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란 무엇인가 - 폭력에 대한 6가지 삐딱한 성찰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정일권 옮김 / 난장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연말에 가끔씩 국방부 금서 목록이 떠돌면 그 책들은 인기를 얻고 우리는 국방부를 조롱한다. 예전에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인간극장>에서 여자 파일럿을 다룬 편을 보게 되었다. 금남의 영역에 여성의 자긍심에 초점을 맞추는 게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였지만 나는 국방부가 왜 책을 못 읽게 하는 지 깨달았다. 여성 파일럿의 일과를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직업 군인이 하루 종일 해야하는 일은 가상을 적을 만들고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는 일이다. 하루는 숲 속에서 게릴라 전처럼 적이 나올 곳을 예상하며 몸을 움직이고 숨고 했다. 날씨도 화창하고 적도 없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군인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임무를, 나처럼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면 마땅히 해야할 일과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제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 머리 속에 복잡해지면 단순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국방부는 머리가 복잡해질 수 있는 책을 원천 봉쇄해버린다. 중세 교회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인이 책을 금기시한 일과 맞닿아 있다. 책은 실제 일상에는 무익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길을 안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특히 나처럼 요약해야 하는 성격을 지닌 이한테는 조금 짜증도 난다. 결론도 없고 온갖 사례와 철학을 끌어다가 나열해 놓는다. 기나긴 나열을 읽다보면 지젝이 말하는 폭력의 개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큰 성과는, 지젝이 던진 폭력의 개념에 대한 고찰보다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성찰reflection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발견하는 일다. 일정량의 노동에 길들여져서 모든 사고가 생활 반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물러있다. 이따금씩 전에 읽었던 책들을 펼쳐보지만 곧 덮고 새로 주문한 책들로 휘-익 들춰보고 처박아둔다. 뭘 새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거의 안 하고 안락한 하루하루에 점점 빠져들 채 시간은 광속으로 흐른다.하고 있는 리서치라고는 어디로 놀러갈까 매일 소셜 커머스 들여다보고 가격 비교나 하고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내일은 좀 오늘과 다르게 의미 있게 보내자, 하면서도 일과가 끝나면 비슷한 짓거리를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내가 내 자신한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 폭력을 주변으로 무심코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폭력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며 사고를 계속 해야한다는 자극을 주는 책이다.

 

"만약 우리가 폭력이란 말을 기본적 사회관계를 발본적으로 뒤집어버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면, 몰지각하고 정신나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백 만 명을 학살한 역사상의 '괴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 괴물들이 충분히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폭력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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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네 안 하네 하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는 중에 대테러 작전을 다룬 영화를 봤다. 기분이 묘했다.  CIA는, 9.11 이후 폭탄 테러를 알카에다란 집단으로 보고 응징을 해 왔다. 이 영화는 오사마 빈라덴을 잡기까지, 한 CIA 요원이 12년 간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파키스탄에서 빈라덴이 숨어있다고 추정되는 집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 집에 기거하는 사람 중에는 여자들, 아이들도 있다. 제로다크서티 시간, 즉 가장 어둠이 짙은 오전 12시 30분에 특수부대 요원들이 중무장을 하고 기습한다. 잠을 자다 깬 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죽어나간다. 그들이 테러리스틀인지 혹은 테러리스를 지원하고 있는지는 심증만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중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테러리스트다. 자정 무렵 조용한 마을에 계속 이어지는 폭탄과 총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깨운다. 영화에서 보여진 단편을 보면, 파키스탄에서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다. 테러를 막겠다고 온 이들은,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테러리스트 정의를 고민 좀 해 봐야한다.  

