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법, 조선시대로 회귀하나
     
도덕적 규범을 법제화하면 곤란해

 김혜숙 기자
 2004-07-25 23:48:53

<필자 김혜숙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 사회의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또 어떤 부문에서는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는 전통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전통의 현대화라는 이름 하에 변화에 대해 적응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 그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의 의식은 혼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효도법’은 국가의 문제회피

한나라당이 마련해 입법 추진을 계획하고 있는 소위 ‘효도특별법 제정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의식을 혼돈 속에 빠뜨리는 한 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노부모 부양자에 대한 사회적 안정감 부여 및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현대적 개념의 효 문화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의 핵심은 가족윤리로서의 효라는 전통 도덕적 가치를 제도적 차원에서 함양시키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

사회복지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 개인은 자신의 복지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가족 관계의 망이 잘 짜여진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자신의 안녕과 복지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미한 가족관계의 망을 가진 개인은 그렇지 않은 개인에 비해 복지에 관한 한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더구나 가족제도가 변화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활발한 현대사회에선 가족이 개인의 복지를 책임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극빈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의 마련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보살필 가족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가족에게로 다시 부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관계의 심각한 문제로 가출한 청소년을 찾아내서 다시 그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 가상만을 만들어내어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보지도 못하게 된다.

효도특별법의 또 다른 문제는 효도라는 도덕적 가치를 법적 강제로 부과한다는 데 있다. 법은 넓은 의미로 도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법과 도덕은 그 외연에 있어서 같지 않다. 합법적인 것이 도덕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예컨대 투표행위가 도덕적 행위는 아닐 것이다)이거나 심지어는 부도덕한 것(남성전용 휴게방 개업은 합법적이지만 부도덕한 것일 수 있다 )일 수도 있다. ). 또한 도덕적인 것이 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내 스스로에 대한 정직성이나 성실성의 문제는 합법,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이거나 비합법적인 것(2차대전 당시 유태인을 도왔던 독일인이 당시 나치법을 어긴 것일 수 있다)이 될 수도 있다.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면 위선만 늘어나

오늘날 법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는 도덕을 사적 차원의 문제로 두는 경향이 강하며 도덕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기보다는 최소 도덕주의를 지향한다. 조선 사회는 최대한의 도덕주의를 지향했던 사회로 예치를 이상으로 삼음으로써 법과 도덕의 외연을 거의 같게 두고자 했다. 이것은 공자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법에 의한 처벌을 받으면 될 뿐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줄을 모르게 되지만, 예가 지배하는 사회는 내면으로부터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저절로 교화가 된다고 했던 데서 비롯된 정치적 이상이었다.

예치는 도덕적 규범을 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도덕적 가치의 강제성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언뜻 보면 인간다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인 듯 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외적 행위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좀더 철저하게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법과 달리 도덕은 전 인격을 관여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훨씬 강력하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한다. 효도법의 제정은 예치와 같이 겉보기의 그럴듯한 명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사적 영역까지 법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는 무리를 범하는 것이며, 많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한 예로, 회사생활을 무난히 하기 위해 회사 규칙을 잘 지키고 사장의 지시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지, 회사를 나를 사랑하듯 사랑하고 사장을 인격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필요는 없다. 만약 사장을 한 인간으로 좋아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강제조항이 된다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사장을 좋아하고 친밀하게 따르는 사람에게 월급을 더 주거나 보너스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면을 쓰고 사장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사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들의 그 마음도 의미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인센티브는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존경심이나 애정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도덕을 법적으로 강제하고서, 인센티브 제도까지 도입하는 경우 많은 위선적 행위들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위선을 해서라도 효도국가를 세워야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 경우 우리는 무엇을 위한 효도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법이 도덕의 영역을 넓게 지배하면 할수록 우리의 자율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숨막히게 된다. 도덕은 자율과 자유의지의 영역이다. 법은 물론 법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 자발적 준수가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좀더 현실적으로는 강제와 유인과 처벌의 문제이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많은 행위들이 합법과 불법의 문제로 주어진다면 이 삶은 무척 답답하고 무기력한 것이 될 것이다. 더욱이 효자와 효부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남성중심적 가치의 사회, 자식이 없을 수도 있고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다양성이 부정되는 사회, 중요한 가치들이 양적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 이런 사회 안에서 우리의 삶은 매우 황량한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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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법 제정 막아야
     
한나라당 효도특별법 제정안 발표

 조순경 기자
 2004-07-25 23:44:25


한나라당 정책개발특별위원회(위원장 이한구)는 지난 5월 ‘효도특별법 제정안’(이하 효도특별법)을 발표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된 이 제정안은 지난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아직 구체적인 법 조문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소요 예산도 얼마가 될지 정확히 나와있지 않은 상태지만, 올 9월 정기 국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한나라당 관계자는 전한다.

