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법, 조선시대로 회귀하나
     
도덕적 규범을 법제화하면 곤란해

 김혜숙 기자
 2004-07-25 23:48:53

<필자 김혜숙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 사회의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또 어떤 부문에서는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는 전통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전통의 현대화라는 이름 하에 변화에 대해 적응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 그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의 의식은 혼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효도법’은 국가의 문제회피

한나라당이 마련해 입법 추진을 계획하고 있는 소위 ‘효도특별법 제정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의식을 혼돈 속에 빠뜨리는 한 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노부모 부양자에 대한 사회적 안정감 부여 및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현대적 개념의 효 문화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의 핵심은 가족윤리로서의 효라는 전통 도덕적 가치를 제도적 차원에서 함양시키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

사회복지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 개인은 자신의 복지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가족 관계의 망이 잘 짜여진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자신의 안녕과 복지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미한 가족관계의 망을 가진 개인은 그렇지 않은 개인에 비해 복지에 관한 한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더구나 가족제도가 변화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활발한 현대사회에선 가족이 개인의 복지를 책임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극빈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의 마련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보살필 가족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가족에게로 다시 부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관계의 심각한 문제로 가출한 청소년을 찾아내서 다시 그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은 가상만을 만들어내어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보지도 못하게 된다.

효도특별법의 또 다른 문제는 효도라는 도덕적 가치를 법적 강제로 부과한다는 데 있다. 법은 넓은 의미로 도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법과 도덕은 그 외연에 있어서 같지 않다. 합법적인 것이 도덕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예컨대 투표행위가 도덕적 행위는 아닐 것이다)이거나 심지어는 부도덕한 것(남성전용 휴게방 개업은 합법적이지만 부도덕한 것일 수 있다 )일 수도 있다. ). 또한 도덕적인 것이 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내 스스로에 대한 정직성이나 성실성의 문제는 합법,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이거나 비합법적인 것(2차대전 당시 유태인을 도왔던 독일인이 당시 나치법을 어긴 것일 수 있다)이 될 수도 있다.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면 위선만 늘어나

오늘날 법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는 도덕을 사적 차원의 문제로 두는 경향이 강하며 도덕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기보다는 최소 도덕주의를 지향한다. 조선 사회는 최대한의 도덕주의를 지향했던 사회로 예치를 이상으로 삼음으로써 법과 도덕의 외연을 거의 같게 두고자 했다. 이것은 공자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법에 의한 처벌을 받으면 될 뿐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줄을 모르게 되지만, 예가 지배하는 사회는 내면으로부터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저절로 교화가 된다고 했던 데서 비롯된 정치적 이상이었다.

예치는 도덕적 규범을 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도덕적 가치의 강제성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언뜻 보면 인간다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인 듯 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외적 행위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좀더 철저하게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법과 달리 도덕은 전 인격을 관여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훨씬 강력하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한다. 효도법의 제정은 예치와 같이 겉보기의 그럴듯한 명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사적 영역까지 법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는 무리를 범하는 것이며, 많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한 예로, 회사생활을 무난히 하기 위해 회사 규칙을 잘 지키고 사장의 지시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지, 회사를 나를 사랑하듯 사랑하고 사장을 인격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필요는 없다. 만약 사장을 한 인간으로 좋아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강제조항이 된다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사장을 좋아하고 친밀하게 따르는 사람에게 월급을 더 주거나 보너스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면을 쓰고 사장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사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들의 그 마음도 의미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인센티브는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존경심이나 애정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도덕을 법적으로 강제하고서, 인센티브 제도까지 도입하는 경우 많은 위선적 행위들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위선을 해서라도 효도국가를 세워야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 경우 우리는 무엇을 위한 효도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법이 도덕의 영역을 넓게 지배하면 할수록 우리의 자율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숨막히게 된다. 도덕은 자율과 자유의지의 영역이다. 법은 물론 법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 자발적 준수가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좀더 현실적으로는 강제와 유인과 처벌의 문제이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많은 행위들이 합법과 불법의 문제로 주어진다면 이 삶은 무척 답답하고 무기력한 것이 될 것이다. 더욱이 효자와 효부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남성중심적 가치의 사회, 자식이 없을 수도 있고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다양성이 부정되는 사회, 중요한 가치들이 양적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 이런 사회 안에서 우리의 삶은 매우 황량한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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