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동화 보물창고 50
진 웹스터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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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새로 나오는 책들이 나를 끌어당기기 때문인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나서, 그리고 한솔이가 어느 정도 글밥이 있는 책을 읽을 시기가 다가오면서 그런 기회가 생기고 있다.

 

좋은 새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책들은 내 아이도 읽어야할 책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집 웹스터의 키다리아저씨를 새로 읽게 되었다. 아,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어? 이런 이야기였단 말이야? 하는 소리가 계속 튀어나왔다. 그랬다. 주디가 키다리아저씨를 만나고 성장하는 과정, 대학생이 된 주디의 이야기...내가 이 책을 읽은 게 초, 중등때이니 그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많았던 것이다. 주인공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 나이가 되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게 있다는 말이다. 그랬다.

 

주디는 키다리아저씨에게 편지를 쓴다. 이 책은 주디의 편지글로 이루어져 있다. 오로지 주디의 관점에서만 쓰여진 책이다. 주디의 입장이 되어 읽어도 괜찮고, 편지를 받는 키다리아저씨가 되어 읽어도 괜찮다. 대학에 가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혹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세계를 알아가는 주디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배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문화를 같이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풍부하게 해주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한솔이에게는 조금 천천히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앨리스가 7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래도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주디의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대학생이 된 주디의 삶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고등학생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다 큰 어른들에게는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맥 빠지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죠? 인생에서 인격이 요구되는 때는 큰 문제가 닥쳤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누구든 위기에 대처하고 참담한 비극에는 대담하게 맞설 수 있지만, 정작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을 웃으며 마주할 수 있으려면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갖추려는 게 바로 그런 인격이에요. 인생이란 제가 최대한 솜씨 좋게, 그리고 정직하게 해야 하는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만약 지더라도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웃어넘길 거예요. 이겨도 그렇게 할 거고요. 어쨌든 전 유쾌한 사람이 될 작정이에요." (p.59)

 

그래, 인생이란 큰 고비의 연속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다. 그런 작고 사소한 일들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뉴스에서 다뤄지는 심각한 문제들도 결국은 사소하고 작은 문제를 잘 다스리지 못해 크게 곪아버린 탓에 일어나는 것이다. 주디의 말에 공감하는 건 바로 그래서이다.

 

"아저씨, 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친절하고 인정 있고 이해심이 많지요. 상상력은 어린 시절부터 반드시 길러야 하는 자질이에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는 상상력의 아주 작은 불씨만 보여도 즉시 밟아 꺼 버렸어요. 그 대신 오로지 의무감만 강조되었지요. 전 아이들이 그 의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아이들은 뭐든 애정 어린 마음으로 해야 해요. (p.108)

 

뭐, 주디가 하는 말이 전부 옳은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의무라는 단어조차 알 필요가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지하거나 밟아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디의 상상력은 주디가 고아원에서 힘겨운 생활을 할 때 힘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났을 때도 큰 힘을 발휘했다. 상상력이 터무니없는 공상과는 다른 말이란 걸 생각한다면 말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것과 처음 만날 때 그 두근거림을 기억할 것이다. 그 두근거림은 멋진 신세계를 만나게 하기도 하지만 좌절을 안기기도 하지만, 가능하다면 좌절보다는 신세계와의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게 보통. 그럴 때 주디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그녀의 유쾌한 상상이 더해져 멋진 결과를 만들어낸다.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것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그것 '상상'의 힘이 아닐까.

 

주디와 키다리아저씨와의 사랑의 결실이 (사실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 신분상승을 이루어낸 여자의 모습처럼 보여지지 않는 것은 주디가 그만큼 사랑받을 자질이 있는 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아, 나도 저비도련님같은 사람이 팍팍 밀어줬으면 좋겠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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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9-2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디는 삶을 스스로 빚으며 누릴 수 있는 예쁜 아이라고 느껴요

하양물감 2012-10-03 12:4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요? 저는 이 책을 새로 읽으면서야 그걸 알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