“노부모 부양에 대한 가족, 사회, 국가의 공조체제 구축 및 국가의 효 분담 확대”라는 취지로 구상된 효도특별법은 노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며, 농경 봉건사회의 ‘효’ 윤리를 현대 사회에 법적으로 강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고, 여성들에게 그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법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족에게 국가부담 전가하려는 전근대적 발상

효도특별법의 주요 골자 가운데 하나는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 시에는 부양명령 등 강제조치”를 신설하고, “부양 명령자에 대한 명단을 공개”히겠다는 것, 그리고 “자녀의 민사상의 부양의무에 대한 특별 규정을 제정하고, 부모 대상 범죄행위(상해, 학대, 유기, 폭행, 협박, 감금 등)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별로 ‘효자효부상 선정위원회’를 설치하고 효자효부상 수상자에게 상금을 지급(시도: 1천만원, 시군구: 5백만원)하며, 효자효부증을 교부하여 이들이 공원, 문화공연 등 이용 시 할인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이 같은 발상은 이혼 증가를 막기 위해 ‘열녀문’을 세우고, ‘열녀 정표’를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부모 부양을 ‘효’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효도 교통카드제’를 도입하고 노부모 부양자에게 효도여행 휴가권을 주고, 효자효부상, 효자효부증을 교부하는 등의 방안은 결국 국가가 개입해 ‘효’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여 노인복지의 주 부담을 가족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OECD와 우리 나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98년 현재 GDP에서 노인복지 서비스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 나라의 경우 0.08%로, 영국 0.50%, 덴마크 1.82%, 스웨덴, 2.49%, 스페인 0.18%, 일본 0.27%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복지 수준에서 ‘효’와 같은 유교윤리와 유교적 언어로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요구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효도하는지 학대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 사회에서 ‘효’라는 유교윤리는 아직까지 뿌리깊게 남아있다. 효와 불효에 대한 가치는 위계화되어 있다. “왜 효도를 해야 하는가, 효라는 가치를 왜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낯설기만 할 정도로 그 가치에 대해 맹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부모를 모시고, 부양할 상황에 있는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를 부양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함께 살지 않는 자녀는 상당부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현재 자녀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의 49%정도다. 절반 이상의 노령층이 자녀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부모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자녀가 부양할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부모 자녀가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어긋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자녀를 둔 60세 이상 가운데 48%가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70대의 경우 39%가, 그리고 신체적 의존도가 높은 80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도 22%가 자녀와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한 노인은 “평생 아이들 키운 것으로 족하지 손자 손녀까지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한다. “손자 손녀한테서까지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또 다른 노인은 “그런 저런 눈치보고 사느니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에서 못 일어나 굶어 죽더라도 나가서 따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고, 법적 강제를 하면서 노부모를 부양하도록 하는 효도특별법은 가족 내에서의 노인학대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들의 욕구에도 관심이 없다. 강제로 부모를 모시게 함으로써 더 많은 노인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999년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가 자녀 및 가족으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절반 정도는 거의 매일 학대를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학대의 주 가해자는 아들과 며느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38% 정도가 언어적,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은 것으로 나타났고, 지속적이며 중층적인 학대 경험이 있는 경우도 11.6%나 됐다. 이 경우도 주 가해자로 아들과 맏며느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대를 당한 노인의 대부분은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참는” 것으로 별다른 대응을 하고 있지 않으며, 다시 학대를 당하더라도 신고하지 않겠다고 한 비율은 77.9%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존속 상해, 존속 유기, 존속 학대 자녀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효도특별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부모를 부양하며 효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온갖 학대가 일어나도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한 여성노인의 말처럼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거짓 자랑을 하고 산다.” 자식으로부터 방치되고, 유기당하고, 학대 받은 부모 가운데 몇 명이나 자식이 처벌 받고 범죄자가 되게 할 증언을 할 것인가. 효도특별법이 아니라 노인학대방지특별법을 만들어 노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부부간의 관계를 더 이상 지속시키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이혼을 선택한다. 부모 자녀 간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효도특별법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를 억지로 함께 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효의 이름으로 여성 희생 강요 말아야

