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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 애장판 세트 - 전6권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김혜린은 주인공들을 고생시키기로 유명한 작가다. 참말이지 읽다보면, 이 작가, 사디스트가 아니고서야... 싶은 생각이 절로 들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주인공들을 고생시키나.
『북해의 별』에서 아델라이드는 끝내 하반신 불수가 되어버리고, 『테르미도르』의 주인공들도 끝내 완벽한 행복을 맛보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딘가 성찮아진 주인공들이 그나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만화는 그녀의 만화치고는 주인공 남녀가 사대육신 멀쩡하게 살아 아들딸 줄줄이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희한하다고 해야 할지. 소설 내내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서 마지막에라도 행복하게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걸까.
김혜린은 역사의식이 투철한 만큼 여성의식 또한 투철한 작가로 보인다. 김혜린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연약한듯 강하며 남자의 횡포에 짓밟히지만 꿋꿋히 딛고 일어선다. 아주 꿋꿋하게. 게다가 그녀는 순결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불의 검』에서 아라도 『북해의 별』에서의 아델라이드도 모두 남편(또는 남편이었던) 사람과의 성관계가 있고, 아라는 아이까지 낳는다. 그녀는 아마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에 대한 항거를 그녀들을 통해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들을 그 과거를 의연하게 쓸어안는 남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땅의 가련한 남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진정 멋진 남자 강한 남자는 자신의 여자가 스스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남자에게 안길 수 밖에 없었던 것 따위 스스로의 미력함을 책할지언정 결코 여자를 책하지는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가라한 아사(산마로)도 유리핀 멤피스도 속된 말로 눈이 튀어나올만큼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그녀의 주인공들은 무작정 강하거나 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불의 검』에서 마리한은 무작정 선한 사람은 아니요, 머리 위에 올려진 왕관의 무게에 괴로워 하고 사랑하는 여자 소서노에 대한 연정으로 번민하며 절친한 친우 가라한 아사에 대한 질투로 몸을 떠니까.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종이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소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가라한 아사 역시, 사랑하는 여자 아라가 낳은 적의 아이 단목다루를 안고서 "너를 보기 괴로워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 얼마나 인간적인 고백인가.
삶, 사람, 사랑... 자꾸 반복해 발음하다 보면 끝내는 같아지는 말이라고 소설속 붉은 꽃 바리가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결국은 사람이 사랑이고 사랑이 삶인. 그런 것인지도.
참. 좋은.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