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본분 망각·사회적 책임 외면·상업주의 조장 방송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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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광기어린 월드컵 편성을 즉각 중단하고,
이성의 영토로 돌아오라!



점입가경이다.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한국사회의 모든 미디어는 월드컵에 마비 증세를 보여 왔다. 지상파 3사는 평가전을 동시중계하며 시청권을 훼손하였고, 뉴스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미FTA, 평택,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들에 등을 돌렸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시민사회와 민중의 목소리는 방송이 목놓아 외치는 ‘대한민국’에 파묻혔다. 결국 우리나라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오늘, 방송은 더 이상 어떻게 할래야 할 수도 없는 괴기스런 편성으로 우리를 경악하게 하고 말았다.

오늘 새벽 12시부터 오늘 밤 12시까지 각 방송사별 편성의 원칙은 예외없이 ‘월드컵 전면도배’이다. KBS의 경우 1TV의 경우 24시간 가운데 14시간 40분을 월드컵 프로그램으로 편성하였다. KBS 2TV의 경우는 11시간 가량을 월드컵 프로그램으로 할애하고 있다. MBC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물론 18시간 30분으로 SBS보다 편성 비율이 그나마 적지만 아침 8시 30분 <MBC 모닝쇼 ‘최윤영의 오늘 아침’>을 시작으로 하여 오후 12시 50분부터는 월드컵 프로그램이 아닌 것이 없다. 오후 5시 15분부터 한국과 토고 경기가 있기 전까지 특별생방송을 편성하는 등, 월드컵 싹쓸이 편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SBS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오늘 새벽 12시부터 오늘 밤 12시까지 24시간으로 보면 월드컵 관련 편성은 무려 21시간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공영방송의 역할과 책임을 바닥에 내버린 채 과연 월드컵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 시청자들의 비판적 눈초리는 보이지 않은 채 돈과 축구공에 혈안이 된 방송사는 월드컵 이후 어찌 미디어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려 한다고 과연 떠벌릴 수 있을까? 과연 누가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도저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방송 3사의 광기어린 편성에 참혹함을 넘어 허무함을 느낀다. 방송이 제조하는 광풍 앞에 진지한 표정으로 언론의 책임, 방송의 공공성과 문화 다양성 확대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일이 서글프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오늘 죽었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2년 월드컵이 어떻게 사회를 마취시켜가는가를 경험한 바 있다. 언론이 사회적 수임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월드컵 싹쓸이 편성까지 서슴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상업적 이익이라는 자본의 검은 그림자가 공영방송을 시꺼멓게 덮고 있다. 엄청난 편성료를 지불하고, 천문학적인 광고수익을 챙기려는 언론의 수작에서 막대한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이 연상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모든 사회적 의제들을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이기적인 목소리로 치부하며, 오로지 대한민국만을 연호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언론이 기획하는 월드컵이다. ‘4강신화의 재현’ ‘필승’에 대한 언론의 광적인 집착은 자연스레 국가주의와 비이성적 집단주의에 가속 페달을 달아준다. 이러한 증후는 이미 4년 전부터 예고되었다.

거듭되는 개혁의 실패와 민주주의의 후퇴의 원인은 결코 정치권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상업주의에 팔아먹은 언론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지금 언론이 국가와 민족을 핑계 삼아 월드컵을 판돈으로 내걸고 한국사회를 거대한 투전판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또 거듭하려하는 언론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이여, 비이성적 월드컵 편성을 즉각 중단하고, 이성의 영토로 돌아오라!
방송이여, 광풍 제조를 중단하고, 월드컵 넘어 진실을 방송하라!



2006년 6월 13일
다산인권센터/문화연대/민중언론 참세상/ 인권운동사랑방/전쟁없는세상/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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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춫현 & 펌~ 이요.

