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연금개혁이 우리의 모델(?)

-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국민연금 기사를 보고

 

강동진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광화문 촛불 시위로 이어지고, 연금폐지론, 기초연금도입 주장 등 연일 연금관련 논쟁이 불을 붙는 가운데에 '관점이 있는 뉴스'를 지향하는 인터넷 신문 6월 9일자 '프레시안'에 국민연금 관련기사가 실렸다. 내용의 핵심은 멕시코에서 공적연금 적자의 누적으로 파산위기에 몰리자 '칠레형 민간연금'으로의 대대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이다. 칠레형 모델은 '세계 최고의 모델'로서 영국 등 공적연금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모범 모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기사 말미에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 원금과 기금의 운용 이자에 따라 결정될 뿐 아니라 세금 혜택이 주어지므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를 크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하경제를 제도권 경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거두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칠레의 연금제도는 기사에서 소개하는 바대로 '개인구좌식 적립방식'이다. 1974년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하고 등장한 군사독재정권인 피노체트 정부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시장경제체제 도입, 민영화, 자유화 조치 시행을 통한 국제 금융시장에의 접근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198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강타한 외채 위기에서 칠레도 예외가 아니었고, 위기 극복을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는데, 연금개혁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81년 신연금법을 제정하여 정부가 관리하던 연금제도를 민간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유치, 운용하는 '개인구좌식 적립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외채 위기 극복의 방안이라는 등의 사적연금을 찬양하는 각종 논리가 동원된 것은 물론이고, 세제혜택 등 사적연금으로 유인하기 위한 동기도 정부 차원에서 제공되었다. 그 결과 신연금법 발표 이후 8개월 만에 전체 노동자의 80%가 사적 연금으로 전환하였고, 1994년에는 기존의 확정급여형 공적연금을 완전히 대체하여 민간이 운영하는 강제방식의 확정기여형 연금저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인가에 대해서는 의심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칠례의 사적 연금 개혁은 결코 외채위기로부터 탈출구를 마련해 주지 않았으며, 칠레의 연금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자본은 자유화와 탈규제를 요구했고 'IMF 구조조정협약'을 이행할 것을 강제했다. 그리고 이렇게 적립된 자금은 금융시장을 통해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은퇴 이후 받는 연금액수도 매우 불안정하다. 민영화된 연금체계에서 은퇴시기에 받는 연금의 액수는 개인이 기여한 것에 투자수익률을 더한 액수이다. 물론 여기서 관리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빠져야한다. 그리고 투자가 언제나 플러스 수익률을 내지는 않을 수 있으므로, 투자에서의 손실분은 개인이 감내해야한다. 대다수의 저소득층은 기여할 수 있는 여유소득이 없기 때문에 연금의 혜택에서 제외되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사적연금의 극성 속에서 아무런 조치조차 취해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관리회사들의 수수료는 계속해서 증가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규제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기사에서 언급하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란 다름 아닌 퇴직 이후 '노후의 생존'을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극심한 경쟁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길 밖에 없다'는 상황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정부는 6월 중으로 보험료는 올리고 급여율은 낮추는 연금법개정안과 주식투자 비중을 자유롭게 하는 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태세이다. 아울러 이와 동시에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명목하에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시민단체와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는 퇴직금제도를 없애고 기업연금을 도입하는 주장마저 나온다. 그리고 현 제도에 대한 불신을 빌미로 '사회적 연대'를 해치는 주장마저 스스럼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국민연금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의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비판의 기능을 제공하기 보다, 특정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선전하는 수단과 무기로서 기능한 지가 오래이고, 또한 그것이 속성임을 요즘 들어서 더욱 자주 드러내고 있다. 특히나 국민연금관련 논란과 보도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이슈'에 끼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일부 '여론제기 집단'이 기본 원칙과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 없이 '설 익은 주장'을 함부로 내놓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의 출발에는 세계은행과 OECD의 '연금개혁 권고안'이 자리잡고 있다. 그 권고안의 목적은 노동자의 소득(임금소득이든, 노후소득이든)을 주식·금융시장의 체계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국민연금 논란의 해법은 다소 추상적이고 원론적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글은 보건복지민중연대·사회진보연대가 공동으로 펴낸 '연기금 금융화저지 자료집 - 국민연금개악·기업연금도입 반대투쟁을 위하여'를 참고하였습니다)
2004년06월09일 21:53:08

