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어딘가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것은 '건축물'이다. 물론 힐링을 위한 여행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올 수도 있지만 우리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많은 것들이 그 지역의 건축물이 아닐까? 여행지를 선택할 때 우리의 눈을 호강시켜줄 자연과, 스릴을 만끽할 레저도 고려 대상이지만 어디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숙소 선정도 아주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 역시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에 대해 혹은 건축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은 그렇게 한국 건축물의 특징을 찾아 나선다.
"종합적인 교양과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춘 건축가의 직능을 이해한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건축가는 19세기 발, 20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등장한다."(p.14)
이 책에서는 우리의 건축이 목조건축이어서 갖는 특성과 온돌로 형성한 공간 이용에 대해 설명한다.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부 건축 문명의 동과 서, 나무 건축과 돌 건축
2부 전통 건축, 단조로움 속의 차이를 발견하다
3부 한옥에서 아파트까지, 가장 일상적이고 친밀한 건축의 진화
4부 세계와 만나는 한국 건축 문명
저자는 건축적 교양을 기르기 위해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건축을 다룰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의무 교육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생활인을 양성해야 한다면 적어도 자기에게 알맞은 집을 고를 능력, 거대한 실내에서 재빨리 피난처를 찾는 법, 도시 문명의 형성 이해, 정치 공략으로 휘둘리는 도시 프로젝트의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물 또한 상품이라고 봤을 때 이 상품의 수준은 소비자의 안목과 구매력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안목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교양과 경험을 필요로 하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이런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이런 교양이 필요하지 않을까?
건축은 자연조건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부터 모내기를 하는 논농사가 보급되어 자연스럽게 낮고 평평한 지역은 논으로, 그 주변은 주거지가 되었다. 그 외의 활동은 산에서 일어났는데 조상의 산소, 서원이나 향교, 절과 성황당, 산신각이 들어서는 신앙의 공간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지금도 주말이면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라는 것이 조선 후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화의 시기별 다양성과 시간적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건축은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산업, 사회, 자연 환경이 복합된 결과물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기, 그래서 많은 것들이 남아서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 후기의 그것을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옭아매고 있는 것도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의 산업, 사회, 자연 환경은 그때와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바뀌어야 할 것도 분명 많을 것이다.
"건축은 안이 비었기 때문에 쓸모 있고, 우리는 그 빈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건축과 토목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건축은 빈 곳을 이용하는 것이고 토목은 구조물을 이용한다. 피라미드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미터씩 되는 돌을 수백만 개 쌓아 그 안쪽의 조그만 틈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판테온은 하늘을 닮은 둥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 얇은 껍데기로 둘러싼 것이다."(p.34)
건축의 목적이 내부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관건은 지붕을 덮는 일이다. 이때 사용되는 기본 구조는 아치 구조(조적식)와 기둥-보 구조(가구식 구조)이다. 돌은 기둥 재료로는 적합하지만, 보로는 부적합이다. 그러나 돌은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에 종교 건축이나 귄위 건축에 사용되었다. 기념비적 건축 또는 기념비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석조인 것은 이 때문이다. 나무는 가공성이 좋아 건축물로 쓰기에 좋아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굳이 건축 문명을 돌 조적식과 나무 가구식으로 나눈다면 그것은 최고급 기념비적 건축물을 무엇으로 지었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중국 건축 문화권에서는 궁전, 사찰도 모두 나무로 지었다.
중국 문명권이 가장 크게 뒤지는 분야가 조형 예술 분야이다. 돌을 쓸 줄 몰라서 못 쓴 것이 아니라 안 쓴 것이다. 왜냐면, 서양과는 다른 '영원'에 대한 생각 차이 때문이다. 유형한 것은 유한하고, 영원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 즉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전 주조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동상이나 조각 대신 비석을 세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는 매우 한정된 지역에 국한된 특수한 문명권에 자리하고 있다. 또 형식보다는 내용을 숭상하고, 기념비보다는 의례 행위, 조형보다는 문자, 높이보다는 깊이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p.87)
2부에서는 집짓기의 설계, 풍수, 기둥 세우기, 보와 도리, 지붕에 대해 설명한다. 전통 목조 건축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지붕, 기둥, 공포, 기단과 계단'이 있고 단청과 세부 장식, 문과 창의 형식 등으로 건물의 격식과 상징적인 의미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닥 형식이다. 크게 땅 바닥과 뜬 바닥으로 나뉘는데, 흙바닥을 그냥 다져 사용하거나 전돌을 까는 것이 땅 바닥식이고, 온돌이나 마루를 깔아 실내 바닥을 한 단 높게 올린 것이 뜬 바닥식이다. 즉 신발을 신고 사용하는 공간은 땅 바닥식, 신발을 벗는 공간은 뜬 바닥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