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마당 Vol.3 2015.Spring
언니네 마당 편집부 엮음 / 언니네마당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20대에는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편집장.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20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황금기이다. 비극은 황금기라는 걸 20대가 지나서가 알게 되는 거고. 20대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서른, 마흔을 넘으면 자신의 삶이 비루해보이기 시작하고 다른 이들은 어떤 다른 삶을 사나, 하는 궁금증이 든다. 주류잡지에는 육아, 미용, 웰빙 먹거리, 이벤트성 휴가 이야기고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있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아득하게 쓰여있다.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저기서 말하지만 실제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인생의 엑스트라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점을 지양하고 평범한 언니들한테 주인공이라고 일깨워주는 책이다. 한 면만 보고 살아왔는데 잊고 있던 내면을 마주하게 하는 일에 주력하는 기획의도에 힘껏 응원하고 싶다.

 

계간지로 호마다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풀어놓는데 봄호는 "처음이야"라는 주제로 물건에 관한 기억부터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학부형이 되는 여러 경험에 대한 수다로 이어진다. 처음이란 주제로 풀 수 있는 여러 가지 타인의 경험을 통해 내 경험을 소환하는 소소한 즐거움.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누구나 삶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녹아있다. 고민하는  주체는 곧 삶의 주인공 탓이란 시선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잡지로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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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5-03-21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 !!
단어 하나가 주는 감성, 의 힘이 이렇게 컸나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어요.
지나치게 일상적인 단어라 지나쳤던 언니들! 의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넙치 언니의 싱그러운 이야기도 실려있으신 듯 ...음..참 좋네요.. 언니 ^^

2015-03-2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5-03-2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다 소개하시니,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읽어볼게요, 이 책은 계간지인가봐요, 제호 옆에 봄 호 라는 것을 보았거든요, 넙치님, 즐거운 주말되세요^^

넙치 2015-03-24 17:40   좋아요 1 | URL
네, 다른 잡지들하고는 좀 달라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요.^^
 

 

마음이 축 처져 위안을 좀 얻고 싶어서 음악영화인줄 알고 극장으로 갔다. 결론은 위안은 커녕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겠니,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관람했다.-.-; 검색을 좀 해보니 감독이 고등학교때 밴드에서 겪은 이야기를 기초로 했다고.

 

확실히 이 영화는 청자의 입장에서 음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음악은(혹은 예술)은 창작자가 보는 관점과 소비자가 보는 관점이 다르다. 예술 소비자는 가시적인 결과물에 대한 권리만을 확보할 뿐이다. 창작자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몰입하는 속성이 있다. 드럼은 다른 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보조적 악기라고, 평소에 생각해왔었다. 물론 그릇된 생각이다. 드럼의 영역은 넓고도 깊다. 영화에서는 드럼의 넓이와 깊이를 정말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폭풍우가 치는 듯한 템포를 표현하기 위해 땀과 피를 미장센으로 주로 사용한다. 귀로만 드럼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드럼소리를 볼 수 있게 연출한다. 음악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피를 보다니...실제 악기연주자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빠른 화면구성으로 드럼을 칠 때 필요한 에너지 고갈을 절절히 보여줘서 피를 보는데 취약한 나는, 내내 불편한 표정과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려는 야망을 품은 학생이 괴물같은 선생을 만난다.  선생은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악마 역할을 한다. 이 장면을 상상하기란 어렵지않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긴장감까지는 아니어도 학창시절에 악마같았던 선생을 떠올리는 일은 비교적 쉽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음악영화라기 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영화였다. 최고의 예술가가 될 잠재력을 시험하는 방법에서 의문을 품지않는 선생과 그 선생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학생. 보는 내내 무슨 음악영화가 장르영화처럼 섬뜩했다. 전반부 한 시간은 정말이지 눈을 감아야하는 장면이 속출했다.

 

예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다는 것, 혹은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데는 어떤 동기가 필요하다는 걸 암시한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개인의 약점을 더 짓밟아서 분노할 때 형성되는 폭발적 에너지에 주목한다. 폭발적 에너지는 왜 분노에서 나와야하는가. 긍정적 성질은 소용돌이 치는 에너지를 담을 수 없는가. 도덕적 윤리와 예술은 공존할 수 없는 조합일까, 하는 비예술인이 할 수 밖에 없는 생각을 했다.

