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간 - 여인숙 달방 367일
이강산 지음 / 눈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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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진예술가 이강산(1959~)다큐 일기. 다큐멘터리 일기에 사진과 실제 경험을 담았다. 저자는 지난 202079()부터 2021710()까지 대전역 근처 대덕여인숙에 머물러 달방 생활을 했다. 이 기간, ‘여인숙을 주제로 인간의 생존 공간 탐구를 시도했다. 따뜻한 르포(르포르타주).


이 책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큐. 여인숙 사람들의 삶을 직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일기. 개인의 기록이면서 공적 담론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일기다. 특히 사진은 개인 경험을 사회 이슈와 직접 연관 짓는 경첩 기제(hinge mechanism)로 작동한다


"한 평짜리 에서 폭염과 한파와 빈곤 함정에 파묻힌 채 없는 듯, 죽은 듯 살아가는 달방 사람들, 시한폭탄 같은 소요와 폭력적 갈등을 제거하고 마지막 불씨처럼 꺼져가는 인간의 말과 체온 회복이 절실했다. 사진을 인화해서 나눠주면 부지불식 간에 의식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252)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었다. 여인숙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367, 여름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다섯 계절 동안 경험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이방인이면서도 그들과 함께 산 이유는 명확하다. 그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손닿을 자리에서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존과 공재(共在)가 목적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인숙 밖의 세상으로 두고 볼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2년 남짓한 시간에 철거 직전의 여인숙 두 곳에서 열대여섯 사람의 삶과 죽음이 교차했으니, 2년이란 실로 장대한 인간의 시간 아닐 수 없다...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역설적 인간의 시간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공간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한 평 남짓한 시공간에서 800여 일을 살아낸 이 기록을 나는 오늘 조심스럽게 여인숙 밖 세상으로 전한다. 당연하게 이 모든 것은 진실이다." (인간의 시간, 313-314).

 

이 말 속에 인간의 시간에 대한 정의가 있다. 그 시간은 죽음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인숙에서 체화하는 모든 삶, 크로노스(kronosis). 따라서 인간의 시간은 다층적 의미다. 한편으로 여인숙에 머무는 인간이 짐승처럼 다뤄지는 시간이다. 저자는 이것을 우회적으로 고발한다. ‘짐승의 시간속에 방치된 인간 권리를 항변한다. 다른 한편, 인권의 시간이다. ‘여인숙이라는 사회적 퇴물, 혐오의 공간으로 인식된 삶의 터전에서도 상호 간에 환대하며 인간의 당연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다움의 시간, 카이로스(kairosis)를 함의한다. 이 의미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최저 권리마저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탈취당한 땅의 사람들을 변호해야 할 당위성을 설파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저술 목적은 명확하다. 저자는 이 보고서 같은 일기문학으로 여인숙 밖의 사람들을 환대와 공존의 장인 여인숙 안으로 초대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인숙의 사람들에게도 인간의 시간이 살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죽음의 공간으로 치부해도 여전히 생()의 시간은 흐르기 때문이다. 죽음 계곡 같은 공간에 흐르는 짐승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쟁취하여 재생하려는 것이다. 또한 여인숙 사람들의 삶은 사람다운이야기며, 그들의 관계는 샬롬(평화)이라는 것을 웅변한다. 고대 사람들의 상상 속 죽음 공간인 스올(Sheol, 하데스) 같은 여인숙에도 매일 생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스올은 죽음의 빛이 밀려드는 생의 종점이다. 고대 지혜자 코헬렛(Qoheleth)이 말한 대로 더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는”(전도서 9:10)곳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죽음 계곡 같은 여인숙에서 오히려 생()의 희망을 보았다. 삶의 생기가 흐르는 낙원의 흔적을 찾아냈다. 여인숙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코이노니아(koinonia, 관계)를 빛과 어둠으로 극명하게 조명했다. 폐광 같은 여인숙에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의 권리와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의 끈적함을 자기 몸으로 입증해냈다. 몸 하나 눕히면 꽉 차버릴 0.8평 공간에 자기를 밀어 넣는 방법을 선택하고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여름으로부터 숨마저 얼어버려 굳어버릴 것 같은 겨울, 다시 여름으로 되돌아오는 시간동안 사람들의 삶에 뿌리를 내린 생기를 함께 경험했다. 이처럼 이강산의 책은 인간 사이에 견고하게 자리잡아야 할 안전한 지대에 대한 분투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왜 우리는 타인의 삶을 지키려 하는가?" 이강산의 책은 답한다. 죽음 같은 땅의 삶 너머에 자리한 생의 여백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이 책의 의의는 이것이다. 즉 문학이라는 비폭력의 힘을 통해 이 세계가 안전한 지대, 생의 여백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도록 자극한다는 점이다. 이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 1947~ 미국 법철학자)이 주장하는 시()적 정의와 이 책이 같은 맥락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스바움은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인간의 삶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러나 시민의 삶에 문학이 기여하는 가장 큰 공헌은, 종종 둔감하고 무딘 상상력을 가진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고나 감성 속에서나마,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애써 인정하도록 만드는 그 능력에 있다." <“민주적 시민과 서사적 상상력,”(황은덕 역)오늘의 문예비평(2010. 11), 45.>

 

이 말은 정치와 법으로만 통치되는 이 세계에서 '공감의 철학'이 곧 문학의 정치적 실현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그의 글은 땅바닥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삶의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을 자기 몸으로 확인한 탐사보도문이다. 그가 육화한 증거는 우리 삶 어딘가에 드러나지 않은 채 감춰져 있는 생존 여백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생(微生)에 대한 사회적 공공선으로서 땅의 사람들과 공존해야 하는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해석학이며, ()철학적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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