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로버트 뉴턴 펙은 어린 시절을 농장에서 보냈다. 그는 벌목꾼, 제지공장 노동자, 도살꾼, 광고업자 등의 직업을 거쳤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후 저자의 이력을 다시 한 번 살펴 본 것은, 로버트가 행주치마의 출산을 돕는 장면이라든가, 농장생활이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질만큼 상세했기 때문이다. 역시 작가의 경험이 글로 잘 표현된 것이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72년. 내가 태어난 해이다. 이 책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군.


로버트가 자신의 옷을 보고 놀려대는 친구때문에 학교를 벗어나 씩씩거리고 있을 때였다. 로버트는 이웃에 사는 태너 아저씨의 홀스타인 젖소가 꿈찍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고 출산을 도와주게 되고 행주치마라는 이름을 가진 그 젖소의 목에서 혹까지 떼어내 준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로버트는 핑키라는 돼지를 선물로 받는다.


로버트의 아빠는 돼지를 잡는 사람이다. 그의 몸에서는 늘 냄새가 났다. 돼지를 죽여야 먹고 사는 사람, 그러나 로버트는 "아빠의 온몸에서는 열심히 일한 냄새만 가득할 뿐"(p.25)이라고 말한다. 책의 서두에서 로버트의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로버트의 가족에게 '핑키'는 좋은 선물이었다. 가정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들은 사치품이기에 그의 집에는 그런 물건이 없다. 로버트의 엄마는 '갖고는 싶지만 살 돈이 없거나 맞바꿀 것이 없는 물건도 사치품'(p.33)이라고 말한다. 핑키는 앞으로 새끼를 낳을 암퇘지이므로 로버트의 집에 도움이 될 선물이기도 하였다.


아빠는 로버트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그런 아빠도 할 줄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글자를 모른다는 것이다. 로버트가 학교에서 여러가지를 배웠으면 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빠는 "우리에겐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이 있고, 농사지을 땅이 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이 땅이 완전히 우리 것이 될 거야."(p.49)라는 희망을 가진 부자라고 말한다. 세속적인 갈망이나 욕심때문에 고통받지 않고 속상하지 않은 사람이 부자다. 물질적인 것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핑키가 어느 정도 자라자 먹는 양이 많아졌고, 크기도 커져서 로버트와 놀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 정도 자라면 잡아 먹어도 될 돼지지만, 로버트는 핑키가 새끼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계속 보살펴 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핑키는 새끼를 낳지 못했고, 결국은 아빠에 의해 도살된다. 사실 핑키를 죽여야 하는 장면에서 로버트는 부쩍 자란다.


"하늘은 바라보기에 참 좋은 곳이야, 그리고 돌아가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 (p.86)


아빠는 로버트에게 자신이 꼳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엄마와 이모를 보살피며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로버트에게 가르친다. 핑키를 죽여야 했던 그 일도, 살면서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12살, 13살이라는 나이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서 참 모호한 나이일 것 같다. 청소년 소설들이 주로 이 나이 아이들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중요한 경계인 듯하다. 로버트가 12살에서 13살이 되는 동안 겪는 일들은 아빠의 죽음과 함께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도리어 아빠가 죽은 날이다. 그리고 로버트가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그 날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빠가 로버트에게 가르친 것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들이었다. 성실한 노동을 통해 경제를 담당해야 하고,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아빠는 로버트가 학교에서 배움을 계속하여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했다.


청소년들에게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면, 어른인 나에게는 내가 제대로 어른이 되어 있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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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7-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길을 어버이가 아이한테 가르치기에 비로소 `아이키우기`가 이루어지고,
이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가꾸도록 하는 슬기를 북돋우도록 하기에 바야흐로 `가르치고 배우기`가 이루어질 테지요.
사람으로서 배울 것을 아이가 배우도록 우리 어른(어버이)이 잘 이끌어야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