 

음악은 하는 이만이 아니라 듣는 이를 위해 존재한다. 화나 분노에서 나온 에너지는 결국 듣는 이한테 전달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최대의 에너지로 연주되는 곡을 들으면 그 화나 분노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감상자의 역할은 어쩌면 단순한 물건 구매자 혹은 소비자의 역할 이상은 될 수 없는걸까,에 대한 해결책을 영화는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뮤지션의 육체적 고통을 잘 전달한다. 심리적인 부분도 있긴 하지만 연출기법상 악기를 다루는 이의 육체적 고통과 한계를 관객이 함께 견디게 한다. 꽤 오랜 시간 연주자의 고통을 함께 겪은 후 마지막 카라반 연주 장면에서는 심리적 고통이 어떻게 음악으로 바뀌나를 체험하게 된다. 감독은 음악 생산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함께 하고자 했다. 단순한 음악감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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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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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8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8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0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과 말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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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말, 언어에 관심이 많다. 말은 한 개인의 우주고 세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단지 소리를 내는 게 말이 아니라 사고를 드러내는 게 말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 책은 제목도 끌리고 목차도 끌리고 번역자도 끌리고 출판이름도 끌리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내 로망, 무게가 가벼운 책. 출판사에 꾸벅 절하고 싶다.

 

읽다보니 말에 관한 예찬론이다. 저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저자는 아마도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인 듯 싶다. 이런 부분은 설득력이 전혀 없진 않는데 긍정을 할 수는 없다. 언어의 선험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선험적 기원을 읽다보면 저자는 창조론쪽으로 기운다. 난 진화론자 입장이고.

 

책의 미덕은 저자가 지닌 감각의 과잉에서 나온다. 과잉이 생산적인 좋은 예시이다. 말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말에 관해서만 산문시 한 권을 쓸 수 있는 능력. 읽으면서 감각의 과잉에 관해 생각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언어에 대한 지나친 감각이 통찰력까지 나아간다.

 

"말은 다른 존재로부터 앞서 주어진 것으로부터 인간에게 온다. 그리고 한 인간에게서 다시 다른 인간에게로 전달되려고 한다. 말이 있으면 이미 거기에는 다른 인간이 있는 것이다."(84)

 

말을 하면서 상대가 거기에 있다고 예상한다. 그런데 가끔 내 입을 떠난 말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말로만 남을 때 좌절과 후회가 있다. 이럴 때 말이 공허하다고 느낀다. 침묵도 말의 한 종류로 언어 이전에 침묵이 있었다고. 침묵의 가치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말 그자체 보다는 침묵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을 애정한다. 시인의 언어에 신의 언어과 같은 자격을 부여한다. 저자의 문장도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다.

 

 

덧.

나 역시 지나치게 신체적 감각이 발달했지만 부정적 측면이다. 가령 유리문을 열때 손목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 다음날 부어오른다. 앉을 때 손을 잘못 짚어 손가락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 다음날 손가락이 부어 오른다.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손끝이 찌릿찌릿해서 전기가 오는 거 같다. 바닥에 발뒤꿈치가 닿으면 아파서 잘 때 발도 배게를 해줘야한다. 물만 마셔도 물이 식도를 넘어서 위를 거쳐 십이지장, 대장까지 닿는 경로를 느낄 수 있다. 농담삼아 연약해서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쓸데 없는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해서 통증이 삶의 일부를 이루는데 익숙해져있다. 무익한 감각을 유익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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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월은 일년 중 분기점같은 기분이 난다. 일기예보에서는 봄바람이라고 호들갑떨지만 여전히 겨울바람으로 내복을 벗기에는 바람이 뼛속을 파고 든다. 그래도 겨울 끝물이라는 생각에 견딜만하다. 빈국립미술사박물관에 있는 피터 브뢰겔의 그림이 주인공인 줄 알고, 오랜만에 아트시네마에 갔다. 중년판 <비포 선라이즈>같은 이야기를 씨실로 브뢰겔의 그림 이야기도 있고 브뢰겔의 그림이 있는 빈미술사박물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

