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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한 거야 - 여전히 삶이 어색한 마흔 살의 여물지 않은 이야기
소재웅 지음 / 훈훈 / 2022년 12월
평점 :
1.
이 책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여든 아홉 편과 하나 덧붙여진 글 등 모두 90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이 책을 천천히 다 읽고 난 뒤, 나는 아흔 한 번째 글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2015년 작약을 무척 좋아하셨던 나의 어머니가 하늘로 돌아간 날이 생각난 것이다. 그 하루 전, 나는 청산도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었고, 어머니는 귀천 직전 아들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렸었던 것 같다. 생애 마지막 몇 년은 삶이 아예 단순해졌다.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 하늘과 창밖 꽃을 보고, 아들이 한두 번 씩 찾아와 가볍게 식사를 차리고 먹여주며, 그 옆에서 투박한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셨던 것이다. 솔직히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문득 ‘나의 엄마’의 김치찌개가 살아난다. 『쑥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한 거야』(훈훈, 2022)는 나에게 그 미안하고 고마운 추억을 선물로 남겨주었다.
2.
작가 소재웅은 글로써 삶과 삶을 훈훈하게 이어주는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가 앞서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여러 책들과 다른 이들의 삶을 엮어 출판한 책들, 그리고 곳곳에서 함께 하는 ‘글쓰기 수업’들은 그 노력의 결실들이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은 저자가 갑자기 어머니를 상실한 큰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그것과 ‘함께’ 살아가려는 내적 분투를 글로 남긴 훈훈한 에세이다. 저자는 “부재를 부재로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10)을 통해 여전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억지로 벗어나기보다 그것을 보듬고 살아가는 법을 한 편 에세이에 담아 독자들과 나눈다. 그의 글 속에는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겪는 이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저자는 그 부재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기억에 근거한 인내라는 것을 일상의 이야기로부터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인간미와 온기’가 스며있다.
3.
슬픔은 수다가 어렵다. 기쁨이야 누가 묻지 않아도 쏟아낼 말이 차오를 수 있다. 하지만 슬픔은 질문을 받을수록 점점 더 수렁에 들어가는 듯한 감정의 늪이다. 그런데 그간의 글쓰기를 보면 저자는 이 슬픔의 위력에 당당하게 대응해왔던 것 같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기가 ‘느닷없는’ 슬픔에 대응한 방식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면, “장례식장은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곳이지만, 이곳엔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따뜻한 위로가 들끓는다.”(7. 다소 그리운 에세이. ‘결국, 이야기는 남는다.’(28))는 말이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가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그 슬픔에 과거의 기억, 현재의 일상, 심지어 미래의 소망으로 이야기 옷을 입히는 것이다. 슬픔을 자기 삶의 옆자리로 기꺼이 초대하는 것이다. 슬픔을 오히려 따뜻한 수다의 글로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자기 슬픔 속에서 남모르게 분투하는 이들에게 공감(empathy)하는 것이다. 그 공감은 서로 보이지 않아도 공존(co-exist)한다는 위로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일상의 에세이들은 사소한 경험으로 보인다 해도 슬픔의 일상에서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따뜻하게 제안한다. 슬픔과 함께 사는 훈훈한 삶의 안내서다.
4.
사실 슬픔은 물컹하다. 물풍선 같다. 조심하지 않으면 담겨진 물이 곧 터질 듯 위태로운 감정이다. 그래서 그것은 딱 부러진 정답이 없다. 그냥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스스로 소멸해서 새로운 기쁨으로 드러나도록 기다리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 이런 저자의 태도를 잘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슬픔’이 삶의 모든 것에 어느 정도 깃들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안내한다. 저자가 글의 소제목으로 설정한 ‘다소’라는 말은 어디에나 어느 정도로 스며있는 그 슬픔의 일상성과 위태로움을 잘 드러낸다. ‘다소(多少)는 ’조금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라는 의미이다. 이 특유의 조어법(助語法)은 이 책을 쓰는 동안, 아니 이 후에도 저자가 경험할 슬픔, 즉 ‘사랑하는 이, 사랑하는 것을 상실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억지로 감추지 않은 흔적이다. “엄마가 남긴 글들은 허투루 쓴 글이 하나도 없다. 그 순간에 한 존재를 향해 깊이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갔다.”(136)(37. 다소 엄마생각나는 에세이 ‘작은 목소리를 줍다‘ 중) 그러니 이 책은 슬픔 극복이나 회피가 아니라 나의 슬픔에 공감하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가장 특별한 사실을 평범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5.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부담 없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다 읽지 못했다. 아홉 개로 구성된 이야기 단락들을 하루에 하나 씩 읽었다. 읽으면서 각 에세이에서 저자가 남긴 문장들을 천천히 다시 적어두었다. 언젠가 내 삶에서 느닷없는 슬픔이 밀려올 때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일깨우는 적절한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슬픔을 위로하려는 것을 넘어 누구라도 자신의 슬픔을 오히려 글로 남길 수 있다는 용기를 조용히 자극한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자신이 겪은 슬픔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한 편의 책으로 남겨둔다는 것은 참 소중한 수고다.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 세상이 느닷없는 슬픔으로 삶이 위태로워진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슬픔은 혼자 삭혀야 할 분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소중한 인생 자산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만 생각하자는 생각으로 엄마에 대한 마음을 마음껏 표현했다. 마음껏 표현했다는 건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면서도 내 마음을 조각하는 기분으로 다듬어가려고 애썼다.(‘한 존재의 삶은 죽음으로서 완성된다‘.중에서)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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