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질투라는 감정은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통 호승심이 많은 사람이 질투도 많다고 하는데, 질투는 끝내 그 질투를 하는 사람과 그 질투를 받는 사람 양쪽을 다 파괴시킨다. 나 쟤 싫어, 그냥 주는 거 없이 미워, 라고 말할때 그 사람의 내면은 그 '주는 거 없이 미운 쟤'를 질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질투를 하는 사람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쟤가 미운짓을 하기 때문에 싫다고 강변한다.  

때때로, 아니 거의 대부분은 질투와 동경은 동전의 양면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동경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을 질투하고, 좋은 성적을 동경하는 고교생은 나보다 성적이 나은 사람을 질투한다. 질투는, 내가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게 가지게 되는 감정이니까.

그런데 이 질투라는 감정은 참 희한한데서 발현된다.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의 질투 대상은 공인된 미녀인 김태희 전지현이 아니다. 같은 아파트 501호 애 엄마가 질투의 대상이다. 성적에 집착하는 아이의 질투대상은 전교 1등하는 나일등이 아니라 나와 비슷하게 약간 높은 성적을 가진 이중간이다. 이상하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고3 내내 나는 K와 Y 둘과 함께 점심, 저녁을 먹었다. Y는 전교 1-2등을 다투는 수재였고, 나는 중간보다 좀 위, K는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다. 그런데, 한달에 한번 있던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면, 저녁마다 나는 혼자 버려져야 했다. K는 늘 Y와 둘이 나가버렸다. 그 둘이 아니어도 밥 먹을 친구는 있었고, 처음엔 어리둥절 했지만 나중엔 으레 그런가보다 했는데, 내가 모의고사날 저녁마다 버려져야 했던 이유는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K의 고백을 통해.  

고등학교 시절 난 언어영역으로는 거의 전교 톱이었는데(그래, 자랑질이다.) K는 늘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언어영역만 아니면, 나를 이길 수 있는데, 단 한번도 모의고사 점수로 나를 이겨보지 못했던 K는 성적이 나온 저녁이 되면 속이 상해 Y를 끌고나갔던 것이다. 하늘에 맹세코, 난 정말 몰랐다. 학교 다니는내내,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신기할 정도로, 나는 성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애였으니까. 그렇다고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고, 남의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그걸로 스트레스 받아본 적이 없다. 당연히 누군가를 질투해 본적도 없고, 내가 질투의 대상이 될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사실 나는 좀 감정적인 부분에선 늦되는 아이였다. 아주 많이. 

재미있는 건 K의 질투 대상이 Y가 아닌 나였다는 사실이다. 전교 1-2등의 수재였으니 Y와 나의 언어영역 성적은 비등비등했는데도 K는 Y의 언어영역 성적엔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않고(사실 관심도 없고, 으레 잘했겠거니.) 나의 성적에만 관심있고 나에게만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나에게도 그랬지만 K에게도 Y는 애초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연히 질투를 느끼지도 않는다.  

시간을 좀 더 당겨서, 대학을 졸업하고 여차저차해서 일식집 서빙을 하는 언니를 알게 된 일이 있다. 그 언니의 경쟁대상은 놀랍게도 고현정이었다. 한때 연예인을 꿈꾸던 언니가 트레이닝 비슷한 걸 받느라 요가 헬스 학원같은걸 다녔는데, 그때 그 언니 옆에 데뷔전의 고현정이 있었더란다. (뭐,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걸 굳이 내게 거짓말 할 필요가 없으니 사실이었으려니 한다.) 그런데 그 언니는 연예인의 꿈을 접고, 일식집 서빙으로 취직을 했는데 고현정은 그때 이미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끝내고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그 언니는, 고현정도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자신도 삼성가 까지는 아니어도 명문가의 며느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다. 흠. 1년여의 사귐뒤로 만난적이 없는데 그 언니는 꿈을 이뤘을까. 그 당시의 언니와 고현정은 내가 볼 땐 정말 극과 극이었는데, 그 언니에게 고현정은 자신과 동급이었다. 질투란게 뭘까를 곰곰히 생각하게 만들었던 내 인생의 일화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잘나가는 것에대해선 그냥 그러려니 한다. 운명론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전생을 갖다 대기도 하고. 그런데 한때나마 나와 동등했던 사람이 나보다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또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아니면 그거 하나만 빼고는 나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그 하나만은 내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데 대해서는 불같은 질투를 느낀다. 내가 쟤보단 낫지, 라는 천박한 위안을 주던 대상이 내가 무척 가지고 싶으나 아직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휙하니 쟁취해버렸을 때의 박탈감은 거의 증오에 가깝다. 그래서, 질투와 동경은 동전의 양면이고, 질투와 증오는 사촌간이다.  

