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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책 이라는 게 시기를 탄다. 특히 일상을 소소하게 다룬 에세이집의 경우엔 더 그런 것 같다. 어떤 책은 특정한 시기에 읽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한국에서 꽤나 유명하고 인기있는 작가이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바나나도 그렇고 가오리도 그렇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거의 10년째 똑같은 사진을 써 먹고 있다. 이건 바나나와 가오리의 바램이 반영된 것인지 소담출판사와 민음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동그란 안경을 쓴 담백한 얼굴의 바나나는 그 얼굴과 작가의 약력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보통은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개인사를 추론해 낼 수 있게 되거나 소설 외에 몇권의 에세이집으로 작가를 추측할 수 있게 되는데 바나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그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로 작가의 성장 배경을 추측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그래도 몇권의 에세이집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했던 가오리와는 달리 바나나는 이번이 처음(내가 아는 한은) 에세이집이다.
아마, 바나나의 팬이라면, 바나나의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이 그려지는 에세이집이라는 말에 혹했을법 한데, 막상 읽다보면 실망을 했을 것 같다. 이 책은 에세이집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보통 에세이집에서 상상하는 내면의 표출같은 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의 나열이다. 바나나의 소설들이 그렇듯 담백하고 단순하다. 이 책으로 작가의 내면을 짚어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바나나라는 이름을 배제해 놓고, 그냥 이 책을 읽는다면, 더구나, 만 3-4세 가량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읽는다면, 이 책은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다. 바나나의 아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내 딸도 했다. 소설가 엄마를 가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일상은 묵정밭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그 묵정밭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화초만을 남겨두는 것이다. 바나나는 바로 그 일들을 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일어나는 그 수많은 일들중에 보석같은 순간들을 잡아내어 글로 옮겼다.
육아 이야기는, 육아 당사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화제이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주제중의 하나가 된다. 도대체 아이가, 오늘 엄마! 라는 말을 했다고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고 흥분해 온 동네에 전화를 돌려 대는 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를 둔 엄마밖에는 없다. 하지만 육아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한템포만 물러서면, 이게, 내 새끼라서 이쁜거지, 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내 새끼는 나나 이쁘지 남은 안이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그 이야기들.
이 책은 그 육아 수다의 욕구를 채워준다. 아이고 바나나씨 당신 아들은 두살이 지나서야 엄마소리를 했구먼요? 호호호호호, 내 딸은 9개월에 했다오. 아이고 데이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당신, 육아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당신, 당신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