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건 적의 정체성 설정이다. 냉전시대에 스파이 영화가 번성했다. 탈냉전 후 현실 세계에서 미국은 공공의 적으로 후세인을 찾아냈고 몇 년간 사담 후세인의 뒤를 쫓았지만 스파이 영화로 후세인을 이용하기에는 후세인은 너무 지엽적 인물로 세계 관객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며 인터넷도 너무 발달했다. 후세인의 죽음으로 IS가 공공의 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뉴스와 매체는 사실보도 보다는 공포심 조장에 더 관심있어 보인다. 두 스푼의 팩트로 한 권의 픽션을 쓰지만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현실의 뉴스는 사실과 마주하는 걸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잊는데 뉴스를 보면 된다. 반면에 현실을 직시하고 싶으면 영화를 보면 된다.
이 영화는 현실을 아주 잘 담고 있다. 재난영화 서사에서 적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재난영화의 성격을 담고있다. 발렌타인이 적으로 설정되는데 이름부터 흥미롭다. 발렌타인이 누구인가. 사랑의 상징인 성인의 이름이다. 이름에 걸맞게 발렌타인도 박애를 실천하려고 한다. 성인 발렌타인이 가난한 이들한테 빵을 나눠줬듯이 10억 명한테 공짜 유심을 나눠준다. 영화 속 발렌타인은 한 발 더 나아가 지구 인구통제까지 하려고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까지 꺼내든다.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이들은, 발렌타인에게 기부를 한 부자들이다. 자본은 기술문명을 만들고 자본가는 그 기술로 부를 축적하고 구원 티켓도 산다.
발렌타인은 신의 위치까지 올라가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한 날을 카운트다운할 때, 발렌타인은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에 있다. 게다가 흥미로운 건 발렌타인의 태도와 행동이다. 힙합 패션에 껄렁이는 말투, 저녁 만찬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근사한 은그릇이 올려진 트레이로 내놓는건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메뉴이다.(이런 유머를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기술과 자본은 그 무엇보다 앞에 있다는 걸 강조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감독이 영국인이기에 가능한 유머같기도 하다. 감독의 마음 속에 " America is doomed"라는 영화 속 문구가 정말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맥도날드는 미국화의 대표적 상징이며 수트 입은 스파이의 대항항이다. 게다가 기성복이 아닌 장인이 한땀한땀 꿰맨 수제 수트. 수제 수트의 상징은 젠틀맨 문화권이다. 젠틀맨 문화는 첨단으로 무장하고 보편화를 추구하는 문화와 싸우고 이긴다. 킹스맨은 계속 될 것이다.
2.
살상씬에서는 엄청나게 "장관"이지만 그토록 유쾌하고 재밌게 담는데 놀랐다. 부정적 의미에서. 대량학살 씬이 두 번 나온다. 한번은 교회에서 해리가 보수주의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후반부에 생체칩을 이식한 선택받은 사람들이 버튼 하나도 머리가 터지는 장면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흥겨운 배경음악을 사용한다. 관객은 청각과 시각 두 감각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장면을 본다. 말초적 감각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피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귀로 음악을 들으면서 인물들이 마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듯한 율동감을 보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이의 고통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제 삼자로서 쾌락을 느끼게 된다. 후반부 장면은 마치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펑하고 아름다운 불꽃을 남기며 고통없이 사라지는 걸 보는 거 같다. 감독은, 관객이 오락 영화를 보면서 죽어가는 이의 심정을 헤아릴 것을 바라진 않겠지만.
3.
나는 콜린 퍼스의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 입술 얇은 그냥 중년 아저씨. 게다가 에그시. 너무 비호감ㅠ 수트를 입어도 간지 안 난다. 옷이 날개란 말은 이 배우한테는 예외가 되겠다.