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부터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매진이어서 정식 개봉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들리는 소문들로 기대치가 높아졌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역시 나는 까락스의 절대적 지지자는 아니란 결론. 인터뷰 몇 편을 찾아봤더니 이 영화는 재즈처럼 즉흥성에 기반한다. 인터뷰어들이 이 영화에대한 영화라고 호들갑떠는 건 좀 인터뷰어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이에 레오 까락스가 멋진 말을 한다. "씨네필과 씨네마가 있다. 나는 씨네필은 아니다. 나는 씨네마라고 불리는 섬에 산다."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가진 은둔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씨네마란 섬이 뭔지 보여준다.
2. 리무진을 타고 연기를 하는 배우의 하루 일과가 펼쳐진다. 오스카(드니 라방)는 이동 분장실에서 노파가 됐다가 안드로메다에서나 입을 거 같은 우주복 같은 비닐도 입었다가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기도 하고 혐오감을 주는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영화가 관객한테 보는 수동성을 요구하는 면이 있는데 이동하는 배우는 아마도 고객의 지시에 따른 배역을 맡는다. 배우와 관객의 기존 지위가 바뀌는 듯하다. 사람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무형의 유동적 특성을 지닌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방법을 고안하는데 그게 바로 영화며 <홀리 모터스>에서는 배우를 고용하는 것. 잡지 모델이 그 시간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납치를 당하고, 누군가한테 미처 못 다한 복수를 하고, 삼촌한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하기도 하고, 연인의 회한을 돌리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고.
3. 어쩌면 같은 시간에 다른 곳,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들을 오스카를 통해 잠시 한 곳에 모아볼 수는 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건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이며 환상이다. 여러 인물로 변신하는 오스카 자신도 시간의 흐름에 저항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하는 훌륭한 리무진이 있지만 그가 리무진에 오르면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자연인 오스카는 리무진에 갇혀 밥도 먹고 잠깐 휴식도 취한다. 차 안의 편리한 기능은 차 밖에 나갈 필요가 없게 만든다. 심지어 바깥 경치도 모니터로 본다. 그러나 자연인 오스카는 무기력하고 이따금씩 회의적이다. 그가 혈관이 부풀어 터질것 같은 에너지로 가득찰 때는 현재의 자신을 잊고 다른 이가 될 때다. 씨네마라는 섬에 사는 건 이런 게 아닐가. 씨네마를 끊임없이 탐닉하는 씨네필도 오스카와 접점이 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다른 이의 삶을 엿볼 때 가득찼던 활기가 극장 문을 나서면서 뱉어내는 흥분한 말은 나른 속으로 사라진다. 마약 중독자가 약기운이 떨어지기 전에 약을 확보하는 거처럼 나른함이 체세포 전체를 지배하기 전에 서둘러 극장에 또 가고야만다.
4. 드니 라방. 까락스 영화 말고 본 적이 없다. <퐁뇌프의 연인들>이후 처음인데 여전히 깡마르고 인상적 시선을 가지고 파리의 포석 위를 내달리고 하수구 통로를 걷는 익숙한 모습부터 슈트를 입고 출근하는 은행원도 되고 딸을 걱정하는 자상한 아빠가 되기도 아주 낯선 모습까지. 시간을 집어 삼킬 수 있을 거 같은 기를 보여준다. 누군가 드니 라방의 사생활이 궁금하다고 감독한테 물었으나 감독은 개인적 삶은 전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