노인 부양과 효도를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의 노인 부양은 과거 근대 이전 농경사회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특히 신체적, 정서적 의존도가 높은 노인일수록 노동집약적인 노동과 고도의 감정노동을 필요로 한다. 단순한 의식주 해결뿐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고, 불편한 몸의 거동을 돕고, 병수발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모든 노동을 누가 할 것인가. 지금과 같이 성별 분업이 뚜렷한 혈연 중심의 핵가족에서 그 노동은 거의 대부분 여성들에게 떠넘겨진다.

얼마나 모순인가. 한나라당은 한편으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여성들로 하여금 노인 부양에 필요한 노동을 하라고 유인하고 강요한다.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할 경우 부양명령을 내릴 것이고, 부양명령을 받은 자들의 명단도 공개하고, 부모유기를 부모에 대한 범죄행위로 규정,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전근대적인 법안을 자랑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현재 60세 이상 가구주의 절반 정도(49%)가 노후준비가 없으며, 준비가 있는 경우에도 공적 연금을 제외하면 33% 정도만이 개인적으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은 남성의 2배에 가깝다. 이러한 노령인구의 경제적 상황의 성별 차이는 가족 내에서의 성별 분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에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육아 부담이 여성 취업의 장애가 되기 때문에 육아의 사회화를 해야 한다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노인 부양노동 또한 사회화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노인을 돌보는 데 필요한 휴직이나 휴가제도 조차 없는 상황에서, 효도특별법은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고 이로 인해 노후 준비를 더욱 어렵게 하여 타인에의 경제적, 심리적 의존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하는 성차별적 법안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국가는 혈연에 기초한 효를 법적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노인을 포함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동등한 대우, 연령차별주의의 극복, 그리고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안한 효도특별법은 효라는 가치와 그를 행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효도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모 부양을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부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불효녀 혹은 불효자로 낙인 찍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이 법안을 구상하고 발표한 한나라당은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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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2004년 7월 26일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



사회 : 참여연대 평화군축 센터

여는 말씀 : 홍근수(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

취지발언 : 정태춘 (가수,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선언문 낭독 : 정성훈(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여성 1인

참가단체 발언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

정성훈(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선언 참가 단체(41개 단체)

반전평화기독연대, 불교인권위원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진보평론, 녹색평론,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전국빈민연합, 문화연대, 군축․평화를 위한 문예 행동단,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주한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 민족화합운동연합, 사월혁명회, 통일연대, 대항지구화행동, 평화바닥, 평화네트워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 전쟁없는세상,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초록정치연대,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민중의료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장애인이동권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 정전협정 51주년, 한반도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한다 -


<전문>


2004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로 보내왔던 것이다. 우리는 정전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자원을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낭비되면서 심각한 인권유린과 생존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영향력을 가져와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처럼 정전체제는 한반도 주민과 공동체의 삶을 총체적으로 짓눌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의 종식은 아직도 기약이 없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도 부족하기만 한 현실이다.


정전협정 체결 51주년을 맞이한 한반도는 희망과 불안,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향한 노력은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비록 실천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 최초로 남북한 군장성들이 만나 서해상의 무력충돌 방지와 상호간의 선전 활동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희망과 기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고, 주한미군 재편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두 축으로 삼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새로운 위협을 잉태시켜 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한반도 주민들이 생존의 벼랑끝에서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군사비는 여전히 최우선적인 특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선택이 갖는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첨예한 군비경쟁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의 과오를 극복하고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냉전적 세계관과 막강한 군사력이 안보를 지켜준다는 ‘낡은 사고’에 갇혀 또 다시 불안한 21세기를 잉태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는 이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서, 조속한 평화협정의 체결과 군축을 통해 공고한 평화체제를 실현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점을 호소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울러 이와 같은 중대한 전환기에 한미동맹이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아래와 같이 10대 요구 사항을 발표한다.

