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국시대


삼국시대에는 장신구의 발달이 세분화되어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장신구 제작과 착용에 있어서 체계적인 계통이 서게 되었고, 신분제에 따른 규제가 있었다.
금속의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 금속재료의 채취가 문제시되고 이에 따라 야금술이 발달되어 한층 장신구의 발달을 보게 되었다.
고구려는 고분에서 출토된 투각초화문(透刻草花紋) 금동관과 투각용봉관 금동관형 장식과 금동 귀고리등이 있다. 상당한 세공으로 놀랄만한 장신구의 시원양식을 나타내었다.
백제는 고구려보다 한층 다양한 장신구를 발견할 수 있다. 나주의 금동관과 송산리 고분에서 발견된 금은제품인 버들잎꼴의 장식은 관모에 꽂았던 장식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것이 관식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무녕왕릉의 발굴에서이다. 즉 왕관. 왕비관에 꽂았던 관식이 발견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백제의 장신구의 발달이 한층 고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환식 귀고리와 비녀가 출토되었고, 무녕왕릉에서는 머리 뒤에 꽂는 뒤꽂이가 출토되었다.
옥 종류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옥이 출토되어 장신구의 발달을 얘기해 준다.
신라시대는 우리나라 장신구 발달의 황금기라고 할수 있다. 고분을 중심으로 발달된 장신구는 거의 순금제품이며 기교성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난 것이 많다.
귀고리는 고리가 굵은 태환식(太環式)과 고리가 가는 세환식(細環式)이 나타났으며, 그 장식의 복잡한 양식과 풍부한 종류는 가장 화려하다.

1)머리장식품
빗은 신라 고분인 금령총, 식리총, 호우총, 천마총등에서 출토되었는데 모두 검은색 칠을 한 나무빗으로 산모양이며 빗살은 가늘고 긴편 이다.
비녀는 신라의 은령총과 백제의 부여 성양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 있는데 백제의 것은 금제오판화장식(金製五瓣花裝飾)을 한 은비녀이다. 또한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머리뒤꽂이는 금판을 잘라서 만들었는데, 전체 모양은 나는 새의 모양과 같으며, 삼각형의 머리부분은 두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고, 세 가닥의 다리부분은 새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그림 1)

2)귀걸이


귀걸이는 다른 시대에 비하여 특히 삼국시대때 남녀의 구별없이 널리 쓰이고 애용되었다. 형태는 3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고리 1개로만 된 소환식(素環式)이고, 다음은 금제 세환에 작은고리를 1개를 연결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주환에 중간식이 연결되고 중간식에 다시 수하식이 이어진다
귀걸이를 구성한 각 부분을 보면 주환은 굵은 태환과 가느다란 세환이 있고, 중간식에는 아주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화롱형구체(花籠形球體)의 것, 반구체를 위아래로 연결한 것, 작은 영락이 돌출된 것, 원통형의 것, 주산알 모양의 것을 연결한 것 등이 있다.
또, 수하식에는 세로로 긴 심엽형 1매의 것, 비취제 곡옥 1개의 것, 금모를 씌운 곡옥의 것, 초실형(草實形), 연주형(蓮珠形) 등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경주 보문리 부부총에서 출토된 태환식 귀걸이는 태환에 귀갑문을 새겼는데, 매우 정교하다. 대체로 신라 귀걸이의 수하식은 심염형이 주류를 이루고, 가야의 것은 초실형이 많다.
이러한 구걸이에 쓰인 재료로는 금, 은, 금동 등이 있었지만 그중에 금으로 만든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3)목걸이
목걸이에는 1줄인 것, 2줄 또는 3줄인 것, 4줄 아니면 6줄인 것 등이 있다. 목걸이에 사용된 재료는 금줄로 된 것, 금제 중공옥으로 된 것, 옥류를 연결한 것, 금옥과 각종 옥으로 이루어진 것등이 있다. 옥에는 곡옥, 환옥, 대추형 옥, 다면옥, 관옥 등이 있고, 그 재료로는 비취, 유리, 수정, 마노, 진주 등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푸른색의 유리옥을 꿰어서 1줄 또는 2 3줄로 하고 중심주, 즉 가슴의 중심에 닿는 위치에 1개의 곡옥을 단 것이다. 백제의 무령왕릉에서는 왕비의 목걸이가 2개 나왔는데 하나는 금줄토막의 양쪽 끝을 꼬아서 만든 금제 9절 목걸이이고, 다른 하나는 금제 7절 목걸이다.(그림 3)
경주시 노서동 고분에서는 공모양에 작은 금장식을 매달아 옥 77개를 연결한 화려한 목걸이가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모양의 옥을 연결한 목걸이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목걸이에 있어 삼국시대에는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것들을 사용하였다.



4)팔지
삼국시대에는 귀걸이, 반지 등과 함께 팔찌도 유행한 장식품 중의 하나로 이 시기의 고분에서는 여러개의 팔찌가 나오고 있다. 팔찌의 재료로는 목걸이와 유사한 옥, 유리, 금속제 등이 사용되었다.
여러 가지 옥을 연결하여 만든 옥팔찌로는 신라의 금령총에서 나온 유리옥 28개를 연결한 것과 주황색, 청색등의 유리옥을 여러개 연결하여 만든 것이 있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유품으로는 표면 안쪽 둘레에 톱니모양을 하고 표면 중앙둘레에는 두 마리의 용을 양각하였으며, 안쪽면에는 경자년(庚子年) 2월에 다리(多利)가 만들었다는 음각명이 있는데 명이 새겨진 팔찌로는 유일한 것이다.
신라의 금령총에서 출토된 것은 표면 측면에 40개의 꽃모양을 만들고 유리옥을 박아 장식한 팔찌가 있다.

5)반지
반지를 손가락에 끼는 풍습은 고구려, 백제, 가야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청동, 은, 금반지 등이 있다.
청동반지는 고구려의 안학궁지에서 청동쇠줄을 타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것이 나왔고, 은반지는 여러개가 알려져 있는데 고구려의 평양에서 나온 것은 굵은 은쇠줄을 휘어만든 소박한 것이고, 신라의 은반지는 윗부분의 중앙이 마름모꼴을 한 넓은 형태이다.
금반지는 윗부분이 넓고 마름모꼴을 한 것이 대부분이나 금령총의 것은 마름모꼴의 윗부분에 다시 마름모꼴의 장식을 배치하고 그 안에 칠보 유리옥을 넣어 만든 것이다. 신라의 금반지는 화려하고 발달된 세공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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