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 궁궐의 꽃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학 서적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대나 뭐래나, 광고도 해 대고, 궁녀라는 특이한 계층에 호기심도 있고 해서 읽은 책.

여러 분야의 학문이 그렇듯이 다년간의 연구가 쌓인 뒤, 그것을 정리하고 추려낸 것들이 가치를 가지듯 궁녀에 대한 연구도 그럴 것 같다. 아직은 여러모로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듯. 87년 일지사에서 나온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박하고 있는 글이지만, 지나치게 중구난방이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말은 김용숙의 연구는 조선왕조의 몰락기 궁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그 정확도가 떨어지고, 경국대전의 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궁녀의 특성상 그 연구 자료가 너무도 희박하다... 라는 말. 그리고 나오는 말들은 전체적으로 뭘 말하고자 하는지 뼈대가 잡히지 않는다.

세종조에 중국으로 건너가 옹정제의 애첩이 되었던 조선의 여자 한씨에 대한 기록이 흥미로웠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죄다 그저 그렇다. 궁녀의 월 급여가 얼마였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니까~~~!!! 버럭!

인문학 서적 특유의 정확한 정보 전달 노력도 좋지만 작가가 직접 말한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재료 자체가 미비한 시점에서 상상력을 발현하여 정보와 정보사이 빠진 부분을 메꾸려는 노력조차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 사람의 글솜씨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싶다.

나에게는 크게 가치있는 글로 읽히지 않았다.

차라리, 계축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 등등의 궁녀문학을 읽는 것이 훨씬 나았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쿠가와 이에야스 제1,2,3부 - 전32권 세트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우선은, 징~하게 긴 소설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해야겠다. 76세까지 살았던 한 인물의 출생비화에서 죽는 순간까지를 단 한순간도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그려내느라 소설은 숨이 찰 정도로 길어졌다. 웬만큼 긴 소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읽어내리는 데 이 소설에서는 한 25번을 읽을 때부터 "아, 이거 언제 끝나, 이거 언제 다 읽어."라고 징징대고 있었으니까.

일본은 동양 3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세시대를 겪은 나라라고 하는데, 그 중세의 시기가 이 소설에 해당한다. 다케다 신겐으로 부터 시작하는 각 지방의 군웅이 할거하는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불에 대한 자성을 바탕으로 한 인내로 그 시기를 넘기며 끝내 일본을 통일해 중세를 거친 봉건 영주국가(여기서는 영주가 막부의 세이이타이쇼군이라고 해야하겠지만. - 왕은 따로 있다.)로 완성한다.

그 과정에 한명의 아들에겐 할복을 명령해야 했고, 또 한명의 아들에겐 살아 평생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대면 금지의 명령을 내려야 했고, 끝내 그 아들의 어미에게 "나도 자식은 귀여워."라는 눈물 섞인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찌보면 일본 통일에 희생당한 사람이다. 새시대의 새 인물이라고 표현되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면 이에야스는 천하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엄격하게 누르고 살았던 사람.

당시 일본의 풍속과 문화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식의 풍속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좀 더 작고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게다가 지나치게 남성취향이다. 남자들의 성격과 기질이 입체적이고도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는 반면 여자들의 성격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하는 행동이나 말들이 몇몇 부류로 나누어 그 부류에 속하는 여자들 끼리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여자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죄다 복잡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양성이 없달까. 여자들의 성격이 죄다 서로서로 비슷비슷하다. 흠... 난세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은 그렇게 사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었다는 말일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소설의 제목으로 내세울만큼 한 인물에 집중하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단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론 훌륭한 인물이고 위대한 인물이지만, 글쎄,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매력적인 히어로로는 조금 부족하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잘생기고 키도 크고,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무리 그래도 임진왜란을 겪은 한국인으로서는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오다 노부나가는 9번에서 죽어버린단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는 것으로 흔히 알려진 "대망"은 끝난다.

가끔,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면, 소설에서는 부각되지 않던 여자를 굉장히 부각시킨다거나, 소설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던 여자를 등장시키는 등의 각색을 하는데 (최인호 원작의 <상도>와 MBC드라마의 <상도>에서는 '송이'라는 인물의 비중이 전혀 다르고, 김훈 원작의 <칼의 노래>와 KBS 드라마의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여자'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확실히 남자와 여자가 가지게 되는 미묘한 로맨스적 분위기는 이야기의 호감도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원작과는 상관없이 여자를 등장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확실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 구조는 다르고, 그 기질적인 차이에서 오는 납득할 수 없음은 소설을 읽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런 사소한(어찌보면 크지만) 차이를 누르고서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만큼. 이 소설은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아무래도 박학다식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동서고금의 인문학적 지식에 능통하고 자신의 논리에 맞는 인용구를 능숙하게 끌어올 줄 알고(비록 그것이 곡학아세가 될 지라도.), 지식의 힘에서만 가능한 세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람들.

