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24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어른들은 자신이 거쳐 온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그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 시기에는 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들이 많았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까? 지금은 일탈로만 느끼는 것들이, 그 당시엔 우리도 원하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까?

 

바다 위의 집, 노는 애와 이상한 애로 시작하는 이 단편은, 어른들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글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노는 애든 이상한 애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단어로 생각하지만 어른들은 문제 있는 아이를 지칭하는 같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교실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것을 배우고, 시키는대로 하는 아이들, 학교를 다니면서 입시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아이들 틈에서 노는 애와 이상한 애(난주와 은조)는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문제아(혹은 문제아기질이 있는 아이)일 뿐이다.

 

하물며, 은조의 생활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믿었던 쿨한 엄마조차도 은조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하자 보통 어른들과 다를 바 없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 단편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깔려있다. 바로 미네르바 혜림의 죽음이다. 혜림의 죽음은 직접적인 설명도, 굵직한 이야기 구조로도 나타나지 않지만, 5편의 단편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주는 구심점이 되어 있다.

 

초록빛 말, 혜림의 죽음으로 뜻하지 않은 어학연수의 기회를 잡은 아이, 나는 필리핀에서 메이드인 자스민을 뒤를 쫓아가며 헤림이와의 일을 떠올린다. 가진 것이 너무도 많았음에도 늘 불만이 가득하던 혜림이를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스민을 쫓아 자스민의 집까지 가게 된 나는, 초록빛 말을 만나게 된다. 자스민의 집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말이지만 실상은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볼품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드넓은 초원을 갈기를 휘말리며 달리는 말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을것이고, 또 들판을 달릴 꿈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말의 말. 그것은 바로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벼랑,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벼랑은, 읽는 내내 가슴 한끝이 아려왔다. 난주가 아르바이트라고 불렀던 그 일은 난주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하나의 수단으로까지 여겨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관계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난주 부모의 삶도 고되고 지쳐 있다는 걸 알기에 부모의 무관심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주어진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제 할일 다하는 아이(예를 들어 규완이)도 있다고 말하며 난주를 몰아세우기도 뭣하다. 난주를 꼬여 아르바이트를 시킨 스튜디오의 남자나 그 사실을 알고 협박하는 창호는 경화에게서 돈을 뜯는 아이들과, 그 사실을 역으로 이용하는 난주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진다.

 

벼랑 끝에 선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향해 칼날을 세우지 않으면 다른 아이를 향해 그 칼날을 돌리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생 레미에서, 희수. 입시를 위해 그림을 (엄마가) 선택한 선우, 입시가 아닌 자신의 꿈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희수의 모습. 그리고 늑대거북의 사랑에서의 민재까지 아이들의 꿈은 피었다가 지지만 언젠가는 다시 피어낼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을 일깨워주는 것, 혹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 벼랑 끝에 서서 들고 있는 칼날을 자신이나 타인에게 겨누지 않고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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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6-0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이...벼랑끝에 선 아이들을 칭한 것이군요.
음. 칼날을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것. 바로 사랑, 관심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