 삶을 조각조각 얼른 마감해 버리는 습관을 경계합니다.(참조, 심보선 시인의「삼십대」, 『슬픔이 없는 십오초』(문학과지성사, 2008)) 독자에게 열린 문장은 어색합니다. 마침표는 안정감을 줍니다. 하나가 끝나야 새로운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당연한 속설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한 때 매듭이라는 말로 삶을 조각하기도 했습니다. 얼른 매듭짓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라고 재촉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는 그 마침표를 욕망을 향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는 그것을 해체해버렸습니다. 시인들은 문장에서 마침표를 없앰으로써 삶을 경각시켰습니다. 어떤 매듭도 쉼표일 뿐, 마침표일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삶이 끝없이 저항해야 하는 산물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 셈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스스로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삶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최후의 방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누구든 쉽게 자기 삶에 자기 손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4.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강한 비가 내리기 직전처럼 바람이 한반 크게 붑니다. 차 창밖으로 휘청거리는 나무들이 보입니다. 그 속에 여릿한 나뭇잎들이 쉼표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강에 놓인 징검다리같습니다. 그것들은 흔들림으로써 도드라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사건과 사건으로써만 삶을 기억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두 사건 사이에 명확한 기승전결이 우리 삶을 지탱한다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조주는 우리에게 거대한 사건보다도, 도드라지지 못하고, 의미없게 들리는 옹알이, 언어로 들리지 못하는 몸짓, 눈빛에서 생존하는 이야기를 더 크게 주고받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려는 욕구가 숱하게 일어나는 세계입니다. 자기가 정한 문법에 어긋난 몸짓들을 거북해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얼른 마침표를 찍어 삶을 내칠근거를 찾으려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삶은 마침표를 찍기 전 쉼표로 이어져가는 거대한 강이라는 것을 한번 쯤 생각해보면 좋을 일입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간은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 반복됩니다, 태어났다가 다시 저물고, 저물었다가 다시 살아나 쌓입니다. 


더운물 더요 올라이,늙은 산파 안나가 말한다.
거기 부엌문 엎에서 서성대지 멀고 이 사람아, 그녀가 말한다.
네네, 올라이가 말한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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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5-1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밥헬퍼 2020-05-15 18:57   좋아요 1 | URL
아, 여전히 이 서재를 잘 가꾸고 계시네요^^오랜만인데도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써좋으신 글들 새롭고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