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화장품 원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시대 이래 벽화고분의 화장한 인물들, 출토된 화장용기와 도구들 그리고 조선시대의 풍속화와 미인도 등은 남아있는 기록들과 함께 우리의 화장문화를 고증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화장품의 내용물인 원료에 대한 사료가 빈약하므로 민가에서 구전되는 경험담 등을 참고로 하여 구한말 전후까지의 화장품 원료와 사용법을 그 유래와 함께 정리해 본다.
1)분화장(분백분, 색분)
분꽃씨, 쌀가루와 서속가루, 조개껍질을 태운 분말, 진주가루, 곱돌가루, 칡을 말린 가루등이 백분의 원료이다. 분꽃씨를 절구나 맷돌에 갈아 체에 쳐서 만든 분말을 분합에 담아두었다.
화장할 때 적당량을 분접시에 덜고 분수기(분물그릇)의 물로 개어 얼굴의 위에서 부터 아래로 바르고 누에고치집(퍼프)으로 펴 준다. 이 때 분수기의 물은 아침이슬을 받아서 사용했고 상류층은 겨울에 받아 둔 납설수(육각수)를 담아 썼다. 또 분 바르기 전에 명주실이나 무명실 두가닥을 사용하여 한쪽 끝은 발바닥으로 누르고 또 한쪽 끝은 양손으로 말아 쥐고서 얼굴에 대고 비비면 솜털이 제거되었다.
분세수란 덩어리 백분을 개어 바르고 세수하는 것으로 여자는 물론 성춘향가에서 보듯이 남자들도 하였다. 분세수를 하면 투명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옅은 화장을 할 때 했다. 연분은 납이 주원료이고 초를 첨가하여 화학반응을 한 것으로 백분에 비해 피부 부착력이 좋은 장점이 있다. 색분은 황토 또는 백합의 꽃술가루가 원료이다.
분은 <삼국사기>의 신라 화랑이 분 바르고 단장했다는 기록 외에도 중국의 <수서><고려도경>등을 보면 백분을 즐겨 바른 것을 알수 있다. 연분은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일본으로 제조기술을 전수하였다. 그러나 연분은 자꾸 바르면 연독피해가 있었다. 1916년부터 박승직 상점에서 판매한 유명한 박가분(朴家紛)도 연분이었다.
-최초의 근대적인 화장품 "박가분" , 공산품 1호
일본 강점기에는 박가분 외에도 서가분, 서울장분, 가정분, 미쓰와분, 사꾸라분 등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뿐 아니라 19세기 유럽 전역에 연분이나 수은연지, 수은분이 유행했으나 피해가 속출하자 곧 자취를 감추게 된다. 색분은 창백한 안색을 생기있게 보여 주므로 부분적으로 분에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고 쌍영총벽화의 여인처럼 오렌지색 아이섀도로 바를 뿐 중국이나 일본처럼 홍장(紅粧)은 유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조 말에는 백분을 바르는 기녀와 구분한 듯 민가에서는 복숭앗빛 색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2)눈썹화장
송연먹(관솔먹), 달개비 꽃잎 태운 재, 버드나무, 굴참나무, 밤나무의 목탄, 목화꽃 태운 재, 참깨 그을음 등이 눈썹먹의 재료이다. 원료에 따라서 검정색, 검푸른 색, 짙은 밤색, 회색, 자색 등 다양한 색이 만들어 졌다. 눈썹먹을 참기름에 개어서 그리거나 유연, 홍화, 금가루, 밀기름을 배합하여 가는 솔로 아미장(蛾眉粧)을 했다. 그러나 일반 빈농가에서는 아궁이 숯검댕이나 보리깜부기를 이용함이 많았는데 이것은 쉽게 지워지는 단점이 있었다.
옛 시절 화장한 사람을 분대(粉黛)라고 부른 것에서 눈썹먹이 분과 함께 꼭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눈썹은 얼굴의 균형미를 잡아줄 뿐만 아니라 관상학에서도 중요해서 였으리라. 고구려 벽화의 여인들은 눈썹이 반달 같거나 약간 찡그린 모습이다. 옛 미인의 눈썹을 아미(蛾眉)라 했다. 아미란 누에 나방의 더듬이 같은 형상으로 마치 초사흗날 달처럼 가늘게 휘어진 여성적인 눈썹을 말한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 눈썹 그리는 법 십미명(十眉銘)이 있지만 열가지가 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것은 아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아황(鴉黃)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눈썹을 그리기 전에 눈썹라인 주변에 황색을 먼저 바르는 것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런 모습이 되었다. 아황그리는 것이 당시 궁녀들 사이에서 세련된 화장법으로 있었던 듯하다.
