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 전10권 세트 - 개정판 그린게이블즈 앤스북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기분이 가라앉을때,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나는 이 책을 읽는다. 중간 아무데나 쓱 뽑아서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고 있으면 어느새 가라앉았던 기분은 둥실 떠오르고 시끄러웠던 머리속은 말갛게 갠다. 이건 정말 어메이징한 마법이다. 어느 서양의 소설간지 문학평론간지가 앤 셜리를 두고 서양 문학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라고 평했다는데, 그 말에 적극 동감이다. 그녀는 정말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소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앤을 아동문학으로 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린게이블즈의 앤 이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앤이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매튜 아저씨가 죽는 것으로 앤의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 뒤 앤은 자신이 다닌 애번리의 초등학교 교사직을 맡고 있다가 레드먼드 대학으로 진학하고, 중학교 교장이 되었다가 길버트(장난꾸러기 길버트는 의사가 된다.)와 결혼해 무려 일곱명(첫째 아이는 낳은 날 죽어서 실제로는 여섯명의 아이를 기른다. 딸, 아들, 아들, 딸딸(무려 쌍둥이!), 아들, 딸)의 아이를 낳고 그린게이블즈를 떠나 해변가 꿈의 집을 거쳐 잉글사이드라는 완벽한 가정을 이룩해낸다. 늙어서까지 앤은 사랑스럽고, 앤의 아이들 또한 사랑스럽다. 

이 소설에는, 꼬인 인물이 없다. 수다스러운 참견쟁이 레이철 린드부인까지도, 밉지가 않다. 유일한 악역은 조시 파이인데, 글쎄, 그 비중이 너무 약하다보니 매콤한 양념을 얹은듯 재미를 배가시킬 뿐, 나중엔 그 조시까지도 사랑스러워진다. 애번리 시절의 다이애너, 제인, 루비 등등의 여자친구들과의 우정도 아름답고, 레드먼드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의 우정도, 보고 있으면, 아 정말 이런 친구 있다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 소설은 그렇게까지 행복한 내용만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일단 앤의 생장배경 자체가 사실은 대단히 비참하다. 조실부모하고 아주 어린나이에 남의 집(게다가 한집에 내내 있지도 못하고 두집을 떠돌다 고아원으로 되돌아 가기까지) 애보개로 말그대로 개고생 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첫 아이는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고, 소설의 마지막권은 제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아들 셋을 다 군인으로 출정시키고 한 아들은 죽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행복이 마구마구 넘쳐난다.  

앤은, 아마 그것때문에 사랑스러워지는 것이겠지만, 세상을 밝게보고 밝게 살려 노력한다. 실제로 그녀는 운이 좋았고(물론 그린 게이블즈로 간 뒤부터 말이다.), 머리도 그만큼 좋았다. 게다가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건지, 앤이 모든 사람의 좋은 면을 뽑아내는 건지, 앤의 주변 인물들도 앤 만큼이나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리고,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의 캐나다 시골지방의 풍경과 풍속 묘사는 얼마나 세밀한지. 사람들의 재치넘치는 입담은 제인 오스틴 뺨친다.  

장담하건대, 이 책은 당신을 정말정말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줄겁니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면 앤 박물관이 있단다.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다.  

ps. 어쩔수 없어서 이걸 샀지만, 사실 김유경의 번역은 별로고, 책도 별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표지 디자인은 촌스럽고, 간간히 들어가있는 삽화는, 음,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그럼에도 현재 살수있는 유일한 앤 전권이다. ㅠ.ㅠ 아. 좌절. 시공사에서 레드먼드의 앤까지 번역해 냈는데 그 뒤를 번역해서 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이 소설을 왜 출간을 안하느냐고. 구할수 있다면 청화 판의 8권짜리 빨간머리 앤을 추천. 

ps2. 대교북스캔에서 몽고메리의 한권짜리 장편 두권과 단편집 한권을 출간했다. 그 책들 중에선 블루 캐슬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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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2-1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헌책방에서 산 1987년판 삼오문화사 박혜정 번역본을 갖고 있습니다.아직 다는 안 읽었구요...마치 명랑순정만화가 선하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

아시마 2009-12-19 00:21   좋아요 0 | URL
삼오문화사판은 처음 들어요. 어떤 번역인지 읽어보고 싶어요. 저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앤을 찾아 헌책방 순례를 하는 꿈을 가지고 있죠. ^^

노이에자이트 2009-12-19 10:21   좋아요 0 | URL
10권 짜리 완역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