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로 - 자폐 아들의 ABA 치료 이야기
권현정.이은창 지음 / 캥거루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책 마지막 단락을 읽고 말없이 중배전으로 로스팅된 원두를 갈아서 내린다.

책을 읽고 커피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는 일은

내가 방금 읽은 책을 아직 끝내지 않았다는 작은 습관이다.

희고 작은 머그에 담긴 진한 향기와 묵직한 흑갈색 커피는

책 이야기와 이리저리 뒤섞여 생각보다 목넘김이 좋다.

오늘 내가 선택한 원두는 신맛이 강하지만 끝이 달고, 묵직한 바디감이 좋다.’

저 책이 이 커피를 닮았다.

 

2.

이 책은 아들이 자폐라는 판정을 받게 된 그 가족 재난의 날부터 하루도 포기하지 않고 이 특별한 질병에 저항해서 끝내 평범한 일상이라는 궤도의 출발선에 다시 서도록 도운 가족의 인생 분투기다. 그리고 자폐는 결국 끝나는 날이 온다는 확신을 함께 갖자고 제안하면서 그 적절한 대응 방식을 자신이 지나온 죽음 계곡같은 이야기로 희망적으로 제안하는 지침서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이 단 하나의 해법일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너무 많은 치료 방법의 숲에서 링원더링(ringwandering)’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무기력으로 그 상황을 빠져나가기를 포기한 어떤 가족들에게는 그래도 그 빛나는 출구가 어디쯤에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3.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경험을 이론처럼 정갈하게 정리해서 수월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통극복경험담에 그치지 않고 자기 경험을 체계적으로 재서술해서 누구나 객관적으로 주목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글 전체에서 저자들은 자기 감정을 적절하게 조율하며 자신이 겪은 상황과 자폐 원인 분석, 그 대응 방식을 적절하게 서술함으로써 마치 자폐를 겪는 이들 누구나 안심하고 펼쳐볼 수 있는 매뉴얼 기능을 충실히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런 고통을 이겨냈으니 공감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만의 지난한 싸움에 처해있는 어떤 이들에게 함께 이겨내는 전술과 전략을 공유해보자고 응원하며 권면하는 것이다.

 

4.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이 읽어도 유익하다. 나는 자폐가 무엇인지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친구의 가족에게서 또는 방송과 책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전부일 뿐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이 행동의 직접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아예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족들의 힘겨움, 함께 머무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괴로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조금 이해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내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 강하게 붙잡는다. 그러다보니 이런 삶이 끝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자폐로 인해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하는 이들의 악기 연주와 탁월한 과학 수학 능력을 들으면서 힘겹긴 하겠지만 대단한 사람들이군이라는 생각을 습관처럼 하거나 야스퍼거 증후군을 겪으면서도 천재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호기심 가득 만끽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폐라는 말이 특별하지 않고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명칭처럼 일반적이고  아주 넓은 범위에서 다양하게 이해해야 하고, 또한 그 원인에 대한 가족들의 자책보다 그것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정도로 평범한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돌아보니 내 친구의 아들이 겪고 있고, 한번 건너 내 지인의 자녀가 겪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 문제가 나에게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일이 결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유익했다.


5.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의 제목인 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로는 이 일을 겪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말은 생각보다 흔한 말이어야 하지만, 기대만큼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고통이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도 언제나 그 행복을 쟁취한 이들의 승전가이자 성공담일 때만 가능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삶에서 평범한 기적’, ‘특별한 일상이라는 옥시모론(Oxymoron)을 흔한 말처럼 되새겨 볼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일어날까?싶다. 그도 아니라면 돌아보니 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었다고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일들이라도 일상처럼 일어날 수는 있을까?라는 무기력한 생각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제목은 승전가가 아니라 이 일을 겪는 이들을 위한 가까운 미래의 축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 일이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평범한 경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부디 누구에게나 저 제목이 평범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

"나 역시 유원이의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살 수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유원이가 특별한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 나와 남편의 가장 큰 바람이기 때문이다. 유원이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않고 힘겨운 치료를 견디며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244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6-1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래의 축사! 너무 뭉클하네요!

밥헬퍼 2022-06-17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디 이런 좋은 결실이 다른 분들에게서도 잘 나타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