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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울할 때, 아니, 우울까지는 아니고 기분이 가라앉거나 처질 때 나는 책을 사거나 읽거나, 책장을 정리하거나 한다. 사방벽을 책으로 가득 채운 서재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서재에서 내가 찾는 것은 안정감이다. 책을 주문하고 책장을 책으로 메우는 건 이미 나에겐 일종의 강박 수준이다.
정을 주는 것이 두렵다. 무언가, 특히 그것이 생명체일 경우엔 헤어짐보다 정을 붙이고 있는 동안의 책임감이 더욱 두렵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상대가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은 강박으로 발전해서 관계를 넓히는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큼만, 생명체와의 관계는 내가 돌보아 줄 수 있을 만큼만으로 한정짓는다. 사회생활을 할땐 정기적으로 휴대폰의 메모리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지우는 게 습관이었다. 결혼과 함께 (적어도 내겐) 축복받은 칩거의 세상으로 들어와서는, 웬만해선 휴대폰에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랄까. 내게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가까웠던 누군가가 멀어지는 것만큼이나 싫다.
헌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사람이 떠난 자리를 책으로 메웠다. 이책의 구절처럼 "사물들은 멋대로 떠나버리는 대상보다 더 쉽게, 더 잘 통제할 수 있기 때문"(p.133)인 것만은 아닌 것 같고, 사물은 무정하니까. 관심을 주지 않아도 내 마음이 무겁지 않으니까. 나에게도 특정한 몇몇 사람 말고 관심을 표명할 뭔가가 필요하니까. 더 정확하게는 나는 물건, 책을 "자신의 일부처럼 인식하면서 정체성의 한 요소"(p. 137) 로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실존하는, 실체로서의 타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싫고, 누가 나의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싫다. 타인을 위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이 전해져와서 아프고 무겁다. 감당할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타인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그 사람도 아프고 무거울테니까. 그래서 그냥 책이나 읽고 있는거다. 이건 분명 약간의 자폐 성향인거고, 이 책의 말대로 "독서는 그 자체가 이미 자폐적인 행위" (p.155)다.
나의 독서 목록은 다양하다. 물론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소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나의 독서는 온갖 잡다구리한 곳으로 뻗어나간다. 김훈 식으로 말을 하자면, 계통을 찾을 수 없는 독서다. 이걸 김형경은
"내가 책의 종류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은 내 무의식 속 빈 공간이 그토록 크고 깊었다는 의미"(p.228)
라고 풀이한다. 그런걸까.
김형경의 글은 읽다보면 아프다. 맘이 아프다 슬프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몸이 아프다. 솔직하게 말해서 김형경의 글을, 특히 소설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소설가 김형경이 그다지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도 역시나 김형경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인데 어쨌든 새 책이 나올때마다 꼬박꼬박 사서 읽고 책장에 모셔둔다. 가끔은 김형경이 생각나기도 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읽다보면 이 사람도 참 많이 아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이 아팠구나, 말 할 곳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서 힘들었구나,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아프구나, 많이.
하는 생각.
김형경의 글은, 내가 알고 싶지 않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내 속을 들여다보게 만들면 그건 감사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들여다보고 나서도 느낀다. 아... 나 이거 알고 싶지 않았는데, 라고. 이 책을 읽고서도 그랬다. 나, 내가 책에 집착하고 있다는 거 알지만, 왜 집착하는지 알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라고. 난 왜이렇게 책이 좋지? 라는 건 그냥 그 의문의 수준에 만족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뚜껑을 왜 열어버리냐고, 막 투덜거리고 싶어진다. 하나도 감사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살포시, 그 뚜껑을 다시 닫는다. 알겠어 알겠어. 나에게 애도가 필요한 거 알았어. 하지만 나는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나는 다시 살포시 뚜껑을 덮어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또 김형경에게 변명을 한다. "독서는 훌륭한 애도 행위"(p.229) 라며. 나 애도 하고 있어. 그것도 매일 매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내 마음의 한자락을 보여줬다. 말하기 표현하기, 이런게 정신건강에 무척 중요하단다. 그리고 또 한번, 독서는 훌륭한 애도 행위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읽어라,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속에 심연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나의 상처를 과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대한민국을 살아온 사람 평균치 만큼의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표현 방식이 어떻건 누구에게나 이만큼의 빈공간은 있을 거다. 그 빈 공간때문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김형경의 글은 아프지만 따뜻한 위로가 된다.
글을 잘 쓰건 못 쓰건, 내 속의 심연을 들여다본 것이 감사하건 아니건,
때때로 나는, 김형경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