balmas 2006-06-1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아워요. ㅋㅋ
 

사회화와노동
2006.06.12 |314호

한미 FTA에 민중의 미래는 없다!
한미FTA 1차 본협상의 의미와 우리의 과제


생산과 고용이 아닌 금융적 팽창을 통해 자본의 위기를 지연시켜가는 세계 경제에 편입하여 소수의 재벌만 살아남겠다는 지배세력의 전략에 결코 노동자 민중의 이익은 없다. 그를 위하여 “투자자”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반면 민중의 모든 권리를 초민족 금융자본의 이윤활동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취급하고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 한미 FTA의 본질이다. ‘국가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화’하는 동안, IMF의 처방에 따라 한국 사회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가중되었다. 농업·농촌은 붕괴되고, 빈곤은 확대되었으며, 노동권 · 여성권 · 건강권 · 교육권 등 민중의 권리는 파괴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한 국가의 탄압과 폭력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는 동안 고삐 풀린 초국적 투기자본은 막대한 이득을 챙겨갔고,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확대해갔다. 그러므로 사회운동의 시급한 과제는 지배세력이 그동안 ‘한국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목 놓아 외쳤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이렇듯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파괴적인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 전략에 적극 동조해가며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한미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한 재벌 중심의 ‘생존’ 전략에 편승해 그 혜택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이와 전혀 다른 노동자 민중의 대안을 형성하는 운동을 개시하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투쟁은 그 출발점이다.[자세히]


회원 토론회, “지방선거 이후 정세와 사회운동의 전망”

- 일시: 6월 20일(화), 19:00,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 토론 주제: 지방선거 결과 분석, 향후 정치지형 전망, 민주노동당 선거 대응 평가, 향후 사회운동의 대응 등

- 사회: 류미경 정책편집국장

- 패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정종권, 임필수 집행위원장, 인천지부 등 3-4인 [자세히]




[카르케디] 비교우위, 자본축적, 사회주의

G. Carchedi, "Comparative advantages, capital accumulation and socialism", Economy and Society, vol. 15, no. 4, pp.427-44, November 1986을 요약, 번역한 글입니다. [월간 사회운동] 6월호


사회진보연대
http://www.pssp.org | pssp@jinbo.net
(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02-778-4001~2 | FAX:02-778-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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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4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혜적, 선순환적 관계의 광장문화는 가능한가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4) - 월드컵과 광장문화

최준영(문화연대) chobari@gmail.com
‘대한민국’의 두 번째 월드컵이다. 2002년의 첫 번째 월드컵을 약간의 광기를 동반한 ‘흥분의 월드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2006년의 두 번째 월드컵은 아마도 ‘비장한 월드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블로거의 말처럼 “가미가제 출정식을 연상시키는” 붉은 응원리본과 락버전으로 되살아난 ‘애국가’, 그리고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광장을 찾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응원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 이런 광경을 보며 월드컵과 거리응원에 대한 흥분과 기쁨보다도 오히려 “대한민국 대표팀이 16강 아니 결승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범국민적 국가주의․애국주의에 기반한 ‘비장함’을 더 느낀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월드컵 반(反)광장문화?

한편, 2006년 월드컵 응원문화는 2002년과 구별되는 또 다른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광장문화의 부재’다. 2002년의 거리응원을 ‘광장문화의 실현’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에 대해서는 이따가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에 평가전이 열리는 시청 앞 광장으로 가보자.

2002년 거리응원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겨난 시청 앞 광장. 앉아서 축구보기 딱 좋을 것 같던 잔디광장은 질서 유지를 위해 펜스가 설치되어 구획되었고, 음주와 질서문란 등을 막는다는 이유로 배치된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은 정해진 곳으로만 다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을 보며, 정해진 규칙에 맞게 응원하는 모습에서 이제는 더 이상 거리응원의 에너지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광장문화가 부재하다”는 말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분할과 그 속에서의 자율성의 침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보다 근본적으로, 광장에서의 소통이 일방향으로 또한 위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들은 국가-권력, 자본-권력, 미디어-권력에 의해 점령당한 광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비록 현란한 스펙타클을 소비하며 즐거워할 수도 있겠지만, 주어진 무대와 화면에 집중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객체’로 전락하고, 이로 인해 몸은 광장에 있지만 실제로는 고립, 소외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문제인 것은, 4천만 모두가 ‘붉은악마’가 되고, 붉은 티셔츠를 입어야만 광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정체성으로 인해, 즉 ‘내부성’과 ‘순수성’에 기반한 정체성이 형성되면서 다른 집단과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월드컵 반(反)광장문화’가 만들어진다는데 있다.

