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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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 정미경에 관해, 나는 몇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 그녀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 나와 동향출신의 그녀는, 이화여대를 나왔고 서울대 미대 학장인 화가 김병종의 아내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큼 글도 잘쓰는 그는,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것 만큼이나 아내의 글도 아껴준다. 2002년이었던가. 가나아트센터의 오프닝을 갔다온 강샘이 웃으며 전해주신 말이다. 요즘 남자들은 아내를 참 사랑해. 글쎄 김병종 교수가 말야, "이 사람이 소설을 쓴답니다." 라고 온통 어찌나 대견해하며 자랑을 하는지. 그해에 그녀는 작가동네 신인상을 받았다.

둥글둥글 얼굴에 살집이 좀 있고 코끝이 둥글고 말투가 조신해 여려보이는 그녀는, 의외로 눈매가 매섭다. 그 매서워 보이는 눈매와 카피라이터였던 이력이 만들어 내는 그녀 소설은 뜻밖이라 해도 좋을만큼 대단히 좋다.

생의 이면을 담담히 관조해 내는, 그 이면에 동감하고 동정하면서도 막상 그곳에 빠져들고 싶어하지는 않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녀 소설 곳곳에서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서늘할만큼 예리하면서도 참신한 문체 또한 매력. 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것을 그려내는 문체도 금속적이지 않은 서늘함을 가지고 있다. 그 서늘함 속에 얌전히 숨겨져 있는 애정과 따뜻함 또한.

확실히,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삶에 대한 성실함이 그러하듯.

내가 본 것은 결국 겉보기일 뿐일지라도, 작가의 남편 김병종 화백은 참 좋은 사람이더라. 이처럼 어울리는 부부를 찾아보기도 힘들거다, 생각이 들 만큼. 전작 『장밋빛 인생』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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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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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장을 읽다가, 작가의 글솜씨가 놀랍도록 발전을 해서, 그야말로 놀랍도록 달라진 글 솜씨에 경악을 했던 글. 사람이 순식간에 이렇게도 바뀌는 구나, 가 아니라 아, 이 사람의 진짜는 이쪽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달까. 어줍잖은 글(전작 『사랑스런 별장지기』가 어줍잖은 글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을 무턱대고 출판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명에 얼마나 크나큰 흠집이 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 준 글.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작은 수첩하나 손에 쥐고 뒹굴었다. 내일은 아주머니가 오는 날이니까 미루어 두었던 빨랫감들도 정리해서 베란다에 내 놓아야 하고, 장도 보러 가려고 수첩을 펼쳐들고 만년필을 꺼내 사야할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샴푸. 린스. 락스와 식용유. 보리차 티백과 잡곡. 국물용 쇠고기도 다 떨어졌고, 커피 믹스도 사야 하고, 냉장고 속 감자, 양파, 당근도 다 떨어졌다. 참치와 스팸도 없고. 아. 맛김도 다 떨어졌구나. 고체 카레와 다시용 멸치도 사다 놓아야... 아이구 귀찮아. 산다는 건 귀찮은 일들의 연속. 뭔가 대단한 사건이 뻥뻥 터지는 것이 아니라, 자잘하고 자잘하고 자잘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 그러다 이 책을 잡았다.

진솔의 자잘한 일상이 손에 잡힐 듯 들어와서, 서울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는 이 작은 여자의 고백에 한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더구나 조용하고 한적한 지방 소도시 출신의 여자에게- 서울은 지나치게 삭막하고 복잡한 곳이지.

인물들의 성격이 매력적이었다. 특별히 대가 세거나 연약하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나름의 줏대를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이 작가의 잔잔한 글솜씨와 맞물려 아주 좋았다.

작가가 참 오래 공들여 썼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을 너무 아끼면 글이 죽어버리거나 등장인물들이 죽어버리는데 인물에 대한 욕심을 버린 작가의 애정이 글을 살렸다. 구성 작가를 오래 했다는 작가의 이력 덕일까. 진솔과 건의 직장생활이 그대로 보여서, 그 또한 하나의 매력.

참 좋았다. 정말이지, 참 좋았다. 『사랑스런 별장지기』에서의 그 좋은 에피소드 사이의 어딘지 모를 어설픔이 완전히 빠져나간 글이라 더욱 좋았다. 이 작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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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의 검 애장판 세트 - 전6권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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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은 주인공들을 고생시키기로 유명한 작가다. 참말이지 읽다보면, 이 작가, 사디스트가 아니고서야... 싶은 생각이 절로 들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주인공들을 고생시키나.

『북해의 별』에서 아델라이드는 끝내 하반신 불수가 되어버리고, 『테르미도르』의 주인공들도 끝내 완벽한 행복을 맛보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딘가 성찮아진 주인공들이 그나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만화는 그녀의 만화치고는 주인공 남녀가 사대육신 멀쩡하게 살아 아들딸 줄줄이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희한하다고 해야 할지. 소설 내내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서 마지막에라도 행복하게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걸까.

