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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굳이 추석연휴에 이 책을 집어든건 달리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남편이 불안해 한다^^
사실 나는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별로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표지 그림이 너무 강렬해서다. 아나 떼레사 페르난데스의 그림이라는데 그림 속 여자는 빨래를 널고 있지만 여자의 존재는 거의 가려져 있다. 존재하는 동시에 말소된 여자. 이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은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금까지 최소한 일년에 한번 이상은 `양성평등 글짓기 숙제`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좋은 숙제도 있구나 하며 아이와 함께 책도 읽고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얘기해 보기도 하며 소재를 찾아서 글짓기 숙제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바빠져가고 숙제는 점점 형식적이 되어가고 소재는 점점 떨어져갔다. 급기야 아이는 ˝난 별로 불평등한 걸 느끼지도 못하겠는데 자꾸만 글짓기를 하라고 한다˝고 짜증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딸과 함께 읽어볼 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여성의 온전한 권리를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
—그녀의 이름은 아프리카였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였다. 그는 그녀를 식민지로 삼았고, 착취했고, 입을 막았으며, 그런 일을 그만두기로 한 때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가령 코트디부아르 같은 곳에서 그녀의 사정을 결정하는 일에 위세를 부렸다. (P.67)
—IMF총재는 성폭행으로 고발당했다. 이 용어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성`을 지우고 `폭행`에만 집중해보라. 폭력에,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행위에, 모든 인권 중에서도 기본인 신체보전권과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행위에. (P.75)
힘 없는 사람들과 권력을 쥔 자들. 두 세계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그들의 싸움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가끔은 우리가 전투에서 이기지만, 어쨌든 전쟁은 계속된다.˝ 고 작가는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여러 사례에서 힘없는 여성이 가끔은 승리한 것처럼 보이나 침묵과 위증을 요구받으면서 많은 경우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물을 짜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 세상을 창조하는 것,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것, 자신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 아버지들만이 아니라 할머니들을 호명하는 것, 직선만이 아니라 그물을 그리는 것, 청소부만이 아니라 제작자가 되는 것, 침묵당하지 않고 노래하는 것, 베일을 걷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내가 빨래줄에 너는 현수막들이다.(p.118)
과거에 비해 여성의 권리가 완전해졌다고 생각되는 요즘에도 잠깐만 뉴스를 보면 세상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가혹하다. (남자들도 힘든 건 인정하지만)
남자들, 특히 가까운 배우자나 연인, 과거의 연인에게 살해되는 여자들의 기사가 점점 많아진다. 아직도 여자는, 아이들은 남자의 소유물로 여겨지고 많은 경우 침묵을 강요당한다. 침묵하지 않고 소리를 내는 여자를 비난한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이미 완성됐다는 통념을 깨고 아직도 여성들이 얼마나 평등하지 못한지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하필 추석연휴에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고, 아직도 아들 손에 물묻히고 부엌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는 시어머니의 눈총을 받아야 했고, 연휴가 끝나면 바로 친구들에게 소집되어서 속풀이 속사포랩을 들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