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아이 메타포 6
클레르 마자르 지음, 이효숙 옮김 / 메타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X출산이라 불리는 익명출산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서두에 소개된 익명출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기고 자신은 아이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이라고 한다. 물론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된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이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이 된 것은 아이와 아이의 부모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익명출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익명출산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의 출신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40만명이나 된다고 하며 그들이 자신의 출신을 찾을 수 있도록 이 법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내 생각은 여러 사람들과 상충하는 의견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솔직하게 말하고자 한다. 일단, 책임지지도 못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아이를 임신을 했지만 낙태를 선택하지 않고 그 아이를 낳아서 생명으로서 존중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그렇게 낳은 아이를 자신이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입양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또한 적어도 익명출산은 출산부터 비밀이 유지되기 때문에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자신의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필요가 없다. 물론 외견상 확연하게 친자가 아님이 드러나는 경우나 양부모가 입양사실을 알려준 경우에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물론 이 책 속 주인공들은 입장이 조금 다르긴 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의지로 익명출산을 결심했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비밀로 간직한 채 살아온 마틸드의 경우와,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친부모를 찾고싶어했던 니나(안느)의 경우는 익명출산이라는 제도가 걸림돌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생각해본다면, 익명출산으로 아이를 낳고, 그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아줌마 마틸드에게 니나(안느)라는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그녀를 찾는다고 해보자. 교사로서의 명예로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그녀에게 세상은 과연 어떤 눈길을 보낼까? 세상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그녀의 가족들은 또 어떨까? 또 하나의 경우는, 마틸드처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삶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 어떨까? 그들은 서로 만나서 행복해질까?

 

물론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마틸드나, 자신의 입양사실을 알고 있는 니나(안느)에게는 2% 부족한 삶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밝혀진 후 그들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순탄한 가정은 별로 많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익명출산의 취지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마틸드와 안느의 특수한 상황(서로가 만나고 싶어한다는)이 일치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이다. 물론 서로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는데 시차가 생겨 하마트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났고, 그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가족들의 이해도 적극적인 편이었다. 이런 가정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한국이라면, 100에 1도 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느와 마틸드의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되는 가운데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평생을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 채 살아 온 마틸드의 이야기는 그녀의 편지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또한 자신이 입양된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더군다나 익명출산이라는 사실) 친부모를 찾고 싶었던 안느가 그녀의 딸을 통해 마틸드를 찾게 되는 과정 역시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녀들에게 익명출산의 법은 장애였지만, 결국은 더 늦기 전에 만날 수 있었다. 앞으로의 그들의 남은 삶이 어떻게 변화할 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통해 익명출산은 물론이고,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입양을 하고 그리움을 안은 채 살아가는 부모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입양된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게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입양을 한 양부모의 입장에서도, 입양을 시킬 수 밖에 없었던 친부모의 입장에서도, 또 입양 당사자인 아이의 입장에서도 여러 각도로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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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5-2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익명출산한 어머니들이 자식 찾아오는 걸 점점 싫어하는 추세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