< 10대 요구사항>


첫째,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하게 임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성실한 협상을 외면해왔다. 이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MD 등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고 공격적 군사전략을 채택하며 궁극적으로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국은 이제부터라도 군사적 일방주의를 버리고 상호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협상과 타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은 한반도에 첨단무기 배치 계획을 중단하고 대북한 선제공격전략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야 한다.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군사력을 배치하면서 북한의 무장해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접근법이다. 미국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약소국가에 대한 전쟁위협 중단과 군축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용산기지 등 기존의 기지이전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에 따라 기지 역시 대폭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또한 동두천 등 미군 기지가 폐쇄되는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기지 폐쇄시 오염된 토지를 원상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화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계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미국이 한국을 MD의 전초기지화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경계하며, 이러한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째, 협력적 자주국방을 조기에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군의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 낭비와 남북관계의 불안을 가져오는 군비증강 계획 대신에, ‘군사 주권’의 핵심 요소인 작전지휘권의 완전한 환수부터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비의 규모 역시 세계평균인 GDP 대비 2.5% 수준 이하로 축소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군 문민화․투명화․비리근절 등 전면적 군 개혁에 나서야 한다. 군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지역에서 남북 군간의 교신내용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게까지 왜곡해서 보고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성역화되어 있는 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인 국방장관 기용을 포함한 군의 문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지정되고 있는 군사기밀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자의적 적용을 막을 국가기밀기본법을 제정하여 군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방비 증액에 앞서 군 조달 시스템, 비효율적 군수산업 구조, 육군병력 위주의 비효율적 병력구조 등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일곱째, 남-북-미 3자는 즉각 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미 인류 역사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무기와 병력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배치된 상황에서 더 많은 무기와 병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의 낭비와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뿐이다. 따라서 남-북-미 3자는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한반도에 배치되어 있는 병력과 무기를 대폭 감축하는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하고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특히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추가적인 예산 부담 없이도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고, 사병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홉째, 남북관계를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분단에서 통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대결형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 삭제, 헌법의 영토 조항 개헌, 남북교류협력법제의 개정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존의 남북, 북미 평화협정이라는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실현가능하고 공고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어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의미와 함께,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무모한 군비경쟁을 중단시켜 군축을 실현시키고 조속히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04년을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아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동아시아의 공동안보 실현을 위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2004년 7월 26일

<첨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우리는 먼저 냉전과 정전체제의 유산인 한미동맹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 함께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적 쌍생아이다. 그리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정부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우선 부시 행정부의 주한미군 재편과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2003년 5월 14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명시된 것으로써,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총론 수준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재편을 추진하고 한국은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반세기를 넘긴 한미동맹이 기존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바꾸고 건전한 관계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과거의 낡은 관성은 거의 고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 실현, 그리고 동북아의 공동안보에 기여하는 방향이 아니라, 대규모의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적 접근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비타협주의, 그리고 북한 핵문제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반도 군사력의 급격한 변화는 더욱 심각한 불확실성을 잉태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유리하게 하는 방향으로 군사력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주한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병력수를 줄여나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약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한반도 인근에서 대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 특히 미국이 수원, 오산․평택, 군산, 광주 등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들여놓고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하는 것은 한반도를 미국의 MD 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스텔기 전폭기와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신형 미사일의 배치는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을 더욱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아울러 보수 언론과 야당에서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을 ‘안보공백’과 동일시하면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공백’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향후 한미동맹이 "지역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타지역에서의 미국의 부분별한 무력 사용이나 대중국 봉쇄 및 포위에 활용될 가능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국이 타지역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개입의 중간기지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한국이 불필요한 외부의 무력 분쟁이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파병 결정은 이와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용산기지와 2사단을 비롯한 미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세계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특히 우리는 용산기지는 물론이고 2사단의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용산기지는 한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한국이 부담하고, 2사단 이전은 미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반환되는 용산기지는 약 80만평인 반면에 평택에 새롭게 건설할 예정인 기지 부지는 이에 4배인 약 320만평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시킨 다음에 2사단을 합류시키려는 계획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용산기지는 2007년까지, 2사단은 1년 뒤인 2008년까지 '같은' 평택 기지로 이전시킬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용산기지보다 4배가 큰 기지를 건설해줘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지고, 미국은 확장된 평택 기지에 용산기지와 2사단을 통폐합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비용 부담은 거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다섯째, 우리는 미군 기지 이전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 정부가 동두천 등 미군을 상대로 해 생계를 유지해온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나, 평택지역으로 남한 미군기지의 통폐합을 추진함으로써 해당지역 주민들의 생존권과 평화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끝으로 우리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과는 달리 협력적 자주국방은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의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군사적 종속을 고착화시키고 국민 복지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며 한반도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에도 역행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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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벌써 왔다가셨네 ...
 