이 질투를 증오가 아닌 자기 발전의 연료로 삼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람이라는 게 그러기가 참 힘들다. 그럼 그냥 놓아버려도 될텐데 질투라는 감정은 기본적으로 집착과 함께 온다. 질투의 대상은 밉고 싫지만, 그 사람의 소식에는 가장 감도 높은 수신기가 작동한다. 그래서, 질투와 동경은 동전의 양면이고, 질투와 증오는 사촌간이며,  질투와 집착은 동복 형제다(사실 쌍둥이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 <다이어트의 여왕>은 그 질투의 속성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TV리얼 쇼 <다이어트의 여왕> 참가자인 14명은 처음에 비만이라는 동일 선에 서서 함께 출발했다. 거기서 이들은, 서바이벌 게임 형식으로 참가자 한명씩을 탈락시켜 나가면서 단 한명의 다이어트의 여왕을 뽑는 과정에 참여한다.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형식 자체가 질투라는 감정이 개입하게 만든다. 나보다 나아서 질투나는 사람은 가차없이 탈락 대상이다. 프로그램 속성상, 나보다 더 살을 많이 뺀 사람은 질투의 대상이라서도 그렇지만 경쟁의 대상이라서도 탈락시켜야야 한다. 그런데, 절대 그 이유가 질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팀에 도움을 주지 않으니까, 융화에 방해가 되니까 기타 등등등의 구구절절한 이유가 붙는다. 게다가 그들은, 질투의 대상(아직까지는 불특정 다수다.)을 이기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결코 공개하지 않는다. 질투란게 원래 그렇다. 내가 너를 질투한다는 사실은 제 3자 에게도 그렇지만 질투의 대상에게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의 질투의 대상은 처음부터 빼빼 말라 피골이 상접했던 작가 김인경이 아니라 나와 같이 뚱뚱했다가 다이어트에 성공해 날씬해진 연두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직장으로 복귀해 승승장구해 나가는 연두는, 나머지 13명이 그리 될 수도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있다. 때문에 사람들의 질투는 무섭게 작동해 곧바로 증오로 바뀐다. 연두가 근무하는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연두의 음식에 흠집을 잡은 사람은 연두를 제외한 참가자 열세명 모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에(앗, 이거 스포일러구나.)이 소설은 끝난다.  

주인공 연두를 파괴하는 건, 그 나머지 13명의 증오로 변질된 질투와 연두 내부의 질투(옛 연인의 옛 연인에 대한) 두가지다. 처음 연두의 질투는 "질투는 나의 힘" 이 되어 다이어트의 성공을 가져오지만, 질투라는 것이 본래 그쳐지지가 않는 것이라(집착과 쌍둥이라니까.) 결국은 연두를 파괴로 몰아넣는다.  

질투로 인해 망가진 연두를 구해내는 건, 그 질투와 상관없이 연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 그대로의 사랑과 관심이다. 사랑과 관심만이 동경으로 시작된 질투, 질투에서 진화한 증오, 증오와 더불어 오는 집착의 고리를 끊는다. 자족한 사람은 타인을 질투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니 남이 가진것을 동경하지 않는다. 아마 연두는 자신이 질투로 인한 증오와 집착의 대상이 되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상처야 되겠지만, 그것이 이미 자신의 질투를 딛고 살아남은 연두를 또다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지금, 질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꽤나 강렬한 질투다. 이런 나를 구제하는 것도 오직 자족한 삶일텐데, 그 자족의 평화는 언제 찾아오려나. 

지금, 당신은, 누구를 질투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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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2-1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시기 라는 감정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심리학책도 찾아 보려고 했어요. 뜬금없는 질투심이 저를 뒤흔든 적이 있어서. 대체 이 감정이 어디서 왔나 싶어서. 님의 얘기처럼 아예 나와 경쟁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질투라는 감정 자체가 생기지를 않더라구요. 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닌지. 아무리 친한 친구도 내가 유독 가지고 싶었거나 잘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갑자기 성취를 이루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게 힘들더라구요. 자족의 삶. 그래서 질투가 승할 때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가장 미묘하고 해석하기 힘든 감정인 것 같아요.

아시마 2009-12-16 23:33   좋아요 0 | URL
네, 인간이 가진 가장 미묘하고 해석하기 힘든 감정이고, 덧붙이자면 가장 인정하기 힘든 감정인 것 같아요. 인간의 가장 추한 감정이기도 하고, 가장 폭력적인 감정인 것 같기도 해요. 수많은 일들의 바탕에 깔린 감정은 결국 이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결국은 인간의 모든 감정이 그렇듯, 외부(질투의 대상)가 발화점이 아니라 질투하는 나 의 내면의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죠. 그러니 시작도 끝도 결국은 나의 문제인데, 참 다스리기 힘든 감정이더라구요.
그래도 내가 지금 시기 질투를 하고 있구나, 라는 걸 인정하기만 해도 괜찮은데, 질투의 가장 추한 면은 그걸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질투의 대상이 문제라고 말하게 되는 면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많이 그러지만, 음, 끝까지 상대방의 흠을 잡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인간이 이렇게 추한 존재구나 싶어 우울해지곤 하더라구요. 근데 뭐, 끝까지 상대방의 흠을 잡아서 상대방을 추락시키고자 하는게 또 질투란 감정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인 속성이라. 어렵죠.

다락방 2010-01-01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이거 땡스투 누르고 저 오늘 지릅니다. 오늘은 1일. 신한카드 결재시 6프로 할인되는 날이죠. 후훗.

아시마 2010-01-03 20:50   좋아요 0 | URL
저 남편한테 알라딘 제휴카드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애걸복걸 중인데, 안만들어 주네요. 버럭!
전 괜찮게 읽었는데, 다락방님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저 이작가 전작 스타일도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칙릿은 칙릿 나름의 맛이 또 있죠. ㅎㅎ 잼나게 읽으시길.