영화는 캐나다 여자가 연락도 잘 안 하는 사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연락을 병원측에서 받고 빈으로 오면서 시작한다. 여자는 사촌이 오래전에 보내줬다는 오스트리안 그린색 코트를 입고 미술사박물관에서 지도를 들여다본다.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그림을 올바른 태도로 관람하는지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남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해진 면회 시간외에 남는 많은 시간에 당황스러워하는 이방인 여자와 앉거나 서서 관람객을 보는 일을 하는 남자. 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간이 많다. 그리하여 비엔나의 이곳저곳을 남자는 여자한테 안내해준다.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이 일 외에는 아무데도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걸 여자를 통해 깨달았다고. 공간은 공유하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남자는 이방인 여자와 함께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행운을 얻는다. 덤으로 여자의 질문으로 남자의 일상이 건조한 걸 깨닫게 된다. 일상과 습관이 건조해지는 건 극적인 자극의 부재라기 보다는 익숙함에 있는데 이방인은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진다. 질문과 함게 일상적 습관은 거리두기가 가능해지고 객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가 아니지만 내가 러브스토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이다.

 

3.

왜 서로 모르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미술관이야기를 하는가. 사람의 삶이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대체로 같은 미술관의 같은 자리에 있다. 그림은 남자와 같은 입장으로 미술관 붙박이다. 한결같은 그림을 새롭게 보기도 하고 진부하게 보기도 하는 건, 관람객이다. 미술관의 주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림같지만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보는 이의 시선이다. 남자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관람객을 바라보거나 그림에서 숨은 그림 찾듯이 전에 보지 못했던 점을 찾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점을 찾으려는 적극적 취미가 그림을 새롭게 보게 하듯이,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상도 그 일상을 살아내는 주체의 태도에 따라 새롭게도 보이고 지루하게도 보인다. 가끔씩 영화처럼 이방인이 들아와 함께 봐 주면 반복적 일상에서 놓쳤던 걸 찾아내는 소중한 시간이 펼쳐진다. 보존된 그림이 살아있기 위해서 관람객이 필요하듯이,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도 나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필요로 할지 모르겠다.

 

4.

한편으로 미술'관'사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술관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프랑스 혁명 후 그림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혁명정신으로 루브르가 세워졌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정신의 계승은 단절되는 거 같기도 하다. 그림은 일종의 속지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편이다. 혁명정신에 위배되는 현실. 그리고 미술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한 전개도 이루어진다.

 

 

5.

피터 브뢰겔의 그림에 대해서는, 도슨트의 설명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브뢰겔이 그린 서민 풍속화에 대한 미술사적 의의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기도 하면서 남자가 보는 주관적 시점이 첨가되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 브뢰겔 책을 다시 펼쳐보는 동기부여도 해 주고.

 

6.

집에 오는 길에 후배와 미술관에서 일하는 남자의 직업에 대해 말했다. 꿀직장이라고. 미술관에서 관람객 감시(?)하는 일 하고 싶다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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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건 적의 정체성 설정이다. 냉전시대에 스파이 영화가 번성했다. 탈냉전 후 현실 세계에서 미국은 공공의 적으로 후세인을 찾아냈고 몇 년간 사담 후세인의 뒤를 쫓았지만 스파이 영화로 후세인을 이용하기에는 후세인은 너무 지엽적 인물로 세계 관객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며  인터넷도 너무 발달했다. 후세인의 죽음으로 IS가 공공의 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뉴스와 매체는 사실보도 보다는 공포심 조장에 더 관심있어 보인다. 두 스푼의 팩트로 한 권의 픽션을 쓰지만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현실의 뉴스는 사실과 마주하는 걸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잊는데 뉴스를 보면 된다. 반면에 현실을 직시하고 싶으면 영화를 보면 된다.

 

이 영화는 현실을 아주 잘 담고 있다. 재난영화 서사에서 적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재난영화의 성격을 담고있다. 발렌타인이 적으로 설정되는데 이름부터 흥미롭다. 발렌타인이 누구인가. 사랑의 상징인 성인의 이름이다. 이름에 걸맞게 발렌타인도 박애를 실천하려고 한다. 성인 발렌타인이 가난한 이들한테 빵을 나눠줬듯이 10억 명한테 공짜 유심을 나눠준다. 영화 속 발렌타인은 한 발 더 나아가 지구 인구통제까지 하려고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까지 꺼내든다.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이들은, 발렌타인에게 기부를 한 부자들이다. 자본은 기술문명을 만들고 자본가는 그 기술로 부를 축적하고 구원 티켓도 산다.