 전출처 : 바람구두 > 책과 알라딘 서재에 대한 25문 25답

01. 당신은 책을 좋아합니까? (좋든 싫든) 그럼 그 이유는 뭐죠?

- 예, 책을 좋아합니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책을 읽었고,  책 사기를 즐겼지요. 그것 때문에 더 잘 살게 되었냐고 한다면?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인생이 특별히 더 지루해지지는 않았어요. 책 읽기로 인해 사는데 혜택을 보았거나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받은 적은 없지만, 그저 내 인생의 살아가는데 보다 많은 자극들 - 즐거움, 고통과 슬픔, 즐거움 - 을 선사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큼 명확한 것은 없지요. 가령, 내 인생에 보다 많은 자극적인 요소들을 그것들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2.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 경우에  따라 다르고, 책에 따라 다르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포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경우에 따라 한 달에 30여 권을 읽을 때도 있고, 정독을 해야 하는 경우나 진도가 더딘 책들에 도전한 경우엔 10여 권 정도를 읽을 때도 있습니다. 만약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고 하는 것들을 포함한다면, 특히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들을 읽을 때 다른 책의 데이타와 비교하면서 읽어야 하는 경우(그 책들을 포함해서 말한다고 해도) 대략 한 달 평균 10여 권 이상은 읽는 것 같습니다.

03. 특별한 독서 취향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한 거겠지요. 잡독에 난독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어느날은 서양마법에 대한 책을 읽다가 다음날엔 칼 맑스.엥겔스를 읽는 스타일이니까요. 만화책부터 고전에 이르기 까지 읽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 증세가 있습니다. 

04.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뭐죠?

-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어제 선물 받은 책인데,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였습니다. 사찰장식, 즉 불교미술에 대한 하나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네요. 죽여주던군요. 덕분에 상식이 많이 늘겠더군요.

05.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거죠?

- 원칙적으로는 책이 날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소화력일 텐데요. 공자 가라사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안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한 것처럼... 좋은 책과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읽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이 있을 뿐이지요. 흠, 이건 지나치게 잘난 척하면 읊조린 멘트같고, 실제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작가는 믿을 만한가(번역작가도 포함해서), 출판사는 등등을 고려해서 고르게 됩니다.
 
06. 책은 사는 편인가요, 아니면 빌리는 편인가요? 빌린다면 어디에서 빌리죠?
 
- 책은 대개 사 봅니다. 빌린 경우(절판도서)도 있는데, 빌리면 원칙적으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 원칙이거든요. 흐흐. 만화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서대여점을 이용하는 편입니다만 구입하는 만화들도 제법 있습니다.

07.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뭐고요? (장르 불문하고)
 
- 이건 질문으로 뽑으면서도 하기 싫은 거였는데,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어쩐지 기밀노출하는 것 같아서) 저는 절 감동시켜주고, 압도해주는 작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작가는 속내가 빤히 보이는 작가들을 싫어합니다.

08. 특히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어떤 거죠? 그 이유는 뭐고요?
 
-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별도로 없고, 특히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이렇게 하면 10억 번다"는 류의 책들을 싫어합니다. 뭐, 인간경영학 같은 류의 책들이나 어줍잖은 명상도서류들도 싫어해요. 이유? 이유?

첫 번째 부류의 책들은 제가 돈 벌기 싫어서 그렇구요. 인간경영학 류는 읽고 나서 실천해보려고 하면 이미 까먹고 만데다가 그렇게 실천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경영하고 싶지 않고, 세 번째 부류의 책은 그런 거 읽고 명상할 시간에 제가 기르는 화초들 들여다보는 편(현재는 신고니아와 아카시아 묘목을 기르는 중임)이 명상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흐흐

09.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 글쎄,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흐흐. "삼포 가는 길"의 "백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절 떠올리게 해서 좋고, 백화의 경우엔 그녀가 정말 행복했으면 싶어서요. 싫어하는 인물은 별로 없는데....

10. 일반적인 책말고 만화책도 좋아하시나요?

- 예, 그럼요. 물론이죠. 답하면서 보니 도대체 이건 왜 물어본 거지요. 어차피 싫어하던 말던 다음 질문이 계속 만화책 얘기인데도... 흐흐

11. 만화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꼽아본다면요?