미셸 트루니에는 (스스로 말하기를)졸라의 제자이고 실제로 가스통 바슐라르의 제자이고 프랑스의 아카데미 공쿠르의 종신회원이며 데뷰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수상한 뛰어난 소설가이고.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80대의 남자.

김훈이나 한강 처럼 스스로의 내면에 천착하며 그것에 침잠해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그 영혼을 외부로 펼쳐 외부의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

이 책에서 트루니에는 EXtime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외면의 일기, 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일기는 어떤 사물에서 자신이 느끼는 것, 즉 자신의 내면을 중심으로 기록하지만 이 책은 트루니에가 관찰한 모든 것-기상현상, 이웃, 책, 자연, 나무 등-에 대한 짤막짤막한 메모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더불어 핍진한 관찰력이 그대로 묻어나고 그 갈피갈피에 그 특유의 박학다식함이 살아 있는 책.

미셸 트루니에, 김화영, 최근 날 열광하게 만드는 이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심윤경의 두번째 소설이다. 70년대 생이고 자연과학을 전공한 작가 치고는 놀라운 작가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제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녀의 문체는 섬세하고 미려하다. 그녀의 사유는 깊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 역시 또래 작가들에 비해 훨씬 넓다. 싸구려 감정놀음의 소설을 읽다가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종가집 종손으로 태어났지만 서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상룡을 '나'라는 화자로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한 인간의 내면 탐구에 성공하고 있다. 삶을 '가문'에 헌납한 할아버지와 '사랑'에 헌납한 아버지를 가진 나의 고뇌는 깊다. 나를 이렇게 고통스러운 서자로 만들어 버린 아버지를 인정할 수도 없고, 할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은 벅차다. 할아버지는 무섭고 아버지는 싫다.

소설은, 가문에 천착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가문의 뿌리가 되는 10대조 조모의 편지를 해독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조모의 편지를 해독해 갈수록 할아버지가 그토록 집착하는 가문이란 결국 가짜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바람에는 결코 부합하지 못할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한데 집안까지 온전하지 못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나에게 할아버지는 너를 종손으로 맞아 들인것이 잘못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가문이란 무엇일까. 그것도 위대한 가문이란.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심어주는 것임과 동시에 나를 그 가문의 격식에 맞추어 살 수 밖에 없도록 억누르는 이중적 존재인 가문. 삶의 전체를 그 가문에 맡겨 가문과 나의 생사를 하나로 보는 할아버지는 속이 텅 빈 사람이다. 그 빈 속에 가문을 집어넣고 그 가문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가문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또한 고통일 것이요, 자신이 가진 것을 가문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것도 고통일 것이다.

의고체의 아름다운 문체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썼지만, 난 김형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 스타일이랄까 문체 같은 것은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고 그녀의 사유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음. 솔직하게 말해서 난 그녀가 글을 잘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글은 잘 쓰지만 어떤 소설적 재능이 넘치는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욱 정확하겠다.

그렇지만 그녀, 참 열심히 쓴다. 성실한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원래 머리가 좋아서 공부 잘하는 놈도 1등,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 잘하는 놈도 1등이긴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2004년 동인 문학상이 김영하의 『검은 꽃』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뭐 이건 당연한 거다.) 알기 전부터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도 동인 문학상 후보 작품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 둔 책을 늦게사 읽었다.

형식이나 문체, 시점이 새로운 소설을 '실험소설'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분명 새로운 실험소설이다. 김형경은 나무, 바람, 박새, 청설모 등 자연을 화자로 선택하여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보는 실험소설을 써 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화두인 성과 사랑, 삶과 유토피아등에 대한 탐구를 자연물을 화두로 써 냈다는 점도 새롭고, 2중 구조도 흥미롭다. 각각 연인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연희와 세중)가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 두 남녀가 낯선 산장에서 세 남녀(남자, 사내,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자연물(즉 세 남녀를 지켜본)의 입을 빌어 진행되는 남자, 여자, 사내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단순한 액자식 구조라고 말을 할 수는 없겠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우리 전래 설화의 무릉도원 이야기와 비슷하다. 무릉도원 이야기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사람이 시냇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복숭아 꽃잎을 따라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갔더니 무릉도원을 만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무릉도원에서 며칠을 살다 다시 속세로 내려왔더니 100년쯤의 세월이 흘러 그 남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그 남자가 다시 그 무릉도원을 찾아 산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남자와 여자, 사내가 어울려 성과 생활을 나누며 살아갔던 그곳은 분명 유토피아다. 평화로운 곳. 그곳을 찾아갔던 연희와 세중이 그곳에서 내려왔을 때, 세상은 변함이 없었지만 연희와 세중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고,(사실 연희의 삶은 변했다.) 다시 연희가 그곳을 찾아 가려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무릉도원 설화의 끝이 쓸쓸하듯 이 이야기의 끝도 쓸쓸하다. 끊임없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찾아 헤메게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끝내 유토피아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토피아는 스스로 만드는 거라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환상이고, 그 환상이 깨어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참혹해 지는가에 대한 쓸쓸한 깨달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