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키노의 여행キノの旅-The Beautiful World 극장판, 2006

감독 : 와타나베 코시

원작 : 시구사와 케이이치

작성 : 2005.10.23.


  용량도 별로 크지 않으면서 집에서 잘 돌아가지 않는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딸려서 그런 것일까요? 펜티엄 3중에서도 웬만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업그레이드가 되어있다 생각했던 녀석이 버벅 거리자 피아노를 가져와서 ‘미’를 치고 싶어지더군요(웃음) 그런고로 친구 병문안을 겸해 친구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펜티엄 4이니 잘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고통 끝에 찾아온 작은 기쁨으로 접한 작품을 조금 소개해보겠습니다.


  이야기는 한 귀여운 소녀의 기상으로 시작됩니다. 전원생활을 연생케 하는 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아침. 그러던 중 오토바이 한데를 두들기며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에르메스’라고 불려진 오토바이가 말을 하시 시작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책을 일러스트와 앞서 감상 기록을 했던 TV시리즈만 봐서는 성별이 쉽게 짐작되지 않던 ‘키노’. 시작을 알리던 소녀는 바로 인간 주인공인 ‘키노’였던 것입니다.


  스승이라 불려지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키노. 그녀는 집안일을 거들며 사격술을 배우는 등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냇가에서 선대(?) ‘키노’를 연상시키는 갈색 코트의 어른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 대신 목숨을 버린 ‘키노’의 기억을 가진―사실 본인마저 자신의 본명을 잊어버린―소녀 키노. 그녀는 스승에게 나그네에게 들은 키노의 마을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 결국 첫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결국 키노의 어머니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 소녀는…….


  TV시리즈에서 전설 속의 총잡이로 등장하며 정작 몇 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등장이 있었던 스승과 아직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키노가 등장하는 이야기. 소설에서도 한참 뒤에 나온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지만, 키노가 어떻게 그런 강함을 지녔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이야기라 말하겠습니다.


  사실 ‘극장판’이라기에 최소 1시간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다 보고나니 TV시리즈 1회 분량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2회 분량의 콜로세움 편을 TV시리즈가 아닌 극장판으로 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뭐 이미 지나간 버스.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밖에 없군요(웃음)


  이 세상에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 중인데도 자신이 여행의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경우도 있겠군요. 저는 모든 이들이 인생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가는 것과 작품 속 키노가 성벽으로 둘러 쌓여있는 마을을 하나씩 방문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 한다 랄까요? 그렇기에 여행 중인 자는 강해져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럼 비록 조건 반사적인 행위라 생각되지만, 키노의 첫 살인 행위 때의 키노가 한 말을 마지막으로 감상기록을 마치겠습니다.


“이젠 내가 키노다!!”


Ps. 키노의 여행의 파일럿 필름으로 생각하고 있던 탑의 나라free lance편이 극장판 DVD와 함께 묶여 출시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검색 중에 콜로세움 편이 하나로 묶여 진다는 첩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에. 그건 그렇고 소설이 원작이라면서 왜 감상문이 없냐구요? 후훗.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라고만 해두겠습니다.



TEXT No.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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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키노의 여행キノの旅-The Beautiful World TV시리즈, 2003

감독 : 나카무라 류타로

원작 : 시구사와 케이이치

등급 : 13세

작성 : 2005.10.23.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느낌?