 

마야란 신참 요원은 잔인한 고문을 보지 못 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은 흐르고 신참 요원은 잔인한 고문을 지시도 하고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잔인하고 건조한 사람이 돼 간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빈라덴을 쫓는데 보낸다. 빈라덴의 실체는 모호하기만 하다. 봤다는 사람도 거의 없고. 마야는 직업적 신념으로 빈라덴을 구체화한다. 정황과 포로들의 진술로 모호했던 빈라덴이 어느 순간 명확해진다. 유연했던 신념이 굳으면 집착과 동거를 하고 개인의 고집이 더해져서 구체화된다. 참일 수 있던 명제가 거짓일 수 없는 진리로 변한다. 그 진리를 처음 만들어낸 이는 자신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파키스탄 외곽에 수상한 집이 빈라덴의 은신처라고 어느 누구도 확신이 없는데 마야는 확신한다. 그러나 빈라덴을 사살한 후 마야는 그 확신을 잃어버린다. 과연 그는 오사마 빈라덴인가? 오사마 빈라덴은 정말 알카에다 조직을 움직이는 인물이었나? 우리는 미국의 보도에 따라 오사마 빈라덴이 테러리스트 그룹을 이끌었고 이제 그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테러 조직은 와해될 거라고 잠정적으로 믿는다.

 

영화는 빈라덴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는다. 빈라덴 죽음 후 뭐가 달라졌는가? 미국은 응징이란 카드를 찢어버렸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태도가 가져오는 재앙의 폭격을 맞는 이는 따로 있다. 김정은과 측근들이 미사일 발사로 피해를 입는 건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비무장한 민간인이다. 미국은 많은 나라에 자신들이 만든 무기에 그나라의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붓게 만든다. 어제 우리 언론에 요격 능력을 흘리며 안심시키려고 한다. 실제 무기의 성능은 검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요격 파편이 튀어도 괜찮고 계속 전진하는 막강한 성능을 가지는 건사이버 공간에서나 가능한 법이다. 요 며칠 속보로 뜬 뉴스를 읽다보면 영화 속에서 민간인들이 죽어가는 과정이 다른 때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뭐 물론 나는 한국인이기에 설마 정말 미사일을 쏘겠어, 하는 편이다. 적을 이기기 위해 더 무장하면 할 수록 평화와 안전은 더 위험해진다는 걸 모르진 않을텐데. 빈라덴의 죽음이 해피엔딩이 아니듯이 북한은 미국과 한반도 위협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길 바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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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부터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매진이어서 정식 개봉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들리는 소문들로 기대치가 높아졌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역시 나는 까락스의 절대적 지지자는 아니란 결론. 인터뷰 몇 편을 찾아봤더니 이 영화는 재즈처럼 즉흥성에 기반한다. 인터뷰어들이 이 영화에대한 영화라고 호들갑떠는 건 좀 인터뷰어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이에 레오 까락스가 멋진 말을 한다. "씨네필과 씨네마가 있다. 나는 씨네필은 아니다. 나는 씨네마라고 불리는 섬에 산다."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가진 은둔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씨네마란 섬이 뭔지 보여준다.

 

2. 리무진을 타고 연기를 하는 배우의 하루 일과가 펼쳐진다. 오스카(드니 라방)는 이동 분장실에서 노파가 됐다가 안드로메다에서나 입을 거 같은 우주복 같은 비닐도 입었다가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기도 하고 혐오감을 주는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영화가 관객한테 보는 수동성을 요구하는 면이 있는데 이동하는 배우는 아마도 고객의 지시에 따른 배역을 맡는다. 배우와 관객의 기존 지위가 바뀌는 듯하다. 사람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무형의 유동적 특성을 지닌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방법을 고안하는데 그게 바로 영화며 <홀리 모터스>에서는 배우를 고용하는 것. 잡지 모델이 그 시간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납치를 당하고, 누군가한테 미처 못 다한 복수를 하고, 삼촌한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하기도 하고, 연인의 회한을 돌리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고.

 

3. 어쩌면 같은 시간에  다른 곳,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들을 오스카를 통해 잠시 한 곳에 모아볼 수는 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건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이며 환상이다. 여러 인물로 변신하는 오스카 자신도 시간의 흐름에 저항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하는 훌륭한 리무진이 있지만 그가 리무진에 오르면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자연인 오스카는 리무진에 갇혀 밥도 먹고 잠깐 휴식도 취한다. 차 안의 편리한 기능은 차 밖에 나갈 필요가 없게 만든다. 심지어 바깥 경치도 모니터로 본다. 그러나 자연인 오스카는 무기력하고 이따금씩 회의적이다. 그가 혈관이 부풀어 터질것 같은 에너지로 가득찰 때는 현재의 자신을 잊고 다른 이가 될 때다. 씨네마라는 섬에 사는 건 이런 게 아닐가. 씨네마를 끊임없이 탐닉하는 씨네필도 오스카와 접점이 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다른 이의 삶을 엿볼 때 가득찼던 활기가 극장 문을 나서면서 뱉어내는 흥분한 말은 나른 속으로 사라진다. 마약 중독자가 약기운이 떨어지기 전에 약을 확보하는 거처럼 나른함이 체세포 전체를 지배하기 전에 서둘러 극장에 또 가고야만다.  

