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고등사범학교에서 흥미로운 강의를 하나 들었다. 미셸 세넬라르Michel Senellart라는 정치철학자가 진행하는 이번 가을/겨울 학기 세미나의 첫 시간이었다. 세넬라르는 영미권이나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상당히 잘 알려진 정치철학자다. 전공 분야는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정치사상이고,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정치철학의 역사에 관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록의 편집 책임을 맡아서 {안전, 영토, 인구}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Gallimard/Seuil, 2004와 {생명정치의 탄생}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Gallimard/Seuil, 2004를 펴내기도 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
안경은 안 썼고, 약간 더 나이든 모습 ...
세넬라르는 특히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통치의 문제에 관한 획기적인 저작의 저자이기도 하고, 푸코의 통치성 문제에 관한 탁월한 연구자이기도 해서, 진작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박사 후 연수를 위해 리용의 고등사범학교로 온 것은 세넬라르의 강의를 듣고 싶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지난 학기에는 모로의 세미나와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세넬라르의 세미나에 참가하지 못했는데(오늘 첫머리에 강의 소개를 하면서 하는 말을 들으니 지난 학기 강의 주제가 “푸코와 기독교”였단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아깝다 ... ㅠ.ㅠ)



그러고보니 푸코 강의록이 세 권 번역되어 있다. 동문선에서
나온 책들이지만, 번역들은 모두 좋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는 수업시간이 달라서 모로와 세넬라르의 세미나에 모두 참석할 수 있게 됐는데, 반갑게도 마침 이번 학기 세미나 주제는 “규범과 예외La norme et l'exception”였다. 이 주제는 최근 구미 철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 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사실상 “state of exception”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 연작에서 “state of exception”이라는 개념을 주요한 이론적 지주로 삼으면서, 정상과 예외, 법치국가/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관계라는 문제가 중대한 이론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세미나는 푸코에서 출발하여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예정이다.
세미나 시간에 약간 늦게 강의실로 갔더니, 작은 강의실에 세넬라르와 함께 열두어 명의 학생들이 이미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세넬라르는 우리(나와 후배 한 명)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이번 학기 강의는 예외적으로 사람이 많다고 하더니, 창가 맨 앞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서 앉게 해주었다. 그 이후에도 한 10여명이 더 들어와, 강의실은 그야말로 초만원 상태가 되었다. 아마 이번 학기 강의 주제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이번 시간만 예외적으로 이 강의실에서 하고 다음부터는 다른 강의실에서 한다고 하니 강의실 사정은 좀 더 좋아질 것 같다).
작은 체구를 지닌 50대 중반의 세넬라르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들었지만, 훨씬 더 친근하고 소탈해보였다(그러고 보니 미테랑과 약간 닮은 것도 같다 ...). 불어 특유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로 약 2시간 정도 진행된 강의는, 대가다운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강의였다. 모로 교수도 명 강의로 유명한 사람이고 실제로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 모두 명불허전의 훌륭한 강의를 하고 있지만(그런데 목소리는 비음이 섞여 있어서 좀 더 알아듣기가 어려운 편이다 ;;;), 세넬라르의 강의 역시 그에 못지않을 만큼 좋았다.
오늘 강의 주제는 “미셸 푸코에서 법치국가의 문제Question de l'Etat de droit chez Michel Foucault”였는데, 근대 법학자와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법치 국가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해서 푸코가 왜 이러한 관점을 거부했으며(“반(反) 법률주의”) 그들과 달리 근대 국가를 어떤 관점에서 분석했는가 제시한 다음, 1978-79년의 강의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다시 등장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강의였다. 오늘의 강의의 논지는 결국 법률주의적 관점에서 이해된 권력의 “자기 제한”과 시장에 기초를 둔 권력의 “자기 제한”의 차이, 주권자와 (신민)주체들 사이의 법적인 사회계약과 안전을 쟁점으로 삼는 국가와 인구 사이의 계약의 차이로 요약될 수 있다. 2시간 남짓의 짧은 강의지만, 푸코의 통치론의 핵심 논점을 빼어나게 잘 제시해주고 있다.