광장open space, 열린 공간

‘광장’이란 말 그대로 ‘open space’ 즉 ‘열린 공간’을 말한다. 특히 ‘광장문화’를 생각함에 있어서는, 우리는 ‘광장’을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인 소통과 교류가 발생하는 곳, 다시 말해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성’이 발현되는 곳(공간, 지점, 계기)으로 ‘광장’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는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광장이 없었다”라는 말은 이제 기각시킬 수 있다. 어렸을 적 동네 꼬마들이 뛰놀던 공터, 시장 한 켠 약장수가 약을 팔며 차력을 하던 시장터가 바로 ‘광장’이고, 또 동네 아주머니들이 일상을 나누던 평상이 바로 ‘광장’이 되는 것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을 ‘광장문화’라고 일컬은 것은, 바로 열린 공간으로서의 ‘광장’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월드컵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교류, 선순환적인 관계성이 복원-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의 경험을 통해 많은 사회문화 연구자들이 한국 사회 변화의 동력을 읽어내면서, 87년 이후 상실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재현을 꿈꾼 것에는 이런 배경이 존재했다.

이는 한편으로 구체적인 공간에 대한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공간이 사회마다 다르며 또 이질적”이라며 공간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고 했던 뒤르켐의 말처럼, 한국 사회 토건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충실히 재현하며 도시민의 삶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을 반영하는 형태로 조직하고 있는 도시공간을 재배치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계획이 제출되었다.

권력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 세종로 일대에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광장을 조성하자는 계획은, 2002년 당시 확산되었던 민주적인 소통과 교류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공간-문화 전략으로 자본주의 하 도시공간에서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찾기 위한 기획이었다.

광장문화를 소비하는 3주체

하지만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출발한 문화적, 미학적 상상력은, 결국 정치-권력, 자본-권력, 미디어-권력이라는 광장문화를 소비하는 3주체의 프리즘에 굴절되고 말았다. 효순, 미선이의 죽음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로 다시 한 번 광장문화가 소생하고, 이후 대선과 파병, 탄핵 등 주요 정치적 계기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광장)로 모였지만 결국에는 정치, 자본, 미디어의 힘 앞에 민주적 소통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시청 앞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잔디광장과 촛불의 힘으로 당선되었다는 노무현 정권의 실망스런 모습뿐”이라는 자조섞인 한숨이 결코 과장은 아닌 듯하다.

시청 앞 광장을 잔디로 만들어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잔디를 보호합시다!”), 광장 사용 ‘허가제’를 도입하여 진보진영의 집회를 원천봉쇄한 정치-권력. 2006년 월드컵 자본-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SKT가 150여억 원으로 월드컵 기간 내내 광장 사용권을 독점한 채, 경비용역업체까지 동원하여 광장을 구획, 관리하며 거리응원을 쇼케이스로 만들고 있는 상황. 그리고 3․1절을 ‘축구절’로 만들며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월드컵 보도로 막아버린 미디어-권력. 이들 3주체가 장악한 광장문화로 인해, 오히려 월드컵 거리응원과 광장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시민/다중/인민의 권력’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광장, 2006년 월드컵과 광장문화 재현의 가능성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소실되었던 광장문화를 복원․생성할 수는 없을까? 2006년, ‘open space’에 걸맞는 ‘open mind’의 재현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치, 자본, 미디어 등 월드컵을 장악한 반(反)광장문화-권력에 맞선 호혜적이고 선순환적인 광장문화의 복원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다분히 상상불가능한 기획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3패로 예선탈락했으면 좋겠다”는 류의 부정과 무시의 전략으로는, 이주노동자들마저도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폭주와 국가주의․애국주의의 문화적 영향력과 위험을 감당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문화’에 초점을 맞춘 구체적인 행동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광장문화’의 민주주의적 전유의 가능성이 호혜적이고 선순환적인 관계성의 복원에 있다고 할 때, 월드컵이라는 ‘광장’에서 닫히지 않은, 배타적이지 않은, 타인과의 호혜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건과 계기, 소통을 만들어야 한다.

월드컵에 대한 탈근대적, 탈자본주의적 문제제기와 함께 한미FTA와 평택평화항쟁, 비정규직과 사회양극화, 이주노동자, 이라크 파병문제 등이 소통될 수 있는 자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찾을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광장의 복원, 즉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복원(잔디광장 리모델링, 세종로 문화광장화 등)과 민주적 소통을 위한 광장 운영의 복원, 그리고 자본에 의해 장악된 광장의 시민적 재전유에 대한 실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FTA반대 골세레머니’를 기대할 수 없다면, 변화의 가능성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최준영 님은 문화연대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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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13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할까?"

