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손꼽다보니 그 영화들이 모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였다. 말하자면 그만의 분위기를 나도 모르게 알아챘다는 것인데 이것은 좀 둔한 편인 내게는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에세이집을 냈다고 했다. 처음엔 도서관에나 가서 빌려 봐야지 했다.(아무리 팬이라지만 나는 냉정한 여자^^) 그렇게 도서관에 책이 들어오길 진득하게 기다리는 중인데 여기 저기에 실린 기사들을 보니 호기심을 참을 길이 없어 결국 주문을 했다. 주문하면서 보니 출간 기념으로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하는 <걸어도 걸어도> 시네마톡 행사가 있었다. 오~ 영화는 이미 봤지만 진작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라이브톡을 함 가봐? 해서 이벤트 참여 댓글을 달아놓고는 사실 잊고 있었다.(명동까지 나가는건 너무 멀기도 하고 토요일 저녁은 너무 바쁘기도 하고...)
그런데 덜컥!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 토요일이 행사니까 일단 사놓은 에세이집부터 빨리 읽어보자고 책을 펼쳤다. 이 책 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첫장부터 들었다. 맘에 드는 문장을 마구마구 줄을 쳐가며 읽다가 문득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아껴 읽고 싶었다. 생각하고 음미하고 걷는 듯 천천히.
이 사람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어! 그의 영화가 빚어낸 아름다움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서 주워서 나에게 `이것 좀 봐` 하고 보여준 것이다. 그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멋진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충만해진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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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9-1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 <공기인형>의 감독이지요.^^
저도 요즘 이 책 읽다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다시 한 번 보았어요~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참 좋았습니다~*^^*

살리미 2015-09-18 08:16   좋아요 0 | URL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보면 볼수록 더 좋은 작품이 많은데 책을 읽다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참 좋았죠? 다음 작품도 기대되요.

해피북 2015-09-18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이웃님들은 책만 좋아하시는게 아니라 영화도 즐기시구 좋아하는 감독도 있으시니 참 멋지고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영화를 못봐서 영화부터 감상해야겠어요^~^

살리미 2015-09-18 13:51   좋아요 0 | URL
<아무도 모른다>를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고레에다의 영화중 가장 강렬한 스토리일 걸요? ㅎㅎ <공기인형>은 배두나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호기심에 봤고 이 때까지만 해도 감독 이름은 모른채 영화만 찾아보다가 나중에서야 모두 한 감독인걸 알았죠. 그래서 고레에다 감독의 모든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보통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지루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 잔잔한 일상에서 오는 감동이 좋더라고요^^

인디언밥 2015-09-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걸어도 걸어도 감독이시군요.. 인상 깊게 봤던 영환데.. 말씀하신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겠어요.. 나약함이 필요하다는 말 좋네요

살리미 2015-09-18 13:53   좋아요 0 | URL
그죠? 감독의 영화에 특별히 쎈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았어요. 에세이집에서는 영화보다 더 직접적으로 자기 말을 하니까 참 좋네요^^

icaru 2015-09-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만 봤는데요, 영화가 참 좋았습니다. 영화보고 나서 찾아보니까, <아무도 모른다>의 동일 감독이었더라요(이 영화는 못 봤고 유명세만 익히^^;;;) 감독이 쓴 에세이라 하니, 꼭 좀 읽었으면 싶으네요 ^__^

살리미 2015-09-18 13:56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에세이집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들게 된 감독의 사연이 나오는데 정말 재밌고도 뭉클해요^^ 더 궁금하시라고 여기까지! ㅎㅎ

blanca 2015-09-1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 읽었는데 역시 감독이 뭐랄까, 아주 진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아쉽게도 <걸어도 걸어도>만 봤는데도 너무 좋아서 얼마나 여운이 오래 가던지... 다른 영화들도 찾아 봐야겠어요. 이벤트 당첨 축하드려요. 너무 즐거운 시간이 되겠어요.

살리미 2015-09-18 15:41   좋아요 0 | URL
그 어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보다도 자신의 일을 소신껏 해나가는 모습이 참 멋지죠? <걸어도 걸어도>를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티비로 봤는데 이번 기회에 극장에서 보게되어 또 다른 감동이 올거 같아요^^ 축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