다락방 2010-01-03 21:50   좋아요 0 | URL
칙릿이란 장르를 좋아하진 않는데 아시마님의 리뷰를 읽다보니 그 미묘한 감정 질투를 읽어보고 싶어졌거든요. '린제이 로한'이 나오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보면 여기에서도 마지막에 그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걔가 뚱뚱해진다고 내가 더 날씬해지는 건 아니다'라는 거요. 하이틴 무비인데도 전 그걸 보면서 마치 그제야 알게되는 새로운 사실인 것 처럼 아, 그렇지! 했었어요. 어떤 소설이든 영화든 내가 거기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전 그렇게 뭔가 아주 작더라도 메세지를 던져주는 걸 꽤 좋아한답니다. 다 읽고 나면 저는 어땠는지 말씀드릴게요.(물론 -아시겠지만-오자마자 그 책 먼저 읽는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Anne - 전10권 세트 - 개정판 그린게이블즈 앤스북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기분이 가라앉을때,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나는 이 책을 읽는다. 중간 아무데나 쓱 뽑아서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고 있으면 어느새 가라앉았던 기분은 둥실 떠오르고 시끄러웠던 머리속은 말갛게 갠다. 이건 정말 어메이징한 마법이다. 어느 서양의 소설간지 문학평론간지가 앤 셜리를 두고 서양 문학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라고 평했다는데, 그 말에 적극 동감이다. 그녀는 정말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소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앤을 아동문학으로 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린게이블즈의 앤 이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앤이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매튜 아저씨가 죽는 것으로 앤의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 뒤 앤은 자신이 다닌 애번리의 초등학교 교사직을 맡고 있다가 레드먼드 대학으로 진학하고, 중학교 교장이 되었다가 길버트(장난꾸러기 길버트는 의사가 된다.)와 결혼해 무려 일곱명(첫째 아이는 낳은 날 죽어서 실제로는 여섯명의 아이를 기른다. 딸, 아들, 아들, 딸딸(무려 쌍둥이!), 아들, 딸)의 아이를 낳고 그린게이블즈를 떠나 해변가 꿈의 집을 거쳐 잉글사이드라는 완벽한 가정을 이룩해낸다. 늙어서까지 앤은 사랑스럽고, 앤의 아이들 또한 사랑스럽다. 

이 소설에는, 꼬인 인물이 없다. 수다스러운 참견쟁이 레이철 린드부인까지도, 밉지가 않다. 유일한 악역은 조시 파이인데, 글쎄, 그 비중이 너무 약하다보니 매콤한 양념을 얹은듯 재미를 배가시킬 뿐, 나중엔 그 조시까지도 사랑스러워진다. 애번리 시절의 다이애너, 제인, 루비 등등의 여자친구들과의 우정도 아름답고, 레드먼드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의 우정도, 보고 있으면, 아 정말 이런 친구 있다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 소설은 그렇게까지 행복한 내용만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일단 앤의 생장배경 자체가 사실은 대단히 비참하다. 조실부모하고 아주 어린나이에 남의 집(게다가 한집에 내내 있지도 못하고 두집을 떠돌다 고아원으로 되돌아 가기까지) 애보개로 말그대로 개고생 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첫 아이는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고, 소설의 마지막권은 제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아들 셋을 다 군인으로 출정시키고 한 아들은 죽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행복이 마구마구 넘쳐난다.  

앤은, 아마 그것때문에 사랑스러워지는 것이겠지만, 세상을 밝게보고 밝게 살려 노력한다. 실제로 그녀는 운이 좋았고(물론 그린 게이블즈로 간 뒤부터 말이다.), 머리도 그만큼 좋았다. 게다가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건지, 앤이 모든 사람의 좋은 면을 뽑아내는 건지, 앤의 주변 인물들도 앤 만큼이나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리고,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의 캐나다 시골지방의 풍경과 풍속 묘사는 얼마나 세밀한지. 사람들의 재치넘치는 입담은 제인 오스틴 뺨친다.  

장담하건대, 이 책은 당신을 정말정말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줄겁니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면 앤 박물관이 있단다.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다.  

ps. 어쩔수 없어서 이걸 샀지만, 사실 김유경의 번역은 별로고, 책도 별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표지 디자인은 촌스럽고, 간간히 들어가있는 삽화는, 음,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그럼에도 현재 살수있는 유일한 앤 전권이다. ㅠ.ㅠ 아. 좌절. 시공사에서 레드먼드의 앤까지 번역해 냈는데 그 뒤를 번역해서 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이 소설을 왜 출간을 안하느냐고. 구할수 있다면 청화 판의 8권짜리 빨간머리 앤을 추천. 

ps2. 대교북스캔에서 몽고메리의 한권짜리 장편 두권과 단편집 한권을 출간했다. 그 책들 중에선 블루 캐슬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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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2-1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헌책방에서 산 1987년판 삼오문화사 박혜정 번역본을 갖고 있습니다.아직 다는 안 읽었구요...마치 명랑순정만화가 선하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

아시마 2009-12-19 00:21   좋아요 0 | URL
삼오문화사판은 처음 들어요. 어떤 번역인지 읽어보고 싶어요. 저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앤을 찾아 헌책방 순례를 하는 꿈을 가지고 있죠. ^^

노이에자이트 2009-12-19 10:21   좋아요 0 | URL
10권 짜리 완역본이에요.
 