마늘빵 2006-06-13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고 가져갈게요.

balmas 2006-06-1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셈~ ^^
 

ㅎㅎㅎ 재미있겠네요 ...

"셋이 읽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밥이야기 열아홉편"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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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무크지…19인분 밥상 그득 차렸네
한겨레 황예랑 기자
» BOB[밥]-코믹무크1
거북이북스 펴냄. 석정현 외 19인 지음. 8800원
잠깐독서

‘밥’이라는 소재로, 기발한 상상력을 양념삼아 19편의 이야기를 비벼낸 만화 무크지가 나왔다. “시들어가는 만화시장에 힘을 불어넣겠다”며 청강문화산업대와 거북이북스가 손잡고 내놓은 코믹무크지 1호 이다. 잡지와 단행본의 장점만을 살려, ‘하나의 키워드’를 주제로 한 새로운 매체를 내놨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실험’이라 할만하다.

문흥미, 박무직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부터 만화과 출신의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밥상’이 차려진다. ‘밥’의 정의는 이야기마다 각양각색. 결혼 못한 아들·딸의 안부가 궁금할 때 핑계삼아 ‘밥은 먹고 다니냐?’ ‘밥이 보약이야’라고 전화하는 부모님에게 ‘밥’은 소통의 한 방편이다(박순구 ‘BOB’). 좋아하는 여자의 ‘뭐 먹을래?’라는 한마디에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듯이 먹어 뚱보가 된 남자에게 ‘밥’은 감춰진 성욕을 뜻하고(석정현 ‘뭐 먹을래?’),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강아지에게 ‘밥’은 주인‘여자’를 향한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다(문흥미 ‘맘마’). 밥(Bob)이라는 외국인을 등장시키거나(삼박자 ‘Bob 전설’), 밥과 총각김치 사이의 동성애를 그리는(박무직 ‘숟가락님이 보고 계셔’) 등의 상상력은 애교가 넘쳐난다.

‘가벼운’ 상상의 나래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방 70㎏을 흡입한 징그러운 유충을 ‘콜레스테롤도 전혀 없는 건강식’이랍시고 비싼 돈을 내고 다시 먹는 여자 이야기(정철 ‘나나니 다이어트 클리닉’)는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을 비꼬고, 비닐하우스에 혼자 살던 초등학생이 자기가 밥 먹여주던 도사견에게 물려 죽은 실제사건을 재구성한 이야기(최호철 ‘철망바닥’)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만화시장에 던져진 이들의 고군분투 ‘게릴라전’은 ‘에로틱’이라는 소재로 9월에 펴낼 무크지 2호에서 이어질 계획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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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1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는 눌렀는데 언제 사게 될지는......=3=3=3

balmas 2006-06-1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이주의 리뷰 뽑히시면 하나 사세요. ^^;;
 

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언론에서 이 문제는 거의 조명되지 않는 게 놀랍다.

너무 큰 문제라서, 어차피 뾰족한 해결책은 없어서 그런가?

해결책이 없긴 왜 없어, 모른 체하니까 안보이는 거지 ...

하긴 밑에 댓글 보니 aba007 같은 사람도 있기는 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30068.html

[필진] ‘수학강국’ 대한민국의 진실

필진네트워크
[관련기사]
며칠전 미국교육실태보고서는 한국의 중2학생들이 세계 45개국중 수학수준이 2등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98년에 비해 8점이나 향상되어 기초학문이 취약한 한국이 수학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이런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나로서는 다른 언론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 둘러보았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니면 모두 베껴쓰기로 작정한 듯이 ‘수학강국’ 이라는 제목부터 논조까지 모두 똑같은 글들로 도색 되어 있었다. 한겨레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이런 기사의 경우 사실적인 정보에 대한 자료를 제공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자료에 대한 아무런 분석이나 비평도 없이 그저 수학강국이 되고 있다는 식의 보도는 눈가리고 아웅하기이다.