*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 퍼왔습니다.

http://cast.jinbo.net/news/view.php?board=new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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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보도 속보 경쟁보다 ‘질’ 택해야

 

'질’ 좋은 서평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지한 독자라면 내용을 줄줄이 축약해 주기보다는 책의 장단점을 명확히 밝혀주는 서평, 서평자의 시각이 분명한 서평을 좋은 ‘질’의 서평으로 꼽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책의 됨됨이를 따진다’는 서평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기도 하거니와, 요새 같은 정보홍수의 시대에는 바로 그런 서평만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용만을 요약할 거라면 아까운 지면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서점,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에 넘쳐나는 게 그런 자료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요새는 웬만한 출판사들도 다 홈페이지를 갖추고 있다. 그저 간추린 내용만 궁금한 사람이라면 출판사 홈페이지의 자료실에 들어가 신간 보도자료만 봐도 자기가 원하는 내용은 다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책과 사람’은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내 직업 경험상 그 책이 신간이고 서평자가 기자라면 거의 90%, 서평자가 외부 필자라면 50% 정도가 출판사 보도자료를 참조해 책의 내용을 단순 요약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물론 그대로 베낀다는 말은 아니다. 기자들도 머리말, 결말, 옮긴이 후기(그리고 개인적으로 흥미 있거나 더 필요한 부분) 정도는 읽은 다음, 보도자료의 구성도 바꾸고 살도 더 붙일 테니까. 물론 달라질 것은 없다. 내용만 요약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따지고 보면, 이것은 〈한겨레〉뿐만 아니라 주요 일간지 모두의 문제이다. 그리고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여러 문제 중 ‘시간’ 문제만을 예로 들어보자.

〈한겨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은 토요일에 서평란을 싣는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늦어도 월요일 오전까지는 신간을 배포하는데, 그 수많은 신간들을 하루 반나절 만에 거른다고 해도 원고마감이 금요일 오전일 테니 기자들이 책을 읽고 기사를 쓸 시간은 3일 반나절 정도밖에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2003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나온 책들의 평균 두께는 251쪽. 서평 전문기자가 별로 없는 국내 일간지 사정으로 보건대, 3일 반나절 안에 이만큼의 분량을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한 뒤 원고지 5~10장 분량의 글 하나를 쓰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일례로 6월5일치 ‘책과 사람’을 보라. 한 기자가 〈마틴 루터 킹〉(443쪽), 〈야만의 시대〉(304쪽), 〈독립신문, 다시 읽기〉(467쪽), 〈선물〉(135쪽) 총 4권의 서평을 썼다. 마지막 책은 신간이 아니니 제외하더라도 총 1214쪽 분량이다. 상황이 이런데 하물며 됨됨이를 따진다니!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출판사들이 신간과 함께 보내주는 보도자료는 기자들에게 가뭄의 단비다. 출판사들도 좀 귀찮긴 하지만 손해볼 일은 없다. 약간의 수정이야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책이 소개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난하든 부자든 출판사들로서야 일간지 서평란이 알아서 광고판이 되어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서평란도 광고판이기보다는 활발한 토론의 장이 되어야 더 재미도 있고 멋도 있지 않을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서평란을 타블로이드판(24면)으로 낸 지 한 달이 더 넘어간다. 개인적으로야 〈한겨레〉도 서평란을 증면했으면 좋겠으나, 꼭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굳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지금의 형태로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만약 시간이 문제라면, 시험삼아 서평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보는 것은 어떨까 정말 소개할 만한 책이라면 서평까지 ‘속보 경쟁’의 희생물로 만들지 말고, 한 주 늦게 소개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정말로 ‘신속성’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신간을 ‘잠깐독서’ 형식으로 9권(지금은 3권이다)까지 소개한 뒤, 이 중 한두 권만을 골라 다음주에 심층적으로 다루든가. 아니면 ‘왜냐면’의 형식을 빌려와 ‘책과 사람’ 지면을 부분적으로 혁신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어떤 형태가 됐든지 간에, 주어진 한계 속에서도 ‘책과 사람’을 바꿔볼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그동안 ‘책과 사람’을 사랑해온 독자들을 배신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이재원 <도서출판 이후> 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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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17돌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학계평가 회의적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그 적자로 여긴다. 얼마전 청와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진 것이 상징적 예다. 이제 ‘6월 정신’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과제는 노무현 시대를 통해 그 결실을 맺은 걸까.

