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서울아트시네마 소식: 안국동에서 하는 마지막 상영

The Last Picture Show
- 서울아트시네마 특별프로그램

2005. 4. 1. Fri. - 4. 3. Sun.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처음 개관한 이래로 지난 3년 동안 60여회의 영화제를 통해 300여명의 감독, 800여편의 영화사의 걸작들을 상영한 바 있습니다. 2005년 3월을 마지막으로 서울아트시네마는 안국동에서의 상영을 마감하며 4월부터는 (구)허리우드 극장으로 이전합니다.
이전을 앞두고 서울아트시네마는 4월 1일부터 4월 3일까지 3일간, 3년 동안의 안국동 시절을 마감하는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합니다. 이번 특별프로그램에서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 상영작 중 파스빈더의 대표작 <불안은 영혼을 장식한다>와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추가상영하며, 파스빈더가 죽음과 더불어 발표한 그의 유작 <크렐>이 특별상영됩니다. 4월 1일에는 <크렐> 상영에 이어 이번 파스빈더 회고전을 결산하는 토론이 또한 진행됩니다. 아울러 폐관되는 극장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을 다룬 차이밍량의 걸작 <안녕, 용문객잔>이 상영됩니다.

▣ 1회 관람료 일반 | 6,000원 , 회원 | 4,000원
인터넷 예매는 맥스무비(www.maxmovie.com)와 무비OK(www.movieok.co.kr) 등 에서 가능합니다.
현장 예매는 행사 시작일인 4월 1일 12시 30분부터 시작합니다.
※ 4월 1일 금요일 오후 6시에는 파스빈더의 유작 <크렐> 상영이 끝난 후, 파스빈더 회고전을 마감하며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래머인 김성욱씨의 사회로 파스빈더 연구자 배상준씨가 파스빈더 영화세계의 다양한 면모와 현재적 의의를 되짚어보는 토론 시간을 마련합니다. 토론에는 선착순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 문의:
서울아트시네마 02-720-9782, 02-745-3316 www.cinematheque.seoul.kr

▣ 상영작 소개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 Angst essen Seele auf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973 91min color 칸느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4.2.sat.12:00
60세의 독일인 여성과 젊은 모로코인 이주노동자의 사랑을 통해 독일 사회에 잔재한 파시즘과 경제성장의 그늘 뒤에 숨은 위선과 소외를 극명하게 드러낸 파스빈더 중기의 걸작.

▶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The Marriage of Maria Braun | Die Ehe der Maria Braun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978 120min color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German Film Awards 독일연방공화국40주년특별영화상 및 5개 부문 수상 4.1.fri.13:30
1940-50년대를 배경으로 부침을 거듭하는 한 여자의 일생을 통해 독일의 현대사를 재구성한 작품. 파스빈더의 천재적인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 영화로, 대중적이면서도 비판적이고 사색적인 걸작.

▶ 크렐 Querelle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982 108min color
4.1.fri.16:00, 4.2.sat.16:00, 4.2.sat.20:00
장 주네의 소설 <크렐 드 브레스트>를 영화화한 파스빈더의 유작. 브레스트 항에 도착한 젊은 선원 크렐은 노노가 운영하는 매음굴에서 노노의 아내 리지안의 정부인 형 로베르와 만난다. 얼마 후 그는 말싸움 끝에 밀수꾼 빅을 죽이고 마는데, 로베르와 똑같이 생긴 크렐의 동료 질 또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게 된다. 크렐과 질은 도피생활 중 점차 우정을 넘어 서로 강한 애정을 느끼게 되지만, 이들 앞에는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동성애, 폭력, 살인, 배신, 죽음에 대한 동경 등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원작의 내용을 인위적이고 연극적인 세트와 종말을 암시하는 듯한 붉고 현란한 색채 속에 옮겨온 작품.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과 존재의 이중성, 정체성에 대한 탐구 등 파스빈더 특유의 주제가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영화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알리 역을 맡았으며 1982년 감옥에서 자살한 파스빈더의 전 연인 엘 헤디 벤 살렘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파스빈더 또한 이 영화의 편집 도중 약물과용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짧고 격렬했던 생을 마감했다.