혼불 세트 - 전10권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김이경의 소설 <순례자의 책>에 보면 저승에 가서 책을 저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단다. (아직 주문해 놓고 받진 못했다.) 그 구절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죽어 저승에 간다면, 나는 최명희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다. 선생님은 아마, 저승에서도 혼불을 쓰고 계실거다. 아, 저승에 있는 사람들은 좋겠다. 혼불을 읽고 있을 거 아닌가. 보르헤스가 그랬다던가, 천국은 아마 도서관의 풍경과 닮아 있을 거라고.(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내가 상상하는 천국도 그렇다.

이 소설 혼불은, 미완의 소설이다. 98년 암으로 세상을 뜨신 선생님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혼불의 6-7부를 구상하고 계셨다고 하니. 실제로 이야기는 막 시작하려다 끝이 나버린다. 강모는 아직 뜻을 펼치지도 못했고, 강실이의 운명은 오리무중이고, 효원이는 아직, 종부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가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다. (혼불은 본래, 효원이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할 것이었단다. 서희가 최참판댁을 재건하는 것처럼.) 

이 소설, 혼불은 내게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와 전혀 다르면서도 닮은 꼴이다. 

박경리 선생님이 처음 토지를 구상하실때 본래 생각했던 지역은 전라도였단다. 경상도는 산이 많고 평야가 협소하여 만석꾼이 나올수가 없는 곳이라 만석꾼 최참판댁을 건설하기가 힘들었던 것. 그러나 경남 통영-진주 태생인 박경리 선생님은 전라도 사투리에 자신이 없어 막상 전라도를 선택하기도 망설이고 있던 차에, 당시 불교 미술을 공부하던 딸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다 하동 평사리를 보고는 그곳을 토지의 배경으로 삼고 집필에 들어간다. 실제로,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를 쓰는 내내 평사리에 내려간 적은 없단다. 하긴, 만주 용정땅의 서희를 그린 2부를 집필하던 시기엔 한국과 중국이 수교국이 아니라 용정 땅을 가 볼수도 없었다. 박경리 선생님은 그 땅의 지도 한장을 벽에 갖다 놓고 소설을 썼다는데 훗날 수교후 가 본 실제 용정땅은 박경리 선생님이 묘사한 것과 거의 흡사해(실제로 하동촌도 있단다)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소설가의 상상력이란 참 대단하다.  

박경리 선생님이 하동 평사리를 선택해 경상도를 묘사해 낼 때, 최명희는 전라북도 남원을 선택해 전라도를 묘사해 낸다. 전라도의 음식과 전라도의 풍속과 전라도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최명희의 붓끝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효원과 강모의 혼례식때 효원의 대례복 입는 장면의 묘사는 박완서 선생님의 <미망>에서 태임이의 송도 혼례식 특유의 큰머리(화환) 장식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한국 문학의 백미라 할만하다. 전라도 특유의 내방가사가 그대로 살아나오기도 하고, 신분제도와 관혼상제의 풍속에 관한 묘사, 집안 내부 묘사나 바느질에 관한 묘사 등등은 섬세함의 극치를 달린다. 

물론 이 아름다운 소설도 단점은 있다. 지나치게 자료조사와 고증에 빠진 나머지 일정부분 남원 사지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고, 소설이 이제 막 전개될 즈음에서 작가가 사망한 탓에 주인공 강모의 성격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면도 있다. 강실의 운명은 너무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타기만 해서 안타깝게 만드는데, 이 역시 작가의 죽음으로 구제받지 못하고 저 구렁텅이에 빠진채 끝이난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정말이지, 

저승에 가서라도 그 뒷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 효원은 아마, 서희 못지 않은 대찬 여인이 되었을텐데.  

토지 집필기간 26년, 혼불 집필기간 17년,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비슷한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이고, 여인 중심의 이야기 구조도 동일하다. 최명희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토지에 버금가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얻었을텐데 안타깝다는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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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2-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나, 아시마님 저 지금 소름끼치는 것 알아요? 저 이거 읽어 볼라구 밤새 검색에 검색했던 기억이...그런데 참 정보가 없더군요, 아무래도 대하 소설은 애까지 데리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조정래의 '태백산맥' 읽고 이 책은 안읽기로 했었는데. 박완서 샘 '미망'은 어땠어요? 그것도 읽어 보려고 하다 말았는데. 이런 류 너무 좋아요. '혼불'은 지루하다는 의견이 좀 있더라구요. 시도해도 후회하지 않을까요? 저 아시마님 따라하려고 ㅋㅋㅋ 아홉시 취침 딸 여덟시로 당겨 보려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아시마님처럼 능률이 안오르네요.

아시마 2009-12-14 23:56   좋아요 0 | URL
읽기가 쉬운 글은 아니예요. 그렇지만 굉장한 미문이예요. 작가가 정말 공들여 썼다는 느낌이 역력한 글이죠. 그야말로 피를 찍어 글을 쓴다는 게 이런거구나 느껴지는 그런 글. 김훈을 좋아하신다면 아마 이 글도 좋아하실텐데, 그래도 서사가 약하다기보다는 너무 방대하게 뻗어나가구요, 인물들이 좀 난해해요. 하나같이 다들 좀 꼬여있죠. 토지에 평사리의 농부들이 있다면 혼불엔 거멍굴의 천민들이 있는데 그 인물들이 평사리의 농부들과는 달리 좀 다들 음험하게 꼬여있어서 쉽게 읽히지가 않아요. 음침하죠. 게다가 자료 고증에 너무 집착했다 싶은 부분도 있어서 남원의 역사가 나오는 부분은 지루해요. 책장이 잘 넘어가질 않죠. 그렇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굉장한 소설이예요. 저 10권 마지막 읽고 막 막 소리질렀잖아요. 기다려도 이 뒷이야기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좌절스러웠는지. 오죽하면 저승가서라도 읽고 싶은 글이라고 할까요.