 

4. 드니 라방. 까락스 영화 말고 본 적이 없다. <퐁뇌프의 연인들>이후 처음인데 여전히 깡마르고 인상적 시선을 가지고 파리의 포석 위를 내달리고 하수구 통로를 걷는 익숙한 모습부터 슈트를 입고 출근하는 은행원도 되고 딸을 걱정하는 자상한 아빠가 되기도 아주 낯선 모습까지. 시간을 집어 삼킬 수 있을 거 같은 기를 보여준다. 누군가 드니 라방의 사생활이 궁금하다고 감독한테 물었으나 감독은 개인적 삶은 전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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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4-09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락스가 관객을 "곧 죽어갈 무리"라고 했다죠. 영화의 내용과 연결지어보니 뭐 파격 같은 게 아니라, 영화홍보의 고도의 전략인듯..아니 어쩌면 진짜로 관객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듯 싶기도..ㅋ 아주 옛날에 TV에서 <퐁네프의 연인들>의 일부를 본 기억이 나는군요. 씨네마라는 섬이라..씨네필들이 호들갑 떨 때 괜히 짜증나는 게 있죠.

넙치 2013-04-10 17:59   좋아요 0 | URL
ㅋㅋ 까락스 감독 답네요. 프랑스 관객을 의미하는 듯 하고요. 프랑스인이면서 자신의 나라를 싫어하고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감독 중 하나.. 시나리오가 정교하보다는, 이미지즘을 대표하듯이 전작들처럼 이미지가 좀 강한 편이에요. 관객은 생각 안 한 게 정답인 거 같아요.ㅋ

 

 

 

 

 

 

 

 

 

 

 

어제 영상자료원으로 <아비정전>을 보러 갔다. 영화 시작 20분 전에 도착해서 늘 앉던 좌석을 받고 커피를 마셔야지, 했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내 계획의 무모함이 드러났다. 다음 회 <백발마녀전>까지 티켓은 매진이었고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이들이 로비를 둥글게 메우며 줄을 서고 있었다. 계단에라도 앉을 요량이었다. 장국영의 인기를 내가 너무 과소 평가했던 거다. 등받이 없는 통로에 앉아 영화를 보기에는 내 허리가 너무 부실해서 발길을 돌려 뜻밖에 <비념>을 봤다.

 

<지슬>을 본 터라 <비념>은 보겠단 의지가 전혀 없었지만 <비념>은 <지슬>이 좀 놓친 역사적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감독이 서양화 전공이라서 그런지 이 영화도 제주 영상 홍보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제주를 구석구석 담는다. 바람소리,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화면을 구성하는 감상적 전달법을 사용한다. 이런 화법이 처음에는 좀 답답했다. 언제 이야기를 하려고 영상만 내보내나 했는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제주의 사소한 일상적 풍광에 서서히 젖어들면서 역사적 슬픔에 조금씩 동화되는 효과가 있다. 4.3 사건부터 현재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논란까지를 절제하면서도 차분하게 요약한다. 제주에 십 수 번 갔지만 섬 전체가 슬픔이 묻어있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지금 올레길로 알려진 곳 중 많은 곳이 피의 흔적을 깊숙이 간직한 곳이다. 제주를 평온한 휴양섬 정도로만 여겼왔던 터라 좀 충격적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입을 통해 본 제주는 삶의 터전일 뿐이다. 1946년이나 2012년이나 제주민한테 동급의 악몽이다. 4.3 사건 당시 일본으로 피난을 간 한 할머니의 말이 스산하다. "일본에서 못 살면 미국이나 중국으로 가야지 한국으로 가면 안 돼. 한국은 사람이 살기에 제일 나쁜 곳이야"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깊은 상처를 보여주는 말이다. 군사적 전략지로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말은 앞으로 제2의 4.3 사건이 일어날 잠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국가 방위가 누구를 위한 건지 의문을 던진다.