▶ 안녕, 용문객잔 Goodbye Dragon-Inn 차이밍량 2003 82min color
4.1.fri.20:00,, 4.2.sat.14:00, 4.2.sat.18:00, 4.3.sun.18:30
차이밍량의 2001년작 <거기는 지금 몇 시니?>의 배경이었던 복화극장의 마지막 상영에 대한 이야기. 낡고 오래된 복화극장은 내일이면 문을 닫을 예정이며, 그 마지막 상영작으로 호금전 감독의 <용문객잔>을 상영하고 있다.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극장에 모인 관객 중에는 동성애 파트너를 찾는 젊은 일본 남자, 야한 옷차림으로 연신 피스타치오를 까먹는 젊은 여자, 그리고 손자의 손을 잡고 온 노인 마오티엔이 있다. <용문객잔>은 이 노인의 배우 데뷔작이었지만, 극장의 다른 이들은 그 사정을 알 리 없다. 사람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이 객석과 복도, 화장실을 떠도는 가운데, 그 동안 이 극장을 지켜온 두 사람, 다리를 저는 여자 매표원과 젊은 영사기사 역시 마지막까지 서로를 스쳐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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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회 인권영화제 정보

 


올해에도 인권의 감수성을 키우는 영사기는 어김없이 돌아갑니다. 2005년 제9회 인권영화제가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주제로 오는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열립니다.

어린이·청소년은 가족, 학교,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당하며 자기 결정권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올해 인권영화제에서는 어른들의 프리즘이 만들어 낸 시선에 묻혀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으레 배제되어 온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에 빛을 비추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인권영화제에서는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문제를 좀더 폭넓고 수평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전제작지원작을 기획 중입니다.

 

먼저 '청소녀' 레즈비언들에게 가해지는 학내의 구조적인 억압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 제작 되고 있습니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 학내에서 알려질 때 그녀들이 겪게 되는 차별을 보여주면서, 청소년 집단 내  엄연히 존재하는 성적 소수자 문제를 반추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이 작품의 제작에는 여성영상집단 '움'과 레즈비언 인권운동단체인 '끼리끼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지구적으로 진행 중인 무장한 세계화의 영향력이 제3세계 아동에 뻗치고 있는 영향력에 대하여 고찰해 볼 수 있는 작품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먼지, 사북을 묻다>로 올해의 인권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미영 감독은 현재 네팔에서 현지 아동들과 함께 아동노동인권의 열악한 환경을 조명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상을 표현 수단 삼아 억눌려 있던 에너지를 분출하고자 시도하는 청소년들의 움직임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권영화제에서는 사전제작지원작의 하나로 활동하는 청소년들에게 영상으로 스스로의 사고를 적극 개진하려는 청소년들의 주체적 행동을 독려할 계획입니다.

 

총3편에 이르는 사전제작지원작들은 5월 중순에 제작이 완료되어 인권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국내 프로그램 선정 및 발표

 

제9회 인권영화제 국내 프로그램 출품 모집이 마감되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는 총 50 여편에 이르는 작품이 접수되었습니다. 상영확정작은 3월 31일 인권영화제 홈페이지 등으로 공지될 예정입니다.

 

해외 프로그램 일부 확정

 

지금 인권영화제에서는 해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영이 확정된 작품은 <The Yes men>, <Outfoxed: Rupert Murdoch's war on jouranlism>, <Original Child Bomb>, <Surplus>, <Battleground>, <Keep not silent> 등입니다.