 

발렌타인은  신의 위치까지 올라가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한 날을 카운트다운할 때, 발렌타인은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에 있다. 게다가 흥미로운 건 발렌타인의 태도와 행동이다. 힙합 패션에 껄렁이는 말투, 저녁 만찬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근사한 은그릇이 올려진 트레이로 내놓는건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메뉴이다.(이런 유머를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기술과 자본은 그 무엇보다 앞에 있다는 걸 강조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감독이 영국인이기에 가능한 유머같기도 하다. 감독의 마음 속에 " America is doomed"라는 영화 속 문구가 정말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맥도날드는 미국화의 대표적 상징이며 수트 입은 스파이의 대항항이다. 게다가 기성복이 아닌 장인이 한땀한땀 꿰맨 수제 수트. 수제 수트의 상징은 젠틀맨 문화권이다. 젠틀맨 문화는 첨단으로 무장하고 보편화를 추구하는 문화와 싸우고 이긴다. 킹스맨은 계속 될 것이다.

 

2.

살상씬에서는 엄청나게 "장관"이지만 그토록 유쾌하고 재밌게 담는데 놀랐다. 부정적 의미에서. 대량학살 씬이 두 번 나온다. 한번은 교회에서 해리가 보수주의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후반부에 생체칩을 이식한 선택받은 사람들이 버튼 하나도 머리가 터지는 장면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흥겨운 배경음악을 사용한다. 관객은 청각과 시각 두 감각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장면을 본다. 말초적 감각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피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귀로 음악을 들으면서 인물들이 마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듯한 율동감을 보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이의 고통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제 삼자로서 쾌락을 느끼게 된다. 후반부 장면은 마치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펑하고 아름다운 불꽃을 남기며 고통없이 사라지는 걸 보는 거 같다. 감독은, 관객이 오락 영화를 보면서 죽어가는 이의 심정을 헤아릴 것을 바라진 않겠지만.

 

3.

나는 콜린 퍼스의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 입술 얇은 그냥 중년 아저씨. 게다가 에그시. 너무 비호감ㅠ 수트를 입어도 간지 안 난다. 옷이 날개란 말은 이 배우한테는 예외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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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3-07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의 뉴스는 사실과 마주하는 걸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잊는데 뉴스를 보면 된다. 반면에 현실을 직시하고 싶으면 영화를 보면 된다.˝

이렇게 짧은 문단으로 이렇게 핵심을 찌르시다니 !!!.. 정말 그래요..

저번 파리 사태 이후, 한 칼럼을 잠시 읽은 적이 있어요.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저는 심경이 조금 복잡했었어요. 극단주의자들이 서양식 발전에 대한 가치, ( 왜 기억이 정확히 안나는지 ㅠ ) 편향된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스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흡수했다..즉, 일종의 poor group 으로 정의내려진 것을 그들 스스로 그대로 내면화한 것도 한 원인이다. 그런식의 이야기였는데,
제 *****편견으로는 ***
그냥 가진자 혹은 좀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자들의 ㄴ 오만 같은 것이 자꾸 느껴져서 ...심하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무시하고 짓밟고, 기 팍팍 죽여놓고, 자신감, 자존감 좀 가져봐 !! 네 것이 없으니까 자꾸 그모양이지 !!! 라고 훈수 두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어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요...


오르한 파묵씨가 그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전 세계에 요구하는 건, 당신들이 말하는 `악, 혹은 악당, 적` 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는 거의 언급할 수 있는 모든 인터뷰들에 그러한 견해를 고집했는데, 정작 터키 민족주의자들 혹은 극단주의자들이 그를 비난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요. ... 그들 역사의 부끄러움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저항이지만.........좀 더 영리해진다면 아까운 작가들을 잃지 않았을 일이라서.....

여기서 각각이 언급하는 타자들은, 단일 A 가 아닌 서로 얼마만큼의 공집합을 공유하는 A.B. C. D ...etc. . . 이지만, 저는 그 악으로 규정되는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논의에 있어, 그 분보다는 오르한 파묵씨가 좋네요. 넙치님... 전자의 날카로운 이성이 아무리 세상 빛에서 화려하게 빛난다 하더라도......

넙치 2015-03-07 01:11   좋아요 0 | URL
벤야민이 그런 말을 했군요..어떤 맥락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벤야민은 이론가라 타자에 대한 폭력이나 비가시적 폭력을 분석적 시각으로 바라봐서 그러지 않을까..짐작해봐요. 파묵의 입장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인데..(저의 무지ㅠ) 격하게 공감가요. 숲길님이 파묵의 입장에 마음이 쏠리는지도 이해가고요.