나는 단언컨대 현재와 같은 입시 교육제도하에서는 결코 한국이 수학강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나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아주 똑똑하고 국제대회에서 수상할 만큼의 수학적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은 그것도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갖가지 사교육과 영재교육, 선행학습에 의해 연마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중국에서도 이런 사교육이 열풍이라고는 하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극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하겠다. 이렇게 일찍부터 학교에서, 학습지로, 학원에서, 과외로 다져진 수학실력이 상위가 아니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일찍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뭐 잘 못이냐고 항변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런 선행학습과 무분별한 사교육이 오히려 그나마 있는 학생들의 수학적 재능을 마비시키고 자기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아둔한 계산기계로 만들어버리는데 진짜 문제가 있다. 초등학생들의 때아닌 19단 외우기 열풍과 같은 비정상적인 모습이 과연 수학강국을 만드는 요인이 되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여전히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은 결국 입시에서의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진정으로 수학을 즐기거나 본인들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수학은 여전히 공식과 정해진 틀에 끼워맞추어 외우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영어는 그래도 나중에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학은 대학갈때까지만 쇠빠지게 열심히해서 점수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대부분 아닌가.

그리고 그나마 그렇게 수학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개발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은 죄다 법대, 의대로 진학하지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고리타분한 분야로 진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제대회에서 상위의 성적을 받았다고 수학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있는데 무슨 수학강국인가. 수학뿐만 아니라 이미 인문사회학을 비롯한 기초과학분야에서 한국의 대학은 지극히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 대학역시나 취업이나 돈벌이를 위한 과정으로 전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경향은 개인적 처세술에 불과하지 그 나라의 학문적 성과를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휴대폰을 가장 많이 생산한다고, 반도체를 가장 많이 생산한다고, 인터넷을 많이 사용한다고 과학강국은 아니다. 인류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원천이요 인간의 사고확장의 커다른 힘이었던 수학 그 본연의 가치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수학강국이라고 치장하기전에 먼저 할 일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천왕
우보천리
http://wnetwork.hani.co.kr/jjugl94/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2006/06/09 11:54:24 신고하기

수학과 학생입니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는 암기에 강하죠. 수학 조차 공식화해서 암기하려고만 하니까요.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과를 갔는데 많이 힘드네요. 지금까지 수학을 너무 암기 위주로 공부해왔기 때문에 수학적 사고가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학문제를 잘푸는게 수학을 잘하는게 아니라 얼마나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수학적으로 이해하는가가 수학강대국을 판단하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토마 논객페이지 | 필진 글방
2006/06/07 18:52:58 신고하기

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원고료 받을 려고 쓰는지 이해가 안가. 있는 현상대로 발표하고 보도한 것 뿐인데. 그럼 열심히 잠안자고 공부해서 1등했으면 잠 않잤으니까 다시 시험봐야 하는가? 대기업에 1등 들어간 사람도 잠않잤으니까 반칙인가? 의사 사법고시 출신도 달달달 외었으니까 인정할 수 없는가? 필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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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15:18:44 신고하기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에 비해 수학강국인 까닭은 외국에 나와보면 밝혀집니다. 그 이유는 단하나,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의 진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앞서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고등학교에 배우는 걸 우리나라는 중학교에서 배우는 식입니다. 여기에 사교육이 더해지면 진도는 더 빨라지는 셈이지요. 수학에서 문제풀이는 도구가 많아지면 당연히 더 쉬워지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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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14:24:45 신고하기

지금 중학교 교실 수학시간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거나 딴 짓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수학뿐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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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때 수학이 최고 싫었습니다. 늘 내신에서 아무리 해도 수학은 70점 대 였고 모의고사도 80점 만점에 50점대를 넘나들고 10월 즈음엔 30점 대도 맞았죠. 그래도 의대 가고 싶다고 줄창 이과를 고집했습니다만...결국 재수로 직행하고 말았죠.(오히려 수학은 괜찮게 나왔는데 수학에 집중하느라 다른 과목이 펑크가 나서..)

balmas 2006-06-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데도 이과(아니 의대 ... ^^;;)를 고집한, 의지의 한국인이군요. ㅎㅎ

건우와 연우 2006-06-1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웠다, 고왔다, 죽이고 싶었다가 포기했지요...^^
정말 수학, 고민입니다.

balmas 2006-06-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건우와 연우님 ... ^^;;

2006-06-12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6-1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백점만점 모의고사에 순수한 찍기로 팔점도 맞아본 저로서는...ㅎㅎ
중간 기말고사때 가비얍게 찍고 일등으로 나가다 문제 고치러 들어오시는 수학샘과 마주치곤 했던 암울한 학창시절이 떠오르네요. 뭐, 자랑은 아니고요...^^;;

balmas 2006-06-1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러셨군요. 파란만장하네요. ㅋ
나어릴때님/ ㅋㅋㅋ 수학 선생님이 수학 천재인 줄 착각하셨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