 

장애인 접근권 확대를 위한 발걸음

 

9회 인권영화제에서는 작년에 이어 장애인들이 인권영화제를 볼 수 있도록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과  대사 더빙이 곁들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2편을 상영하고, 점자 자료집과 시각 장애인용 홈페이지 등을 구축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하여 감독과의 대화 자리 등에수화 통역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지체 장애인들이 극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미흡하겠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해외 프로그램 리뷰 #1 <Battleground>

Battleground : 21 Days on the Empire’s Edge/ Stephen Marshall


_VIDEO IMAGE_<Battleground>는 이라크 시민들의 목소리에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의 목소리까지, 2003년 이라크의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사담 후세인 반대 투쟁을 벌이며 게릴라로 활동하다가 13년간이나 망명해야했던 게릴라 Frank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돌아온 그가 보게 되는 것은 물과 전기 없이 살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과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상에 대한 혼란스러움이다. 이라크 사람들의 목소리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들의 전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다. 젊은 군인은 이 전쟁을 “군대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또 다른 군인은 미국의 개입이 중동 지역의 장기적인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매일 일어나 일을 하러 갈 때 나는 영화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또 어떤 군인은 이 전쟁의 초현실적인 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3주 동안 촬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이라크 사람들의 절망적인 호소와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들의 의견을 렌즈에 담아내면서, 이라크 점령의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놓는다. 이라크 사람들과 ‘미국에서 온 해방주의자’들 사이의 단절, 사담 후세인 아래서 고통 받았고, 이제는 미국의 점령 하에 계속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초상은 힘있는 편집을 통해 흔들리는 불빛처럼 불안하기만 한 이라크의 상황을 보여준다.

 

<The Yes men>  

미국인 조커인 마이크와 앤디는 WTO를 비판적으로 규정한 웹사이트를 만든 것을 계기로 WTO 관계자로 오인되어 각종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언론에 출현하게 된다. 기존의 제도권 경제 논리가 횡행하는 곳에 침투하여 WTO를 위시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자본주의에 대한 희화화를 일삼는 그들의 언행은 매 상황마다 우스꽝스러움을 연출하고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Surplus>
풍요와 빈곤, 잉여와 궁핍이 뒤섞인 소비 사회에 대한 비판을 고도의 상징을 동원, 현란한 비주얼로 표현하고 있다.   

<Original child bomb>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현재적 시점에서 고찰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그칠 줄 모르는 핵무기 확장의 움직임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기억을 현재화하기 위하여 사용된 감각적 이미지들이 돋보인다.

 

<Outfoxed:Rupert Murdoch's war on journalism>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거대 미디어 기업 폭스사의 우파적 성향을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 그래픽 효과 등을 이용하여 희화화 시키고 있다. 사회의 신경망이라 불리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새삼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Keep not silent>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물론, 종교적 차원의 가공할만한 박해를 감내해야 하는 이스라엘 레즈비언들의 심정을 섬세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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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3-2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 상영일정도 혹 나왔을까요?
집, 사무실, 학원만 왔다갔다 하면 정보를 놓치는경우가 넘 많아요. ㅠ.ㅠ

balmas 2005-03-2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나온 것 같아요.
3월 31일날 상영작이 최종 확정된다니까, 상영일정은 아마 4월 중순쯤 나오지 않을까요??

로드무비 2005-03-2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이라도......
 

 

MANN에게


방명록에 댓글로 답을 하기는 좀 길 것 같아서 페이퍼로 따로 정리했어.


그런데 과잉결정에 대해서는 내가 [라캉과 알튀세르: '또는' 알튀세르의 유령들 I]({라캉의 재탄생}에 수록)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좀더 자세한 내용은 그 글을 참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서는 그냥 간단하게 몇 가지만 지적할게.


과잉결정이라는 단어는 원래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같은 책에서 사용한 Uberdeterminierung이라는 개념을 불어로 surdetermination이라고 옮긴 데서 유래한 표현이야. 프로이트의 용법에서 이 개념이 의미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꿈의 내용은 복합적인 무의식적인 요인들(곧 결정들)의 결과라는 것이지.  “꿈-내용의 각 요소는 다중결정된 것으로, 꿈-사고에서 여러번 대표된(vertreten) 것으로 드러난다.”(Freud, {꿈의 해석}, 열린책들, 1997, 289쪽(번역은 수정))


가령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꿈의 사례를 들고 있지.