- 당연히 여러 편인데요. 폼 잡으면서 말하자면 남들도 다 좋아하는 레이몬드 브릭스의 것들부터 시적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것들, 그외에도 꽤 많아요.
 
12. 만화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 나오키의 몬스터에 나오는 "요한"을 좋아해요. 싫어하는 인물은 글쎄... 없는 듯....
 

13. 기억에 남는 대사나 문구가 있다면 말씀해보시겠어요? (만화든 소설이든 그 외 어떤 장르든 - 책)

- 도와줘! 내 안의 몬스터가 파열할 것 같아.(몬스터 중에서) 흐흐...


14. 특별히 게임, 영화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됐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거죠?

- 역시 몬스터...


15. 다른 매체로 제작된 것 중, 좋았던 작품과 나빴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역시 어떤 장르든)

- 반지의 제왕이지... 흐흐. 글쎄 나빴던 걸 기억할리 없잖아.


16. 번역도서를 읽을 때, 특별히 선호하는 번역(자)작가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의 어떤 작품?

-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앞서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싫음(역시 기밀누설 -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몇몇 분들에게 누가 됨). 하여간에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고,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무척이나 감사를 드린다는 사실만큼은 꼭 밝히고 싶다. 번역작가가 없다면 내가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할 책이 엄청 많았을 거라는 점.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최소한 내게는 우리 말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면 세상에 없는 책이나 마찬가지니까.

17. 그 번역작가의 어떤 면 때문에 그를 선호하게 되었나요?

- 앞서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 날 감동시키거나 압도하는 경우에 좋아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우선 좋은 작품을 먼저 읽고 감동했기에(물론 여러가지 고려가 따랐을 테지만) 번역해준 것에 감사하는 측면이 있고, 대개 번역작가에게 감동할 때는 그런 안목과 식견이다. 그리고 성실한 번역을 사랑한다. 영문 제라늄을, 한글 제라늄으로 옮길 때 성실한 번역가는 실제 제라늄을 한 번쯤 실물로 보거나 하다못해 사진으로라도 찾아봐준다.  그게 번역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차이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번역과 편집의 공통점 - 모르면 모르는 거다. 모르면 자기가 뭘 잘못하는지도 모르고 틀려버린다. 그래서 번역작가의 가장 으뜸 덕목은 안목과 식견과 더불어 성실함으로 무장한 치밀함일지도... 그런 번역작가를 좋아한다.
 
18. 번역된 작품과 국내 작가의 작품 중에서 우선 순위를 두어 읽게 되는 도서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원칙적으로 국내 작가 우선이다. 그 이유는 먹고 살게 해줘야 하니까.  지금 우리가 많이 안 읽어주면 앞으로 여러 방면의 연구가들이 좋은 책을 내주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물론 고르게 발전해가야겠지만....
 
 
19. 요 근래 읽어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던 책은 어떤 것이죠?

- 최악인 책은 기억하지 않는다.


20. 요즘의 도서 시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가령, 특정 장르의 문제나 인터넷 서점의 미래 등에 대하여)

- 아직도 복마전이다. 유통망 좀 제발 개선해다오. 영화판처럼 어떤 의미에서 거대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건 아닌지...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이라도...

21. 최근 읽은 작품 중 괜찮다 싶은 책 세 권을 꼽아보시겠어요? 왜 그 책들을 골랐나요?

- 페로티시즘 : 야한 그림이 많다. 흐흐. 농담이고,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란 재미에서....
- 바람이 불 때에 : 레이몬드 브릭스의 책이다, 조만간 서평 써야지... 룰루랄라.
- 또 뭘 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22. 앞으로 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 계속 잘 될 거다. 그래야 하고.... 왜냐하면 아무 때나 펼쳐들고, 메모하고, 다시 기억하고... 그러기엔 아직도 책만한 매체가 없으니까.
 

23. 앞으로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고, 쓰게 될 것 같나요?

-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고, 쓰게 될 거다. 흐흐.


24. 제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면 무엇을 권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 아무 거나 옆에 있는 책들부터 빨랑 해치워라. 선물해준 이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흑흑.
 