―즉흥 감상―


  음~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가 언제였더라……. 입대전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무엇인가 생각할만한 작품을 찾고 있던 저에게 추천이 들어왔었던 작품. NT노블이라는 소설로서 먼저 접했었던 작품입니다. 만화 같은 삽화가 섞여있어도 각 상황의 장면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있군요. 하지만 무엇인가 끌리는 여행의 기록을 접하던 중 애니메이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전역 후 드디어 극장판을 두고 먼저 TV시리즈를 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인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던 작품의 영상물을 조금 소개해보겠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키노’라는 이름의 소년과 말을 할 줄 아는 ‘에르메스’라는 이름의 모토라도의 여행. 그 여정 속에서 들리게 되는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떤 마을이던 3박 4일 동안의 거주와 어떤 일이든 정의내리지 않는 중립의 자세로서 다른 이들의 말보다도 자신의 느낌에 따라 하루하루 새로운 만남을 맞이하게 되는 키노와 에르메스의 끝없어 보이는 여행. 그 속에서 키노는 과연 자신이 찾고자 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한창 여행에 대한 동경에 빠져있었고, 훗날 파울로 코엘료 님의 ‘연금술사O Alquimista’의 이미지까지 더해 ‘여행이란 무엇인가? 난 왜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등의 질문을 떠올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사실 여행보다도 캠핑을 좋아하는 저는 키노의 여행을 통해서 가지게 된 낭만, 즉 오토바이 한대와 1인 캠핑장비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웃음)


  이 작품을 보다보니 가치관의 다양성에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입국 절차를 밟고 성벽을 통과해 방문하게 되는 ‘나라’는 각각 다른 문화와 전통으로 주인공과 시청자들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상을 가진 문화. 그 모든 이질감의 차이를 키노는 그저 중립적인 모습으로서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갑니다. 아무리 정보통신망이 세계화 되고 대중화 되어갈지라도 우리는 과연 다른 문화권의 나라를 안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관심이 없어지는 개인주의가 확대되는 현대사회 에서 말이지요. 후훗. 키노의 말처럼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며 이번 감상기록을 종료하고자합니다.


  혹시 NT노블로 ‘키노의 여행’을 접하신 분들 중 시드 왕자의 액션을 보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콜로세움편이 애니메이션으로 있으니 참고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어서 극장판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Ps. 책은 프롤로그가 ‘b’에서 ‘a’로 넘어가는 반면, TV시리즈는 프롤로그가 ‘a’에서 ‘b’로 넘어가더군요. 음. 그게 뭐 중요할까 생각은 되지만 서두 아무튼 영상적으로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되었습니다.


TEXT No.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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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야마다군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 대원DVD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 : 이웃집의 야마다군となリの山田くん―My Neighbors The Yamadas, 1999

감독 : 다카하타 이사오

원작 : 이시이 히사이치

작성 : 2005.10.08.


“우와!! 우와!! 우와!!”

―즉흥 감상―


  어머니의 부탁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듯 보이는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던 도중. 기분도 풀 겸 어머니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재미있어하시더군요. 그럼 2001년도에 세종대학교에서 만화그리기 대회 심사결과를 기다리던 중 아버지와 함께 봤었던 추억의 작품을 조금 소개해보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면서 완성된 할머니의 소개로 그 시작을 엽니다. 그렇게 엄마, 아빠, 오빠 순으로 막내둥이 귀여운 여동생 노노코의 가족소개로 야마다 가족의 이야기가 하나둘씩 이어집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흐름이 아닌 짧고 짧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며 가족소개와 가족인원들의 관계, 나아가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지는데…….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저는 파란화면 속의 토토로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고 있고, 미야자키라고 하면 생각나는 그림체가 아닌 전혀 다른 그림체이기도하지만, 점, 선, 면, 소리로 가볍고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접할 수 있었던 작품에 엄청난 놀라움을 받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작품을 조사해보니. 역시 신문연재용 4컷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소개되어져있군요. 그런 간단한 그림을 스크린으로 옮겨 그저 감탄만 나오게 표현하다니. 마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듯한 배경과 자연스러운 펜 터치의 표현들에 무엇인지 모를 대단함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100% 디지털이라니!! 우와!! 우와!! 우와!!


  ……아아. 감탄의 늪에서 빠져나오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보이는군요.


“가족.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산업혁명 이후 핵가족화 되어가는 가정. 더불어 출산율마저 떨어지며 독신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 속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버렸습니다. 물로 요즘도 바로 아랫집에 작은 아버지 댁이 있다고는 하지만, 옛날처럼 열 명에 가까운 인원이 한 자리에서 밥 먹던 때가 왠지 모르게 그리워지는군요. 물론 명절이나 가족행사 때는 많이 모이긴 합니다만, 요즘 들어 아침 식사 말고는 거의 혼자 밥을 먹다보니 그런 정겨움이 그리워지는 듯 합니다.