1) 겉으로 표현된 꿈의 내용


 젊지만 결혼한지는 꽤 오래된 한 부인이 꿈을 꾸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극장에 앉아 있었어요. 관람석의 한 편은 완전히 비어 있었어요. 남편이 내게 말하기를 엘리제 L과 그녀의 약혼자도 함께 오고 싶어했지만, 1플로린 50크로이체로는 나쁜 좌석표 3장만을 살 수 있을 뿐이었고 그들은 그 좌석표를 살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건 그리 불행한 일은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 부인의 꿈은 있는 그대로 본다면 특이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지만, 이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인 꿈의 작업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는 거야.


2) 잠재적 꿈사고 분석


남편이 부인에게 그녀와 동갑내기인 루이제 L이 약혼을 했다는 말을 했음. 1주일 전 부인이 꼭 보고싶었던 연극공연을 보기 위해 예매수수료를 물고 미리 표를 예매했는데, 공연 당일날 <한쪽 편 좌석이 완전히 비어 있어서> 표를 예매할 필요가 없었으며, 남편은 그녀의 조바심을 비웃어댐. 꿈을 꾸기 전날 그녀의 시누이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150플로린을 선물로 받은 뒤, 그 즉시 보석상으로 달려가 보석 하나를 사기 위해 이 돈을 모두 써버림. 3이라는 숫자, 부인이 엘리제 L보다 3개월 생일이 빠르나, 이것이 3에 관한 내용의 전부인지는 불확실.


  표를 <너무 일찍>, <성급하게> 예매해서 추가로 돈을 낭비했다든가, 시누이가 <늦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서둘러서 보석을 사는 데 거액을 낭비했다는 등의 표현은 자신과 동갑내기인 여자친구가 이제 아주 괜찮은 남자와 결혼하는데 자신은 너무 서둘러 결혼했다는 데 대한 부인의 후회를 나타냄. “그렇게 결혼을 서둘렀던 것은 아무래도 바보같은 짓이었어요. 엘리제를 보니까 좀더 늦게 결혼을 해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플로린 50크로이체는 150플로린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그만한 돈이라면 그것보다 백배나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을 텐데.>


3) 꿈작업


응축: 1플로린 50크로이체와 나쁜 좌석표 3장의 결합 → 언뜻 보기에 무의미해 보이는 이 결합은 사실은, 거액을 낭비한 시누이에 대한 비난, 동갑내기 친구의 행복한 결혼, 남편을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는 부인의 생각 등이 응축되어 결혼을 일찍한 것에 대한 부인의 후회감을 표현하고 있음. 


전위: 잠재적 꿈사고에 들어있는 <성급함>의 요소가 외현적 꿈내용에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음.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Uberdeterminierung은 우리 의식의 기저에서 이루어지는 무의식적인 꿈사고가 의식의 표층으로 그대로 나타나지 않고, 응축이나 전위 또는 이차적 가공 같은 복합적인 작용, 결정에 따라 변형되고 축약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키지. 요컨대, 겉으로 드러난 꿈의 내용은 여러 가지 다중적인 요인이나 결정(이게 원래의 Uberdeterminierung의 의미지)의 결과라는 거야.


따라서 프로이트의 원래 생각에 좀더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다중결정" 같은 말이 좀더 적절한 번역어라고 할 수 있지. (이 말은 "중층결정"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별로 좋은 번역은 아니지. "중층"이란 층들이 쌓여 있다는 말인데, 이 말, 또는 이런 비유로는 인과관계가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이지)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 개념을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고, 중심적인 개념으로 간주하지도 않았지. 알튀세르의 독창성은 이 개념을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고유성을 해명하기 위해 활용했다는 데 있고, 그런 과정에서 이 개념에 프로이트의 원래 용법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개념적 차원을 추가했다는 점, 곧 실제로는 새로운 개념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있지.


