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첫날밤을 기다리는 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의 시점을 교대로 오가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결혼을 게기로 달라진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번에 쑤욱 읽힐 만큼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읽으면서 문장을 곱씹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읽는 것과 결혼을 한 사람이 읽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비록, 그 길고도 짧았던 그들의 첫날밤이 해피엔딩은 아니었을지라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사랑]과 [결혼]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그녀, 플로렌스의 입장에서 나는 이 소설을 읽었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캐릭터였다. 그, 에드워드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이 소설이 두 사람의 시점을 교차하며 풀어가고 있으므로 어느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보다는 중립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그녀의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녀간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고 있던 시점의 1960년대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현재의 우리 모습과도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부자간에 누렸어야 할 어린 시절을 경험하며 자랐다. 그래서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많았고, 그녀의 어머니보다는 오히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게다가 음악을 공부하고 음악으로 직업을 삼을만큼 예술적인 감성마저 풍부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감성적인 부분이 이성적인 부분보다는 강해보인다.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을 했지만, 그 사랑은 오히려 우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우정을 만족시키는 상대로서의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멋진 남자친구가 되어줄 수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합법적인 섹스의 가능성]이 주어졌을 때는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듯하다.

 

결혼,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합법적으로 섹스를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두가지가 복합적인 게 결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 플로렌스는 섹스의 의무감때문에 힘들어한다. 비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지만, 그 행위를 설명하는 단어들에서부터 그녀는 거부감을 느낀다.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녀 자신은 원치 않는 일인데.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섹스 없이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녀의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에드워드의 시선과 교차하면서 오해와 화해를 되풀이하는 과정은, 하룻밤이 아니라 몇십년의 세월을 축소시켜놓은 듯하다. 큰 사건사고가 없어도 느껴지는 긴장감은 소설을 읽는 내내 팽팽하게 나에게 전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일(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일을 추진할 때 느껴지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두려움 때문에 시간을 늦추려고만 했다. 결국은, 실패로 끝난 첫날밤, 그녀는 그럴 수 밖에 없엇음을 깨닫는다. 그게 그녀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음악적으로 좀더 성숙해지는 것이었고, 음악적으로 좀더 성공하는 것이었다. 결혼은, 가족을 만들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하는 필수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를 떠나 이혼수속을 밟는 플로렌스의 결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결단이 이왕이면 결혼 전에 이루어졌다면, 서로에게 더 나은 결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해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사실, 결혼 첫날밤에 이혼하는 커플 이야기가 그리 큰 뉴스가 안되는 요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른들은 쯧쯧 혀를 찬다. 나는 그래도 그게 빠른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첫날밤의 실패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한가지 방법을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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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4-0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리뷰가 참 반가워요.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저도 이 책을 읽어야겠어요.

하양물감 2008-04-08 20:51   좋아요 0 | URL
^^; 두 사람의 감정 변화가 참 잘 묘사된 작품 같아요^^

다락방 2008-04-10 23:3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 좀 힘들었어요. 조금 쉬었다가 읽어야 할까봐요.

하양물감 2008-04-1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작가의 책을 연이어 읽을 때는 한번쯤 숨고르기를 해야할 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책은 아직 안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