학계의 평가는 회의적이다. 김상곤 교수(한신대)는 그 이유를 현 정부에게 주어진 과제의 성격에서 찾는다. 김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10일 개최한 6월항쟁 17주년 토론회 발제문에서 “지금까지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게 오늘의 민주주의 과제라고 짚었다. 그것은 “경제적 민주화와 경제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연관지어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방안”이다.

그 핵심은 이른바 ‘87년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것이다. 박영호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회 소장은 최근호 머릿말에서 “상업적 이익이 유일한 선택이자 생활방식인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도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새로운 ‘적대적 상대’는 군사독재가 아니라 세계화다. 그것은 기왕의 민주적 성과마저도 위협한다. 세계화는 “불평등 문제를 사회보장국가를 통해 해결”하는 일국적인 개량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병폐에 대한 ‘최소한의 해답’인 사회보장체제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한국에서 이제 민주주의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학계의 냉정한 평가다. 윤상철 교수(한신대)는 “노무현 정부는 경제·사회복지·대외정책 등에서 이전 정부에 비해 오히려 퇴조하는 양상을 보여줬다”고 꼬집는다. 윤 교수는 지난 8일 한신대 사회과학연구소 심포지엄에서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사회적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정책적 계획을 갖고 있지 못했고, 이때문에 사회적 민주화에 대해 대응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안을 정치적 쟁점화하는 전략으로 이동했다”고 비판했다.

조현연 교수“사상적 결손과 정체성 빈곤의 한계”
박영호 소장 “사회보장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해”
윤상철 교수“경제·대외정책 오히려 전보다 퇴조”

이런 전략의 문제는 현 정부가 자리한 ‘시대적 좌표’에서 비롯된다. 민주화 이행은 일반적으로 ‘자유화기-이행기-공고화기-심화기’ 등의 단계를 거치는데, “김대중 정권 후반기부터 정치적 민주화의 단계를 벗어나 경제적·사회적 자원의 재분배구조를 변화시키는 민주적 심화기가 시작됐다”는 게 윤 교수의 판단이다. 민주적 심화기의 한가운데 서있는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민주화 이행기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현연 교수(성공회대)는 이를 ‘영양실조에 걸린 민주주의’라 부른다. 조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 토론회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민주적 공고화가 아니라 오히려 탈민주주의 추세 속에서 급격히 퇴락하고 있다”고 짚고, 노무현 정부의 “사상적 결손과 정체성 빈곤의 한계”를 그 이유로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청와대에서 부르는 오늘, 역설적이게도 한국 민주주의는 시련 앞에 섰다. 진보 학술진영은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를 세계화·사유화·상업화를 위해 폐기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화·사유화·상업화의 내용을 변경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섰다”(박영호)고 단언한다.

