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패디먼의 책에 관한 위대한 책《서재 결혼 시키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p.191)
나도 비슷하다. 나도 누군가의 독서록(그게 문인의 것이면 특히 좋다. 왜냐면 글쓰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의 리뷰는 리뷰 그 자체로 한편의 작품이 되니까.)이나 서재에 관한 책은 열광하며 본다. 사실 꼭 어떤 책의 리뷰들을 모아놓은 책보다는 책 그 자체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자신의 서재에 얽힌 이야기라든지, 원하는 책 한권을 얻기 위한 분투기라든지.
지금 내 서재(아, 이 "내 서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까지, 나는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9살 겨울, 결혼과 동시에 나에게는 서재가 생겼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남편을 무지하게 사랑한다. 서재로 만들 빈방이 있는 큰 집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 신랑.)엔 대충 10권 남짓한 책에 관한 책들이 있는데,
어제, 한권 더 샀다. 닉 혼비의 <런던 스타일 책읽기>(헌데, 이 책의 제목은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인 것일까 그냥 <런던 스타일 책읽기> 인 것일까. 책등을 기준으로 하자면 그냥 <런던 스타일 책읽기>가 맞는 것 같긴 하다.)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다 한 다음 책을 집어 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p.11-12)
흠. 나는 (닉 혼비의 견해에 따르자면) 그 극히 드문 부류중의 하나다. 올 한해 내가 몇권의 책을 읽는지(사람들이 가끔 1년 독서 목표 몇권 이런 걸 세우길래.) 체크해 보고 싶어 작년 연말에 받은 알라딘 탁상 달력에 매일매일 읽은 책을 기록했다. 나의 30년 독서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걸 우선 밝혀두고.
1월 - 18권
2월 - 7권
3월 - 7권
4월 _ 7권
5월 _ 11권
6월 - 11권
7월 - 7권
8월 - 22권
9월 - 24권
10월 - 32권
1월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건 작년 12월 중순에 둘째놈을 낳아 1월 중순까지 몸조리를 했던 덕분이고, 그 뒤엔 갑자기 애 둘을 보느라 정신없어져서 줄었다가 4월 말,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가면서 독서량이 또 늘었다. 7월엔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와 2주간 한국에 있었다. 8월에 비약적으로 독서량이 늘어난 건, 8월 중순경 컴퓨터가 고장나 2주간 A/S 센터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니까 내 독서를 방해하는 주범은 육아도 살림도 TV도 아닌 남편과 인터넷 웹서핑 되시겠다.
8월 말에 노트북을 찾아와서도 계속 독서량을 유지해 10월엔 무려 하루 한권이상의 책을 읽어치운건, 책읽는 습관을 찾은 덕이기도 하고 후반부에 퇴마록을 읽어 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탓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 비슷하게 애 키우는 엄마들이 묻는다. 도대체 책 읽을 시간이 어떻게 나느냐고. 37개월 11개월의 아이 둘을 주변 도움 없이, 남편도 없이 혼자 키우면서.
글쎄. 시간이 어떻게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걍 읽는다. 남편이 없으니까 저녁시간이 한가하고, 우리 애 둘 잠자리 습관하나는 기가 막히게 들여놔서 두놈다 저녁 8시 이전에 잠들어 버리니까, 8시부터 새벽 1-2시까지는 온전히 내 시간이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다 한 다음' 책을 읽는 거다. 물론 책만 읽지는 않는다.
선덕여왕도 보고, 조금 있다가는 개그 콘서트도 볼거고. 웹서핑도 하고, 글도 쓰고, 재봉틀 돌려 애들 옷도 만든다. 결혼하면서 만든 십자수 쿠션이 낡아서 새로 만들려고 십자수도 놓는다. 십자수는 항상 TV 볼때 하고, 책 읽다 지루하면 옷 만들고, 옷 만들다 지루하면 웹 서핑 한다. 옷 만드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번 가을 겨울 애들 내복을 무려 여덟벌 만들었다. 올 가을 겨울은 내복이나 실내복은 더 안사도 된다. 지난 여름에도 애들 옷 한벌도 안사주고 둘째놈은 큰놈거 물려입히고, 큰놈은 재봉틀 돌려 원피스 몇벌 만들어 입혔다. 나 이렇게 알뜰한 엄마다. 그러니까 한달에 몇십만원쯤, 책사는데 써도 된다!!!!!!!!!!!!!!!!!!!!!!고 누가 울 남편한테 말좀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저녁 시간에 책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고 낮에도 책 종종 본다. 작은 놈 업어 재울때, 젖 먹일때, 카레나 이유식을 만들거나 해서 불 앞에 서서 냄비를 휘젓거나 할때, 한손에 책 들고서 본다. 뭐, 많은 양을 읽을 수는 없고, 기껏해야 3-4장 넘기는 정돈데, 이게 모이면 크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이것도 일종의 독서 강박증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닉 혼비의 <런던 스타일 책읽기>는 다락방님의 서재에서 그 존재를 알아낸 책인데(그러므로 다락방님의 서재는 나에겐 지뢰밭이다. 정확히는 남편에게. 장바구니를 순식간에 채우게 만드는 곳이므로.) 거기서 또하나 발견한 재미있는 건, 가름끈에 관한 거였다.