아시마 2009-12-14 23:43   좋아요 0 | URL
박완서 샘 미망은, 후훗. 굳이 표현하자면,
경상도에 토지, 전라도에 혼불, 황해도에 미망 이라고 하면 될까요?
셋다 배경이 되는 시대도 같고, 여자가 가문을 계승한다는 그 기둥도 비슷하구요.
정말 박완서 스러워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전 문학사상사판 <미망>으로 읽었는데 요즘은 세계사 박완서 전집내에 <차마 잊힐리야>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죠. 개성 송도 이쪽 사투리를 보는 재미에, 그쪽 생활상 보는 재미 정말 대단하죠. 정말정말정말 딱 박완서예요. 꼭꼭 보세요. 박완서 샘은 보증수표라니까요. 버릴 작품이 하나도 없어요.

2009-12-15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시마 2009-12-15 23:24   좋아요 0 | URL
혼불도 물론 강추지만 읽기 쉬운건 미망이예요. 분량도 그렇고 스타일도.
예전에 드라마 한건, 홍리나가 머릿방 아씨, 채시라가 태임이, 김상중이 종상이로 나왔는데 사실 소설 본래 내용을 너무 많이 각색해서 별로구요, 또 미망은 서사 그 자체보다 세밀한 풍속 묘사가 더 매력적인 작품이라 꼭 책으로 읽으시라고 강추드리고 싶어요. 채시라가 연기를 잘하지만, 미망의 태임이를 제대로 살리진 못하지 않았나 생각하거든요.
이번 주 내내 서울은 영하일거라네요. 님도 건강조심하세요.
혼불 문학관은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해요. ^^

갓난눈 2009-12-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크게 공감헙니다. 빠르고 즉물적인 것만 추구허는 세태를 중화시키는 최고의 길은 '문학'입니다. 가장 천천히 읽어야만 했던 우리문학이었고 그만큼 깊게 천착헐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강실이 갓난눈이 넘 예뻐서 제 별칭을 갓난눈으로 했네요~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병자호란의 성격은 이전의 임진왜란의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정복 전쟁, 즉 실리를 취하겠다는 왜와 그 실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조선의 전쟁이었고, 병자호란은 명분의 전쟁이었다. (하긴, 청의 입장에서는 정복전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청의 변방으로 복속시켰다고 생각했을지도.) 마치. 예송논쟁처럼.

김훈은 언젠가, 자신은 그 뜻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는 쓰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백개 남짓한 단어만 손에 남더라나. 하기는, 생각해보면 우리가 쓰는 단어 중에 명확히 뜻을 알고 쓰는 단어는 몇개나 될까. 사랑은 무엇이고 명분은 무엇인가. 산다는 건 무엇이고 죽는것은 무엇인가. 명예를 잃고 숨길이 붙어있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명예롭게 죽어 이름을 남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병자호란으로부터 다시 3-400년을 흘러 한국의 위인전과 교과서에 척화파의 거두 김상헌의 이름은 우뚝한데, 김상헌은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이 전쟁은 명분과 명분의 부딪침이었다. 명을 정복하고 새로이 일어선 청이 대륙의 새 주인임을 인정받고자 하는 명분, 아직은 명의 명줄이 붙어있으니 이전의 사대를 유지하고자하는 조선의 명분. 이 명분의 싸움은 조선 내에서도 치열하다.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의 명분은, 재세在世, 즉 살아남음, 삶에 있다. 이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그곳에 비로소 삶이 있다는 것이다.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의 명분 또한 삶에 있다.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는 것은 이미 죽은 삶이라는 것이다. 둘의 명분과 목적은 같으면서 다르다. 해서 두사람의 주장은 첨예하게 부딛친다.  

최명길이 말했다.
-제발 예판은 길, 길 하지 마시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김상헌이 목청을 높였다.
-내 말이 그 말이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란 말이오.
(p.269) 

눈 앞엔 단 하나의 길만이 놓여있다. 화친, 죽음과도 같은, 아니, 조선의 선비에겐 죽음보다 더한 치욕의 길. 그 치욕의 길을 건너는 자만이 저편의 삶에 닿을 수 있는데, 이미 죽음을 경험한 뒤의 삶은 삶인가 아닌가. 

남한산성 내의 싸움은 치욕을 건넌 뒤의 삶도 삶인가 아닌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었다. 모두가 살아남고자하고 모두가 그 치욕을 겪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에 대한 원망의 소리는 드높고 그 속에서 모두가 믿는 것은 오직하나 최명길이다. 순결한 무장 이시백은 묘당의 마음을 단숨에 정리해 준다. 