학계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 새로운 민주주의 과제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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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보면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들인데, 이런 지적들이 참신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노무현 정부의 "도덕적 자부심", 그에 근거한 당당한 화법을 보면 아연할 때가 많다. 무슨 근거로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balmas 2004-06-1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께

이렇게 저렇게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고 또 지지하는 분들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때가 아닌가 합니다.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열린 우리당을 과반수 정당으로 뽑아놓고 할 일 다했다고 돌아누워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안타까워하거나 혼자 술먹으면서 배신감 운운할 때가 아니라, 여러분의 희망, 여러분의 이상을 좀더 굳건하게, 좀더 책임 있게 지켜나갈 때가 아닐까 합니다.
노무현 지지자 여러분은 여러분의 희망과 여러분의 이상을 위해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을 선택한 것이지,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 그 자체를 위해 그들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이상을 좀더 똑바로 알아달라고, 그 이상을 배반하지 말라고 다그치고 요구할 때가 됐습니다.
국가 기밀이 어떻고 국가 안보가 어떻고 시장 원리가 어떻고 등등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겠지만, 때로는 당이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짐짓 제왕의 흉내를 내고, 나라도 화가 나겠다고 제왕의 역성에 아부하는 자들도 나타나겠지만, 여러분은 겁내지 말고 여러분의 이상과 여러분의 요구를 말하세요.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아니라서 대통령의 심중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우리들의 요구는 이렇다고, 우리들의 희망과 이상은 이렇다고 여러분의 요구를 말하세요. 여러분이 자신들의 요구를 말할 때, 여러분의 편에 서서 지원해줄 전문가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길거리에 나서서 대통령을 뽑고 열린 우리당을 과반 정당으로 올려 놓았듯이, 이제 여러분 자신의 희망과 이상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길거리에 나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뭐라 하든, 유시민이 뭐라 하든, 열린 우리당이 뭐라 하든, 여러분은 여러분의 요구를, 여러분의 이상을 말하세요.
여러분의 이상과 희망이 옳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들도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변명만 늘어놓는 게 아닙니까? 문제는 그 희망과 이상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아서 해주겠지, 알아서 보살펴 주겠지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여러분의 진실과 이상을 그들의 노름판의 판돈으로 날려버리는 일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이상과 희망을 잊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알려줄 때야 비로소 그들이 여러분을 존중하고 여러분의 이상과 희망을 존중할 것입니다.

가을산 2004-06-12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정치는 '우리 대표를 우리 손으로 뽑는다' 정도를 가까스로 이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의 체제로는 아무리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물을 국정 운영자로 뽑아도 그가 변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원인에는 크게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전문 관료, 정책 자문그룹, 경제 전문가들, 경제계 리더들에 둘러쌓여버리게 되어 재교육 당하거나, 의지가 있어도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제공이나 정책의 실행 과정에서 변형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신자유주의 그룹에 완전히 설득당한 것 같습니다. (그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고, 반대로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평가할 사람도 있을겁니다. )

외부적으로는, 미국 부시정부, 다국적기업의 로비, WTO 와 FTA, TRIPS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세력의 압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가장 강한 국가, 가장 강한 기업군, 가장 강한 국제 기구가 이들입니다.

(얼마나 위력이 집요하고 세세한지, 예를 들겠습니다. 2년 전 정부가 글리벡의 약값을 24000원 대에서 17000원 대로 인하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온갖 국제 통상기구에서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결국은 약가 인하를 추진하려고 했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물러나야 했습니다. 약 한가지 때문에. 그러니, 정책 전반에 대한 압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대표가 초심을 유지하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개혁적인 정권을 세우는 것 만으로 되지 않고, 이 내외적인 요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정책그룹과 전문가들을 양성해서, 진정한 정책정당이 뿌리를 내려서 설득 당하지 않고 그들의 정책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저력을 키우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압력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주체들에 대응할 힘을 조직해야 하는데, 이는 한 국가나 한 나라 국민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을 비롯한 진영에서도 '문제점은 파악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올 파국적 결과에 대해 알리고, 여론을 형성해서

각자 자기 정부에 그런 문제점에 능동적으로 연대하도록 압력을 넣고,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국제 여론, 국제 기구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도록 해야 할겁니다.

 

갈길이 까마득하죠?    

이런 내외적인 요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제대로된 지도자를 얻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얼기설기 생각을 얽어보았는데, 뜬구름 잡는 수준인 것 같아 갑갑합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내일 행사가 있지요.