 

<지슬>이 겨울 하얀 풍경으로 서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비념>은 초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는 영화 보는 내내 다음에 제주에 가면 다랑쉬 오름을 가 봐야지, 했다. 아마도 <지슬>에서 주민들이 숨어있고 말다리를 가진 청년이 죽던 곳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는 또 소비하는 인간으로 돌아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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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4-0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심플하고 좋네요. 저도 영화를 본 이후에는 늘 소비하는 인간으로 돌아오는 듯. 아니 가끔은 영화 보는 도중에도 소비하는듯..<지슬>에 대해 '씨네21'에서 비판적인 글을 읽었는데, 꽤 흥미롭더군요.

넙치 2013-04-10 17:52   좋아요 0 | URL
글 내용이 제가 짐작하는 게 맞는지 궁금하네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언제나 까기 좋은 편이라...

맥거핀 2013-04-11 13:20   좋아요 0 | URL
<지슬>에 가득한 이미지 중심의 숏들이 '영화적'이지 않다는 이야기인 걸로 보입니다. 뭐 간단하게 말해서 영화는 사진집이 아니라는 얘긴데요...사실 이 글에서 말하는 '영화적'이란 것의 실체가 좀 두루뭉술하기는 합니다. 운동성? 혹은 <홀리 모터스> 같은데서 말하는 '모터'?

넙치 2013-04-12 22:30   좋아요 0 | URL
제가 짐작하는 거랑은 전혀 다른 형식적인 면이가 보군요. 들뢰즈가 말하는 운동성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 이미지를 아주 역동적으로 느꼈어요.
 

 

 

 

 

 

 

 

 

 

 

 

1. 영화가 역사를 다룰 때, 일반화가 꼭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반화 되지 않은 역사 영화는 일반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 관심있는 소수의 전유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감독이 잠재적으로 의도한 역사적 인식에 대한 시선에 있어서 분명히 존재하는 미덕을 희미하게 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역사를 상세히 아는 이들한테 비판을 좀 받더라도 일반화는 어쩔 수 없고 본다. 근데 일반화를 할 때 그 선을 범주화하는 게 만만치 않다. 그간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이 지나친 일반화로 휴머니즘으로 흐르거나 혹은 지나친 특수화로 역사에 대한 자각을 주지 못했다. <지슬>은 미학적으로도 빼어나게 비극적 한국 역사를 일반하고 성찰 영역까지 나아간다. 

 

2. 제주4.3 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네이버 검색을 좀 해봤더니 지도부의 무능함에 분노가 끓어 오른다.  미군의 농간으로 1948년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영화는 두 그룹을 배치한다. 마을 공동체 주민 한 그룹,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 그룹. 군인 그룹을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명령에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지도부와 왜 비논리적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신병들이 있다. 신병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왜 자신들이 죽이고 죽어야하는 지 모른다. 차이점은 신병들은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을 강요받고 주민들은 군인의 정체성을 아주 추상적으로 받아들인다. 주민이 보기에 군인은 제복을 입고 총을 겨누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며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고귀한 생명체다. 주민 공동체가 갖는 이런 의식세계를 아름다운 이미지로 잡아낸다. 작은 지방 마을에서 마을 구성원의 친밀함이 피난을 가고 작은 동굴에 모여 도라도란 나누는 담소 장면 속에 잘 나타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렵게 가져온 감자를 서로 나눠 먹을 때, 이들은 한 집합으로 묶여 스크린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회화같은 이미지다. 각 개인의 얼굴을 잡을 때도 카메라가 둥글게 돌면서 한 사람씩 잡아내는 방식을 쓴다.

