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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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데믹과 인포크라시의 시대

전염병의 시대다. 코로나19에 이어진 앤데믹(endemic)이다. 동시에 인포데믹(Infodemic)의 세계다. 앤데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면 인포데믹은 데이타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대이다. 모두 피조물과 생활세계를 위협한다. 하나는 삶의 바깥으로부터 스며든 바이러스로, 다른 하나는 삶의 안으로부터 스스로 불러들인 총합적(holistic) 위협이다. 앤데믹은 보이는 유해 질병이다. 인포데믹은 보이지 않게 잠복되었다. 무해한 질병처럼 여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질병이 모두 삶을 무차별적, 총체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나 이 치명적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앤데믹은 누구에게나 혐오, 배척, 폐기의 대상이었다. 거리 두기와 비대면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인포데믹은 남녀노소에게 친밀과 무경계와 소유욕의 상대로 여전히 삶을 압도한다. 거리를 둔 친밀감과 왜곡된 이미지라도 드러나지 않는 가상현실과 기계와 무한대면이 자연스럽다.

 

데이터 지배 사회 진단서이자 인간보고서

정보의 지배 Infokratie,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는 재독한인철학자 한병철의 글을 전병호가 번역하여 지난 2023년에 출판되었다(원서는 2021년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데이타(정보)지배 사회를 사회철학적으로 조준하여 해체한다. 저자는 스마트폰이 시대의 제왕이 되어버린 현실을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스마트폰은 인간 사회를 통치하는 바이러스의 근원지다. 설상가상으로 합리성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보이지 않는 무기다. 저자는 이런 스마트폰의 위협 시대를 인포크라시(Infokratie)’로 규정한다. 무엇보다 이 세계는 데이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합리성 부재의 시대이다. 알지 못하는 순간에 자유를 소실한 정보 감옥의 시대이다. 그의 주장을 갈무리하면, 인포크라시는 정보체제에 의해 생활세계의 디지털화가 정치 분야에 영향을 미쳐 형성된 민주주의다(27).

원서의 제목인 ‘Infokratie(인포크라시)’는 저자의 신조어다. 저자는 우리 생활세계에 창궐하며 숨어있던 바이러스가 지배하는 비가시적 세계의 왜곡된 정치체제를 가상한다. 그리고 이 은닉된 바이러스가 창출해낸 세계가 어떤 양상인지를 진단한다. 민주주의를 숙주 삼아 숨어있던 바이러스의 정체를 찾아낸 것이다. 번역본의 제목인 정보의 지배는 원서의 지향점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그것은 과도하게 스며있는 디지털 문명, 그 정보의 지배 아래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는다는 의미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인포크라시의 구체적 현상과 그것에 의한 민주주의 정치사회의 위기, 나아가 사회적 정의와 거짓이 판단 불가한 시대 상황에 던져진인간을 주목한다.

이 책의 성과는 스마트족이라는 신인류의 정체성을 일깨운 것이다. 이 인간류는 우리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소속되고 싶은 종족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발전된 문명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며 그 혜택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폐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비판을 애써 수용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드러났다. 그 데이터 바이러스는 결국 삶의 활력 비타민이 아니었다. 치명적 전염병의 병원균으로 잠복해있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방심하고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정치적 능력을 소실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저자는 이 점을 적확하게 진단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사회 질병 진단서이다. 또한 이 질병사회 에서 삶의 자리가 악화된 채로 적응해가는 변종인간에 대한 관찰 보고서다.

 

