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심윤경의 두번째 소설이다. 70년대 생이고 자연과학을 전공한 작가 치고는 놀라운 작가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제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녀의 문체는 섬세하고 미려하다. 그녀의 사유는 깊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 역시 또래 작가들에 비해 훨씬 넓다. 싸구려 감정놀음의 소설을 읽다가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종가집 종손으로 태어났지만 서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상룡을 '나'라는 화자로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한 인간의 내면 탐구에 성공하고 있다. 삶을 '가문'에 헌납한 할아버지와 '사랑'에 헌납한 아버지를 가진 나의 고뇌는 깊다. 나를 이렇게 고통스러운 서자로 만들어 버린 아버지를 인정할 수도 없고, 할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은 벅차다. 할아버지는 무섭고 아버지는 싫다.

소설은, 가문에 천착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가문의 뿌리가 되는 10대조 조모의 편지를 해독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조모의 편지를 해독해 갈수록 할아버지가 그토록 집착하는 가문이란 결국 가짜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바람에는 결코 부합하지 못할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한데 집안까지 온전하지 못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나에게 할아버지는 너를 종손으로 맞아 들인것이 잘못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가문이란 무엇일까. 그것도 위대한 가문이란.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심어주는 것임과 동시에 나를 그 가문의 격식에 맞추어 살 수 밖에 없도록 억누르는 이중적 존재인 가문. 삶의 전체를 그 가문에 맡겨 가문과 나의 생사를 하나로 보는 할아버지는 속이 텅 빈 사람이다. 그 빈 속에 가문을 집어넣고 그 가문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가문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또한 고통일 것이요, 자신이 가진 것을 가문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것도 고통일 것이다.

의고체의 아름다운 문체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