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제1,2,3부 - 전32권 세트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우선은, 징~하게 긴 소설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해야겠다. 76세까지 살았던 한 인물의 출생비화에서 죽는 순간까지를 단 한순간도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그려내느라 소설은 숨이 찰 정도로 길어졌다. 웬만큼 긴 소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읽어내리는 데 이 소설에서는 한 25번을 읽을 때부터 "아, 이거 언제 끝나, 이거 언제 다 읽어."라고 징징대고 있었으니까.

일본은 동양 3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세시대를 겪은 나라라고 하는데, 그 중세의 시기가 이 소설에 해당한다. 다케다 신겐으로 부터 시작하는 각 지방의 군웅이 할거하는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불에 대한 자성을 바탕으로 한 인내로 그 시기를 넘기며 끝내 일본을 통일해 중세를 거친 봉건 영주국가(여기서는 영주가 막부의 세이이타이쇼군이라고 해야하겠지만. - 왕은 따로 있다.)로 완성한다.

그 과정에 한명의 아들에겐 할복을 명령해야 했고, 또 한명의 아들에겐 살아 평생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대면 금지의 명령을 내려야 했고, 끝내 그 아들의 어미에게 "나도 자식은 귀여워."라는 눈물 섞인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찌보면 일본 통일에 희생당한 사람이다. 새시대의 새 인물이라고 표현되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면 이에야스는 천하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엄격하게 누르고 살았던 사람.

당시 일본의 풍속과 문화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식의 풍속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좀 더 작고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게다가 지나치게 남성취향이다. 남자들의 성격과 기질이 입체적이고도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반면 여자들의 성격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하는 행동이나 말들이 몇몇 부류로 나누어 그 부류에 속하는 여자들 끼리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여자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죄다 복잡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양성이 없달까. 여자들의 성격이 죄다 서로서로 비슷비슷하다. 흠... 난세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은 그렇게 사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었다는 말일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소설의 제목으로 내세울만큼 한 인물에 집중하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단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론 훌륭한 인물이고 위대한 인물이지만, 글쎄,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매력적인 히어로로는 조금 부족하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잘생기고 키도 크고,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무리 그래도 임진왜란을 겪은 한국인으로서는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오다 노부나가는 9번에서 죽어버린단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는 것으로 흔히 알려진 "대망"은 끝난다.

가끔,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면, 소설에서는 부각되지 않던 여자를 굉장히 부각시킨다거나, 소설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던 여자를 등장시키는 등의 각색을 하는데 (최인호 원작의 <상도>와 MBC드라마의 <상도>에서는 '송이'라는 인물의 비중이 전혀 다르고, 김훈 원작의 <칼의 노래>와 KBS 드라마의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여자'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확실히 남자와 여자가 가지게 되는 미묘한 로맨스적 분위기는 이야기의 호감도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원작과는 상관없이 여자를 등장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확실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 구조는 다르고, 그 기질적인 차이에서 오는 납득할 수 없음은 소설을 읽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런 사소한(어찌보면 크지만) 차이를 누르고서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만큼. 이 소설은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