김혜린은 역사의식이 투철한 만큼 여성의식 또한 투철한 작가로 보인다. 김혜린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연약한듯 강하며 남자의 횡포에 짓밟히지만 꿋꿋히 딛고 일어선다. 아주 꿋꿋하게. 게다가 그녀는 순결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불의 검』에서 아라도 『북해의 별』에서의 아델라이드도 모두 남편(또는 남편이었던) 사람과의 성관계가 있고, 아라는 아이까지 낳는다. 그녀는 아마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에 대한 항거를 그녀들을 통해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들을 그 과거를 의연하게 쓸어안는 남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땅의 가련한 남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진정 멋진 남자 강한 남자는 자신의 여자가 스스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남자에게 안길 수 밖에 없었던 것 따위 스스로의 미력함을 책할지언정 결코 여자를 책하지는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가라한 아사(산마로)도 유리핀 멤피스도 속된 말로 눈이 튀어나올만큼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그녀의 주인공들은 무작정 강하거나 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불의 검』에서 마리한은 무작정 선한 사람은 아니요, 머리 위에 올려진 왕관의 무게에 괴로워 하고 사랑하는 여자 소서노에 대한 연정으로 번민하며 절친한 친우 가라한 아사에 대한 질투로 몸을 떠니까.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종이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소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가라한 아사 역시, 사랑하는 여자 아라가 낳은 적의 아이 단목다루를 안고서 "너를 보기 괴로워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 얼마나 인간적인 고백인가.

삶, 사람, 사랑... 자꾸 반복해 발음하다 보면 끝내는 같아지는 말이라고 소설속 붉은 꽃 바리가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결국은 사람이 사랑이고 사랑이 삶인. 그런 것인지도.

참. 좋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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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의 꽃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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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대나 뭐래나, 광고도 해 대고, 궁녀라는 특이한 계층에 호기심도 있고 해서 읽은 책.

여러 분야의 학문이 그렇듯이 다년간의 연구가 쌓인 뒤, 그것을 정리하고 추려낸 것들이 가치를 가지듯 궁녀에 대한 연구도 그럴 것 같다. 아직은 여러모로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듯. 87년 일지사에서 나온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박하고 있는 글이지만, 지나치게 중구난방이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말은 김용숙의 연구는 조선왕조의 몰락기 궁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그 정확도가 떨어지고, 경국대전의 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궁녀의 특성상 그 연구 자료가 너무도 희박하다... 라는 말. 그리고 나오는 말들은 전체적으로 뭘 말하고자 하는지 뼈대가 잡히지 않는다.

세종조에 중국으로 건너가 옹정제의 애첩이 되었던 조선의 여자 한씨에 대한 기록이 흥미로웠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죄다 그저 그렇다. 궁녀의 월 급여가 얼마였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니까~~~!!! 버럭!

인문학 서적 특유의 정확한 정보 전달 노력도 좋지만 작가가 직접 말한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재료 자체가 미비한 시점에서 상상력을 발현하여 정보와 정보사이 빠진 부분을 메꾸려는 노력조차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 사람의 글솜씨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싶다.

나에게는 크게 가치있는 글로 읽히지 않았다.

차라리, 계축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 등등의 궁녀문학을 읽는 것이 훨씬 나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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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제1,2,3부 - 전32권 세트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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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징~하게 긴 소설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해야겠다. 76세까지 살았던 한 인물의 출생비화에서 죽는 순간까지를 단 한순간도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그려내느라 소설은 숨이 찰 정도로 길어졌다. 웬만큼 긴 소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읽어내리는 데 이 소설에서는 한 25번을 읽을 때부터 "아, 이거 언제 끝나, 이거 언제 다 읽어."라고 징징대고 있었으니까.

일본은 동양 3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세시대를 겪은 나라라고 하는데, 그 중세의 시기가 이 소설에 해당한다. 다케다 신겐으로 부터 시작하는 각 지방의 군웅이 할거하는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불에 대한 자성을 바탕으로 한 인내로 그 시기를 넘기며 끝내 일본을 통일해 중세를 거친 봉건 영주국가(여기서는 영주가 막부의 세이이타이쇼군이라고 해야하겠지만. - 왕은 따로 있다.)로 완성한다.

그 과정에 한명의 아들에겐 할복을 명령해야 했고, 또 한명의 아들에겐 살아 평생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대면 금지의 명령을 내려야 했고, 끝내 그 아들의 어미에게 "나도 자식은 귀여워."라는 눈물 섞인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찌보면 일본 통일에 희생당한 사람이다. 새시대의 새 인물이라고 표현되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면 이에야스는 천하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엄격하게 누르고 살았던 사람.

당시 일본의 풍속과 문화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식의 풍속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좀 더 작고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게다가 지나치게 남성취향이다. 남자들의 성격과 기질이 입체적이고도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반면 여자들의 성격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하는 행동이나 말들이 몇몇 부류로 나누어 그 부류에 속하는 여자들 끼리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여자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죄다 복잡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양성이 없달까. 여자들의 성격이 죄다 서로서로 비슷비슷하다. 흠... 난세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은 그렇게 사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었다는 말일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소설의 제목으로 내세울만큼 한 인물에 집중하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단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론 훌륭한 인물이고 위대한 인물이지만, 글쎄,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매력적인 히어로로는 조금 부족하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잘생기고 키도 크고,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무리 그래도 임진왜란을 겪은 한국인으로서는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오다 노부나가는 9번에서 죽어버린단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는 것으로 흔히 알려진 "대망"은 끝난다.

가끔,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면, 소설에서는 부각되지 않던 여자를 굉장히 부각시킨다거나, 소설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던 여자를 등장시키는 등의 각색을 하는데 (최인호 원작의 <상도>와 MBC드라마의 <상도>에서는 '송이'라는 인물의 비중이 전혀 다르고, 김훈 원작의 <칼의 노래>와 KBS 드라마의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여자'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확실히 남자와 여자가 가지게 되는 미묘한 로맨스적 분위기는 이야기의 호감도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원작과는 상관없이 여자를 등장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확실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 구조는 다르고, 그 기질적인 차이에서 오는 납득할 수 없음은 소설을 읽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런 사소한(어찌보면 크지만) 차이를 누르고서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만큼. 이 소설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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