1) 과잉결정 개념에서 '반영'의 의미가 어떤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건 MANN이 말한 것처럼 '당시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이 모순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뜻하지.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과잉결정에 담겨 있는 알튀세르의 생각은 이런 거야. 가령 당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럽의 가장 후진적인 나라인 러시아에서 1917년 혁명이 일어났고, 또 예상치 못하게도 1949년 중국에서, 1958년 쿠바 같은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지. 이런 혁명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예외적이고 변칙적인 현상이야. 하지만 알튀세르 생각은 이런 혁명들을 예외나 변칙으로 보는 것은 모순에 대한 좀 단순한 생각, 또는 관념론적 생각 때문이라는 거야. 다시 말해 모순을 자본과 임노동 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만 사고하니까,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가장 발전한 나라에서 혁명이 발생한다(발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그런데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렇게 모순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역사적 조건을 경험적인 현상이나 우연적인 변칙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또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이외의 다른 사회적 갈등이나 투쟁을 이 모순의 한 가지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는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토대-상부구조 관계).

 

과잉결정 개념은 이처럼 고전 마르크스주의(또는 경제주의적 관점)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20세기 사회주의 혁명들의 발생을 이론적으로, 곧 역사유물론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에서 나온 개념이야. 따라서 과잉결정 개념의 이론적 핵심은 우리가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 곧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나 자본과 임노동의 모순은 항상 이미 다른 사회적 모순들 또는 결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지. 그래서 예컨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한 것을 설명하려면, 자본과 임노동의 모순 이외에도 봉건적 착취체제의 모순들이나 식민지적 착취와 전쟁의 모순들, 또는사람들이 상부구조에(따라서 피설명항으로) 포함시키는 여러 요인들(러시아 지배계급 내의 갈등과 분열), 볼셰비키당의 정치적 능력 등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는 거야.

 

이런 요인들, 결정들이 응축되었을 때, 곧 "과잉결정되었을" 때,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알튀세르는 이렇게 자본과 임노동의 모순이 다른 사회적 모순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우연적이거나 경험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이라고 보는 것이고,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고유성은 바로 이를 개념화한다는 데 있다는 거지. 설명이 좀 되었나?

2)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 나오는 "과잉결정" 개념의 용법은 마르크스주의적 모순 개념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좀 독립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 이 경우에는 "다원결정"이나 "다중결정"의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아. 알튀세르에서 과잉결정 개념의 의미나 용법은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니고, 초기에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3) 'structure à dominante'를 "지배하는 구조"라고 번역한 건 잘못이지. 불어에서 명사 다음에 나오는 " à " 다음에 다시 명사나 형용사가 올 경우에는 "...을 가진"이나 "... 으로 된"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지. 그래서 이 경우에는 "지배소를 가진 구조"나 "지배소가 있는 구조"라고 번역하는 게 제일 정확한 번역이지. 이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구조는 헤겔식의 "표현적 구조", 또는 "표현적 총체성'과 달리, 요소들 사이의 불균등한 관계를 담고 있는, 곧 지배적 요소와 피지배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복합적 구조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지.

 

영어로는 이걸 "structure in dominance"라고 번역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번역을 좇아서 "지배내 구조"라고 우리말로 옮기기도 해. 하지만 이것 역시 좀 불명확하고 어색한 번역이지.

참고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의 공통점을 지적하면서 "science à  topique"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토픽을 가진 과학" 또는 "토픽이 있는 과학"이라고 옮기는 게 정확한 번역이지.


4) "articulation"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표현하지.

