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보도 속보 경쟁보다 ‘질’ 택해야

 

'질’ 좋은 서평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지한 독자라면 내용을 줄줄이 축약해 주기보다는 책의 장단점을 명확히 밝혀주는 서평, 서평자의 시각이 분명한 서평을 좋은 ‘질’의 서평으로 꼽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책의 됨됨이를 따진다’는 서평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기도 하거니와, 요새 같은 정보홍수의 시대에는 바로 그런 서평만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용만을 요약할 거라면 아까운 지면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서점,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에 넘쳐나는 게 그런 자료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요새는 웬만한 출판사들도 다 홈페이지를 갖추고 있다. 그저 간추린 내용만 궁금한 사람이라면 출판사 홈페이지의 자료실에 들어가 신간 보도자료만 봐도 자기가 원하는 내용은 다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책과 사람’은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내 직업 경험상 그 책이 신간이고 서평자가 기자라면 거의 90%, 서평자가 외부 필자라면 50% 정도가 출판사 보도자료를 참조해 책의 내용을 단순 요약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물론 그대로 베낀다는 말은 아니다. 기자들도 머리말, 결말, 옮긴이 후기(그리고 개인적으로 흥미 있거나 더 필요한 부분) 정도는 읽은 다음, 보도자료의 구성도 바꾸고 살도 더 붙일 테니까. 물론 달라질 것은 없다. 내용만 요약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따지고 보면, 이것은 〈한겨레〉뿐만 아니라 주요 일간지 모두의 문제이다. 그리고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여러 문제 중 ‘시간’ 문제만을 예로 들어보자.

〈한겨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은 토요일에 서평란을 싣는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늦어도 월요일 오전까지는 신간을 배포하는데, 그 수많은 신간들을 하루 반나절 만에 거른다고 해도 원고마감이 금요일 오전일 테니 기자들이 책을 읽고 기사를 쓸 시간은 3일 반나절 정도밖에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2003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나온 책들의 평균 두께는 251쪽. 서평 전문기자가 별로 없는 국내 일간지 사정으로 보건대, 3일 반나절 안에 이만큼의 분량을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한 뒤 원고지 5~10장 분량의 글 하나를 쓰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일례로 6월5일치 ‘책과 사람’을 보라. 한 기자가 〈마틴 루터 킹〉(443쪽), 〈야만의 시대〉(304쪽), 〈독립신문, 다시 읽기〉(467쪽), 〈선물〉(135쪽) 총 4권의 서평을 썼다. 마지막 책은 신간이 아니니 제외하더라도 총 1214쪽 분량이다. 상황이 이런데 하물며 됨됨이를 따진다니!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출판사들이 신간과 함께 보내주는 보도자료는 기자들에게 가뭄의 단비다. 출판사들도 좀 귀찮긴 하지만 손해볼 일은 없다. 약간의 수정이야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책이 소개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난하든 부자든 출판사들로서야 일간지 서평란이 알아서 광고판이 되어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서평란도 광고판이기보다는 활발한 토론의 장이 되어야 더 재미도 있고 멋도 있지 않을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서평란을 타블로이드판(24면)으로 낸 지 한 달이 더 넘어간다. 개인적으로야 〈한겨레〉도 서평란을 증면했으면 좋겠으나, 꼭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굳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지금의 형태로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만약 시간이 문제라면, 시험삼아 서평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보는 것은 어떨까 정말 소개할 만한 책이라면 서평까지 ‘속보 경쟁’의 희생물로 만들지 말고, 한 주 늦게 소개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정말로 ‘신속성’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신간을 ‘잠깐독서’ 형식으로 9권(지금은 3권이다)까지 소개한 뒤, 이 중 한두 권만을 골라 다음주에 심층적으로 다루든가. 아니면 ‘왜냐면’의 형식을 빌려와 ‘책과 사람’ 지면을 부분적으로 혁신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어떤 형태가 됐든지 간에, 주어진 한계 속에서도 ‘책과 사람’을 바꿔볼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그동안 ‘책과 사람’을 사랑해온 독자들을 배신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이재원 <도서출판 이후> 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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