오늘 강의도 좋았지만, 앞으로 있을 강의들도 기대가 되는데, 나머지 강의들은 세넬라르가 아니라 초빙 강사들의 강의로 채워질 예정이다. 다음 번에는 피에르 마슈레의 제자로 얼마 전에 푸코에 관한 저서를 낸(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스테판 르그랑Stephane Legrand이 푸코와 규범(또는 규준)의 문제로 강의를 할 예정이고, 그 다음에는 역시 최근에 칼 슈미트의 좌파적인 수용을 비판하는 저서(그 초점은 아감벤에 맞춰 있다)를 내서 화제를 모은 장-클로드 모노Jean-Claude Monod가 슈미트에서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예외 개념의 전개 과정에 관해 발표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도 법학자와 역사가, 철학자가 돌아가면서 세미나 주제와 관련된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 와서 더 절실하게 느낀 점이지만, 프랑스에는 이런 식의 세미나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곧 어떤 주제에 관해 한 학기나 1년 간의 세미나가 진행되면, 세미나의 진행자가 이번 세미나의 전체적인 주제를 소개ㆍ정리한 다음, 그 주제와 관련된 프랑스의 (때로는 외국의) 전문가들을 불러서 발표를 맡긴다. 발표를 맡은 사람은 와서 해당 주제에 관해 발표를 하고 청중들과 질의ㆍ응답ㆍ토론을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한 학기나 1년 간의 세미나를 통해서 해당 주제의 전문가들의 견해를 직접 듣고 그들과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가령 이번 세미나는 세넬라르가 주관하고 있지만, 세넬라르 역시 다른 사람의 세미나에 가서 또 발표를 하기도 한다(ㅎㅎㅎ 그런데 사실은 이런 식으로 불려오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연구자인 경우가 많다. 나이든 대가들은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도 하겠지만 권위도 있고 연배도 있고 하니까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발표하는 일이 드문 것 같다). 이런 식의 세미나는, 물론 학생들의 사전 준비와 독자적인 학습 노력이 뒤따라야겠지만, 짧은 기간 동안 해당 주제에 관한 폭넓고 깊이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학계, 특히 인문학계는 이런 점이 부족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각각의 학회를 중심으로 한 학기에 두 차례 정도(활발한 경우는 매달) 열리는 정기 발표회가 학술적인 교류의 중심적인 장이 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의 발표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논의의 밀도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해당 주제에 관해 좀 더 세분화되고 집약적인 공부를 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가령 근대철학회에서 한 학기에 두 번의 발표회가 있다면, 한 번은 예컨대 흄에 관한 발표를 하고 다음 번에는 라이프니츠에 관한 발표가 열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쉽게 접하기 힘든 분야의 세부적인 주제에 관한 발표를 다양하게 듣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발표자로서는 다른 전공자들이 상이한 시각에서 제기하는 질문을 받으면서 자신의 연구를 상이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이런 방식은 일회적인 논의에 그치기 쉬운 것 같다. 가령 흄 전공자가 자기 연구를 하면서 스피노자의 공통 통념에 관해 생각해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반면 학부나 대학원에서 진행되는 전공 강의는 대개 교수나 강사가 주재하면서 학생들의 발표나 발제를 듣고 토론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외부 강사가 와서 해당 주제에 관해 발표하는 일은 극히 드문 것 같다. 연세대의 박동환 교수의 강의나 서울대의 김남두 교수의 강의 정도에서 이런 식의 발표를 경험해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또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열리는 학술 대회나 발표회다. 철학을 예로 들면, 학회 중심의 정기 발표회 이외에 1년 단위로 열리는 한민족 철학자 대회가 있지만, 특정한 철학자나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학술 대회나 발표회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령 우리나라에는 푸코나 들뢰즈 저작이 거의 모두 번역되어 있지만, 푸코나 들뢰즈에 관한 학술 회의나 발표회를 보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물론 프랑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는 학문적인 저변이 엷은 편이기는 하다. 서양 철학사를 대표하는 주요 철학자라 하더라도 몇몇 철학자를 제외하면 해당 전공자는 손꼽을 만한 것이 우리나라의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학술 모임을 개최하기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교적 저변이 넓거나 현재 학술적ㆍ대중적인 관심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이런 발표회나 학술 회의를 꾸려볼 수 있을 텐데, 그런 노력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이런 발표 모임이 자주 열린다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대학원생이나 일반 대중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모임의 기획이 몇몇 대학원 학생회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 좀 놀랍기도 하다(그나마 요즘은 이런 것도 잘 없는 것 같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