(4-1)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사용한 "Gliederung"이라는 독일어의 번역으로 이 단어를 쓰는데, 독일어에서 Glied는 말 그대로 하면 "관절"이나 "사지" 또는 "마디" 등을 의미하지. 마찬가지로 articulation도 관절이나 사지, 마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들의 연결을 뜻하기도 하지. 요점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나 심급들(독일어로는 "Instanz"라고 하는데, 프로이트도 여러 번 사용하고 있지. 원래는 법률적 의미를 갖고 있어서 이렇게 "심급"이라고 번역하는데, 사실은 의미가 훨씬 더 복잡해서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말이야)은 각기 자율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체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걸 뜻하지. 그러니까 이것 역시 "지배소를 가진 구조"나 "과잉결정" 개념과 연관되어 있는 말이지.

이런 용법을 염두에 두면 이 단어는 "접합'이라고 번역하는 게 무난할 것 같아. 간혹 "절합"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4-2) 좀더 일반적인 용법에 따른다면, 이 단어는 음절과 음절 사이의 연결, 또는 그 연결을 분명히 발음하는 걸 뜻하지. 또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 뜻하기도 해. 그래서 가령 "articulate your thought more explicitly"라고 하면, "네 생각을 좀더 분명히 말해봐/표현해봐" 정도의 의미가 되지.

이런 용법을 염두에 두면 "articulation"은 맥락에 따라 "분절"로 번역될 수도 있고 "표현"으로 번역될 수도 있지.

 

간단하게 쓴다는 게 너무 길어졌는데, 좀 도움이 되었나 모르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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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2005-03-28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너무 감사합니다 ㅠ.ㅜ 엄청 도움이 되어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알튀세르의 글들이랑 '라깡과 알튀세르' 다시 찬찬히 읽어볼게요 ^^

balmas 2005-03-2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철학책은 좀 꼼꼼히 읽어야지 ... ^^

로드무비 2005-03-2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세요, 발마스님.^^

싸이런스 2005-03-2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앞으로는 발마 스님이 설명해 주시는 철학이야기는 꼭 읽어봐야 겠네요. 제가 철학 공부를 집어치게 되었던 많은 이유 가운데, 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난해한 용어들과 이전에 공부했던 개념들과 연결 고리 못 찾음으로 인해 (도대체 저런걸 내가 왜 알아야 하나..하는 유의미성에 대한 회의부터 출발해서..) 시작됐던 방황...나 자신의 해체...이런것이 오늘 또 새롭게 만나는 지점을 열어주네요. 내 의식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를 알아보는 방법중에...약 1-2분 가량을 주고, 펜을 쉬지 않고 굴려, 무조건 A4 용지를 가득 메우게 하는게 있어요. 이 방법은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물이 반쯤 차 있는 글래스에 가라앉아 있던 Brain silt (미세한 모래..즉 어딘가 저장되어 있는 생각의 조각들)들이 칵테일을 만들 때 빠르게 병을 흔들듯이 흔들어 주면, 안의 구성물들이 뿌옇게 흙탕물 처럼 뒤범벅이 되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그룹화하면서 정리하다보면 어떤 의미를 하나씩 뽑아 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인지 과학자 중 Connectionist들의 주장은 우리의 신경 세포는 어떤 경험을 할 때, 그 경험 자체로 받아 들이지 않고 electiricity가 뉴런을 통해 firing될 때 그 이전의 경험을 통해 두뇌속에 저장되어 있는 다른 세포들을 아주 빠르게 연결시켜서, 의미 구조를 창출하고, 비슷한 것들을 묶에서 저장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서, 좀 더 의미가 있는 것들은 Frequency, Recency 효과를 갖는 것들입니다. 최근에, 그리고 빈번하게 엮여 있던 것들이죠. 한편 일설에 따르면 Emotion은 우리의 인지 구조의 기저를 담당하고 있는데(밑에서부터 보자면, metabolic regulation , basic reflexes, immune respones-->pain and pleasure behaviors
-->drives and motivations-->background emotions, primary emotions, social emotions), 여러가지 다중결정되는 또한 Fuzzy boundary의 상부 구조(중에 하나인feeling)을 통해 조금씩만 발현 된다고 합니다.(이게 다 드러나면 얼마나 좋을까...자기 안을 잘 들여다 보면 알 수도 있다고 하는데 -Jung의 학설중 하나인듯...., 철학 샘 앞에서 이런 말하려니..영..틀리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양파 껍질 벗기기와 같아서 마음 안을 까고 또 까고, 더 까고, 그 깊이 알수 없는데까지 까야하는 아주 난해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감각정보들이 perception, attention, consciousness and cognition의 단계를 거쳐 두뇌에서 정보처리를 하게 되는데, 꿈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더욱 기저에 있는 emotion을 끌어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결국 꿈은 지금까지 (최근의 것을 중심으로) 나에게 벌어졌던 내용들이 엉키고 설켜서 하나의 기저적인 의미를 반영하는것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해석을 통해...즉, connection을 찾다보면)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제 각각 흩어져 있는 brain silt들이 (아마도 뉴런의 낮은 firing으로 인해, 현재적인 잔영이 남아있는 정보들이) 수면 시간의 신경 세포들의 활동을 통해서요. 여튼 횡설수설하긴 했는데, 이전에 몹시 궁금했다가, 한 십년쯤 구석에 쳐박아 놓았던 미세한 모래들이 파샤샤하고 불을 팅기며 머리속에서 연결 되는 경험을 발마(갑자기 달마도 아니고, 발마사지가 생각나는 건 왜나ㅠ.ㅠ) 샘을 통해 하게 되네요.쉽게 이해되서 좋고, 제가 요즘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 보니 더욱 흥미있네요. 서재에 와서 처음으로 추천 때려보네요. 덕분에..