지금 싸우자고 준열한언동을 일삼는 자들도 내심 대감을 믿고 있는 것 같았소. 충렬의 반열에 앉아서 역적이 성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소. 이 성은 대감을 집행할 힘이 아마도 없을 것이오.
(p.218) 

그래서 그들은 차마 함께 할 수도,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최명길을 붙들고 늘어진다. 이 엇갈림 속에서 묘당의 마음은 이리저리 뒤섞여 분간할 수 없게되고, 김훈의 문체는 전에 없이 만연체로 늘어졌다. 하나의 문장이 페이지 절반을 차지할만큼 길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내면을 진술할때다. 그 긴 만연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헷갈린다. 아마 김훈이 노린 것도 그것일 것이다. 명분을 지키면서 삶을 얻고자하는 사람들의 욕심이 그와 같다. 중언부언 말이 길게 늘어지나 결국은 말이 아닌 말. 그래서 김훈은 청국 칸의 입을 빌어 사람들에게 호통을 친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p.284)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인조에게서 나는 결정권자의 외로움을 읽는다. 치욕을 견디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치욕을 견딜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무섭다. 치욕을 견디는 것은 가벼운 일이다. 왕은 신하들의 손에 등떠밀려 어쩔수 없이 신하와 나라를 구해 치욕을 견디는 자의 위치로 가고자 하나 충렬의 반열에 앉고자 하는 신하들은 끝내 결정은 니가 내리고 나는 너를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하긴, 그게 충이긴 하다.

-비록 야지에서곤고하나 이 나라는 전하의 나라이옵니다. 중론을 묻지마시고....
-묻지 말고, 어찌하라는 말이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p.297)

이 책을 2년 전 출간 직후에 읽었었다. 그때는 글쎄, 그렇게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신하들의 만연체 문장에 휘말려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말인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뭔가 허둥지둥 문자를 따라가기 바빴었다. 2년여를 묵혀뒀다 다시 읽으니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연하게 잡힌다.  

명분(명예)도 지키고 삶도 얻는 길은 없다. 살아남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루어야 하며, 그 대가를 치루는 것이 치욕이라고 말할수도 없는 것이다. 김훈이 말한다. 명분을 지키고 충열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내가 아닌 누군가의 치욕을 딛고 가는 그것이 가장 치욕스런 일이라고.  

한때 나는 남한산성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의 열풍을 이해하지도 못했었다. 이 책은 칼의 노래와 같이 나를 매혹시키지는 못했다. 그 생각을 지금에사 수정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열광하지 않을수 없었을듯. 아무런 치욕도 책임도 감당하지 않으면서 오직 명예를 지킨 삶만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혐오스런 존재인지 이 책은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내면을 만천하에 펼쳐보인다. 삼엄한 시선이다. 무섭다. 김훈이 묻는다. 너는 뭐 했느냐고, 치욕을 견디지 않은 너는, 치욕을 당면하지 않은 너는 과연 순결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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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2-1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은 소설 다시 읽으시나요? 전 한 번 읽고 그냥 둬서 그런지 이런 깊이 있는 리뷰가 안나오네요. 좋은 리뷰입니다. 김훈 책을 무조건 사서 읽는데 저도 솔직히 남한산성은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아시마 2009-12-14 16:31   좋아요 0 | URL
몇몇 소설은 여러번 읽죠. 책을 읽을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글들이나 중심이 변화하는 소설들이 있거든요. 전 그런걸 좋아하거든요. 내가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졌다는 걸(그게 발전이든 퇴보든) 느끼게 해 주니까요. 문체가 아름다운 소설은 그 문체에 반해서 여러번 읽기도 하고요. 토지랑 빨간머리 앤은 열번 넘게 읽은 것 같아요. 빨간머리앤은 우울할때 읽으면 완전 행복해지거든요. 토지는 읽을때마다 연애하는 기분이 들어요. 막 새로운 인물을 만나거든요. 태백산맥이나 칼의 노래도 다섯번 넘은 것 같고... 음. 읽었던 소설을 또 읽으면 새로운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 있어요. 처음 읽어서 이해가 잘 안되는 소설은 일부러라도 한 1-2년 묵혀뒀다 다시 읽기도 하구요. 아, 박완서는 무조건 재독 삼독 하죠. 매번 읽어도 매번 재미있어요. 이건 새로운 느낌 때문이라기 보단 말 그대로 재미 때문에 새로 읽어요.
결국 전, 읽었던 소설 다시 읽는 걸 좋아하나봐요.^^

blanca 2009-12-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머리앤 너무 좋아요. 드라마는 뒷부분 완전 개작해서 너무 지루하더라구요. 그래서 실제 빨간머리앤 뒷부분도 지루할까봐. 읽지는 않았답니다. 참 구실도 가지가지죠? 생일 선물로 지르려고 했는데 남편이 말려서 좌절당하기도 했구요. 지금 보니 태백산맥도 읽으셨군요. 다섯번. 우와....저 한 번 읽는 데도 살림 다 작파했었는데...이런 식이면 아시마님의 책 구입은 정당화할 만합니다. 근데 컵은 왔나요? ㅋㅋㅋ 오면 좀 사진이라도...