저는 미디어가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다각적 고찰없이 선정적인 단순한 사실을 확대 해석하는 게 진짜 너무 싫어요. 그걸 보고 많은 이들이 극단주의자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건 더 싫고요.ㅠㅠ 극단주의자들이 왜 극단주의로 빠졌나에 대한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매도하는 건 극단주의자만큼 잔인한 폭력 행사라고 생각해요.

비로그인 2015-03-08 06:02   좋아요 0 | URL
왜 갑자기, 난데없는 벤야민이 나왔을까요? ㅠ


그 칼럼을 다시 찾지는 못할것 같고,ㅠ 저자가 정확하지 않은지라 윗글에 이름을 지웠습니다..ㅠ ㅠ 워낙 대단한 석학이시라...읽었던 글인데 ...그 이름이 혼동되네요 ..ㅠ ㅠ 저자이름으로 혼란을 드려 ㅠㅠ ㅠ죄송해요. 넙치님 .

가끔 한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넘어선다는 것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파묵씨의 이해 역시, 그가 터키에서 살았다는 환경적 요인이 그러한 시각을 형성하는데 깊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올려 주신 리뷰가 문장 하나 하나, 단단하고 함축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더불어 주신 답글까지,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넙치 2015-03-08 22:39   좋아요 0 | URL
혼동하실 수도 있죠, 여러 글을 읽으시는데..저한테 죄송할 거 까지야..;;;;

맞아요. 처한 환경을 배제한 사고는 나올 수 없는 거 같기도 해요. 저는 파묵의 소설은 안 좋아하는데 <이스탄불>이란 책은 좋더라구요. 파묵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늘, 저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숲길님^^; 별 거 없는 글을 읽으시고 공감해주시 저야 말로 고맙고 부끄러워요^^

타자에 대한 폭력에 관심있으시다면, 주디스 버틀러 책도 보셨는지...? 혹시 안 보셨으면 기회닿으면 보시면 좋을 거 같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남겨요...

비로그인 2015-03-09 14:29   좋아요 0 | URL
책들을 검색하고, 따로 메모지에 적어 두었어요. 읽으면서 넙치님 많이 떠올릴 것 같습니다. ~~ 놓치지 말아야 할 분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분홍빛, 그런 봄날이시길..~~바래보아요
(좀 유치하지만, 분홍은 여전히 이런 봄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넙치 2015-03-10 13:37   좋아요 0 | URL
체계적으로 안 읽고 감히 추천했어요.^^;; 두 어권 정도 읽었는데 폭력에 관한 사유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줘서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거 같았어요.

서울은 바람이 씽씽불어요. 겨울바람 같진 않지만 초속7미터 쯤 되니 거짓말 조금 보태면 걸을 때 바람과 맞짱뜨는 기분이었어요. 어제 저녁에. 저는 날씨 구성요소 중 바람이 제일 싫어요. 빨리 봄바람도 지나가고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숲길님 계신 곳 날씨보다는 서울이 살만하겠죠? 해는 오늘도 쨍하니. 숲길님도 따사로운 햇살 가득받는 봄 맞이하시길요.^^

맥거핀 2015-03-07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술 얇은 중년아저씨라는 부분에서 빵 터졌습니다. 아..입술이 얇았었나요. 근데 콜린 퍼스 젊었을 때 사진 보니까 쩔기는 쩔던데..

말씀하신대로 살상장면은 비디오 게임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전혀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봤습니다. (누가 비디오게임의 주인공에게 동정을 느끼겠습니까. 돈 넣으면 다시 살아나는데.) 그런데 의외로 잔인하다는 평이 꽤 많더군요. 저는 솔직히 잔인보다는 쾌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죄책감 없이 말이죠.

넙치 2015-03-07 01:17   좋아요 0 | URL
저는 입술 얇은 남자= 경박한 사람이란 편견을 갖고 있어서 젊은 시절도 비호감ㅎㅎ;;

사실은 진짜 잔인하죠. 사람을 무슨 파리 죽이듯이 죽이니까. 저도 보면서 아 신나는데, 했어요. 그러다 잠시 미디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그래서 욱하면 살인을 하나, 하는 잡생각까지 나아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