balmas 2005-03-2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렇죠?? 으쓱으쓱, 잘난 척(정작 뭐가 멋있는지는 모름 ... -_-v)
Yun님(제멋대로 아뒤를 축약하고 있음)/ ㅋㅋ 발마사지 시원하시죠?? 추천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

瑚璉 2005-03-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훌륭하십니다(짝짝짝).

그리고 언제나 읽게 될 지는 모르지만 법의 힘은 이번에 구입했습니다. 볼테르 이후의 프랑스 철학서적으로는 첫 번째로 산 것인데, 오로지 balmas님의 추천만 믿고 샀으니, 만약 재미가 없으면 balmas님을 원망할 예정입니다(-.-;).

balmas 2005-03-2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호정무진님도 드디어 [법의 힘]을 구입하셨군요. ^^;;
재미 없으면 저에게 반품하시죠. ㅋ

루루 2005-03-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철학책을 꼼꼼히 읽는 다는 것이 어떻게 읽는 것인지 궁금해요;;
저는 자꾸 읽다가보면 앞에 내용까먹고, 행간도 잘 못 읽고 해서 걱정인데ㅜ.ㅜ

balmas 2005-03-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간단하게 페이퍼로 써서 조만간 올릴게. :-)
 
 전출처 : 마태우스 > 자살의 타살화

 

 

 

 

* 이번주는 유난히 바쁜 한주네요. 수업도 많고 행사도 많고, 술도 많이 마시고.... 잽싸게 글 하나 써서 올립니다. 30위 안에 드는 건 틀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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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시민운동가였던 장원 씨가 성추행을 했다. 팔베개만 해줬다느니 하는 변명은 시민운동가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안그래도 시민운동을 고깝게 바라보던 보수 언론은 일제히 장원을 비난했었다. 가정 한 가지. 그래서 장원이 자살을 했다고 치자. 그 죽음은 누구 책임일까? 사설로까지 장원을 공격한 조선일보일까? 그렇게 말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문제는 성추행을 한 장원에게 있지, 그걸 비판한 조선일보가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책을 집필한 이장희 교수가 빨갱이로 몰린 적이 있었다. 통일부에서 우수 저서로 뽑히기도 했던 그 책이 월간조선에 의해 난데없이 용공으로 몰린 것.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무서워한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수년간의 지리한 재판 결과 이장희 교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다시 가정. 재판도 징그럽고, 빨갱이로 오인받는 것도 억울하고, 주위에서는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술도 같이 안마시려고 하고, 이런 것들에 분노가 솟구쳐 이장희가 확 자살을 해버렸다 치자. 이 경우 이장희의 죽음은 조선일보에 의한 타살일까? 그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조선일보는 언론기관으로서 빨갱이 사냥을 할 권리가 있고, 그건 공익을 위한 일이라고-설마 그렇겠냐마는-믿기 때문이다.