바로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balmas 2004-06-1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역시 대단하시네요.
저의 일국적 관점을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보충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전출처 : 수수께끼 >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에 관한 몇 가지 의문들....(1).

  여주의 남한강을 끼고 신륵사라는 고찰이 있습니다.  이 절을 처음 건립한 시기는 신라의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것을 뒷받침 할만한 유물이나 유적은 물론이고 문헌자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려 우왕(禑王)2년인 1376년에 나옹(懶翁)선사가 이 절에서 입적하면서 절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조선조에 이르러서는 경기도 광주의 대모산(지금 남한산성의 송파쪽)에 있던 世宗의 묘를 여주로 이장하면서 왕실에서는 신륵사를 원찰(願刹)로 삼고 절 이름도 報恩寺로 바꾸고, 전각이나 건물을 새로 꾸몄습니다. 현재 신륵사 경내에는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많은 유물이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입적한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선사의 부도를 비롯한 유물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다층석탑이 있으며, 강변에는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세운 전탑등 다수의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신륵사의 유물중 다층석탑의 건립연대에 대한 의문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학문에서 형성되는 학파라는 개념은 한 스승 밑에서 배우는 입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탑은 30여년전에 필자의 스승이 조사를 하여 그 조사 결과가 오늘날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탑을 조사하면서 제 스승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탑의 조성연대를 조선시대로 보고 있지만 저는 건립 시기가 조선시대 이전의 고려말, 또는 그 이전으로 보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탑은 우리 나라에 있는 1300여기의 탑중 20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와는 조선은 억불정책으로 이와 관련이 있거나 또는 기왕에 절간이 세워지면서 탑이 세워져 있었기에 새로운 탑의 건립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륵사 석탑은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가 보는 조형수법과 탑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 그리고 탑에 장식된 문양에 나타나는 조각 형식등에 대한 의문점으로 이 탑에 대한 재 조사를 했던 것입니다.  스승의 조사 결과를 제자가 번복하는 일은 학파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을 하는 일이지만 몇 가지 이 탑이 갖는 의문점을 기준으로 그 의문에 대한 하나 하나의 조사로 이 탑에 접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신륵사 다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든 탑으로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탑의 아랫부분인 기단부는 2층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여러 층의 탑신(탑 몸통돌)을 얹은 사각형의 석탑인데 세부 조형을 살펴보면 신라나 고려의 조형수법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기단석에 비룡(飛龍)을 조각하는 경우는 매운 드문 경우로 이것은 신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설화의 내용을 담았는지 모르겠지만 조각 수법이 무척 세련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자칫 무겁게만 보일 수도 있는 탑의 무게를 조각이 덜어주고 있습니다.

 이 탑의 재료는 대리석인데 이 석재는 당시에는 구하기도 힘든 석재인데 왜 대리석으로 조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과연 이 탑이 보여주고 있는 양식으로 판단할 때 이미 알려진 대로 조선시대의 탑인지..아니라면 언제 조성된 탑인지를 정확하게 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탑은 3m에 불과한 비교적 작은 석탑이지만 기단부 부터 탑의 몸돌인 탑신부에 이르기 까지 각 층의 돌은 모두 1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석탑의 각 부재를 1개의 돌로 만들게 된것은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탑을 크게 만들 수 없는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탑은 일반적인 석탑의 전형을 그대로 따랐지만 각 부재에 있어서는 그 세부 감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재료가 대리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윗면에 단엽으로 복련문양을 조각하고 그 위에 2층으로 된 기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아랫층 기단 갑석의 윗면과 윗층 기단 갑석 아랫면에도 연화문(蓮花紋)을 장식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용의 문양이나 우측 사진인 기단에 나타난 문양의 조각은 매우 섬세하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                                                          <신륵사 다층석탑의 상하층 기단>

