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몇장을 읽다가, 작가의 글솜씨가 놀랍도록 발전을 해서, 그야말로 놀랍도록 달라진 글 솜씨에 경악을 했던 글. 사람이 순식간에 이렇게도 바뀌는 구나, 가 아니라 아, 이 사람의 진짜는 이쪽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달까. 어줍잖은 글(전작 『사랑스런 별장지기』가 어줍잖은 글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을 무턱대고 출판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명에 얼마나 크나큰 흠집이 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 준 글.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작은 수첩하나 손에 쥐고 뒹굴었다. 내일은 아주머니가 오는 날이니까 미루어 두었던 빨랫감들도 정리해서 베란다에 내 놓아야 하고, 장도 보러 가려고 수첩을 펼쳐들고 만년필을 꺼내 사야할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샴푸. 린스. 락스와 식용유. 보리차 티백과 잡곡. 국물용 쇠고기도 다 떨어졌고, 커피 믹스도 사야 하고, 냉장고 속 감자, 양파, 당근도 다 떨어졌다. 참치와 스팸도 없고. 아. 맛김도 다 떨어졌구나. 고체 카레와 다시용 멸치도 사다 놓아야... 아이구 귀찮아. 산다는 건 귀찮은 일들의 연속. 뭔가 대단한 사건이 뻥뻥 터지는 것이 아니라, 자잘하고 자잘하고 자잘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 그러다 이 책을 잡았다.

진솔의 자잘한 일상이 손에 잡힐 듯 들어와서, 서울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는 이 작은 여자의 고백에 한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더구나 조용하고 한적한 지방 소도시 출신의 여자에게- 서울은 지나치게 삭막하고 복잡한 곳이지.

인물들의 성격이 매력적이었다. 특별히 대가 세거나 연약하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나름의 줏대를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이 작가의 잔잔한 글솜씨와 맞물려 아주 좋았다.

작가가 참 오래 공들여 썼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을 너무 아끼면 글이 죽어버리거나 등장인물들이 죽어버리는데 인물에 대한 욕심을 버린 작가의 애정이 글을 살렸다. 구성 작가를 오래 했다는 작가의 이력 덕일까. 진솔과 건의 직장생활이 그대로 보여서, 그 또한 하나의 매력.

참 좋았다. 정말이지, 참 좋았다. 『사랑스런 별장지기』에서의 그 좋은 에피소드 사이의 어딘지 모를 어설픔이 완전히 빠져나간 글이라 더욱 좋았다. 이 작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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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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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15: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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