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들어 식이요법을 해야만 했던 나는 사실, 단식이나 절제, 급한 다이어트는 커녕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잘 먹고 지냈다. 물론 하루 세 번, 상을 차리고 치우고 다시 차리고 치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음식재료를 구하고 다듬고 조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갈 정도다. 재밌는 것은 처음에는 치료 목적이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만든 음식 자체가 맘에 든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따로 있다. 지금까지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음식관련 책들, 특히 고혈압과 당뇨치료를 위한 식이요법 책이나 자료가 엄청 많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음식 종류가 매체를 통해 쏟아진다. 나 역시도 이제는 스쳐지나가던 내용들을 눈여겨 봐두기도 하고, 필요한 것들은 메모도 해 둔다. 뭐라도 놓치지 말고 ‘내 몸’에 적합한 음식을 적절하게 제공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정말, 나에 비하면 다른 이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노력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알았다. 치료든 건강을 위해서든 음식에 지대한 관심을 둔 사람들은 하루하루 그 메뉴 정하기가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괜찮으면 음식 가리지 않고 마음껏 먹고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쉼 없이 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건강이든, 그저 맛이든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음식은 대체로 한 끼 먹고 나면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건강 음식 프로그램이 여전히 생존하는 것 같다. 아무라 맛있어도 하루 세 끼, 또는 매일 꾸준히 먹기가 어디 쉬운가. 생존식은 그래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2.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는 중에 내가 그나마 손쉽게, 영양도 챙기면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있다. 연두부야채죽이다. 이름만 들어도 싱겁기 짝이 없는 고혈압과 당뇨식을 위한 저염식 메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적절하게 간이 배이고, 무엇보다 연두부가 곁들여져 식감이 좋다.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적어도 내 입맛에는.


나는 이 음식을 이렇게 준비했다. 우선 말 그대로 죽은 죽이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몸에 좋다. 포만감을 너무 기대하지 않는다면 가볍게, 그러나 알차게 먹을 수 있다. 기준은 2인분정도로 하고 이런 재료를 준비하면 된다. 가급적 야채는 풍성하게 넣는다.


재료: 애호박 보통 크기 1/2, 당근 어른 손 크기 1/2, 표고버섯 3개, 송이버섯 1, 알배추 속 어린 부분 원하는 대로. 밥은 주로 잡곡밥이 좋다. 물론 치료가 아니라면 백미밥도 나쁘지 않다. 맛은 백미가 월등하다. 두 공기 정도면 충분하다. 연두부는 작은 것 1개를 준비한다. 그 밖에 들기름, 참기름, 들깨, 소금 약간(최대한 소금을 줄인다. 야채들은 고유한 맛이 있다. 그것들을 조화시키기만 해도 충분히 맛이 든다.


3. 재료를 준비한 후, 이제 직접 만든다. 

(1)먼저 야채들을 최대한 작게 썬다. 식감이 느껴질 정도면 충분하다.

(2)적절한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센 불에서 준비한 야채들을 볶는다.

(3)기름 맛이 배일 정도가 되면, 물 1L 정도를 붓는다. 야채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인다.

(처음에 물은 조금 많이 넣어도 좋다.)

(4)당근/호박이 야들야들해지면, 밥을 넣는다. 눋지 않도록 지켜보면서 저어준다.

(5)밥이 끓으면 연두부를 몇 번 나누어 넣고 저어준다.

(6)끓어오르면 불을 줄인 상태에서 계속 저어준다. 밥이 최대한 풀어져야 좋다. 야채도 딱딱한 상태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저으면서 끓인다. 물이 너무 빨리 쫄게 되면 물을 조금 붓는다.

(7)거의 끓었으면 참기름을 넣고 약불에 좀 더 둔다.

(8)다 되었다고 판단되면 그릇에 담고 깨를 조금 넣는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단순한 과정이다. 이런 조리법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만들어낸 음식이 최고라는 건 언제나 확인할 수 있다. 달고, 부드러우며, 아삭아삭한 맛이 이 죽이다.


4.

나는 이 음식을 나처럼 저염식을 해야 했던 사람에게 한 그릇 배달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염식에 관심을 갖고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주기까지 했으니 감개무량하다. 따뜻한 상태로 얼른 가져다주었다. 저녁 한 끼로는 충분할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맛있었다고 연락이 왔다. 곁들여 먹을 반찬으로 미역콜라비양파초무침을 보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음식이 자기 생존과 직결되는 때가 찾아올 수 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엇인지 모를 압박이 삶을 짓누른다. 마음껏 먹을 수 있던 것들을 지나쳐야 하고,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다 별 일없이 잘 할 것 같지만, 막상 접하고 나면 하루, 이틀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경우,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다. 배고프니 먹고, 배부르니 지나치는 정도가 아니다. 과도하지 않게, 적절한 양을 적합한 시간에 먹는 것도 음식에 한 부분이다. 설령 생존을 위한 음식이라해도 누구나 음식과 함께 끝까지 호흡하지 못한다. 음식은 인간을 유혹하고 시험하는 생존도구다. 유혹과 생존이 함께 있기에 위협적이다. 나는 음식을 통해 인간이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을 배운다. 먹지 말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조금 먹어야 할 것, 주로 먹어야 할 것 등을 구분해나가면 삶의 방식은 저절로 바닥부터 재구성될 수 있다.


내가 건네준 음식이 한 아이의 삶에도 작은 기억으로 남겨지면 좋겠다. 누군가 식사로써 자기 생존을 위협하는 삶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고 싶다면 기꺼이 그를 위해 내가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연습해 두려한다. 이런 메뉴들로 정식 한 끼 식사를 차려낼 수 있을 어느 날을 기대한다.


5.

나의 지난한 음식 만들기 전투에 크게 기여했던 책이 있다. 수많은 책 중에서 한 끼 한 끼 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준 책이다. 병원 영양팀이 직접 참여했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식품영양과의 당뇨관련 이론부분이다. 읽어도 그게 그것 같아서 쉽지는 않았다. 분량이 좀 많긴 하다. 2부는 다양한 메뉴를 상황별로 제시했다. 다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자기 몸을 위해 건강한 식사를 한번 만들어 볼 수 있는 용기를 갖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잘 만들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음식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잘 먹으면서 자기 몸 관리를 위한 기대치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0-05-30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못 뵙는 사이 요섹남이 되셨군요.ㅎ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죠.
우리가 세끼를 챙겨 먹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던데
배꼽 시계는 정확하더군요.
오죽하면 불가에서는 먹는 것을 수행으로 보잖아요.
정말 도 닦지 않으면 못할 게 끼니 챙기는 것 같습니다.
잘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밥헬퍼 2020-05-30 19: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정말 생각보다 쉽진 않더군요. 세 끼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많이 있더군요. 경험해보니 무엇을 먹는가보다 무엇을 먹지않아야 하는지도 중요했습니다. 나름 즐거운 일입니다. 그나저나 이 서재 오래 잘 지키시네요. 좋은 글 잘 보여주시길 늘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