 

군인들을 담을 때 트랙인과 트랙 아웃, 아웃포커싱을 아주 인상적으로 사용한다. 트랙인/아웃은 고참들과 신병들의 경계를 말하는 듯하고 신참들의 내적 갈등을 아웃포커싱으로 표현다. 멀리서 아웃포커싱이 되면서 누군가 걸어와서 바로 우리 눈앞에 왔을 때야 포커스가 맞춰져 인물을 알아볼 수 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은유적 기술처럼 볼 수도 있겠다. 돼지가 굶어 죽을까봐 걱정하거나 집에 두고 온 딸, 노모에 대한 걱정을 하는 순박한 주민을 폭도로 규정하는 명령이 명쾌하다면 명령을 직접 집행하는 자들이 맞닥뜨리는 혼란을, 이런 식의 화면으로 잡아냈다. 아울러 짠밥이 쌓이면서 명령을 당연시하는 고참들의 악랄함이 대비된다. 주어진 상황을 잘 이용하는 파렴치한들이다. 이들이 살아있다면 이들부터 과거에 사죄해야하지 않나.  

 

영화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끔찍한 장면이 많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비약해서 약간의 피와 결과만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늘했다. 화면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목숨걸고 뛰는 장면에서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멀리서 보면 이들이 추격전을 하는지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지 헷갈릴 정도다. 반성과 성찰을 요청하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름다움 때문에 소비재가 돼 버리는 슬픈 운명에 종종 처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비극적 역사 이전에 감독이 만들어 낸 시각적 아름다움에 먼저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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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3-3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해주신 일반화와 특수화, 범주화의 문제는 알 것도 같고, 잘 모를 것도 같네요.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찍는가, 혹은 극영화로 하는가의 문제도 관련이 있을 것 같고, 과연 일반화가 어떤 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혹은 그게 사실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의 문제도 있을 것 같은데..아무튼 잘 모르겠습니다.^^

혹여 영화를 보게 되면 말씀해주신 트랙인/아웃, 아웃포커싱 같은 부분을 주의해서 보겠습니다. 이 영화가 아주 미학적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글을 보니 이게 상당히 고도의 작업을 거친 결과물인 것 같군요.

넙치 2013-03-31 12:56   좋아요 0 | URL
정말 어려운 문제죠. 전에 맥거핀님이 다큐멘터리의 형식에 대한 고민을 썼던 글, 기억나요. 한때 제가 의문을 가졌던 문제기도 하구요. 다큐를 잠시 공부하는 동안 진보적 정치성향을 지닌 다큐가 그 형식마저도 급진적이다보니 올바른 정치성향을 대중에게 알리기 보다는 소수만 전유하는 걸 봤습니다. 내레이션과 화면은 기본적으로 불일치, 화면도 문서와 사진의 복잡한 배치로 독해해내려는 인내가 없으면 외면받을 수 있는 형식을 왜 택하나, 하는 문제에 봉착한 적이 있습니다. 다큐 전공 샘 왈, 급진적 이데올로기를 평범하게 표현하기 거부하며 또 그런 기법에 익숙해지면 보편적 방법이 싱겁게 느껴진다고. 많은 똑똑한 사상가들이 읽기 편한 글을 지양하고 엉덩이 붙이고 뇌세포를 능동적으로 사용하길 요구하는 미로같은 문장을 생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거 같아요. 똑똑한 이들은 일반대중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저는 평범한 대중이기에 대중적 화법이 더 설득력있다고 믿는 편이에요.물론 세부적 사항에서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보는 편이고요. 임철우 소설가의 <백년여관>이란 소설이 같은 사건을 소재로 다루었는데 구체화가 지닌 딜레마에 빠져 사건을 잘 전달은 하지만 일반 독자가 공감을 느끼기에 너무 지엽적이란 기억이 있어요.

이 영화는 그런 점을 잘 극복한 거 같아요. 극영화면서 살짝 다큐 느낌이 나는데 알려지지 않은 배우(전문배우인지 일반인인지 정보를 못찾았어요)와 제주 방언으로 이루어져서 극영화인데도 극영화란 느낌이 반감되더라구요. 게다가 흑백에 군더더기 없는 배경을 잡아내는 방식이 극영화와 다큐의 중간쯤 위치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요.

영화 본 후 감독에 관해 좀 찾아 봤더니 동양화 전공이란 말에 미학에 관한 모든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산이라기 보다는 타고난 감각이 아닐까, 뭐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