25. 알라딘 서재 중 즐겨찾는 곳이 있다면 대략 몇 군데이고, 그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어, 그러니까. 난 남들 서재에 가서 잘 못 논다. 잘 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50여 곳 정도가 되니 와, 많구나. 주로 스텔라, 비발, 마태우스, 마냐, 조선인, 갈대, 메시지, 가을산, 물만두, 책울타리 님 등의 서재(아, 기억력의 한계니까 여기서 언급안되었다고 삐지기 없기다)에 가서 읽는다. 왜?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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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시간나면 한번 해봐야겠군.

조선인 2004-07-2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랑 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가을산 2004-07-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저는 발마스님 건줄 알았잖아요.
 
 전출처 : 릴케 현상 > 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고종석] 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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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쳐들어온다고?


19세기 초 영국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칭얼거리면 ‘나폴레옹 온다!’는 말로 울음을 그치게 했다고 한다. 대륙을 제패한 프랑스 황제가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망태할아버지’나 ‘에비’의 기억이 있지만, ‘나폴레옹’은 그 실체가 또렷한 데다가 당대 ‘선량한 영국인 공동체’ 전체의 적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아이들의 공포 대상과는 성격이 좀 달랐다. 나폴레옹이 도버해협을 건너온다는 데야, ‘선량한 영국인’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일치단결해야 하는 것이다.


근자에 노무현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나 노 정권의 강고한 지지자들 사이에서 옛 영국인들의 ‘나폴레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다.

이들은 주변에서 무슨 추문이 터지기만 하면 우선 “조선일보가 온다!”고 외치고 본다. ‘포로코’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한 웹사이트에서 지적했듯, 옛 군사정권이나 조선일보가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북한이 쳐들어온다!”며 불안을 조장했던 식이다. 호시탐탐 개혁세력을 해코지할 기회만 엿보고 있는 조선일보의 말을 왜 믿느냐고 질책하기까지 한다.

이 글에 대한 뒤틀린 비방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얼마간 눅이기 위해, 구차한 신원 진술을 하자. 나는 세칭 안티조선운동의 활동가까지는 못되지만 꽤 어기찬 지지자다. 지난 7년간 나는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술집이나 식당에서든, 종이신문으로든 인터넷으로든,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다.

몇몇 신문의 미디어 난에서 비판을 위해 인용된 조선일보 기사를 스쳐 지나가듯 본 것을 제외하면, 그 기간 동안 내 경험세계에서 조선일보는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신문에 대해 내가 느끼는 거리감은 직업적 안티조선 운동가들이나 노 정권 주변 사람들 못지않다는 것을 믿어줘도 좋다는 뜻이다.

다시 돌아가자. 조선일보는 악인가? 7년 전까지의 독자로서, 그리고 그 이후의 간접적 수용자로서 판단하건대, 그렇다. 나는 이 신문의 상업주의적 반공놀음과 종파주의적 선정성이 다원적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한다. 또 나는 조선일보가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추악하게 실천하고 있는 비윤리적 신문이라고 판단한다.

다음, 정권 주변 사람들이 최근 부쩍 더 암시하고 싶어하듯 이 신문은 만악의 근원인가? 이 신문은 늘 사실을 왜곡하는가? 코웃음 칠 얘기다. 일반적으로 고부 갈등이나 비련애사가 조선일보 탓이 아니듯, 일반적으로 정권 주변의 크고 작은 추문을 조선일보가 조작해내지는 않는다.

물론 일단 터진 추문을 이 신문이 악의적으로 부풀려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고, 조선일보는 그 분야의 전과가 화려하다. 그러나 정권 주변의 최근 추문과 관련해서 당사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조선일보만 아니었으면 추문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것은 논리의 앞뒤를 바꾸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혁세력’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몸가짐과도 거리가 있다.

그 다음, 악한 집단의 적대자는 저절로 선한가? 그렇지 않다. ‘식인귀’ 부시와 적대자였다는 사실이 사담 후세인의 ‘식인귀 아님’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에 대한 사나운 비판이 그 비판자가 조선일보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사소한’ 추문들의 책임소재를 놓고 최근 조선일보를 격렬히 비판하며 “조선일보가 온다!”고 외친 정파는 정작 그 추문들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 이라크 파병이나 송두율씨 인권을 두고는 조선일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 정권의 핵심과 그 지지자들이 조선일보와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자유민주주의에 친화적이라는 것은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집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서는 제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개혁세력’을 보는 일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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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7-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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