아시마 2009-12-14 23:29   좋아요 0 | URL
오오, 빨간머리앤은 절대 지루하지 않아요. 그런데, 동서문화사판은 솔직히 좀 별로구요. 번역도 판형도 다 그저그래요. 예전에 청화문화사라는데서 나온 8권짜리가 있어요.(전 친정언니가 청화문화사판 가지고 있고 제가 동서문화사판 가지고 있는데 맨날 바꾸자고 조르는 중) 방문판매 비슷한 형식으로 봉고차에서 강매하던 책인데 의외로 대박 괜찮았죠. ㅎㅎ
빨간머리 앤이 지루하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애번리에서 학교 선생하는 이야기, 레드먼드 대학다니면서 길버트 아닌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이야기, 결국 길버트랑 결혼해서 신혼 생활하고, 애 낳고(아들셋 딸셋) 그 애들의 성장기까지 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 미쳐요. 꼭꼭 보세요.
근데 솔직히, 동서문화사판은 사라고 권하고 싶지가 않구요, 헌책방 같은데서 청화문화사 판 구할수 있으면 구해보세요.

전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장편 대하소설은 잡으면 정말 미친듯이 읽어서(전 항상 살림은 작파했고, 대하소설 읽을때는 잠을 작파하는지라... ㅎㅎㅎ 하루에 두세권씩 휙휙 읽어제껴요. 태백산맥도 뭐 일주일이면 땡. 읽고나면 몸살하죠. 진짜 환장하게 재미있지 않아요?

컵은, 아직 안왔어요. 이번에 주문할때 구하기 힘튼책을넣었더니 내일이나 모레 온다네요. ㅎㅎㅎ 기대 만빵이죠.

blanca 2009-12-1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 구하기 힘든 책이라니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님 때문에 왕창 지름신이...무엇보다 박완서샘의 '미망'을 읽구 싶군요. 혼불은 알라딘에서 세트로 안파네요. 참. 환장하게 재미있다, 저 뿜었습니다. 환장하죠, 그냥. 주변 사람 아무도 안알아줘서 넘 슬펐는데 아시마님이 있어 외롭지 않게 되었네요 ㅋㅋㅋ

아시마 2009-12-15 23: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 책 볼때 밑줄 그어가며 보는데요, 사실 태백산맥이나 몇몇 소설엔 밑줄 하나도 안그었어요. 인상적인 구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설에 너무 푹 빠져서 밑줄 긋는 것도 귀찮더라구요. 그정도로 정신없이 읽어요.
우리집 충무공도 제가 책 읽고 있으면 가끔 글케 재미있냐? 그럴 정도예요. 아니 내 낭군 씩이나 되면서, 집에 책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책을 읽지 않을수가 있지요? 블랑카님 부군은 책 읽으시나요? 제 남편도 저를 신기해하지만 저도 제 남편이 진짜진짜진짜 신기해요.
근데근데, 저의 지름신을 분양받으시면, 움움... 저처럼 남편을 충무공이라 부르고 받들어 뫼셔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실지도. 냐하하...

에파타 2009-12-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하하하하~깔깔깔~정말 넘 통쾌하신 분들이군요..배꼽빠집니다.지붕뚫고 하이킥 황정음씨 때문에 배째고 사는데, 우연히 들린 실제인물들이 이렇듯 혼을 빼놓다니요..정말 행복합니다요..
 
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은밀한 따돌림을 받았던(또는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또 한번 깜짝 놀랄 때는, 단 한번도 따돌림을 받았거나 받았다고 느꼈던 적이 없는 사람 또한 왜 이렇게 많은지.  

이 글의 제목 <우아한 거짓말>이 누구의 말일까를 읽던 중간에 잠깐 생각해 봤었다. 난 화연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도 진실도 아닌 것이, 해서 부정할 수도 없고 긍정할 수도 없이 애매한 꼬투리만 남아 있는 그 말. 거짓은 거짓인데, 우아하게 포장되어 있는 거짓. 거짓의 천박하고 더러운 속성을 잘 포장하고 있는 그 우아함이라니. 내용은 널 욕한 거지만 형식은 널 욕한게 아닌 게 되는 그 말.  

대부분 나는 미라였고, 때때로 나는 천지였으며, 가끔은 화연이이기도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아이들은, 질투의 화신이다. 화연의 천지에 대한 괴롭힘도 처음엔 아니었을 지라도 그 질투로 인해 집요한 힘을 얻는다. 차라리 천지가 한번쯤, 화연이 파 놓은 구멍에 풍덩 빠져서 왕따가 되어버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연이 천지를 괴롭히기를 중단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집요하고 교묘하게 쫓아다니지는 않았을텐데. 밟아도 밟아도 밟히지 않는 천지는 화연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질투의 대상이었고, 끝내는 싸워 무찔러야 할 무언가였지 않았을까. 화연과 천지의 처지가 뒤바뀌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화연의 괴롭힘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더 집요해져 갔다.  

살다보면 그런 애들 꼭 있다. 중 고등학교의 교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강의실에도 존재하고 아파트 아줌마들의 커뮤니티 안에도 존재하고, 학부모 모임에도 존재한다. 뭐 보통은, 중학교때 그러던 애들이 고등학교때도 그러고 대학 가서도 그러고, 애를 낳은 엄마가 되어서도, 그 애의 학교 학부모 모임에 가서도 그러기는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쟤는 왜 저럴까, 도대체 어떤 부모아래서 어떤 성장환경으로 자랐길래 저런 성품을 가지게 되었을까, 저러고 살면 자긴 좋을까.  

이 글,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화연이 타고났다고 말한다. 물론 가겟일에 바빴고 늙은 부모가 화연을 살뜰하게 보살펴 줄 수 없는데서 오는 공동이 있기는 했겠지만, 그런 상처가 생기는 모든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초등학교 4학년, 우리나이 11살에 이미 돈주고 가는 학원에서 조차 쫓겨나는 아이니까. 타고나나 보다, 싶다.  