3)연 지
연지곤지의 주원료는 주사(단사) 또는 홍화(紅花)이다. 주사는 선홍색의 광물질로 난황과 명반을 섞은후 생초주머니에 넣고 중탕하여 만드는 빨간 색소이다. 색이 선명하고 윤기가 있으나 중독성이 있다. 홍화는 중국에서 전래된 1년생 화초이다. 홍화는 7월경 개화한 꽃잎이 붉어지자 마자 새벽에 따서 절구에 찧고 베로 짜서 그늘진 곳에서 천천히 말리고 가루를 만들어 물 뿌리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체로 친후 환약처럼 만든다. 이것을 쓸때는 기름에 개어 솔로 그리거나 둥근 연지도장으로 찍었다. 빈농가의 경우에는 붉은 고추 말린 것 뒷면에 한지를 덧대고 둥글게 오린 후 양볼과 이마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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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는 평상시에는 입술연지를 바르고 혼례 때는 볼연지와 이마곤지를 하는 풍습이 최근까지 전해 오고 있다. 고구려 안악 3호 벽화의 여주인공은 실제보다 축소된 입술화장을 하고 있어서 당시 앵두 같은 입술모습이 선호되었음을 짐작케한다. 수산리 벽화와 쌍영총 벽화에는 연지, 곤지한 여인이 있고 신라 미추왕릉 출토의 유리목걸이 속의 여인도 그렇다. 또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남자 무용수들이 곤지를 찍었다 했고 일본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인 담징은 일본에 연지를 전해 주었다. 한편 중국 당이나 일본 나라시대의 미인들은 화려한 문양의 꽃도장을 찍었지만 우리는 둥근 모양으로만 찍고 있어서 독자적인 미의식으로 여겨진다.
4)향 유
향유는 장미, 난, 해당화, 수선화 등 향기 좋은 식물의 화즙을 체취하여 기름에 개어 사용하고 말린 향나무(백단향 안식향) 분말을 보관했다가 옷에 뿌리거나 훈증하고 목욕물에 풀어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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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에 향을 피우면 방향제가 되었고 심지어는 난초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켜고 향을 복용한 동자를 곁에 두는 호사도 있었다. 향기 짙은 사향은 궁중이나 기방에서 지니고 있었다. 향갑노리개, 향낭, 선추에 매단 향은 한충향 등으로 동식물의 좋은 향을 합해서 제조하였다. 민가에서는 옥잠화 봉오리에 백분을 한지로 싸서 매달았다가 꽃향기가 스며들면 그 향기와 함께 바르기도 하였다.
향은 고대부터 오랜 역사가 있는 대표적인 화장품이다. 사람의 인품을 고상하게 하고 곽란 등에는 구급약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93년 12월 말에는 부여 능산리에서 아름다운 백제시대의 금동향로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에 고구려 온달의 아내인 평강공주의 몸에서 꽃다운 귀한 향내가 났다 했고 신라 미녀 김정란은 국색으로 몸에서 향기가 난다고 기록하고있으며 <삼국유사>에는 묵호자가 신라 왕녀를 위해 향을 피우고 축원했다는 것이다. 미루어 보면 당시에도 플로럴향, 머스크향 등 각종의 향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조선시대 공장(工匠)의 내의원에는 분장과 향장이 있어서 분과 향을 전문적으로 생산했다. 궁중에서는 여인은 물론 승지들까지도 향낭 패용이 의무적이었다.
5)화장수
박줄기즙, 수세미줄기즙, 수세미 삶은 물, 오이즙, 수박즙, 유자씨즙, 토마토즙 그리고 창포, 박하, 당귀, 홍화, 복숭아잎과 오말류, 느릅나무단풍 등을 우려낸 물은 스킨케어로 얼굴빛을 윤택하게 하는데, 이들을 계절에 따라서 구하여 사용했다. 그리고 납설수(臘雪水)는 미백효과와 기미제거에 좋아서 최상의 화장수였다.
또 계란과 살구씨 분말 섞은 것, 꿀과 마늘 섞은 것, 밀납을 기름에 용해한 것등은 미용 팩으로 보습효과가 뛰어난 것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옅은 화장을 즐긴 우리의 옛 여인들이 피부미용에 정성을 드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집 주변의 화초와 야채류에서 화장수를 찾은 지혜는 매우 놀랍다. 특히 유교이념이 철저했던 조선조의 반가 여인들에게 색조화장은 터부시되어 더욱 청결 화장품과 기초 화장품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6)화장유
머릿기름 중 동백기름은 접착성이 강하고 윤택하고 쉽게 건조되지 않아서 애용되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서 일반인들은 쌀겨기름이나 아주까리씨, 수유씨, 목화씨, 살구씨, 순무씨, 배추씨, 붉은 차조기씨의 기름을 썼고 호도의 푸른 껍질 등으로 검고 윤이 나게 했다. 이때 기름은 풀솜에 적셔서 머리 밑에서 위로 발라 주었다. 또한 밀기름은 밀납에 기름을 섞어 끓인 것으로 접착성이 강했다. 살구씨, 봉숭아씨, 유채꽃씨, 참깨, 들깨, 쌀, 보리등의 기름은 눈썹먹과 연지의 용해제로도 쓰였던 에센스였다. 한편 돼지기름 같은 동물의 지방은 동상을 예방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서민들의 크림이었다.