탑의 몸돌인 탑신부는 현재는 8층 탑신부 까지 남아 있지만, 몇 군데 옥개석의 체감율이 맞지 않아 원래의 정확한 탑이 몇 층이었는지를 추정하기는 쉽지가 않으며 탑의 맨 윗부분인 상륜부는 현재는 철제로 된 찰주(刹柱)만 남아 있고 다른 부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와같이 모든 점을 살펴보면 신륵사 다층석탑은 지대석 윗면에 연꽃문양을 조각하여 화사한 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기단부에 연화문을 장식한 예는 많지만 이 탑 처럼 지대석에 연화문을 장식한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기단부에 있어서는 면석의 각 우주(귀퉁이 돌)에 화문(花紋)을 모각한 것이라든가, 기단 상층 깁석을 기단 하층 갑석의 하반부형(下半部形)으로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무거운 느낌을 줄이고자 하는 점은 이 탑에서 주목할만한 형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지대석에 용과 구름, 파도 문양을 조각한 수법은 주로 스님의 무덤인 부도(浮屠)에 조각되는 수법인데 특이하게도 이 탑에서는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없던 문양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 (2)편에서는 이 탑이 같는 5가지의 의문점을 제시하고 그 의문점을 하나 하나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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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안티 국민연금'을 환영하는 자본

[사설2] ‘안티 국민연금’을 환영하는 자본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최근 인터넷에 나돌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이래저래 손해만 보는 문제 많은 제도’라는 것인데, 솔깃한 예들을 많이 들어서‘폐지론’마저 불러내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한 결론이 아니다.

    ‘8대 비밀’의 문제점은 공적 보험에 대한 ‘연대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하면 배우자는 자신의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를 두고 ‘8대 비밀’은 국민연금이 사망자의 보험료 원금을 삼켜버린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사례가 여지껏 3천8백 건 일어났다.
    이 경우 지금처럼 배우자가 한 쪽 연금만 받는 것이 옳다. 유족 연금은 원래 노령연금 수급권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입자가 사망하면 앞날이 막막해지는 유족을 위한 제도로서 지금 20만명이 받고 있다. 사망자가 1년만 가입해도 유족이 혜택을 누린다. 가령 월소득 166만원의 남편이 3년간 매달 보험료 74,700원씩을 내고 사망했다면 유족이 매월 15만원 남짓을 평생 받는다. 사적 보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은 1인 1연금의 사회연대 보험이다. 필요하다면 노령연금에 더해 유족연금 일부를 추가지급하게 보완할 수는 있으나 “낸 만큼은 받아야겠다”는 시장논리와는 금을 그을 일이다. “노령연금을 받으니 유족연금은 양보하겠다”는 연대의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공유될 수 없는가.
    물론 이 글에는 타당한 지적도 있다.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형평성 문제다. 국민연금은 소득기준이 멋대로고 권위적으로 걷는다. 실질소득이 없는데도 부과되고 항의하면 깎아준다. 체납했다고 가압류하니 분노할 만하다.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정교화하고 집행을 민주화해야 한다. 이의신청을 쉽게 하고 가입자의 소명을 경청해야 한다.
    반면 ‘의무 가입’은 필수 요건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이 없다는 점이다.

    ‘8대 비밀’로 촉발된 ‘안티 국민연금’은 오히려 부유층과 사적 자본이 환영하고 있다. 부유층은 높은 보험료를 면하고 자본은 ‘사적 연금보험’상품을 팔 수 있으므로. 반면 공적 연금의 재분배 효과를 누려야할 저소득층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는 개인연금에 억지로 가입하든지 노후 빈곤을 견뎌야 한다.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연금 공공성’ 강화로 이끄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하겠다.

-교육희망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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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6-1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연금과 의료보험의 사유화. 자본이 제일 반기는 것이죠.

sunnyside 2004-06-1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 부분이 있었군요. 저도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고는... 저건 아닌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올려 주시니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앗, 안녕하세요? 첨 인사 드리는 듯...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 )

balmas 2004-06-1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죠, 자본으로서야 대환영이겠죠. 가을산님이 동의해주시니 퍼온 보람이 있습니다.
sunnyside님 안녕하세요? 도움이 되셨다니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뵙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