가름끈이 없다고 투덜거리다니.
이건 습관에 관한 부분이기도 한 것 같긴 한데, 난 가름끈을 쓰지 않는다. 책 날개도 쓰지 않는다. 물론 책갈피도 쓰지 않고 책 귀퉁이를 접어두지도 않고, 읽던 페이지를 펼쳐 엎어두지도 않는다. 이렇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서너장(예닐곱페이지)를 읽다 독서를 중단할 때도 그렇고, 한참 읽다 중단해야 할때도 그렇고, 난 그냥 책을 탁 덮어둔다. 그리고 다음번 읽을때 펼쳐서 대충 이즈음이겠지 하면, 내가 읽다 그만둔 부분을 쉽게 찾을수 있어서 거기서부터 또 읽는다.
그래서 난 가름끈이 있는 책이 무척 싫다. 한때는 가름끈이 붙어있는 부분에 바짝 붙여 쪽가위로 똑 잘라내서 버리기도 했는데, 너덜너덜해 보이는게 싫어서 그것도 그만뒀다. 매번 자르기도 귀찮고, 일단 붙어있는 걸 자르는 건 책을 훼손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이 가름끈이라는 게 책 밖으로 나와있으면 책을 꽂아놨을때 지저분해 보이기도 해서 반쯤 접어 책 사이에 끼워놓는데, 책을 읽는 중간에 가름끈이 있는 페이지가 나오면 거슬려서도 싫고(안그러려고 해도 신경이 쓰인다.) 이상하게 이런 끈종류가 꼬여 있는 걸 못봐주는 성미이기도 해서 판판하게 펴서 꼬이거나 접힌 부분이 없이 펼쳐서 책사이에 끼워두려고 하니 그마저도 일거리의 하나가 되어버려서, 내 독서의 방해물 중의 하나다.
헌데 요즘 하드커버본은 가름끈이 없는 책이 거의 없다. ㅠ.ㅠ
무겁니 비싸니해도 어쨌든 책은 양장본이 좋은데, 나는.
아, 물론 책날개나 띠지를 책갈피 대용으로 쓰는 것도 별로. 애초 나야 책갈피라는 것 자체를 쓰지 않는 인간이긴 하니 그렇다쳐도, 책날개를 책갈피 대용으로 쓰면, 날개가 구겨진다. 약간 둥글게 휜다고 해야하나.
딱히 책을 곱게 본다거나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이런것들은 거슬린단 말이지. 가름끈이 끼워진 채 오래 덮어두면 그주변 몇페이지에 가름끈 자국이 남는다든가 하는 거.
아. 잡설은 그만두고 개콘보러 가야겠다.
다락방님 포스팅보고 생각나 주절주절 써봤다. 쓰는 도중에 제목을 몇번 바꿨는지 모르겠다.
아, 창 닫았다가 한가지 추가. 책갈피를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난 내가 읽은 책에서 어떤 구절을 찾아내야 할 때 그걸 무척 쉽게 찾는 편이다. 페이지까지 외우는 건 아니라도 어디쯤에 있겠구나, 어느 장면뒤에 그런 문장이 있었다, 뭐 이런식으로 기억이 난다. 이건 나름 자랑질이고. 어제 잠깐 본 SBS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기억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데, 난 언어화된 것에 대한 기억력은 남들보다 조금 나은 편인 것 같다. 문제는 언어화되지 않은 기억력은 남들의 반의 반도 안된다는 게 문제겠지만. 예를 들어 길 찾기 라든지, 음악을 외운다라든지. 그런거 있지 않나. 어떤 멜로디를 듣고, 아 이건 비발디다 바하다 또는 시크릿 가든이다 앙드레 가뇽이다 등등등. 이런거, 난 절대 안된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매번들어도 매번 그 제목과 매치 시키지 못한다. 븅.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전혀 즐기지 못하는 건, 내가 들은 음악을 그 다음에 찾아 들을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 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