책의 논지와 독서방법

저자가 출간한 책들은 대체로 분량이 길지 않다. 그럼에도 주제와 내용은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2년 한국에서 번역되어 소개된 피로사회(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4투명사회(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21리추얼의 종말-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전대호 역, 김영사), 가장 최근 2024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모두가 똑같고 모두가 고립된 세상에서등이다. 대체로 짧은 분량에 거시적인 담론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이 책의 서술 특징은 문학적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제된 개념 정리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글이 진행되는 과정에 앞의 내용을 함축하는 정리 문단을 수사학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법은 개념의 대조, 대상의 상호 대구, 은유, 언어의 응축, 전환접속사의 생략(한편, 그런데, 이런 점에서 등등), 주제어의 반복(이것은 그의 책들이 그의 기본적인 철학에 기반해서 서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책과 책 사이에서도 동일 주장이 빈번하다) 등이다. 특히 단순한 서술이 이 책의 문학적 기법의 장점이다. 이로 인해 거시적 담론이라도 단순 담백하게 전개된다.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장들은 마치 한 주제를 다섯 개의 소단락으로 나눠 전개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일관된다. 저자의 핵심논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정보지배 시대가 무의식적으로 인간을 내적, 외적으로 위협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인간답게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인식자유. 저자의 주장은 인간은 상황에 대한 비판적 생각하기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인식이 인간을 자유하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책을 출간하고 난 뒤, 출판사 김영사와 나눈 인터뷰(2023. 3. 9)에 그의 핵심 주장을 읽을 수 있다(출처: https://m.blog.naver.com/gybook/ 223038295401? isInf=true). 정리하면, 냉철한 철학적 인식이 인간을 무의식적 바이러스로부터 해방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효율적으로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가는 것이 가장 유익하다. 만약 그가 말하는 인포크라시의 개념과 그의 정치사회 철학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2장 인포크라시와 제5장 진실의 위기를 읽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핵심 주제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진실의 투명성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투명성은 치열한 담론 끝에 도달해야 하는 윤리다. 투명한 세계는 거친 토론과 이야기의 축적으로 함께 도달하는 공통 세계다. 둘째, 인포크라시 시대의 인간 이해다. 이 세게에서 타자 있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자의 배제와 경청하지 않음은 결국 인간의 존재감을 상실하는 치명적 바이러스다. 스마트종족의 출현은 타자 있음을 배척한 세계를 구성한다. 이는 함께존재해야 하는 태초의 인간 이해와 대립한다. 유한한 인간, 필연적으로 죽음에 직면할 인간의 본질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병철의 주장은 명확하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치체제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 시대에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특히, 신을 따르는 인간)은 고착된 진리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권면한다. 진실을 분별하고 타인과 함께 그 진실을 철학하며 실행하는 용기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인포크라시 시대, 진리에 의한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한병철의 이전 글들은 정보의 지배와 대체로 비슷한 주제가 순환한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권력이란 무엇인가(김남시 역, 문학과 지성사, 2011)등에서 다뤄진 그의 주장과도 연동한다. 이 책들에서 저자는 인간성에 대한 우리 시대의 관점을 재조명한다. 그것은 성과중심과 정보지배의 시대가 인간성을 먼지처럼 여겼다는 것에 대한 고발이다. 특히 진실추구 용기를 소멸시킨다. 이 용기는 인간성의 가장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이 용기를 짓누르는 힘에 스스로 투항했다. 이로써 인간은 참과 거짓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진리를 향해 전진하는 태초의 본모습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작은 책은 인포크라시 시대에 태초의 인간성 회복과 유지를 위한 분투를 권고한다. 아쉽지만, 구체적 실천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라는 정치제제에서만이라도 그 용기가 발현되길 희구한다. 인간의 생활세계 안에서 형성된 정교한 교리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 신념을 담론으로 내어 놓고 비판해 보자고 제안한다. 수없이 쏟아내는 말과 글들이 우리 시대 인간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이끌어가는 맥락에 잘 놓여지도록 말이다.


우리 시대에 모든 옳은 은 끝까지 옳아야 한다. 그 말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말이 놓인 세계 속에서 그 역사적 맥락이 옳다고 인식될 때이다. 예를 들어 자유공정을 주창하며 비틀거리는 정치가와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자유와 공정을 되묻고 그 선악을 판단받아야 한다. 언론가와 문학가도 마찬가지다. 인포크라시에 가짜 뉴스로 점철된 정보지배로부터 군중을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한병철의 주장은 인포데믹 시대에 말과 글의 지도자들의 삶의 방식을, 글을 퇴고하듯, 반추하게 한다. 진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이들을 위한 타자있음의 열린 세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음을 다해 의 시대를 반성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의 지배에 갇혀 스스로 감시를 받는 것도 모른 체 자신은 자유로운 듯 군중을 호도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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