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법 제정 막아야
     
한나라당 효도특별법 제정안 발표

 조순경 기자
 2004-07-25 23:44:25


한나라당 정책개발특별위원회(위원장 이한구)는 지난 5월 ‘효도특별법 제정안’(이하 효도특별법)을 발표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된 이 제정안은 지난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아직 구체적인 법 조문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소요 예산도 얼마가 될지 정확히 나와있지 않은 상태지만, 올 9월 정기 국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한나라당 관계자는 전한다.

“노부모 부양에 대한 가족, 사회, 국가의 공조체제 구축 및 국가의 효 분담 확대”라는 취지로 구상된 효도특별법은 노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며, 농경 봉건사회의 ‘효’ 윤리를 현대 사회에 법적으로 강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고, 여성들에게 그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법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족에게 국가부담 전가하려는 전근대적 발상

효도특별법의 주요 골자 가운데 하나는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 시에는 부양명령 등 강제조치”를 신설하고, “부양 명령자에 대한 명단을 공개”히겠다는 것, 그리고 “자녀의 민사상의 부양의무에 대한 특별 규정을 제정하고, 부모 대상 범죄행위(상해, 학대, 유기, 폭행, 협박, 감금 등)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별로 ‘효자효부상 선정위원회’를 설치하고 효자효부상 수상자에게 상금을 지급(시도: 1천만원, 시군구: 5백만원)하며, 효자효부증을 교부하여 이들이 공원, 문화공연 등 이용 시 할인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이 같은 발상은 이혼 증가를 막기 위해 ‘열녀문’을 세우고, ‘열녀 정표’를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부모 부양을 ‘효’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효도 교통카드제’를 도입하고 노부모 부양자에게 효도여행 휴가권을 주고, 효자효부상, 효자효부증을 교부하는 등의 방안은 결국 국가가 개입해 ‘효’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여 노인복지의 주 부담을 가족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OECD와 우리 나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98년 현재 GDP에서 노인복지 서비스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 나라의 경우 0.08%로, 영국 0.50%, 덴마크 1.82%, 스웨덴, 2.49%, 스페인 0.18%, 일본 0.27%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복지 수준에서 ‘효’와 같은 유교윤리와 유교적 언어로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요구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효도하는지 학대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 사회에서 ‘효’라는 유교윤리는 아직까지 뿌리깊게 남아있다. 효와 불효에 대한 가치는 위계화되어 있다. “왜 효도를 해야 하는가, 효라는 가치를 왜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낯설기만 할 정도로 그 가치에 대해 맹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부모를 모시고, 부양할 상황에 있는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를 부양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함께 살지 않는 자녀는 상당부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현재 자녀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의 49%정도다. 절반 이상의 노령층이 자녀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부모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자녀가 부양할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부모 자녀가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어긋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자녀를 둔 60세 이상 가운데 48%가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70대의 경우 39%가, 그리고 신체적 의존도가 높은 80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도 22%가 자녀와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한 노인은 “평생 아이들 키운 것으로 족하지 손자 손녀까지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한다. “손자 손녀한테서까지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또 다른 노인은 “그런 저런 눈치보고 사느니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에서 못 일어나 굶어 죽더라도 나가서 따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고, 법적 강제를 하면서 노부모를 부양하도록 하는 효도특별법은 가족 내에서의 노인학대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들의 욕구에도 관심이 없다. 강제로 부모를 모시게 함으로써 더 많은 노인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999년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가 자녀 및 가족으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절반 정도는 거의 매일 학대를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학대의 주 가해자는 아들과 며느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38% 정도가 언어적,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은 것으로 나타났고, 지속적이며 중층적인 학대 경험이 있는 경우도 11.6%나 됐다. 이 경우도 주 가해자로 아들과 맏며느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대를 당한 노인의 대부분은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참는” 것으로 별다른 대응을 하고 있지 않으며, 다시 학대를 당하더라도 신고하지 않겠다고 한 비율은 77.9%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존속 상해, 존속 유기, 존속 학대 자녀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효도특별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부모를 부양하며 효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온갖 학대가 일어나도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한 여성노인의 말처럼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거짓 자랑을 하고 산다.” 자식으로부터 방치되고, 유기당하고, 학대 받은 부모 가운데 몇 명이나 자식이 처벌 받고 범죄자가 되게 할 증언을 할 것인가. 효도특별법이 아니라 노인학대방지특별법을 만들어 노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부부간의 관계를 더 이상 지속시키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이혼을 선택한다. 부모 자녀 간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효도특별법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를 억지로 함께 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효의 이름으로 여성 희생 강요 말아야

노인 부양과 효도를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의 노인 부양은 과거 근대 이전 농경사회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특히 신체적, 정서적 의존도가 높은 노인일수록 노동집약적인 노동과 고도의 감정노동을 필요로 한다. 단순한 의식주 해결뿐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고, 불편한 몸의 거동을 돕고, 병수발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모든 노동을 누가 할 것인가. 지금과 같이 성별 분업이 뚜렷한 혈연 중심의 핵가족에서 그 노동은 거의 대부분 여성들에게 떠넘겨진다.

얼마나 모순인가. 한나라당은 한편으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여성들로 하여금 노인 부양에 필요한 노동을 하라고 유인하고 강요한다. 부모 부양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회피할 경우 부양명령을 내릴 것이고, 부양명령을 받은 자들의 명단도 공개하고, 부모유기를 부모에 대한 범죄행위로 규정,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전근대적인 법안을 자랑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현재 60세 이상 가구주의 절반 정도(49%)가 노후준비가 없으며, 준비가 있는 경우에도 공적 연금을 제외하면 33% 정도만이 개인적으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은 남성의 2배에 가깝다. 이러한 노령인구의 경제적 상황의 성별 차이는 가족 내에서의 성별 분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에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육아 부담이 여성 취업의 장애가 되기 때문에 육아의 사회화를 해야 한다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노인 부양노동 또한 사회화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노인을 돌보는 데 필요한 휴직이나 휴가제도 조차 없는 상황에서, 효도특별법은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고 이로 인해 노후 준비를 더욱 어렵게 하여 타인에의 경제적, 심리적 의존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하는 성차별적 법안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국가는 혈연에 기초한 효를 법적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노인을 포함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동등한 대우, 연령차별주의의 극복, 그리고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안한 효도특별법은 효라는 가치와 그를 행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효도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모 부양을 위해서는 경제적, 시간적,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부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불효녀 혹은 불효자로 낙인 찍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이 법안을 구상하고 발표한 한나라당은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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