  이번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살며시 듭니다. 특히 세월의 연장자와 가장. 그리고 다음 세대라는 3대가 한 집에 살며 일어나는 지극히 가정적인 이야기들을 보며,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새로운 가정을 만들게 되는 신랑신부에게로의 야마다 과장의 ‘포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라나는 축사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며, 이번 감상기록을 종료하고자합니다.


Ps. 친구들과의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저. 시간도 때울 겸 시내를 배회하던 중 요즘말로 ‘질러버리다’라는 사태를 발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중고음반 매장에 들어서보니 오시이 마모루 님의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Ghost In The Shell’와 ‘이노센스Innocence:イノセンス’ DVD가 보였고, 마침 주머니에 돈이 있어서…… 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허허헛. 아무튼 즐겨보겠습니다. 아자!!


TEXT No.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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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땅끝의 저주 hunter, 1996
저자 : 김선
출판 : 다솔
작성 : 2004. 9. 25.


   앞서 기록한 '아홉 번째 날'과 같이 구입한 작품입니다. 익히 아셨겠지만 제가 미스터리나 저주, 초자연적인 내용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물론 걱정하시는 것처럼 글자 하나 하나를 다 믿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와 생애의 현상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지요. 일상은 무조건 똑바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만일'의 경우는 언제나 당연시되는 것을 뒤엎어버리니……. 가끔씩은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이런 류의 작품을 접하며, 또한 즐기는 것이랍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인 '땅끝의 저주'는 5개의 단편이 묶인 작품입니다. 어느 한 이야기를 기준 잡아 적어 볼까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저는 다 흥미 있게 읽어서 말입니다―어느 하나를 딱 꼬집기가 죄송하군요.
   뱀과 뱀을 잡은 땅꾼과의 이야기, 영생을 위한 담비―괴와 사람간의 이야기, 황금 멧돼지와 사람의 욕심 그리고 보답, 붉은 새치 늑대와 사람의 탐욕, 범과 사람의 연. 이렇게 사람과 동물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치 권선징악이 뚜렷한 현대판 동화를 읽는 기분이랄까요? 특히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특수한 사건만을 전담하는 김 형사의 등장으로 동물과 인간과의 저주와 음모 등을 파헤치는 내용이, 마치 한국형 X-file을 보는 것만 같아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전설, 민담, 괴담. 예전에 찾았던 환상문학의 정의를 저는 앞의 세 가지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따지자면 이번에 읽은 작품은 그 세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군요. 다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과 동물의 유대관계를 상실해 자연의 균형이 깨지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말입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예전에 신문에서 연재되었던 동물 관련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제목이 '신비한 동물 이야기'인지 '신기한 동물 이야기'인지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군요. 지금 감상문을 기록하는 곳이 집이라면 수납장 어느 한구석에 있는 스크랩이라도 찾아 볼 것인데 말입니다. 그것도 이 작품처럼 동물과 사람―특히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인 무대에서 밀렵꾼과 동물의 이야기가 많다―과의 이야기가 가득했었습니다.


   기계화, 도시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자연의 지배자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인류. 무한의 은혜이자 모든 것의 어머니인 자연을 파괴시키는,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자연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선조 들의 지혜를 무시하며, 오로지 앞만 보며 새로운 문명에만 빠져들 줄만 아는 자들. 우리 인류 또한 자연 앞에서 한낮동물일 뿐인데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의 주인인양 살려는 것인지 원…….


   인류는 과학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도道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만을 봐왔기에 정작 인과의 법칙을 잊어버렸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본디 동양철학은 모든 것의 융화와 공존을 말하는데 왜 그것을 무시하기 시작했을까요?