이런 유형의 아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화연이가 되는 수 밖에 없다. 스트레이트한 창으로는 절대 못건드린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화연이가 되곤 했다. 그리고 그 뒷맛은 참. 쓰다.  

청소년 문학의 한계인 걸까, 만지의 화연에 대한 용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화연은 끝내, 반성하지 않고, 그저 겁을 먹었을 뿐이고, 도망치려 했을 뿐이다. 엄마 아빠의 삶의 터전인 중국집을 망하게 하여, 엄마 아빠로 하여금 이 동네를 뜨게 만들어 자신도 어부지리로 도망가고 싶어서 벌이는 화연의 그 행태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화연의 의도가 성공했다면 화연은 또다른 학교로 가서 또다른 천지를 찾았겠지. 토지에 종종 나오는 말이지만, 개털 굴뚝 속에 삼년 묵혀도 소털 안된다.  

하지만, "얘들아, 너희들이 나쁜게 아냐"를 외치고 "위 아 더 월드"를 외쳐야 하는 청소년 문학으로서야 그렇게 결론 내릴 수 밖에 없겠지. 자, 만지도 화연이를 용서했어,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너희도 화연이를 용서해. 글쎄. 천지와 같은 경험이 있다는 작가가 아직도 모르나. 화연이 같은 유형은 그냥 유전자에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서 타고나는 거다. (흠. 이건 이 리뷰의 제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긴 하구나.) 한동안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반성해서가 아니라, 그럴 상대가 없어서, 지금 나의 위치가 약해서, 하지 못할 뿐이다. 걍 냅다 집어서 이런 유형의 인물들만 모여있는 외딴섬에 가두거나 정신과에 가두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이놈의 우아한 거짓말의 해악은 너무 크다. 그런데 문제는, 때때로 나도 이놈의 우아한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교묘하게 잘 포장된 거짓말, 진실의 갈피에 살포시 끼어들어가는 그 거짓말. 단지, 자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이고, 특정 대상을 두느냐 두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지만, 여튼 나도 나쁘다.  

화연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이 글이 그다지 슬프게 읽히지는 않았다. 전작 완득이를 읽을때도 그랬지만, 이 작가, 소재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슬플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해 놓고 질펀한 울음바다로 만들지 않고 사뿐사뿐 상황을 잘 전개해 나간다는 면에서는 박수를 쳐 줄만 하지만, 만지도 만지의 엄마도 지나치게 쿨하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인 만지의 화연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 하긴 또,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어쩔수 없이 누구나 쿨 해질 수 밖에 없을수도 있겠다만.  

전체적으로 꽤 잘 쓰여진 글이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좋은 글이었지만, 마지막 화연에 대한 만지의 용서가 너무 도식적인 것 같아 별 하나 뺐다.  

이 글의 전후에 스티븐 킹의 캐리를 읽었는데(캐리를 반쯤 읽다가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캐리의 뒷부분을 마저 읽었다.) 우연히 둘 다 집단 따돌림에 관한 글이다. 장르의 차이도 있고 대상 독자의 차이와 극중 따돌림 유형과 정도의 차이도 있겠으나, 글쎄, 따돌림에 대한 복수라면, 캐리 정도는 해야. 난 오히려 캐리가 슬프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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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2-1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스티븐 킹의 단편선을 읽고 너무 무서워서 그의 다른 책들을 못읽겠더라구요. [캐리]도 지나치게 무섭고 불편할까봐 도무지 시도를 못하겠는데... 아시마님은 어땠나요? 읽기에 무리 없던가요? 슬프기만 하고 무섭지는 않나요, 혹시? 전 무서운걸 못읽겠어요. ㅜㅡ

아시마 2009-12-12 13:55   좋아요 0 | URL
스티븐 킹 단편선 (혹시 황금가지판 스티븐 킹 전집의 5번 읽으셨나요?) 전 다인 임신했을 때 읽었잖아요. 아오. 완전 소름이 오도도도 돋는 무서운 글이었는데,(아놔, 나 왜 임신했을때 이런 글을 읽었냐고요.) 그만큼 잘 쓴 글이기도 했잖아요. 처음으로 읽은 스티븐 킹이었는데 사람들이 왜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하면서도 무서워서 전집의 다른 책들은 손도 못댔잖아요. 저도.

단편집 읽고 몇년만이야. 이제야 스티븐 킹 읽기 시작했는데요. 장편은 캐리가 처음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이사람, 장편보다 단편쪽이 나은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캐리는... 무섭다기 보단, 전 많이 슬펐어요. 읽는 내내.

다락방님께 살짝 말씀드리는 건데요, 사실 이 리뷰는 가짜예요. 쓰레기야. 언젠가 제대로 된 <우아한 거짓말>에 대한 리뷰를 쓸 수 있게 되면 다시 읽어줘요.

다락방 2009-12-12 17:3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도 말씀하신 그 책으로 읽었어요. 아 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자겠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작품 읽을 생각도 못하다가 제가 아주 신뢰하는 분이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정말 좋다길래 사놓았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읽지는 못하고....[캐리]도 일전에 영화 예고편인가에서 살짝 보았는데 막 무서울 것 같더라구요. 읽기도 전부터 덜덜.

네, 언젠가 또 리뷰를 쓰시게 되면 또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