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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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의 설정때문에 한편으로는 불쾌했고, 한편으로는 불안을 느꼈다. 그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도 꽤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작가가 쓴 '글쓰기에 대하여/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를 보았을 때 호기심이 일었다.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의 저술 활동에 대한 책도, 특정한 사람, 시대, 국가의 글에 대한 책도 아니다. "(p.16)

사실 이 책 제목만 보고 그런 책인 줄 알았다. 이 책의 내용을 목차를 통해 살펴보자.

제1장 길 찾기: '작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제2장 이중성: 왜 항상 둘로 나뉘는가

제3장 헌신: 작가가 숭배해야 하는 제단은 어디일까

제4장 유혹: 누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줄을 조종하고, 악마의 책에 사인을 하는가

제5장 성찬식: 작가, 독자, 그리고 매개체로서의 책

제6장 하강: 누가 왜 지하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걸까

'글쓰기'란 무엇이며, 독자들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글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을 '작가'라고 부른다면 정확히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독자와 작가 자신이 작가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글을 왜 쓰는지 그 동기란 것이 작가들마다 공통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기는 너무도 많아서 어느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작가들에게 글을 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물어본다.

첫번째 장에서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들의 어린 시절은 '작가'가 될 떡잎이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책은 늘 곁에 있었고, 독서광이었으며 상상하는 태도 등이 그들을 글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

글쓰기에 관한 여러 책이 있지만, 과정이나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로서의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지도 몰랐지요.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어요."(p.43)라고 말한다.

사회가 단지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여성' 작가로서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조금이라도 의심했더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작가는 능력적인 측면에서 남녀구분이 없다고 말하지만 남녀 작가는 비평가들에 의해 다르게 취급된다.

남성 예술가들에게도 성적인 것, 민중을 자극하는 정치적 견해, 종교에 대한 비판적 의견, 또는 지나친 폭력과 누추함 등에 대한 제재가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 역할을 맡은 남자가 삶을 사는 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는데, 여기서 '삶은 산다'는 것은 술, 여자, 노래를 즐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여자는 술과 와인을 가까이 하면 헤픈 술주정뱅이로 간주됐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었다. 평범한 여성이 결혼을 하는 건 정상이었지만 여자 예술가는 아니었다. 남성 예술가들은 예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여성 예술가에겐 그런 삶이 걸림돌이라고 여겨졌다. (p.128)

그래도 글쓰기는 다른 예술과 달리 외견상으로는 민주적이다. 즉, 거의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표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쓴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가'는 책 위에 적힌 이름이고, 나는 그와는 다른 사람이다.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일상을 살고 또 하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자아와 일상생활을 하는 자아는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중성을 가진다.

작가들의 전기를 보면 돈 문제보다 연애, 신경쇠약, 중독, 음주, 질병, 나쁜 습관 등을 많이 드러낸다. 그러나 작가가 쓰는 글에도 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작가는 돈에 무관심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글을 쓰는 것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이유는 보람을 얻기 위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p.105)

저자는 문학적 가치와 돈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돈이 되는 좋은 책, 돈이 되는 나쁜 책, 돈이 안 되는 좋은 책, 돈이 안 되는 나쁜 책. 진지하게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예술의 영역과 돈의 영역을 중재해줄 수 있는 중재인을 잘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재인들이 작가를 대신해 몸값을 올려주고 작품을 낙찰시켜주는 동안, 작가는 품위를 지키며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네 번째 장에 오면 작가를 환상주의자, 숙련공, 사회 정치권력의 참여자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시인은 세상의 공인되지 않은 입법자다."(p.146) 한국에서 작가는 사회참여의 역할이 무척이나 크게 여겨진다. 근현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서양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된다. 작가들이 쓰는 글이 세상 밖으로 나가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낳는다면 윤리, 책임 그러한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작가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그것을 책에 담는다면 그가 다루고자 하는 사안에 대해 작가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등장 인물에 대한 판단과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은 나는 독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러한 상상을 풀어놓고 독자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가는 상상을 마치 실화처럼 풀어낸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쓸까? 어떤 글을 쓰든 작가는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쓴다. 어떤 독자가 그들의 글을 읽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독자 역시 작가를 볼 수는 없지만 그들 사이에 연결된 텍스트를 통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물론 글을 쓸 때 상정한 독자는 책이 대량생산됨으로써 더더욱 누군지 모를 독자로 바뀐다. 독자가 글을 읽을 때 작가는 어디에도 없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위해서이다.

글쓰기와 작가에 관해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라 책 속 주인공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작용은 경험하기 좀 힘들긴 하지만, 작가를 배제한 채 책 속 주인공과 나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작가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작가의 성향과 취향을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나와 대척점에 선 작가는 피하기 때문이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겠고, 일반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을 기대한 독자라면 조금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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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3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애트우트 여사 인터뷰에 처음 출간 했던 시집이 딱 8권 팔렸다고 출판사로 부터 통보 받았다며
길에서 전단지 돌리듯 시를 팔아야 인쇄비용을 충당 할 수 있을지 고민 했다고 하네요

영미권 작가들은 한번 베스트 목록에 올라가면 다른 언어권 작가들에 비해 수익이 많이 올라가지만

인정 받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책 출간 당시 찜! 했다가
몇장 읽어 보고 작법에 관한 책이 아닌것 같아서 보류 ㅎㅎㅎ

하양물감 2021-09-23 06:3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목때문에 작법으로 오해하기 좋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