화장유는 화장수와 함께 탄력 있고 윤택한 피부로 가꾸어 주기 때문에 노화방지를 위한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피부관리약재로서도 오랜 역사가 있다.
7)비 누
팥, 녹두, 콩을 가루로 만들어 꿀로 반죽하여 말렸다가 세수비누로 썼다. 쌀뜨물에 세수하고 쌀겨주머니를 물에 풀어쓰거나 창포나 콩깍지 또는 보리 삶은 물로 세안하였다. 팥 등 콩과 식물에 있는 사포닌 성분에 클렌징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창포탕, 쑥탕, 난탕에서 목욕을 했다. 세탁할 때엔 짚잿물이나 묵은 오줌을 썼고, 어린아이 오줌으로는 세수도 했다. 또 5월 단오에는 창포물(창포뿌리를 달여서 우려낸 물)에 머리 감고 목욕하는 것을 남녀 모두 즐겼다. 그리고 창포 뿌리를 대칼로 얇게 저미고 찧어 가루로 만들어 두고두고 사용하기도 했다. 창포는 세척과 미용을 겸한 물비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모든 제천의식에 목욕은 필수였으므로 또 깨끗한 몸을 위한 비누가 만들어졌다. 일본 평안시대에 한증탕이 널리 보급되었는데 이것은 한국에서 수입된 증기 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불교의 영향으로 목욕이 일반 신도들에게까지 생활화되어 목욕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서적인 <온실경(溫室經)>에도 목욕에 필요한 물건 7가지 중에 팥비누가 있어서 비누 발달에 영향을 준 것을 알수 있다. 또 <고려도경>등을 보면 고려시대 개울에서 남녀가 목욕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실내에서 부분욕을 자주한 듯 집안에 크고 작은 각종의 대야를 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유교의 영향이라지만 혜원의 풍속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름날 개울에서의 목욕은 옷으로 가리면서도 해 온 것이다. 개울가에는 반드시 창포 따위를 파는 방물장수가 등장하면서 말이다.
8)손톱화장
봉숭아 꽃잎을 절구에 빻아서 손톱에 매어 하룻밤 자고 나면 손톱에 고운 물이 들었다. 이때 매염제로 백반(명반)이나 소금등을 사용했다. 또 남원 윤씨의 내간(南原尹氏家內簡)을 보면 봉숭아꽃과 잎을 말려 부비어 경대 속에 두고 일년 내내 물들이기도 했다.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는 것은 아름다움 외에도 붉은색이 액을 막아준다는 속설이 있어서 엄한 조선시대를 이어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원료들은 장독대 울타리 등 집 주변에서 흔히 구하여 자가제조 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꽃은 밤에 피는 것이 많다는 것으로 분꽃, 박꽃, 달맞이꽃.....등은 달의 정기를 받아 밤에 피는 꽃으로 여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대보름날 밤에 분을 바르면 버짐이 안 핀다는 속설이 있어서 강한 믿음을 갖고 널리 퍼지기도 했다. 구전되는 원료들은 중국의 <의심방><본초강목> 조선시대 <동의보감>등 한의서에 약재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많다. 부작용이 예방되는 화장약재로 볼 수 있겠다.
조선시대 화장품은 육의전(가발, 거울, 분, 연지, 장신구 등)과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사상들 그리고 방물장수들이 매매하기도 했다. 품질이 좋다고 소문난 것은 값이 비쌌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홍화를 이시(利市)라 했는데 비싼 값이어서 사고 팔기에 이가 남은 잇꽃이란 뜻이다. 또 납설수(臘雪水) 한 홉이 쌀 한말과 같은 값이었고 옛말에 "창포 한 됫박에 안 넘어갈 기생이 없다"고 했다. 한편 유명한 박가분은 일본 강점기의 허가 받은 근대 화장품의 효시였는데 대갑 1개에 3원이나 하였다. 당시 쌀 한 가마니는 10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인들은 각자의 품위와 사정에 맞게 화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