   상부상조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래도 신기한 것이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세계 각지의 종교가 섞여있어도 종교전쟁, 분쟁 같은 것이 그리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무의식적으로라도 상부상조―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로부터 조상 님들은 동물과 공존하며 살았습니다. 그 어느 것도 완벽할 수 없었기에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렇다보니 옛날이야기에 보면 동물과 인간사이의 은혜 갚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반대로 서로에게 저주를 내리는 이야기도 없지 않아있지만요.
   은혜는 은혜로 갚고, 복수는 복수로 갚는다. 공존의 혜택을 저버린 인류는 과연 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의식치 못하게 자연으로부터 수많은 은혜를 입으면서까지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는 인류라…….


   '땅끝의 저주'에는 작은 마을단위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지만. 글쎄요? 이런 이야기가 전 세계적인 것이 되어 동물들의 대 반란이 된다면 인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듯한 마을 전설 같은 이야기. 이렇게 이번 감상의 기록을 종료하는 바입니다.


TEXT No.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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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 J : 수퍼비트 [dts] - 할인행사
로버트 론고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 : 코드명 J Johnny Mnemonic, 1995

감독 : 로버트 론고
주연 : 키아누 리브스, 돌프 룬트그랜
등급 : 15세 관람가
작성 : 2002. 10. 18.


  오랜만에 영화감상문이군요^^ 제가 시험 기간에는 영화를 보기 힘들어서 그랬답니다. 죄송^^

  요즘 시내 지하상가(저는 대구사람)나 CD판매점에 들어가보면 영화 CD의 가격이 많이 낮아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장에 4천 원으로 3장이면 1만원에 살수가 있지요. 그 이유는 영화 DVD의 시장유통 등을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저도 집에 영화 DVD가 한편(스티븐 아저씨의 A.I.) 있는데 촬영인터뷰 등이 있어서 좋더군요^^

  이런 이런 필요 없는 서두가 너무 길었군요. 그럼 이번 작품에 대해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현재의 인류도 그렇지만 이 영화의 세상도 전기 없는 하루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알고 계시지요? 전자기기는 일정량의 전자기파를 발생시킵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그 전자기기의 전자기파 등으로 인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절반이 전자기파로 인해 병(NAS-Nerve Attenuation Syndrome-신경감퇴증 또는 신종 신경쇠약증)을 가지고 있는 세상.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조니’라는 이름의 ‘전달자’. 그는 자신의 뇌에 기계(실리콘 칩)를 붙여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어떤 데이터를 옮기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비밀리에 어떤 데이터를 운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빼앗으려는 세력과 마찰을 일으키게 됩니다. 순식간에 데이터를 가진 체 도망자가 되어버리는 조니. 그러나 도망자가 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용량초과의 데이터 입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덤으로 도주과정에서 그 데이터의 전송과 다운로드에 필요한 암호를 파손 당하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자신에게 일을 의뢰했던 사람의 배신으로 조니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도망자 조니. 몇 번씩의 죽음의 찰나에 어떤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 도주 상황에서 어떤 지하세력(?)과 접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조니는 자신의 머릿속에 든 정보가 NAS의 치료법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

  처음 이 영화가 나왔을 때 NAS이라는 병에 대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그것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다라는 이야기였는데. 적당한 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휴대폰을 안쪽주머니나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와 ‘해드폰 등의 자성물질을 오래 쓰고 있으면 머리 쪽의 신경기능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라는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자세한 자료를 찾아볼려고 해도 잘 안 보이는군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저만 그런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전자파를 느낄 수 있답니다.(<-둔감한 듯 하면서도 엄청 예민한 사람) TV나 컴퓨터, 형광등, 냉장고 등 기타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신경쓰이는 소리들. 영화 속의 세계관이 현실화된다면 저도 NAS증후군의 대상이 될까요? 생각만 해봐도 끔찍하군요.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전자기에 대한 경고? 자신의 기억을 소중히 하라?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단순한 미래형 SF액션으로만 보이는군요. 거기에 나름대로 심리적인 것을 섞은 것은 ‘실험정신’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떤 표현을 하기에는 빈약한 영화라는 것이 저의 최종 느낌입니다.

  Ps. 웹 서핑에 대해서 앞에 올렸던 너바나와 비슷하지만 차원이 다른 액션을 볼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TEXT No.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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