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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책을 구입할 땐 습관적으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중의 서너권을 꼭 함께 구입하곤 한다. 어린 시절에 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어떤 부채의식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어린시절에 그것을 읽지 않았기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음을 여러가지로 인정을 하면서도 말이다. 서재 책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 번호 순대로 졸졸졸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도 선듯 손이 가지않는 것은, 아무래도 "봐야하는 책"이라는 생각에 사 두기는 했지만 "보고싶은 책"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언제나 고전의 가치를 역설하면서도 '고전'이라는 말의 무게에 짓눌려 재미없고 지겨울거야, 라는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이상하게도 늘 그렇게 된다. 고전은, 막상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내리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다.
책장을 훑다가 무심결에 손에 잡은 책이었다. 요즘 읽다가 던져두는 책이 하도 많아서(아니면 중간에 술술 건너뛰든가) 나의 독서습관이 바뀌었나, 나쁜 버릇이 들어버렸구나, 반성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 책이 나의 그러한 반성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내가 문제가 아니라 책이 문제 있었던 거다.
각설하고, 1960년대 영국, 성개방 직후의 혼란스러움과 마약, 가족 해체 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던 시기에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던 주인공 남녀 헤리엇과 데이빗이 만나 가정을 이룬다. 그들은 주변의 우려에 찬 눈길도 무시한 채 빅토리아 양식의 거대한 (방이 10개가 넘고 다락방까지도 존재하며 15인용의 참나무 식탁이 있는) 집을 구입해 가정을 꾸린다. 피임약은 신뢰하지 않으며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피임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두 사람은 단숨에, 아이 넷(아들, 딸, 딸, 아들)을 낳고 "거대한 과일 케이크"같은, 모범적인, 타인의 부러움에 가득한 가정을 만들며 행복해 한다. 처음 이렇게 행복한 그들 가정의 모습은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이룩한 가정 '잉글사이드'의 모습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행복한 웃음과 즐거운 여름 휴가가 가득한 집. 이러한 집에 태어나는 다섯째 아이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그들이 얼마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라고 기대했는데 웬걸.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다섯째 아이 벤 덕분에 그들의 행복한 가정은 파탄을 맞는다. 태내에서부터 범상치않은 태동으로 엄마 해리엇을 괴롭혀 댄 벤은, 그로 인해 해리엇으로 하여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진정제를 집어먹게 만들었다. 진정제의 힘으로 일곱달 반의 임신기간을 견뎌낸 해리엇은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아이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와는 전혀 다른, 원시적 폭력성을 그대로 소유하고 태어난 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결국 벤을 요양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용소)에 보내게 되고,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내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해리엇은 결국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벤을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떤 반전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벤은 사실 독특하지만 매우 빼어난 아이였는데 평범한 부모와 형제, 친척들이 그걸 몰라줬던 것 뿐이다, 라든가 어느 정도의 정신 질환(해리엇이 집어 먹은 진정제로 인하여)을 가지고 있는 아이여서 결국 가족들이 그 아이를 중심으로 다시 화합하게 된다든가, 아니면 최소한, 벤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을 견디지 못하고 해리엇과 데이빗을 떠나간 자녀들을 대신하여 벤이 부모의 곁에 남아 부모에게 뭔가 깨우침을 준다든가......
이 책은 독자의 그러한 깨우침을 무참히 부셔버리며 끝난다. 끝끝내 벤은 밝혀지지 않은 고대의 유전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돌연변이일 것이다, 라는 해리엇의 짐작이 옳은 판단이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며 "거대한 과일 케이크" 같았던 가족들은 완전히 해체되고 와해되어 다 먹고 난 뒤 찌꺼기가 눌러붙은 접시마냥 처참한 모양으로 변화하고 만다.
자신들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했던 해리엇과 데이빗은 결국 자신들이 가장 부정했던 가족의 모습으로 변화해 가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은 끝내 화해의 계기를 찾지 못하며, 벤은 여전히 부모(특히 엄마)와 별개의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 살아나간다.
벤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훌륭한 가족 드라마였던 소설은 벤의 출생과 동시에 호러무비로 바뀐다. 작가 도리스 레싱의 차분하면서도 적절하고 간결하면서도 냉정한 묘사는 그 분위기의 반전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행복해 보였던 가족의 이기심이랄까, 그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약한 것이었던가에 관한 깨달음 같은 것도. 그리고 그 깨달음만을 남기고 소설은 쓸쓸하게 끝난다. 설마 이렇게 끝나진 않겠지? 설마, 설마, 설마... 했던 기대를 모두 무시한 채 작가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이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 버리는 것이다. 허무하다, 화난다 말하기 이전에 이런...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아쉬움이.
가끔 우리는 잘 된 일에 관해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것처럼 칭찬 한마디 없다가 잘못된 일에 관해서만 책임을 묻고 나무란다. 그런 상황을 접하면 마치 소설 속 해리엇의 외침처럼 외치고 싶은 것이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전 그저 죄인이죠."
고전의 힘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