대우 남상국 사장이 자살을 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TV에 나와서 남상국 욕을 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기자회견은 안봤지만, 그때 대통령은 “좋은 대학 나온 분이 무식한 우리 형한테 왜 뇌물을 줬냐”고 남사장을 비난했단다. 이 경우 남상국은 노무현이 죽인 걸까? 노무현은 언론기관이 아니니까 그가 아무리 비리를 많이 저질렀든간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안되는 걸까? 이것도 생각해 보자.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고 구라를 친 적이 있다. 이게 하도 화가 나서 이철우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면, 이건 주성영에 의한 타살일까.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깟 일에 자살을 하냐고 하지 않을까?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좋다. 노무현이 남상국을 죽였다고 치자. 그러면 정몽헌은 누가 죽인 걸까. 그런 논리라면 무리하게 대북송금 특검을 밀어붙인 한나라당이 살인자가 되어야 맞지 않을까. 하지만 노무현을 살인자라고 부르던 그 누구도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김대중이 죽였다”고 한다. 멀쩡히 잘 있는 기업인을 대북사업에 동참시켜 결국 죽게 했다고 주장한다. 같은 논리라면 남상국을 죽인 것도 로비를 하도록 만든 어떤 높은 분에게 돌려야 할텐데, 그저 이렇게 탄식할 뿐이다. “이 정권 하에서는 유능한 기업인이 왜 이렇게 죽어나가냐”


안상영 역시 이 정권 하에서 자살을 한 사람 중 하나다. 부산시장이던 그는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받던 도중 자살을 택했는데, 아까 그 사람들은 이거 역시 노무현의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으로 오라고 회유를 했는데 안상영이 말을 안들어서 수사를 한 거고, 그게 분해서 자살을 했으니 그렇다는 거다. 정권보다 언론권력의 힘이 세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런 음모론이 먹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두가지만 지적하자. 정 그게 분하고 억울하면 죽기 전에 유서라도 한 장 써놓을 것이지 왜 그냥 죽었을까. “노무현이 날 죽였다”고 한마디만 썼다면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했을 테고, 열린우리당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텐데. 두 번째,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안상영의 가족들은 왜 그걸 극구 부인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들은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에게 “근거없는 사실을 가지고 고인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유족들은 자살이라는데 다른 집단이 타살이라며 음모설을 터뜨리는 진풍경이라니.


자살은 자살이지 타살이 아니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건 간에 죽음은 결국 자기 책임이다. 그걸 자꾸 타살화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은 죽은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있다. 매번 자살의 배경을 탐구해 ‘살인자’를 찾기에 바쁜 그 집단들은 왜 노동자의 죽음에는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사장이 협상에 응하지 않고 탄압만 한다고 두산중공업 노동자가 자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사장보고 ‘살인자’라고 비난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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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필독

 집단적 광기에서 깨어나기

[...] 사교육 시장은 우리 사회구성원의 교육관과 인생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 크게는 '한국형 자본주의 체제'와 한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불빛을 향하여 날아드는 나방 무리처럼 집단적 광기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사불란한 무모함에서 저 군사정권 시절 '돌격 앞으로!' 정신의 재현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단지 아이에게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왜 하필 그 많은 경험이 공부에, '국영수'에 한정되어 있을까? 그 많은 경험가운데 왜 하필 아이가 가장 바라는, 몸살 나도록 놀아보는 건 용납하지 않을까.  [...]

- 정은하, <학습지 시장, 무엇이 문제인가>, <<창비어린이>> 2005년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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